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나도...

언젠가는.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나도 책이란 걸 한 권 낼 거라는 기시감은 항상 있었다. 시기를 모호하게 '언젠가'로 했기 때문에 다급해 할 필요는 없었다. 시간은 늘 충분히 남은 듯했고 또 내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히 인 적도 없었다. 언젠가 그런 마음이 생기겠지 언젠가는, 그럼 그때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일이 되려고 그런지 무언가 복선처럼 하나둘 책과 관련하여 나를 환기시켜주는 말들을 지난해부터 들었다. 10여 년 만에 만나게 된 옛 지인은 '그동안 책 한권 나왔어야 되는 거 아니야?' 하며 돌연 질문을 던져 사레가 들 뻔했다. 2~3년에 한 번씩 만나는 수녀님도 무슨 말 끝엔가 딴소리 하지 말고 글이나 써라 해서 일기를 안 쓴 지도 3년이 넘었는데 글이 웬 말이냐며 웃어 넘겼다.

어디 책을 낸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낸다는 것은 내게 있어 '어마어마한' 태산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큰 애 친구의 아버지인 전직 목사님도 책을 한 권 주며 '00어머님도 책을' 내보라는 게 아닌가.

결정적인 것은 올해 초 이탈리아 여행에서였다. 우연히 스친 다른 팀의 여행자가 나에게 "뭐하는 사람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백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는데 그 말을 뱉고 나니 왠지 실망시킨 거 같아 미안했다. 그런가 하면 내가 속한 팀의 인솔자 또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하였다.

"이거, 직업윤리 상 고객님의 사적인 것을 물으면 안 되는데 궁금해서요. 혹시 교사에요?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아닌가요?"

이에 그치지 않고 다음날 폼페이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인솔자는 한 번 더 의문을 표했다.

"아니, 그러면 작가예요?"
"점입가경이라더니, 웬 작가?"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말이 나온 김에 제가 돌아가면 무슨 도술을 부려서라도 작가가 되든 뭐가 되든 되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작가'란 말을 농담인 듯 말했으나 스스로에게 한 나름의 복선이었다. 세세한 과정은 모르겠으나 돌아가면 책을 내리라. 왠지 '언젠가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을 하니 실행은 일사천리였다. 먼저 책을 낸 분에게 몇 가지 알토란같은 조언을 얻고 나대로 좀 찾아보다 한 지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지인은 마침 잘됐다며 나에게 딱 맞는 출판사를 소개해주겠다고 하였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더니 나의 출판이 그랬다. 지난 50년 인생이 오로지 책으로 열매 맺으려고 달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번갯불에 구워먹을 콩은 <오마이뉴스>에 쓴 내 기사였다.
  

 교정중인 원고
 교정중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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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배우다
 

나는 결심만 하면 되고 출판은 그저 원고만 가져다주면 출판사에서 다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책에 대한 전체적 구성과 목차 소제목 등 모든 것을 내가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닌가.

전체적 구성과 목차라니. 뭔가 틀을 잡고 계획하고 완벽해야 되는 일들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지는 나였다. 아마 5년 전이었다면 그게 하기 싫어 출판의 꿈을 도로 집어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시 일이 되려고 그런지 못할 것도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

며칠 이리저리 생각하다 문득 떠오르는 직관대로 각 장의 이름을 정하고 그 각 장에 들어갈 글들을 두 배 수로 뽑았다. 그것을 주제별로 며칠 읽고 또 읽으며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추구하고 선택하고자 하는 글들이 결국 내 인생관과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관념 비틀어 보기', '영화처럼', '일상의 소소함', '책이 주는 행복1', '책이 주는 행복2'라는 다섯 개의 장을 만들었다.

'고정관념 비틀어 보기'에는 말 그대로 고정관념을 비틀어 다르게 생각해 보자는 취지의 글들을 골랐다. 명품? 이태리 장인이 한 뜸 한 뜸? 그런데 꼭 이태리 장인이어야만 하나? 동대문 장인은 어떤가. 동대문 장인 것이라도 소중이 오래 쓰면 그게 명품 아닌가 하는 주장부터 제사 지내지 말고 추모 후원하고, 남자는 넥타이에서 해방시키고 여자는 킬 힐에서 해방되자(?).

뿐인가. 친정엄마와 시모에게는 김장해방을 주고 당사자인 딸과 며느리는 스스로 김장을 하여 이른바 김장독립을 하자고. 이러한 주장들을 선별하며 지금 세상에 던져도 말이 될지 독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일었다.

'책이 주는 행복 1'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후회 없는 삶이 될까에 대한 해답이 담긴 책들의 독서 감상을 실었다. 젊은 나이에 연거푸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아버지를 차례로 잃은 명진 스님의 '죽음 보다 더한 스승은 없다'는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책이 주는 행복2'는 세상이 좀 더 밝아지는데 공감을 줄 수 있는 책들과 개인적으로 매력 있다 생각한 책들을 골랐다. '영화처럼'은 영화를 보게 된 계기가 된 영화와 몇 번 반복해서 보며 이상하게 주인공들에게 정이 갔던 영화들을 뽑았다.

'일상의 소소함'에서는 말 그대로 소소한 행복과 추억들을 실었다. 입국신고서에 쓴 주소 때문에 하마터면 입국을 거부당할 뻔 해 하늘이 노랬던 이야기, 나에게도 나름의 출생의 비밀이 있었는가 하면 결혼을 향한 집념의 스토리도 있었다.

무엇보다 책을 내면서 얻은 과외의 소득은 다름 아닌 교정을 하면서 문장을 보는 안목이 조금은 생겼다는 것이다. 출판사 대표는 일방적으로 고쳐주는 게 아니라 붉은 표시를 해주면서 표시된 부문을 나보고 다 손보라고 했다.

세상에나, 나는 내 문장에 그리 문제가 많은 줄 꿈에도 몰랐다. 문장에 비문은 물론이고 듣기 거북한 입말들과 과한 단어를 왜 그리 많이 사용했는지 '놀랠 노' 자였다. 이러면서도 모국어를 흠모한다 했는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교정을 할 때 마다 문장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화장을 한 듯 안한 듯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책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교정자의 입장이 되어 오자를 발견하면 이것을 어쩐다? 잠시 고민하며 웃곤 한다.

삶의 절반 마무리를 책으로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막상 세우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데 삶의 절반을 도는 시점에서야 겨우 용기를 내었다. 책을 내기 전에는 막연하게 그저 연못의 물이 넘쳐 흐를 때까지 기다리자 때가 되면 저절로 써지고 까짓 거 한 권이야 내겠지 했다. 그런데 책을 내고 보니 모든 것에는 연습의 과정이 필요하고 어설프고 불완전하더라도 연습을 해야 는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내지 않았으면 교정이란 걸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막연한 자가 검열엔 한계가 있었다. 건축가가 단층짜리 집을 여러 채 지어보고 빌라나 빌딩에 도전할 수 있듯 책 또한 일단 한 권 내봐야 다음을 내다 볼 수 있는 자신감과 안목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우물이 안 넘쳐도 뭔가 조금은 무겁게 찰랑거린다면 일단 한번 저질러 보시라!

무엇보다 과정이 순조로웠기에 힘든 줄 몰랐다. 교정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오가던 그 길이 무척 즐거웠다. 출판을 결정하고 책이 만들어지던 올 봄의 내 마음은 음악으로 말하자면 쇼팽의 '에올리언 하프(연습곡 25-1번)'와 똑 같았다.

봄날의 햇살도 쇼팽의 피아노도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자기 도취에 빠졌다. 착각도 유분수이거늘 분수를 몰랐다. 분수를 모르고 음악을 들었고 햇살을 받으며 출판의 과정을 즐겼다.

어쨌든 삶의 절반을 나는 살아냈고 책으로 일단락을 마무리했다는 것에 안도를 느낀다.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다른 빛깔로 한번 살아보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나의 적임을 상기하며 날마다 용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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