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세월을 무릅쓰고 일주일 동안 처갓집에서 휴가를 보냈습니다. 오래전 약속이라 피할 수 없었지요. 그곳은 휴대전화도 안 터지고 마침 컴퓨터도 벼락을 맞아 인터넷도 끊긴 터라 더위만이 아니라 골치 아픈 세상사에서도 제대로 도망친 꿀맛 같은 휴가였습니다. 그래도 간간히 텔레비전으로 보는 평택 쌍용자동차 뉴스에 애를 태우고는 했습니다.

"고문이 보도되지 않는 것보다 기사거리조차 안 되는 현실이 더 심각했다.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스런 사실을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들고 내려간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스탠리 코언 지음, 창비)이라는 책에서 이 구절을 읽으며 200일을 넘긴 용산참사와 먹는 물과 전기, 의료진의 출입까지도 막혔다는 평택 쌍용 공장을 떠올렸습니다. 그래도 두 사건은 비교적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지난 7월 인천에서는 장애인이 도망을 갈 지 모른다는 이유로 석 달 동안 발목에 쇠사슬이 묶인 채 화분받침에 담긴 밥을 먹어야 했던 사실이 시설 내부 고발자의 폭로로 알려졌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장애인 시설을 다녀간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목격했지만 아무도 이런 인권침해를 고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언론도, 사회도 이러한 장애인 시설에서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대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로 치부해버린다는 점입니다.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하는 장애인 인권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동안 받은 이메일을 열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장애인 단체에서 보낸 이메일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서울시가 각 구청에 불법농성 참여자가 활동보조서비스를 지원받는 사례가 없도록 철저를 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서울시가 가리키는 '불법농성'이란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탈시설, 자립생활의 권리를 서울시에 요구하며 벌인 62일간의 농성을 말합니다. 이 농성에 참여한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을 했지만 서울시는 "서울시정에 반대행위를 한 농성자이기 때문에 지원결정을 유보"한다고 했답니다. 서울시가 보건복지부에 "불법 농성자들에게 활동보조를 지원해야 하느냐?"고 문의했더니 보건복지부는 "활동보조 지원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사회생활 등에 대하여 지원해야 한다."는 답변을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중증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서비스는 교육이나 의료, 치안이나 소방, 공공교통과 같은 공적 서비스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적 서비스를 서울시정에 반대했다고, 합법적 사회생활이 아니기에 중단한다는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의 말은 소화전까지 단수시키고 의료진의 출입을 막은 쌍용자동차와 어쩜 그리 일맥상통한지요. 앞으로는 반정부 집회 참가자는 버스도 타지 못하게 하고 육교도 건너지 못하며 집회현장에서 다치면 구급차가 출동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는 공적 서비스 그 이상의 것, 바로 생존권이라는 사실에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2005년 겨울 한 중증장애인이 집에 보일러가 터져 그만 얼어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2007년 겨울에도 홀로 살던 정신지체 장애인이 추위와 배고픔에 탈진해서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몸의 근육들이 서서히 위축되어가는 근육이양증 장애를 가진 아들이 화장실에서 넘어져 혼수상태에 이르자 인공호흡기를 뗀 비정한 아버지에 대한 충격적인 보도도 있었습니다.

최소한 활동보조서비스만 있었다면 이들의 죽음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장애운동 단체의 주장이었고, 수 십 일 동안의 농성과 중증장애인들이 휠체어를 버리고 한강다리를 기어서 건너는 투쟁 끝에 비로소 마련된 것이 바로 활동보조서비스였습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나 지자체가 적선을 하듯 내키면 주고 안내키면 마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들 스스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임을 부인하는 것이자 장애인의 생존을 갖고 야바위를 치는 범죄 집단이라고 자임하는 꼴밖에 안 되겠지요.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진실을 알려야

또 한 통의 이메일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라는 단체의 성명서로 이러한 공공기관의 탈을 쓴 파렴치 집단을 감시하고 고발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의 한심스런 작태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차강석 씨는 중증장애인으로 한 카드사에 신용카드를 신청했습니다. 평소 발가락으로 한 글자씩 자판을 두드리는 그이는 무려 세 시간에 걸쳐 신용카드 신청서를 작성해 카드사에 보냈다고 합니다. 얼마 후 카드사 상담원이 전화를 했고 언어장애도 있는 차 씨였기에 활동보조인이 대신 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상담원은 본인확인이 어려우니 본사로 직접 찾아와 카드를 신청하라고 하여 대필사인과 신분증 사본을 갖고 본사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카드사는 소득세 납부를 위한 재산세 영수증을 요청했고 이를 우편으로 보냈지만 자필 사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 다시 법정 대리인인 아버지와 카드사를 방문하라는 요구를 받아야 했습니다. 거리가 먼 카드사 방문이 쉽지 않은 차 씨는 아버지의 사인을 받아 발송하였으나 카드사는 직접 집에 방문하여 신청서를 받아가겠다고 했고 마침 방문했던 날 아버지가 집에 없자 결국 카드 발급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불 나는 일에 대해 차강석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지만 더 참담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정서 말미에 있는 관련법 개정이 국가인권위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진정을 각하 처리를 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성명서에서 만약 인권위가 조금이라도 해결의지가 있었다면 "그 곳이 어떤 카드사였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차강석 씨가 진정으로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어야 했다며 끝을 맺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말고 함께 사는 길을 찾아보자"고, 용산참사 유가족은 "죽은 이들의 사인이 무엇이고 그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명명백백히 밝히자"고 수십 번, 수백 번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국회와 법원, 경찰과 검찰, 그리고 자본과 보수언론은 결코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려 하지도, 그 답을 들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불법의 딱지에 연연해하지 않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일이 필요한가봅니다. 앞의 책 저자도 말합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해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적합한 청중들에게, 인간에게 소중한 사안에 관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말이죠. 


-<미디어스>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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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핑계로 평택에 계속 못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쌍용에 대한 칼럼을 써달라네요.
현장도 한 번 가지 못하고 글나부랭이를 쓰려니 차마 키보드가 두드려지질 않습니다.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다가 찾은 기사입니다.

"이게 뭐냐, 소주라도 날리지, 그러면 새총으로 돈 날려줄 텐데.."하는 대목에서는 울컥합니다.  

새삼 자본은 참 악날하고 저열하다는 생각..
그런데 안락한 집에서 맥주마시며 이 글을 보는 저는 그저 한심스럽고 죄스럽네요.
 



“비오면 달려 나갈 거야”


쌍용차 주먹밥에 비를 기다리는 노동자들


2009-07-28 15시07분 미디어충청 특별취재팀

노-사 간의 옥상 새총공방이 끝난 27일 저녁8시경 미처 저녁을 먹지 못한 노동자들이 옥상에서 오랫만에 라면을 끊여 ‘주먹밥’을 먹고 있었다. 볼트가 날아다니고 최루액이 떨어지는 긴장속의 잠깐의 여유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쉬는 동안 쌍용차 사측은 대중가요를 틀었다.



옥상 위에 쳐진 임시 천막. 한창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경찰, 용역, 사측의 공장진입을 방어하며 교대로 '근무'를 서고 있다. 저녁에는 선선하지만 밤에는 춥고, 낮에는 매우 덥다.

#1. 방송

“노조의 파업은 실패했다. 노조의 파업으로 20만이 죽는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너희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KT노조도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MBC, 미디어충청, 사자후도 기대하지 마라.…”

평택시 칠괴동은 쌍용차 사측과 노조의 방송 공방으로 한 여름 매미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과유불급이라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자연의 선물도 넘치면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고 짜증을 유발한다. 하물며 적개심으로 가득찬 인간의 소리가 차고 넘치는데 오죽하겠는가.

사측은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장소를 이동하며 방송을 튼다. 직접 방송을, 때론 녹음된 테이프를 튼다. 개중에는 사측이 연 집회를 녹음해 방송을 하기도 해 마치 콘서트 실황 중계를 듣는 것 같다.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공장을 떠들썩하게 한다. 주,야 교대근무에 수면장애를 겪던 노동자들이 파업기간엔 경찰, 사측, 용역의 공장진입 시도와 사측의 방송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시도때도 없고 아무 맥락없이 틀어대는 사측의 방송을 노동자들은 사측 방송을 ‘대북방송’이라 했다.

“처음에는 또박또박한 말투로 방송하고 차분하게 존댓말 하다가 지들이 열 받아서 반말하고 소리 질러. 우리를 마구 짤라 놓더니 이제 지들이 짤릴 판이니까 궁지로 몰린 거지. 방송 듣고 있으면 꼭 대북방송 듣는 것 같아. 개구멍으로 나와라. 여기 오면 밥 줄께, 담배 줄께, 술 줄께… 밥은 우리도 먹어. 주먹밥이 아직 질리진 않아. 종종 아직 남아 있는 라면 몇 개 끓여 주먹밥 말아 먹으면 맛이 일품이지. 물론 술 한 잔 생각나기도 하는데… 기자가 좀 구해와 봐(웃음). 근데 방송 들으면서 처음엔 열 받았는데 이제 그러려니 해. 안쓰럽기도 하지 음악 방송 틀어줄 때는 같이 들으면서 천막에 누워 있어(웃음). 요즘엔 파업가가 입에서 더 맴돌긴 하지만.”



출처/노동과세계

사측 방송은 파업 중단을 요구하는 ‘회유와 협과’, 그리고 쌍용차 사태의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영상의 이유로 법정관리까지 오게 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대량의 정리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파업과 부품사, 협력사의 도산 위기의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매각을 밀어붙인 정부와 상하이차의 기술유출 의혹, 산업은행의 특별 약정 해제 조치는 사라져버렸다. "관리자와 경영진은 자신들의 책임이 뭐였는지도 모르는가봐" 라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결국 니네(파업참가자) 때문에 다 죽는다는 내용이야. 자꾸 책임을 우리에게 넘기잖아.”

#2. '산 자'들과의 대화

대화중 파업중인 한 노동자에게 전화가 왔다. 소위 말하는 ‘산 자’란다. 천막에서는 ‘죽은 자’의 음성만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이 아파. 이게 뭐냐. 새총으로 볼트, 너트 말고 소주PT나 날려라. 새총으로 돈 넣어 줄 테니까.(웃음) 참. 담배랑. 이게 뭐냐. 38선 긋고 총싸움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오늘 너트 던진 거 보니까 5개씩 엮어서 던졌더만. 이게 살인무기지… 어제 밤새 (사측)천막에 불 켜져 있던데 혹시 이거 작업한거 아니야? 직장님이 뭐가 미안해. 그 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산 자’는 옆 라인 직장이란다. 천막에 모인 노동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좋은 사람이지’라고 말했다. 또한 ‘전쟁’나면 앞에서 새총 쏘는 일 없고 회사 눈치에 뒤에서만 도와준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그렇게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서로에게 새총을 쏘아도 함께 일했던 동료에 대한 신뢰는 쉽게 깨지지 않았다. 그걸 ‘미운 정’이라도 말한다.

“산 자 사이에서도 ‘새총’ 쏘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그런데 개 중에는 자기가 살아야 하니까 회사에 붙은 악질 관리자, 산 자들이 있지. 대부분의 산 자들은 노조와 대화하자고 한데. 결렬되는 한이 있더라도 대화 먼저 해야 한다는 거지. 선후배, 가족들끼리의 친분 관계가 모두 깨지고 있어. 거기서도 반반 갈려 모임도 깨졌어."

‘다시 얼굴 보고 일할 수 있을 까요?’하고 묻자 노동자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모아 “봐야죠”라고 말했다.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사측이 주장하는 ‘회사 정상화’의 내용이 노동자들이 파업을 접고 정상조업에 돌입하는 것이라면 천막에 모인 노동자들의 생각하는 ‘회사 정상화’의 내용은 노동자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먼저였다.

“처음에는 산 자들이 미웠어. 회사의 잣대로 보면 나보다 일도 많이 빵구 낸 사람이 살아남고… 근데 게네도 회사가 다 시키니까 하는 거지. 지금은 무덤덤해. 근데 아무개 전무는 나쁜 놈이야.”

#3. 인권

사측은 7월16일부터 음식물을 차단했고, 22일 물과 가스공급을 중단했다. 일주일마다 정문에서 2-3시간씩 경찰, 사측과 실랑이하며 어렵게 출입했던 의료진도 출입 금지다. 다만 의약품 일부가 경찰과 사측의 통제 하에 들어올 뿐이다. 사람의 몸은 있는 약대로 조절해서 병이 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된 약이 부족하거나 다치면 이들은 경찰의 연행을 무릅쓰고라도 어쩔 수 없이 평택공장 정문을 나서야 한다. “그래도(아파도) 끝까지 투쟁할 거예요” 라며 버티는 사람도 있지만 ‘살기 위해 투쟁하는 것’ 이라며 동료를 설득해 밖으로 내보낸다.



노동자들이 8일만에 라면을 끊여먹었다. 라면에 주먹밥을 말아먹으니 맛은 일품이었지만 설거지할 물이 없어 휴지로 닦아냈다. 한 여름에 건강이 걱정된다.

먹을 물도 없는데 땀나고 최루액으로 뒤덮인 몸을 씻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단수조치 초기엔 소화전 물로 해결했지만 사측은 소화전마저 끊었다. 공장을 돌아다니며 물을 모아 통에 두면 어느새 최루액이 뿌려져 ‘매운 물’이 되어 버린다. 최루액이 섞인 물인 줄도 모르고 기쁜 마음에 머리라도 감게 되면 한 동안 눈과 피부가 따가워 고생한다. 스티로폼을 녹이는 최루액을 경험한 노동자들에게 ‘최루’는 공포다.

“못 씻고 못 갈아입는 게 제일 힘들어. 옷과 양말을 주워 입기도 해. 몰래 그런 게 아니라 며칠 동안 양말과 옷이 그대로 있으면 공장에서 나간 사람인줄 알고 입는 거지. 소화전 물이 한 번 나왔을 때가 있는데 머리 감은 물로 양말 빨고 했어. 그 물은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화장실 물로 사용했지.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좀 그래. 담배 한 대를 돌려 피기도 해. 근데 그거 알아? 그 한 모금이 꿀맛이야(웃음). 밥도 그런대로 먹을 만해. 맛있고. 근데 덥고 끈적거리고… 참, 그리고 공장진입 때문에 교대로 옥상에서 자는데, 졸리고, 잠자리가 불편해. 어제는 이슬내리고 추웠어. 겨울 잠바를 꺼내 입기도 하고 침낭 있는 사람은 그 안에서 자고. 그것마저 없는 사람들은 왔다 갔다 해. 추우면 움직여야 하니까.”

27일 밤, 날이 습하고 더웠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노동자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가장 오랜 기간인 10일 동안 씻지 못한 노동자가 비가 오면 옷 벗고 뛰어나가 씻을 거라며 웃으며 농담 반, 진담 반 반의 말을 던졌다.

“아무리 2MB라고 해도 비 오는 걸 막을 수 있겠어? 얼른 폭우가 쏟아져야 할 텐데…”

#4. 회유와 협박

파업 68일차 넘어가도 회사의 회유성, 협박성 짙은 전화와 문자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것도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노동자가 “나는 파업하면서 연락 한 번도 안 왔는데. 완전히 버림 받았나 봐.”라고 말하며 오히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때론 사측 관리자, 직원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고등학교 선배한테 전화가 와 ‘부탁이다’며 공장 밖으로 나오라고 한단다.

“선배한테 전화 받고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그 선배가 관리자 한 명이랑 아는 사인데 내가 ‘형, 000한테 사주 받았지?’하니까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로 연락하지 말라고 하고 끊었어. 그리고 나서 미안하다고, 몸 건강하라고 문자가 왔지.”

‘회유와 협박’의 연락과 문자를 받으면 노동자들은 아직도 기분이 ‘더럽다’고 했다. 물론 무덤덤하다는 노동자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에겐 아물지 않는 상처 같아 보였다.






“회사가 아무래도 밖에 있는 동료들을 세뇌시키는 것 같아. 통화하다보면 여기 있는 상황과 동 떨어진 말을 많이 해. ‘회사에서 들었는데 전화도 못 하게 한다더라. 감시가 심하더라’ 등. 그건 아니거든. 오해지. 힘들어도 참고 있는 이유가 생존권 지키려고 하는 건데. 노조에서 나가지 말라고 해서 안 나가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에 조선일보에서 공장 밖으로 나간 사람 인터뷰 한 거 보고 웃겨 죽는 줄 알았어. 나가면 죽여 버린다고? 기자가 웃긴 놈이지. 내용도 모르면서…. 솔직히 전화와도 잘 안 받는 게 맨날 하는 소리가 ‘나오라’는 말뿐이야. 그거 듣기 싫어서 안 받을 때도 있거든.”

#5. 정부

노동자들에게는 박영태, 이유일 공동관리인은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관리인이 정부, 상하이차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정부’라 생각한다. 매각 추진을 책임져야 할 곳, 자금 압박을 받는 쌍용차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할 곳, 상하이차의 지분을 소각해야 할 곳, 기술유출과 미수금을 밝혀내고 상하이차를 처벌해야 하는 곳. 모두 정부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는 쌍용차 문제와 관련해서는 ‘파업’중이다. 공장 라인이 멈춘 듯 쌍용차 사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도 멈췄다. 대신 정부가 선택한 것은 ‘경찰병력 투입’을 통한 강제 진압이다.

“결국 정부가 열쇠를 쥐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어. 산 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산 자’-‘죽은 자’라는 것만 다르지 이 생각은 비슷해. 관리직이야 지들 욕심 때문에 그러는 거고. 우리도 세금 내는 국민이야.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해야지. 지역 기업, 사회 기업으로 만들어서 더 잘 살아보자고 하는데 왜 귀를 닫는 지.”



옥상 위에 쳐진 임시 천막이 어두워 손전등을 비취자 천막 위에 노동자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노동자는 이명박 정부와 김문수 도지사,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정치권의 행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 안 나서는 것보다야 나서는 게 낫지만 여론을 의식해 ‘생색내기용’으로 나서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단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사실관계를 떠나 “쌍용차 파업참가자 200명 남았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나서려면 진작 나섰어야지. 평택시민들 고생하게 해 놓고 이제와 뭘 한다고. 김문수 도지사는 자격박탈이야”

노동자들은 “똥 싼 놈이 똥 치워라”고 했다. ‘똥 싼’ 놈은 ‘정부’란다. 먹튀 상하이차에 쌍용차를 넘긴 것도 정부고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만 짜른다며 그래서 억울하단다. 대한민국 국민이 정부로부터 버림받고 사측에게 공격당해 더 억울하다고 했다. 그들의 억울함은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까? 70여일 되가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농성은 노동자 목소리에 귀막고 파업하고 있는 정부를 향해 두드리는 신문고일지 모른다. 쌍용차 사태의 책임과 해법 모두 정부의 몫인 듯하다.



미디어충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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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사회 - 동녘신서 101
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신성림 옮김 / 동녘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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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이 국회에 직권상정 되던 날,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나라가 왜 이 모양이냐." 

"당대표가 동네 면장이냐, 아무나 만나게" 어제는 쌍용 자동차 가족대책위가 한나라당을 기습 점거하고 대표 면담을 요청하자 되돌아온 대답이었다. 한나라당 들어오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자 "별 땄으니 됐네요. 경찰 불러 끌어낼까"라는 답도 나왔다. 

물론 한나라당 밖의 현실은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모욕적이다. 정말 나라가 왜 이 모양일까.

"혹시 우리 사회의 시급한 문제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 품위 있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철학 교수로 있는 저자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덕에 이 책을 쓸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 사회는 확실히 위선적인 사회이며 속물사회이고 죄책감보다 수치심을 더 두려워 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누구는 인권이 짓밟혔다고 절규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너희들이 먼저 불법을 저질렀으므로, 혹은 시민이 아니므로 그것은 '인권'이 아나라고 부정한다. 비단 높은 자살율을 들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일괄성'을, 인간적 존엄성을 파괴당하고, 파괴당하길 강요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경제성장을 위해 누군가는 포기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서 '품위' 운운 하는 것은 한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민주화운동은  정의로운 사회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이토록 취악하고 위태로운 것은 아닐까, 정의와 평등, 공정한 분배를 이야기했지만 그 방식과 태도까지는 간과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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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사회가 품위 있는 사회라는 생각 자체가 빗나간 점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제도는 시장사회가 초래하는 모욕으로부터 사회 구성원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35

 
모욕도 난처함처럼 전염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욕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 -45
 

'내면' 세계는 (스토아 학파와 기독교) 둘 다 가혹한 상황에서도 존엄성을 간직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품위 있는 사회를 위한 토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대용품에 불과하다. -46
 

인권을 존종하는 것이 품위 있는 사회가 될 충분조건이라고 볼 수 없다. 사회가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을 모욕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 52

 
분배할 수 있는 사회적 명예라는 개념은 등급을 나누는 개념이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사회적 명예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55

 
굴종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행동 양식이다. 굴종은 대체로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보이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존감은 결핍했지만 커다란 자부심을 가진 아첨꾼은 별 어려움 없이 상상하거나 확인할 수 있다. - 58

 
모욕적인 사회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관성을 버리게 만드는 제도를 가진 사회, 구성원들의 일관성을 파괴하는 사회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 61

 
모욕적인 행위가 피해자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반면 권리의 침해는 자존감의 축소를 함축한다는 것이다. 존엄성은 자존감의 발현이다. - 65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다고 나도 거기 갔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착륙의 영광은 모든 인간에게 분배될 수 있고 반사될 수 있다. 반사된 영광이라는 개념은 모든 사람이 존중받을 자격을 갖는 이유가 무엇 덕분이냐고 묻지 않게 만든다. -71

 
인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결코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간은 누구나 이전에 살아온 것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83

 
존중은 인간이 자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추정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88

 
왜 일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존중받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존중을 인간에게만 한정하고 벼룩 같은 다른 생명체는 존중하지 않는가? -93

 
(안락사 캠페인과 같은) 집단 학살 수용소에서 사용한 방법들은 원래 정신 지체인을 명종시키기 위해 개발되었다. -94

 
인종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간의 가치'를 부여하는 확장적인 태도가 우리 집단의 구성원만 한정해서 존중하는 수축적인 태도보다 도대체 어떤 이점을 갖는지 모르겠다." -95

 
모욕은 정신적 학대다. 품위 있는 사회는 사회제도 안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학대를 제거해야 할 뿐 아니라 제도가 야기하는 정신적 학대의 근절에도 전념해야 한다. -98

 
인간을 간과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즉 이해하지 않고 보기만 한다는 의미다. 인간을 인물로 보지 않고 배경으로 보는 것도 그들을 무시하는 방법이다. (...) "훌륭한 아랍 사람은 보이지 않으면서 일해야 한다." -116

 
막대기를 물 안에 집어넣으면 부러진 것처럼 보이는 시각적인 착각의 경우, 우리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막대기가 그렇게 보이는 일을 피할 재간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을 믿지 않는 일뿐이다. (...) 어떤 사람을 모욕적으로 인간 이하의 측면에서 보게 되는 경우, 우리는 우리 눈을 믿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뿐 아니라 상대를 인간 이하로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지각의 수준에서 본다는 의미다. 필요한 것인 '낙인-난시'의 시각이다.  -122

 
모욕의 핵심 개념은 인간 공동체에서의 거부다.
그러나 이런 거부는 거부당하는 사람이 그저 사물이나 동물에 불과하다는 믿음이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거부는 상대가 마치 사물이나 동물인 것처럼 행동하는 데 있다. 전형적인 거부는 인간을 인간 이하로 대하는 것이다. -127

 
사디스트는 상대가 가진 자유로운 측면, 즉 그의 인간적 측면을 보지 않고 오직 육체로만 대한다. 그에 맞춰 마조히스트는 괴롭히는 자에게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전적으로 내준다. 그들이 벌이는 게임의 이름이 모욕이다. -134

 
수치심 사회는 품위 있는 사회와 별 관련이 없다. (...) 품위 있는 사회는 수치심 사회가 아니라 죄책감 사회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146

 
어떤 집단에 소속된 것을 수치로 여기게 만드는 일은 단순히 그들이 특정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인간성까지 거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51

 
모욕은 대비에 근거한 개념이며 모욕의반대말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만일 인간의 존엄성 개념이 없다면 모욕 개념도 없다. -165
 

만일 살마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모욕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면, 공개적으로 표출하게 하는 쪽이 더 낫다. 그래야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품위는 있지만 위선적인 문화를 가진 사회가 더 나은지 아니면 모욕적이지만 위선적이지 않는 문화를 가진 사회가 더 나은지 하는 문제를 무시하고 그냥 넘어가더라도, 모욕을 방지하기 위해 표현 수단을 제한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185

 
(제도가 개인의 자유를 담보하는 게 아니라) 제도의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기생한다. -187

 
장애인에게 배당된 특별 주차증은 낙인이 아니다. 그런 것은 모욕의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특권의 신호로 봐야 한다. (...) 단순히 어떤 집단이나 사람을 선별하는 일 자체는 모욕이 아니다.  (...) 오직 사람들을 격리하고 억압할 목적으로 선별할 때만 모욕적이다. -200

 
속물사회는 업적 지향성을 소속지향성으로 바꿔놓는 사회다. 속물근성은 비중있는 사회에서 '타자들'이 항상 배제되도록 하기 위해 배타적인 소집단에 속한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정교하게 다듬는다. -205

 
동정과 감상성에서 똑같이 발견되는 나쁜 점이 있다. 그것은 둘 다 대상의 본질을 도덕적으로 왜곡한다는 점이다. -248

 
자선의 역설은 어떠한 이기적 의도도 없이 타인을 도우려는 순수한 동기에 바탕을 둔 최상의 자선사회조차 기증자의 동기가 순수하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무례한 일면이 있으며 어저면 모욕적인 측면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62

 
당신이 식당 주인인데 마피아가 상납금을 지불하도록 강압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마피아 측이 손님을 많이 끌어줘서 상납금을 공제하고도 수입이 늘어났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은 모욕당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이 위협적이고 강압적인 상납 거래를 받아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 착취와 모욕의 관계는 개념적이 아니라 인과적이다. -273

 
난민들에게 대라도 되는 것처럼 트럭에서 음식을 던져주지만 효과적인 방식으로 모든 수혜자에게 공평한 몫이 돌아가는지 확인한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효율성은 단지 공정한 분배 유형을 확보할 가능성을 함축 할 뿐 인도적인 분배 태도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런 분배는 효율적이고도 공정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모욕적이다. (...) 정의로운 사회가 품위 있는 사회이기도 해야 한다는 요구는 가치가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분배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가치가 분배되는 방식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29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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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8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4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공안검사의 퇴장과 문외한 인권윈장의 등장

 

소설 <태백산맥>이 적을 이롭게 하는 표현물인지 수사했다는 검사. 이력을 보니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방명록' 사건도 있다. 그 광란의 마녀사냥이 다시 떠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정부 들어서는 용산참사와 MBC 피디수첩, 미네르바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그래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내정을 계기로 법원명령에도 꿈쩍 않고 있는 용산참사의 진실, 검찰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수사기록 3000여 쪽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불거졌으면 하는 소박한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용산참사 유족의 항의시위로 잠깐 이 문제가 언급되었을 뿐, 연일 신문지상을 뒤덮은 것은 고급아파트 구입비용과 고급승용차 리스, 명품 소비와 위장전입 문제 등 도덕성과 신상 문제였고 결국 유럽 순방을 마친 대통령의 '결단'으로 후보자는 낙마하고 말았다.


검찰총장 후보자의 초라한 퇴임식


지난 17일 검찰총장 후보 사퇴서를 낸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의 퇴임식은 검찰청 소회의실에서 검찰간부 20여 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사진촬영은 물론 기자도 들어가지 못한 비공개로 열렸다. 행사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그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새로이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하려는 현병일 한양대 교수와 이를 막아 나선 인권단체 활동가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평소 법치와 실용을 강조해온 이명박 대통령답게 한편에서는 공안검사를 검찰총장으로 또 한편에서는 인권문제는 문외한이지만 "학장, 학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보여준 균형감각과 합리적인 조직관리 능력"을 인정해 현병철 교수를 국가인권위원장에 내정했다. 그러나 엄연히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가 위원장이 되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고, 본인 입으로도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니 'MB식 법치'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인권단체는 신임 위원장의 취임을 반대하지 않을 레야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날 취임식은 무산되었다.


퇴임식과 닮은 취임식

하지만 문제는 이 정부의 인권위원회 조직축소나 독립성 훼손, 뉴라이트 측에서의 이른바 '좌편향' 논란에 대해 "학장으로서 일이 너무 바빠 그런 뉴스를 보질 못했다"고 답한 신임 위원장의 자질만이 아니라 이러한 인사를 검증하고 견제할 아무런 제도적 장치나 절차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수호한다"는 검찰의 총수를 검증하는 자리에서 도대체 <태백산맥> 이적표현물 수사와 '만경대 방명록' 사건이 누구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는지, 용산 수사기록을 감추고 피디수첩을 수사한 것이 어떤 정의에 근거한 것인지 따지지 못했듯이 형식적인 절차가 정답일 수만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 정부가 말하는 인권이 과연 어떤 인권이고 누구를 위한 인권인지, 거기에 용산참사 유족들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있기나 한 건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 나라 언론환경에서 실용과 법치를 넘어선 인권과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그저 소박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7월 20일, 반년이 넘게 장례도 치루지 못한, 시신을 메고 청와대에 가는 수밖에 없다는 용산참사 유족들은 병원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거리에서 아들과 같은 전경들과 또 다시 몸싸움을 벌여야 했고,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가족 한 명은 '공권력 투입 임박' 뉴스를 보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바로 그 시각, 경찰이 출입을 가로막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항의를 묵살하며 15분 만에 신임 국가인권위원장 취임식이 치러졌다. 한 공안검사의 퇴임식과 묘하게 닮은 모양새였다.  

 

- <미디어오늘>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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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일을 보다가 용산참사 관련 행사가 있는 순천향병원으로 갔다.   
도착하니 지인 하나가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순천향병원에서 용산참사 시신과 유족은 결국 경찰에 가로막혀 나가지 못했다.
3시 50분 무렵 현병철 위원장이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했다는 문자 한통이 왔다.
2009년 7월 20일, 참 뭐라 말하기 어려운 날이다. 아니 오늘만이 아니라 요즘, 참 어려운 시절이다.
- 아래는 <미디어스>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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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위원장을 어찌해야 좋을까요? 
- 현병철 신임 국가인권위원장 논란에 즈음하여  

국가인권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또는 좋은 친구나 애인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간단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자리

인권을 옹호하기보다는 침해하기 일쑤인 ‘국가’와 그 국가에 대항하고 저항하는 일을 숙명으로 알아야 하는 ‘인권’이 만나는 야릇한 지점에 사법·행정·입법부로부터 모두 독립되어 있다는 이 독특한 국가기구의 장은 도대체 어떠한 사람이어야 할까요?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7일 청와대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한 현병철 한양대 사이버대학장의 취임식을 막아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새삼 이 질문을 떠올립니다.

2005년 3월 무렵이었을 겁니다. 당시 두 번째로 국가인권위원장이 된 최영도 위원장의 재산이 무려 백 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어느 보수 월간지를 통해 대서특필되면서 참 말들이 많았습니다. 현행법을 어긴 것이다, 아니 더 많은 재산을 기부했다더라, 그렇지만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등등. 건실한 시민단체의 공동대표였고 몇 안 되는 인권변호사의 존경받는 원로였던 그는 결국 논란 끝에 사퇴를 해야 했습니다.

흔히들 자유권이라고들 말하는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같은 인권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과 같은 사회권에 2기 인권위원회의 힘을 쏟겠다는 최 위원장의 이야기에 기대가 컸던 만큼 그가 가진 백 억 대의 재산은 치명적인 결격 사유였고, 따라서 올바른 결정이라 여겼습니다. 다만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 고위 공직자, 그리고 국가인권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깊어지고 그에 따라 마땅한 제도적 절차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더랬습니다.


파리원칙과 현병철 위원장


인권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하는 질문에 국가인권위원회법은 단 한 줄로 답하고 있습니다.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무엇이 인권문제인지, 어느 정도가 전문적 지식이고 경험인지, 어떤 사람이 공정성과 독립성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인지 등등 이 규정은 추상적이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원들의 선출에 공개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검증절차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얼마 전 국회에서 열렸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인권기구의 설립과 운영의 바이블로 불리는 ‘파리원칙’(정식 명칭,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이 원칙은 “인권위원 선정 과정에서 인권 향상과 관련된 사회 세력의 대표성을 갖는 협력관계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국회가 그러한 대표성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서둘러 국가인권위원장 선임과 관련한 바람직한 협력관계의 제도적 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서 “인권 향상과 관련된 사회 세력의 대표성을 가진 협력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 인권위원회 보고서는 “이 보고서는 정부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수많은 보고와 권고, 결정이 휴지조각처럼 나뒹굴었습니다. 이 정부 들어서는 아예 인권위원회 조직이 반 토막 나버렸고 이에 임기가 4개월 남은 위원장은 불만을 토로하며 사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는 보란 듯이 인권문제와 인권위원회와 인권현장에 대해 문외한인 현병철 교수를 인권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국가인권위원장의 역할


현 교수는 내정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정 소식을 듣고 머리가 멍했다.” “너무 이쪽(인권위 업무)에 대해서 모른다.”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현황 파악을 먼저 해야겠는데, 구체적인 것(계획)은 아직 없다.”(한겨레) “학자로서 인권을 공부했지만 인권위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어, 인권 운동 단체 등을 많이 만나며 현안을 점검하겠다.”(연합뉴스)고 합니다. 인권위의 '좌편향' 논란이나 독립성 훼손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학장으로서 일이 너무 바빠 그런 뉴스를 보질 못했다"(연합뉴스)고도 이야기했다 합니다.

이 사람을, 아니 국가인권위원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20일)은 며칠 전 하지 못했던 취임식을 다시 한다고 합니다. 같은 날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자’는 구호를 든 노동자들이 모인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경찰병력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6개월 동안 온갖 모멸과 수모를 겪고 있는 용산참사 유족들, 시설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는 장애인들, 그런 시설을 탈출해 역시 ‘함께 살자’며 인권위원회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장애인들, 오늘하루도 인간사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주노동자들, 대형마트의 횡포와 정부의 무관심에 견디다 못해 사업자등록증을 반납하는 자영업자들, 정부정책에 반대했다고 이메일이 공개된 방송작가와 헌법소원을 했다고 징계를 받고 군복을 벗어야 하는 군법무관, 반정부적인 정치적 표현을 했다고 수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교사와 학교 밖으로 입시경쟁으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청소년들….

이들에게 이번 국가인권위원장 임명은, 현병철 교수의 발언은, 아니 어쩌면 국가인권위원회 그 자체는 폭력이고 모욕이고 서글픔이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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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7-2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저것 논란이 안되는 사람을 고른다고 고른것이 결국 이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인권사항에 대해 고민한 적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원장으로 앉히고 그걸 넙죽 받아 쥐는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 결국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모르면 염치라도 있던가...

나무처럼 2009-07-20 23:55   좋아요 0 | URL
이명박 정부 머릿속에는 법학자에 학장 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 아닐까요. 이런 식으로 인권을 욕보이는 것 같아 더욱 화나는데 그냥 취임식을 받아들이는 인권위원들도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