홍세화. 한 때의 이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고 모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홍세화. 누군가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하고 친숙한 이름이지만 짐작컨대 이 이름을 두고 아직도 '듣느니 처음이오'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가방끈 짧은 오십대 우리 언니 세대의 아짐들이 홍세화란 이름을 생소해 한다면 이해하겠다. 가방끈도 남들만큼은 되고 먹고 사는 일도 나름 풍족하기에 도통 세상사 관심 없고 나 한 몸 때 빼고 광내고 살면 그만이라는 젊은 세대라면 홍세화를 몰라도 또, 이해하겠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적어도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면 '홍세화' 이름 석 자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을까. 그것도 초자 선생님도 아니고 '일급 정교사' 연수 자격을 가진 선생님들이라면 말이다. 다음은 초등교사인 한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이십대 후반인 지인은 지난해 교직경력 만 4년을 넘어, 겨울 방학을 맞아 '일급 정교사'연수를 받게 되었다. 연수 일정표의 맨 마지막에는 ‘교원단체’에 대해 배우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은 교원단체에서 직접 나와 자기들 교원단체의 현황과 하는 일 등을 교사들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는데 알다시피 우리나라에는 ‘전교조’와 ‘한국교총’이라는 굵직한 두 개의 교원단체가 있다.
아무튼, 이 두 교원 단체 중 한국교총에서는 교총의 상근 선생님이 일일 강사로 나와서 교총에서 하는 일 등을 홍보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전교조에서는 상근선생님 대신 외부 인사를 초빙해서 강사로 내 보냈는데, 그 초빙강사가 다름 아닌 홍세화씨였다고 한다.
평소 홍세화씨를 좋아하고 그의 책도 사보곤 하던 지인은 ‘살다보니 이런 행운이!’ 하며 홍세화씨의 강연을 기대했다고 한다. 지인은 내심 홍세화씨가 연단에 오르면 ‘와아!’ 함성이 터지지 않을까, 여차하면 자신도 휘파람을 불고 손바닥이 불이 나게 박수를 쳐야지 하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지인의 상상은 단지 상상 이었을 뿐, 막상 홍세화씨가 연단에 올랐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아무도 ‘오늘의 강사’ 이상으로 홍세화씨를 보는 선생님들이 없었다고 한다.
지인은 괜히 미안해서 열심히 듣고 받아 적으며 귀 기울였는데 뭔가 분위기가 너무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에, 모두들 다음날 있을 일급 연수 최종 시험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고.
건성으로 홍세화씨의 강연을 듣는 척 하면서 무릎위에는 죄다 내일 칠 시험의 최종 정리 본을 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하였다-(물론 안 그런 사람도 많았겠지만 지인의 주변은 모두).
강연하는 사람은 청중과 소통이 됨을 느껴야 강연을 해도 신바람이 나고 하고자 하는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아닌 우리 아이들의 장래를 책임지는 선생님들이 ‘니는 지껄여라’ 우리는 내일 보는 시험이 더 중요하다는 뜻을 온몸으로 보여줬으니 홍세화씨는 그 강연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인은 동료교사들을 대신해 일당백으로 열심히 듣고, 적고, 강연이 끝났을 때는 강연 잘 들었다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사인도 받고 팔짱끼고 사진도 찍는 등 갖은 호들갑을 떨며 나름의 사과의 몸짓을 날렸다고 하였다. 지인처럼 호들갑은 떨지 않았지만 사인을 받으려 몰려든 교사는 여남은 명 정도 되었다고 하였다.
그날, 홍세화씨의 강연을 들은 교사는 족히 3~4백 명은 되었다는데 친필 사인을 받고자 연단 앞으로 모여든 교사는 겨우 여남은 명 뿐이었던 것이다. 맥이 빠졌던 홍세화씨는 그나마 수백명중 여남은 명이라도 자신이 말한 교육에 관한 여러 문제의식들을 공감해주니 다행이라 생각했을까.
그런데 그 강연의 절정을 장식한 사람들이 또 있었으니, 다름 아닌 지인 친구 교사들의 반응이었다.
“니 저사람 아나? 왜 그리 친한 척 하는데?”
“저 분, 홍세화씨고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와 <빨간 신호등>의 저자인데 들어본 적 없나?”
“모르겠는데.... 그런 책도 있었나?”
“그래... 아무튼, 유명한 사람이야. 후후.”
결론은, 홍세화씨의 강연시간에도 굳세게 공부했던 지인의 친구들은 다음날 일급 정교사 자격시험에서 만점이거나 한 개 틀리는 선에서, 무사히, 우수한 성적으로 일급정교사 연수를 마쳤던 것이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