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당신의 추천 영화는?

아주 오랜만에 극장에서 울었다. 거슬러 올라가 보니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영화가 끝나도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제인 오스틴. 이분의 삶 속에 그런 안타까움이 내재한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웃의 지인이 제인 오스틴의 책을 좋아한다며 모두 사서 가지고 있다기에 속으로 웬 소녀 취향 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그녀의 모든 작품들이 한꺼번에 궁금해졌다. 따지고 보니 나는 그녀의 소설을 단 한편도 읽지 않았다.

반면 알고 보니 나는 그녀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은 TV시리즈 <오만과 편견>까지 다 보았네…. <센스 앤 센스빌러티>와 <엠마>는 원작소설이 있다는 것도 '제인 오스틴'이 그 원작자였다는 것도 모르고 보았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센스 앤 센스빌러티>를 보았을 때의 느낌은 '거참 초록의 정원이 죽이는구나'. 이안 감독에 끌려 두 번째로 보았을 때도 '역시' 경치 빼고는 볼 게 없네, 결국은 잘 먹고 잘살았다는 '사랑 야그'뿐이잖아. <엠마>는 기네스 펠트로 때문에 보았고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보고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에 비해 <설득>과 <맨스필드 파크>와 <노생거 사원>의 경우는 좀 달랐다. 동어반복의 사랑타령이어도 시대배경이 내가 동경하는 19세기임을 인지한 다음 본 영화였기에 무조건 좋았다. 그리고 제인 오스틴이 뭐 길래 그녀의 작품이란 작품은 다 영화화되는지, 그럴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왜 삶은, '사랑과 일' 둘 다 취할 수 없나



  
ⓒ 마스 엔터테인먼트
비커밍제인


<비커밍 제인>을 보고나니 제인 오스틴(앤 헤서웨이 분)이 왜 자신의 모든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행복한 결말을 선사해 주었는지 이해가 갔다. 전쟁에서 연인을 잃은 그녀의 언니 '카산드라'는 소설을 쓰고 있는 제인에게 주문했다.

"행복한 결말을 내어 줄 거지?"
"응, 모두 다 행복하게 해줄게."

그녀는 현실에서 못 이룬 사랑을 소설 속에서만이라도 이루고 싶었던 것일까. 당신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잃어도 좋다는 르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 분)의 고백에 사랑의 도피를 떠나기도 했으나, 끝까지 갈 수는 없었다.

자신을 위해 현실을 택했다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의지하는 그 가족을 위하여 떠나던 발길을 돌렸다. 혼자만의 행복을 좇기에는 그녀 마음이 이미 너무 성숙해 있었던 것이다.

삶은 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는 것일까? 사랑도 일도 다 이룰 수는 왜 없는 것인지. 어느 하나는 잃어야 다른 하나를 온전히 차지할 수 있다니 슬프다. 제인은 르프로이를 떠나보내고 소설을 쓰면서 언니 카산드라와 함께 독야청청 살다 갔다. 42세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제인의 나이로 치자면 나는 2년 후면 죽어야 할 목숨.

지금의 수명으로 생각하면 너무 젊지만 그 시대로 보면 평균수명을 살다 간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젊다. 주름이 질 새도 없이, 르프로이에 대한 사랑이 식을 새도 없이, 형형한 마음 그대로 살다 간 것 같다. 그 사랑의 화석인 듯한 책들만 남기고….

영화 끝 부분, 출판회를 겸한 음악회였나? 아무튼 빙 둘러앉은 홀에서 축하음악을 듣고 난 다음 이런저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던 찰나, 저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뒷모습은? 늙은 르프로이는 멀리서 제인을 훔쳐보고는 총총히 사라지려던 순간 그 뒷덜미를 제인에게 들켰다.

제인의 시선을 따라 먼 곳을 좇던 헨리 오빠는 르프로이를 발견하고 그를 잡아와 제인과 대면시켰다. 생각지도 못한 재회라 둘은 말도 못하고 다만…..

'먼발치에서 기냥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갈라 캤는디….'
'뜻밖이네요. 감사….'

'아마' 위와 같은 말을 속으로 주고받는 가운데, 르프로이의 딸이 촐랑대며 끼어들었다.

"저는 당신의 팬이에요. 이번 작품 낭독 해 주실 건가요?"
"이분은 그런 것 싫어해. 그런 무례한 부탁하면 안 돼. 제인!"

'뭣이라, 제인?' 제인은 르프로이가 발음한 '제인'이라는 단어에서 아직도 남은 르프로이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문에 원래 '낭독'을 하지 않던 유명작가 제인이지만 그날은 특별히 낭독을 함으로서 '제인'이라 부른 르프로이의 단말마에 '화답'하였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냥 짠했다고만 했는데…. 

 영화가 영화만으로 끝나면 재미없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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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두 시간으로 끝났지만 영화의 여운이 너무 짙어 현실이 싫어지고 어째 타임머신을 타고 저속으로 들어갈 수 없나 하며 턱도 없는 탄식을 하는데 다행히 길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책을 몽땅 사보는 것.

이미 그녀의 영화들을 다 보았기에 그 원작을 읽는 즐거움이 예사로울 것 같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행간에 숨어있는 그녀의 '심중'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재미보다 '짠함'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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