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갔다가 한동안 뜸했던 이웃사촌을 만나 얘기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런저런 잡담이 오고 가던 중 문득 그녀의 큰 애가 중학교에 들어간 것이 생각나 물었다.

"참, 어느 중학교 갔어요?"

"00중학교."

"아니 왜 집 앞에 있는 학교 안 보내고 버스를 태워요? 버스통학하자면 피곤 할 텐데…."

"아침에 내가 태워주면 되요. 그런데 아들 얼굴 볼 시간이 없어요."

 "왜요?"

"중1인데도 밤 9시까지 ‘야자’를 하기 때문에 돌아와서 씻고 나면 잘 시간이고…."

"우리 단지 내 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그런 거 안 하는 것 같던데요?"

"그 학교는 좀 시키나 봐요. 나름 명문이라나~."

'야자'는 보통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나 하는 걸로 아는데 새로운 대통령을 맞아 새 교육정책이 발표되면서 야자 또한 '젊어'졌나 보다. 그래도 중1은 너무 하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는 초등대로 각종 예체능, 보습학원 다니느라 시달렸는데 잠시 쉴 틈도 없이 바로 야자로 또 아이들을 묶어 버리다니 정말 이 나라 교육이 교육이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   

학생도 학생이지만 선생님들도 딱하다. 집에 가서 다리 뻗고 하루의 피로를 풀어야 할 시간에 야자 감독을 해야 하다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복도를 오가며, 물을 끼얹은 듯 학생들이 조용히 공부하길 바라는 그 마음이 어떨까 싶다.

한창 키도 자라고 두루두루 ‘생장’도 하고 ‘성장’도 해야 할 사춘기 아이들인데 의자에 너무 앉아 있다가 신체가 골고루 못 자라면 어떡하나 심히 걱정스럽다. 언젠가 신문에서 OECD국가 중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안경 착용 비율이 제일 높다고 한 보도를 본적이 있다. 어디 안경 착용 뿐일까. 늘 고정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자면 허리며, 목이며 탈나는 것은 시간문제 일 것이다.

'야자' 시간엔 교과 공부만 해야지 독서는 안돼

올해 고1이 된 남자 조카는 부모의 기대완 달리 도무지 공부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본인은 공고에 가길 원했으나 가족들이 볼 때 공고에 갈 적성이 아니었다. 공고에 가자면 손이 여물어야 되는데 손재주 같은 것은 아무리 봐도 없는 애였다.

본인이 생각해도 수능공부가 하기 싫어 공고 가고 싶은 거지 공고에 적성이 맞아 가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볼 때 녀석은 인문계 문과에 적성이 맞았다. 아무튼 고집을 부릴 만큼 강단이 있는 애도 아니고 부모 또한 공부에 목숨 걸지 않았기에 가방 들고 학교에 다녀주기만 하면 60점은 따고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어영부영 금싸라기 같은 청춘의 3년을 흘려보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직무유기가 아닌가. 해서 다행히 녀석이 국어, 사회, 세계사에 흥미를 보이기에 가족들은 독서를 권했다.

"니 인생은 책 속에서 길을 찾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부모고 누나들이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때뿐이니 니 스스로 독서 하며 길을 찾아라."

그러면서 누나들은 막내 동생에게 독서 의욕을 고취시켜 주고자 상금을 내 걸었다.

"조정래 선생의 <한강>을 다 읽으면 상금 5만원을 준다."

"진짜?"

"쉽진 않겠지만 긴 역사소설 하나 읽고 나면 생각도 깊어지고 독서에 대한 내성도 생길거야."

그렇게 해서 이즈음 막내 조카는 진도는 더디 나가나마 늘 <한강>을 끼고 읽는다고 하였다. 마침 그 얘기를 전해들은 나는 한술 더 떠 “어차피 해야되는 야자시간, 어영부영 보내지 말고 <한강>을 시작으로 해서 ‘야자’를 독서시간으로 쭉 이용하면 되겠네. 그렇게 3년을 읽으면 수학 못해도 살길이 열리겠지” 하였더니. “야자시간에는 책 읽으면 안 된다고 했대. 교과 공부만 하라고. 다행히 국어 선생님만은 독서해도 된다고 했대” 란다.

때문에 국어 선생님이 야자 감독일 때는 <한강>을 읽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교과 공부를 하는 척 하며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과 공부는 공부고 독서는 공부가 아니라니. 독서 대신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문제 하나 더 푸는 것이 낫다는 발상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마무리

나는 내 아이를 대안 학교 등에 보낼 만큼 열정도 돈도 없다. 그냥 야자 안 하는 중학교 보내고 야자 안 하는 고등학교 보내는 게 목표이다. 그러나 야자 안 하는 고등학교를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아닐까 싶다. 야자 안 하는 중학교 정도는 보낼 수 있겠으나. 그런데 막상 내 아이가 중학 갈 시절에는 모든 중학교가 야자를 해버리면 그땐 어떡하지?

만약 중학교조차 성적으로 줄 세우고 경쟁이 붙는다면, 그래서 꼴찌 중학교로 소문나는 게 싫어서 너도 나도 야자를 시작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부디 나의 야자 울렁증이 빚어낸 부정적 상상이길 빈다.

요즘 날씨가 계속 좋다. 오후 3~4시에 길을 걷다 보면 인근 중학교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서너 명 씩 짝을 지어 느릿느릿 걷는 것이 보인다. 머리는 다들 귀신모양(?)으로 앞머리는 짧고 호빵처럼 둥글게, 뒤와 옆머리는 부스스하고 엉성하게들 하고 다니는데 불량스럽기보다 그렇게 햇볕을 쬐며 ‘느릿느릿’ 걸을 자유를 가진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야자를 하는 다른 중학교의 아이들은 그런 오후의 햇살을 모르리라. 슬프지 아니한가. 시험공부도 좋지만 청춘의 순간순간 또한 햇살처럼 소중할진대. 그 소중한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못쓰고 타율에 의하여 사육당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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