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 [할인행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야기라 유야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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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동안 부모 노릇에 대해 회의 없이 그냥 적당히 자만하며 나 몰라라 살았는데 요즘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또랑또랑하다고 생각했던 큰애는 엄마가 던진 자율과 무관심의 늪에서 너무 놀아서인지 학습할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늘 노는 게 남는 장사라 생각했는데, 같이 놀아줄 친구들이 제 시간에 없으니 노는 것 또한 생각만큼 남는 장사가 못 되었다. 오히려 무소속감이 주는 외로움에 그동안 아이는 나름대로 고독을 견디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럴 때야 말로 독서나 좀 하지 하는 게 내 바람이었는데 낮에는 분위기(?)가 안 잡혀 독서 따윈 전혀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 고독 그 자체를 씹든가. 그러나 아홉 살이 뭘 알겠는가.

나는 때론 아이의 어린 날을 내 어린 날에 비교하면서 내 아이는 좋은 환경이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느끼는 ‘체감도’는 그렇지 않은가 보았다. 아무렴 시대가 다르니 비교자체가 어불성설일터.

정신적 물질적으로 완전히 풍요로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핍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아이는 아이대로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도 없이 힘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사랑이 ‘간절한’ 4남매

<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2004) 도대체 뭘 모른다는 것일까. 아이들 네 명이 햇살을 받으며 쪼르륵 앉아서 행복해 하고 있는데 무엇을 모른다는 말인지. 2004 칸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카피만 읽고 숙제하듯 빌려본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상을 타고도 남을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큰아들 아키라(야기라 유야 분)가 처연하니 어른스러운 것과는 달리 그의 엄마는 뭔가 늘 부산스럽고 바빴다. 새 아파트로 이사 오던 날 아이들이 많으면 쫓겨날까봐 큰아들만 선을 보이고 셋째 ‘시게루’와 넷째 ‘유키’는 여행용 트렁크에 넣어서 데려왔다. 그런가 하면 트렁크에도 못 들어가는 둘째 ‘교코’는 역 대합실인가에서 기다리게 한 후 주변 사람의 눈을 피해 몰래 집으로 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새 아파트 생활. 아이들은 그 전의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린 아이들답지 않게 이웃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조심 살아주었다. 늘 바쁘고 부산한 엄마는 아키라를 학교에 보내주기는커녕 일상생활의 이런 저런 모든 것을 ‘너만 믿는다’ 이 한 마디로 때우며 맡겼다.

그쯤 되면 참다못해 속이 부글부글 끓을 법도 한데 주인공 아키라는 이미 그 단계를 초월했는지 믿음직하기 그지없는 장남이었다. 아니 화 내고 떼 쓸 조금의 ‘여지’도 없었기에 어린이다운 행동은 애초부터 차단되었다. 다만 대책 없는 엄마 대신 동생들을 돌보며 엄마의 연애 사업이 잘 되어 집안이 안정되길 빌며 하루하루 연명할 뿐이었다.

소설가 김원일의 작품들을 읽으면 없어 못 먹고 살던 시절의 얘기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김원일씨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마음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물질적으로 가난하다 뿐이지 홀어머니와 자녀들 간의 믿음과 정은 차고 넘쳤다.

<아무도 모른다.>의 경우도 아이들 사이의 우애는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엄마였다. 도대체 친엄마 맞아? 대책이 없으면 아이들을 줄줄이 낳지나 말든가. 각기 씨 다른 아이들을 줄줄이 낳아놓고 제대로 양육도 못하면서 여전히 연애사업만은 충실하였다.

“이번에 만나는 사람과 잘 되면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나름대로 ‘봉’ 잡을 자신이 있는 듯 말했으나 아무리 천하의 호인이라도 아이 넷 딸린 여인을 영혼에 스미도록 사랑하지는 못 할 터. 그렇게 불가능한 꿈을 꾸며 밖으로 나도는 엄마를 기다리다 아이들은 점점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갔다.

배고픔은 도벽의 충동을 느끼게도 하였고 바야흐로 사춘기 소년은 또래친구에 대한 목마름으로 한없이 더 고독해졌다. 이 영화의 상황으로 보자면 그저 매일매일 집에만 들어와도, 그 하나만으로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것 같은데 영화 속 엄마는 ‘그 하나’를 못하였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면 사회복지 시스템에 도움을 청해도 될 터인데 왜 그런 생각은 못하고 방치만 했는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니 더더욱 딱했다. 아무튼 이 영화는 나에게 ‘너는 부모노릇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물음을 던져 주었다.

대답은, 아키라의 엄마와는 차원이 다르기는 하지만 돌이켜 보니 나 역시 무지막지한 엄마였다. 이해심이라고는 도무지 없고 칭찬을 쉽게 잘해준다는 빌미로 그 못지않게 언제든 비난도 서슴지 않는 폭군이었다. 또, 아이 곁을 지키고 삼시 세 끼 더운밥 해주는 것 외에는 다 함량미달 임에랴.

영화 마지막 노래로 전해지던 아키라의 고백...

영화의 마지막은 (편의점 누나로 나온 다테 다카코가 애절히 부른) ‘보석’이라는 노래가 흐르면서 끝이 났는데 그 노래는 영화 내내 무표정과 처연한 침묵으로 삭이던 아키라의 슬픈 고백에 다름 아니었다. 보석(아키라)은 보석인데 악취가 나는 보석이라니.

한밤중에 하늘에 물어보아도/ 별들만 반짝일 뿐/ 마음에서 흘러나온 물이/ 검은 호수로 흘러갈 뿐/ 다시 한 번 천사는 나를 돌아볼까/ 내 마음속에서 물놀이를 할까/ 겨울바람에 눈물이 흔들리고/ 어둠속으로 날 인도하네./ 얼음같이 차가운 눈동자로/ 나는 점차 커가고/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보석

눈물을 쏙 빼주던 이 노래는 며칠이 지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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