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방사능이 한반도에 날아오는 것과 그에 대한 무대책을 걱정하는 선배에게 친구가 일침(?)을 놨다고 한다. "담배나 끊어~"

그런데 걱정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 아닐까? 곧 방사능 대거유입을 우려하는 기사가 떴다. 정부는 안전타령만 하고 있는데 꼭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보는 느낌이다. 편서풍 타령만 하며 한국에 올 가능성이 없다던 정부가 슬그머니 오긴 오지만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니 당췌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이다. '방사능 비'에 대해 걱정하며 7일 내릴 비를 피해야 하냐고 물으니 "흙먼지나 대기오염 물질 등 때문이라도 당연히 비는 굳이 맞지 않는 것이 좋은데, 다만 거기에 극미량의 방사성 물질이 더해지는 것"이란 한심한 답이 돌아왔다는 대목에서는 엄모 앵커의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란 멘트가 떠오른다. 

담배의 유해성, 흡연의 심각성을 하도 많이 접해서인지 담배를 필 때마다 자해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어차피 모두들 죽어가지만 담배를 피는 일은 '느린 자살'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물론 그런 매력 때문에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방사능은 광우병이나 흡연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방사능 비에 우산 쓴다고 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솔직히 아이가 생기고나서 심야운전이 조심스러워졌다. 그전에는 언제 어느 순간에 세상을 등져도 아쉬울 것 없었고 그렇게 살자했는데 어쩌다 생긴 아이는 이제 내리는 빗방울도 두렵게 한다. 이런 마음이 광화문에 유모차를 끌고 촛불을 들게 했던 것이다. 엠비는 왜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가.




"비는 굳이 맞을 필요 없잖나", "노르웨이 분석은 조악"


2011-04-04 14:30:54

 



기상청 등 정부가 오는 7일 후쿠시마 방사능이 곧바로 일본 남부를 거쳐 한반도에 상륙할 것이라는 독일, 노르웨이 등의 기상예보를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국민에게 아무런 대응 지침도 내리지 않고 "안전할 것"이라고만 강조, 국민 불안과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김승배 기상청 대변인은 4일 정부종합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7일 오전께 일본 지역을 중심으로 고기압이 발달함에 따라 지상 1~3㎞ 높이의 중층 기류는 일본 동쪽에서 동중국해를 거쳐 시계방향으로 돌아 우리나라에 남서풍 형태로 유입되고 상당한 양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오는 7일 비를 피해야 하느냐고 묻자 "흙먼지나 대기오염 물질 등 때문이라도 당연히 비는 굳이 맞지 않는 것이 좋은데, 다만 거기에 극미량의 방사성 물질이 더해지는 것"이라고 어정쩡한 답을 했다. 정부가 굳이 경보를 내리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알아서 대처하라는 얘기인 셈.

그는 더 나아가 "봄철에는 이같은 기압 배치와 같은 원리의 남서풍 현상이 자주 나타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유사한 사태가 되풀이될 것임을 시사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편서풍 안전신화'를 주장하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기자회견에 배석한 한국원자력기술원(KINS)의 윤철호 원장은 "우리나라 쪽으로 부는 흐름이 있다고 해도 후쿠시마에서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은 주변 지역에서도 그 농도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만큼 역시 우리나라에 들어오더라도 미미한 수준일 것"이라이라며 후쿠시마 원전 2호기의 원자로 내부 물질의 상당량이 유출돼 곧장 우리나라를 향해 날아와도 우리 국민이 받는 영향은 연간 허용 방사선량(1mSv)의 3분의 1 수준인 0.3mSv에 불과하다는 분석 결과를 다시 강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6~7일 한국 상륙 시뮬레이션을 발표한 노르웨이 대기연구소에 대해 "해당 연구소 홈페이지를 보면, 스스로 조악한 분석이라고 참고만 하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연구소 전망이 맞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신뢰도를 깔아뭉개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

그는 하지만 독일기상청이 4일 동일한 예상을 한 데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김승배 기상청 대변인이 4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7일 후쿠시마 방사능이 일본 남부를 돌아 한반도에 유입될 것임을 시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승배 기상청 대변인이 4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7일 후쿠시마 방사능이 일본 남부를 돌아 한반도에 유입될 것임을 시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당국의 이같은 태도는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3주째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사능 유출이 계속되면서 2주간만 방사능이 유출됐던 체르노빌 사태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게 돌아가고, 더욱이 앞으로도 수개월간 방사능 유출이 계속될 것이 확실시되는 심각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더없이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비록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이 한반도에 유입된다 할지라도 방사능이 몇달간 계속 유입될 경우 방사능이 누적되면서 인체와 토양, 식수 등에 심각한 폐해를 입힐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지껏 유입된 방사능은 북극을 거쳐 내려와 상당히 희석됐으나 이번에 유입되는 방사능은 후쿠시마에서 남서풍을 타고 곧바로 유입돼 방사능 농도가 더없이 높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더군다나 비가 내릴 경우에는 대기속의 방사능보다 몇배나 높은 방사능이 검출된다는 기본상식조차 묵살하고 계속 "안전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어 국민적 불안과 불만은 더욱 깊어가는 양상이다.
박태견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병역거부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
임재성 지음 / 그린비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R2P'라는 이름의 미사일이 리비아 트리폴리로 날아가고 있다.
‘국민보호의 의무(Responsibility to protect)’라는 이 신개념의 전쟁명분은 “자국 국민을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륜적 범죄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에 대해 국제사회가 집단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럼 미사일은, 인도적 개입이라는 폭격은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일방적인 군사적 열세 속에 진압당하고 있는 리비아 시민군과 리비아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평화를 평화롭게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있나?
평화는 까다롭고 복잡하고 예민한, 참 어려운 문제다. 

2.

평화라는 단어를 언제 처음 듣고 입 밖으로 내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으면 여덟, 아홉 살 무렵 엄마 손을 잡고 갔던 어느 교회 부흥회였으리라. 박수를 치며 불렀던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지금 생각하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에게’가 아니라 ‘내게’인가, 그리고 과연 강은 평화로운가?
사람들이 흔히 입에 올리는 평화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어떤 상태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그 내면의 어떤 상태인 듯하다. 그런 평화는 종교적 구원이나 명상과 깨달음을 통해 얻어지는 어떤 경지다. 물론 내면의 갈등이 평화의 경지로까지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두 사람 사이에서, 삼각관계에서, 성장배경이 다르고 입장과 세계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충돌하는 사람들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의 평화일 것이다.
평화는 조용하지 않고 소란스러우며 정적이기보다는 동적이고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굽이굽이를 돌아가는 길인지 모른다, 강물처럼. 

3.
병역거부자들은 전쟁에 (그리고 전쟁연습과 훈련에) 참여하는 대신 평화를 이야기한다. 검사와 판사와 기자들, 그리고 한국사회는 그들에게 “왜 군대에 가지 않느냐?” “다 거부하면 나라는 누가 지키냐?” “네 집에 강도가 들어와도 평화롭게 당할 거냐?”는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다. 병역거부자들의 답변들은 이런 질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는 (산업기능요원, 소방청, 교도대 등 이미 수많은 종류의 대체복무가 실시되고 있음에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이 약속되었다가 이 정부 들어서 물거품이 되었다. 오히려 해병대 지원자가 늘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뉴스 앵커가 주말마다 병영체험을 하는 영상이 TV에 방영된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속에서 ‘국가를 위해 죽어간 숭고한 죽음’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넘실댔던 한국사회에서 병역을 거부하고 군대 대신 감옥을 선택했던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4.
이 책의 필자는 ‘평화학’이라는 생소한 학문(혹은 연구방법)으로 병역거부자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했던 운동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분석한다. 그들이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차마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이었으며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던 말은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그 가운데 필자는 “대체복무제의 정당성이나 ‘부작용’ 없는 외국 대체복무 운용 사례가 아니라, 양심의 자유가 포괄하는 범위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국제 인권규범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젊은이들이 어떤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남들 다 가는 군대를 거부하며 부모 속을 찢어 놓으면서까지 감옥에 갔는지 (...) 이들은 손가락질당해야 할 파렴치한도, 불쌍한 피해자도, 강철 같은 신념의 소유자도 아닌 우리 시대의 평범한, 하지만 폭력에 민감했던 사람들이었음”을 드러내며 공감을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5.
평화는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타인의 아픔과 고통, 또는 존재와 욕망에 공감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왠지 아쉽다. 이는 요즘 특히 유행하는 ‘공감’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너나없이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들 하지만 권력의 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말길이 트이길 기대할 수 없듯이 공감이 한 개인의 성찰과 깨달음을 넘어 어떤 사회적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는 그저 막막할 따름 아닌가. 우리의 공감대를 넓히고 그 깊이를 더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6.
“병역거부자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평화의 언어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침묵은 복종을 뜻할 때도 있지만 때론 저항의 언어가 될 때도 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라는 사파티스타의 말처럼 언어에는 분명 평화를 이끌어올 힘이 있지만 반대로 평화를 깨는 도구가 될 때도 많다. 그렇다면 평화학은 “잘 듣기”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참 많고 달변이 되는 법, 글 잘 쓰는 법을 다룬 책은 넘쳐난다. 그러나 어떻게 들을 것인가, 무엇을 들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세상이다. 매장된 350여만 마리의 가축들과 일본 쓰나미 피해자들, 아랍 혁명에 나선 민중들의 말을 듣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의 언어는 너무나 빈곤하고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가.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들 너머의 진심을 듣는 일, 행간을 읽고 공감하고 더 나은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이 평화학이라면 이 책은 좋은 출발점에 놓여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치스가 대두한 뒤 홀로코스트 위기가 임박한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망명하지 않았던(또는 망명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을 거듭 떠올리고 있다."

그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나는 인간에 대해 모른다...

 

[기고] 기묘한 평온, 공황의 다른 모습 

  

»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 

 

어제(3월18일)는 맑게 갠 좋은 날씨였다. 나는 아내와 함께 도쿄 시내에 가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ㄱ시에서 도쿄 중심부까지 가는 데 전철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집에서 ㄱ시의 역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다. 바람은 차가웠으나 어느 사이엔가 매화가 피고 벚꽃 봉오리가 부풀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서로 몸을 기대듯이 하고 산책하는 고령의 부부가 스쳐 지나간다. 길옆 풀밭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동그랗게 무리지어 제비꽃과 튤립을 심고 있다. 선생님 구호에 따라 손을 잡고 마음껏 소리치며 동요를 부른다. 언제나 변함없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나는 이 풍경이 내일, 아니 바로 다음 순간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바뀌어버리는 게 아닐까 내심 긴장하고 있다.

전철은 의외로 비어 있었다. 조명을 끈 역은 어둑했다. 지나가는 행인도 부쩍 줄었다. 모두 말이 없었다.

나는 한국영사관에 볼일이 있었다. 아내가 동행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런 때는 가능한 한 떨어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급한 용건은 아니었으나 나온 김에 도쿄 시내와 영사관 모습을 봐둬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영사관에 들어가 보니 그리 넓지 않은 대기실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대부분 임시여권을 발급받으러 온 사람들인 듯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한국적)이나 일본인과 결혼한 한국인 자녀들은 한국 여권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 앞에 줄을 선 한국인 여성은 고교생 정도로 보이는 아들의 여권을 신청했다. 그 앞의 남성은 일본인인 듯한데, 한국인 아내와의 사이에 난 아이의 여권을 신청할 모양이었다. 한국어를 못해 힘든 모양이었다. 휴대전화로 아내에게 “출생신고는 언제 했지?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어서 아직도 멀었어” 하는 얘기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모두가 “될 수 있으면 빨리 받을 수 있는 걸로” 임시여권을 신청했다. 한시라도 빨리 일본을 떠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굼뜬 편이다. 독일이나 프랑스는 이미 자국민에게 철수 지시를 내렸다. 내 지인들만 봐도 이미 몇 명이 황급히 일본을 떠났다.

조명 꺼진 전철역 썰렁
드문드문 행인들은 말 없어
한켠에선 봄꽃 심는 아이들…
한국영사관엔 여권신청 긴 줄
처참한 원전, TV선 보기 힘들고
다급한 ‘큰일’ 입밖 내는 이 없어…
가스곤로 사 집으로 오는 길
시커먼 건물 위로 검붉은 노을
“불길한 건 예뻐” 아내 말 맴돌고…


오랜만에 도쿄 시내에 나온 터에 외식이라도 해볼까 했으나, 언제 전철 운행이 멈추고 교통대란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귀로에 올랐다. 도중에 우리는 대형 가전제품 가게에 들렀다. 혹시 전지를 살 수 있을까 해서였다. 역시 전지는 다 팔리고 없었으나 대신 프로판가스 곤로와 가스통을 샀다. 예상외의 행운이었다. 이젠 정전이 길어져도 물을 끓이거나 밥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가전점에서 집으로 가는 지역 일대는 정전중이어서 짐을 들고 한 시간 정도를 걸었다. 이미 도쿄의 슈퍼에서는 전지만이 아니라 생수, 쌀, 빵, 라면 등이 모습을 감췄다. 주유소에는 급유 순서를 기다리는 자동차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람들 표정과 말투는 기묘할 정도로 평온하지만, 이 정도면 이미 의심할 여지 없이 공황상태다.

폭발을 거듭하며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원자력발전소에 경찰과 소방차가 물을 끼얹고 있다. “어떻게든 냉각시키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정부도 전문가들도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 “큰일”이 어떤 건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자신들도 잘 모르든지, 아니면 너무 겁이 나서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며 간 나오토 정권의 무능을 비판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올 지경이 됐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자민당 정권이라면 좀더 잘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원전 사고는 자민당 장기정권 시절의 쌓이고 쌓인 병폐들이 마침내 최악의 형태로 분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됐건 일본 정치에 큰 기대를 품고 있진 않다. 기대가 너무 크면 그 틈을 노리고 파시즘이 대두할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종적인 사망자 수는 수만명에 이르지 않을까. 전쟁을 예외로 하면 일본 사회가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대량사망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구원의 손길은 재난지에 가 닿지 못하고 텔레비전은 도호쿠 지방의 과묵한 이재민들 모습을 공허하게 비추고 있을 뿐이다.

그 한켠에선 원전이 언제 파국을 맞아도 이상할 것 없는 줄타기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원전 피해를 너무 소극적으로 발표하고 있다는 의혹이 날로 짙어지고 있다. 자제하던 매스컴까지 요즘엔 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한 비판 강도를 높이고 있다. 원전에서 100㎞권 안에 있는 센다이시에서 지진 피해를 당한, 내가 아는 젊은 벗은 ‘안전’을 강조하는 정부와 도쿄전력 발표를 믿고 어린아이를 위험에 노출시킬 순 없다는 결심으로 이미 사흘 전에 야마가타현을 경유해 간사이 지방으로 탈출했다. 그는 센다이에 남아 있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가족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외국의 내 지인들은 구체적인 논평이나 수치를 대면서 한시라도 빨리 가능한 한 서쪽으로 피신하라는 충고를 메일로 보내오고 있다. 광주의 ㅅ교수는 “살 집을 마련해둘 테니 빨리 한국으로 건너오라”는 친절한 연락까지 해왔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의논 끝에 이곳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앞날을 낙관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만 도망가는 게 미안하다거나 곤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도 아니다. 지금 내 기분을 정확하게 표현하긴 어렵다. 다만 나치스가 대두한 뒤 홀로코스트 위기가 임박한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망명하지 않았던(또는 망명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을 거듭 떠올리고 있다.

집에 돌아와 창밖을 보니 전기가 끊어진 거리는 어둡게 가라앉았고 그 상공에 검붉은 노을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걸 보고 “예쁘기도 해라” 하고 아내가 말했다. 오히려 불길한 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잠시 망설이다 그 생각을 말했더니 “불길한 건 예뻐요” 하고 아내는 말했다.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해한모리군 2011-03-22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경식 선생님은 경계에 선 증인으로 남은 삶을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 글을 읽는데 문득드네요.

나무처럼 2011-03-22 11:52   좋아요 0 | URL
증인으로서의 삶... 그러게요.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는 참 의미있는 삶이겠지만 한 개인에게는 너무 가혹한 짐이 아닐까 싶어요.
 

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시디부지드라는 지역에서 스물여섯 살 청년이 자기 몸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청년은 시디부지드 지역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부족 출신이라 합니다. ‘부아지지’라는 이름의 이 청년이 행상수레를 빼앗기며 여성 공무원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겪은 모욕은 부족 전체의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이틀 뒤 시디부지드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고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자 시위는 인근 도시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습니다.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아랍 혁명의 불씨가 당겨진 겁니다.

결국 채 한 달도 못 버티고 1987년부터 집권해온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불길은 이집트로 번졌습니다. 1월 25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수만 명이 모여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대규모 시위는 연일 계속되었고 18일 만에 미국과 각별한 관계였던 무바라크 대통령 또한 30년 동안 독차지했던 권력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이제 혁명의 기운은 북아프리카와 아랍 전역으로 퍼집니다. 이란 아지즈(자유) 광장으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듭니다. 바레인에서는 일주일 넘게 시위가 이어지고 수도 마나마의 중앙광장을 시민들이 점거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예멘에서는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친정부 시위대로 가장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하여 1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라크에서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9명이 사망했으며 모로코에서도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헌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8주 동안 민주화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요르단과 수백 명이 도로를 점거한 오만, 튀니지 혁명 이전부터 싸움을 벌여왔던 알제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나라, 멈추지 않는 정부군의 학살과 수천 명의 희생자 속에서도 혁명의 불길이 꺼질 줄 모르는 리비아가 있습니다.

예측불허의, 모두의 예상을 간단히 뛰어넘는 아랍 민주주의의 전진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군부가 권력을 이양받자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광주,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며 우려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시위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튀니지 민중은 혁명의 과실을 가로채려했던 총리까지도 물러나게 했습니다. 각본 없이 시작된 드라마는 세계사를 다시 쓰고 있는 중입니다. 정치적 지도자도 조직도 없이,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폭발한 이 저항은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이자 희망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시위를 조직하고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2008년 촛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아랍 혁명은 우리의 어제가 아니라 다가올 내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랍 민중의 봉기는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와 함께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경제상황의 악화와 그로 인해 가장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절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십여 년간 아랍 국가들의 복지체계가 말할 수 없이 망가졌으며 여기서 국가는 제 역할을 전혀 못했다는 이야기들이 뒤늦게 들려옵니다. 이 혁명이 어떻게 폭압적인 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획득하는가와 함께 새로운 경제질서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갈 것인가를 주의 깊게 봐야겠습니다.

또 누구는 북한이나 중국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왜 튀니지의 독재정권이 가장 먼저 무너졌는지에 대해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은 억압적인 경찰체제인 반면 이집트와 같은 나라는 좀 더 유연하고 지능적인 독재를 펼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권력이 분산된 독재체제는 명확한 독재자의 얼굴을 가진 체제보다 무너뜨리기 어렵다”는 것이지요(‘혁명, 연쇄와 징후’, 르몽드디플로마크, 2011년 2월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2008년 촛불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양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민주적 통제란 굴레를 아예 벗어버린 검찰과 제 철을 만난 듯 활개를 치는 경찰은 공권력을 들이대며 계기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공포를 조장합니다. 정권과는 대립과 타협을 반복하며 줄다리기를 하지만 자본의 이익과 논리 앞에서는 철저히 복무하는 사법부는 또 어떻습니까. 게다가 너무 쉽게 권력에 길들여진 방송과 권력 길들이기에 흠뻑 취한 보수신문들, 급속도로 퇴행하는 학계와 종교계와 문화계, 학교에서 기업까지 벅찬 싸움은 곳곳에서 벌이지고 있습니다.

더 교활하고 그래서 더 잔인합니다. 봄소식보다 먼저 날아든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열세 번째 죽음이 그렇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서 보낸 보도자료에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쌍용자동차는 2009년 파업을 끝내며 무급자에 한해 1년 뒤 순환복직을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생활고를 견뎌내던 한 노동자는 파업투쟁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던 부인이 집 베란다에서 투신한지 10개월 만에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장례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쌍용 노동자는 자신의 차에 연탄불을 피우고 또 그렇게 세상을 등졌습니다. 개별 사업장에 대한 개입은 하지 않겠다던 정권은 공권력을 투입해 살인적인 진압을 펼쳤고, 법원은 노동자 96명을 구속시키고 아무렇지도 않게 8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와 110억 원 구상권 청구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합법적으로 합의된 약속을 회사 측은 지킬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어떤 권력집단도 이를 강제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 뒤에 권력을 거머쥔 자본의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국가기관들을 수하로 부리는, 임기가 없기에 레임덕도 없는 자본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우리네 삶을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합니다. 제1야당에서 무상의료란 말이 등장하고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복지국가가 거론되지만 재벌총수의 야구방망이 폭행에는 떠들썩해도 재벌기업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것은 뉴스에 나올 수 없게 된 한국사회에서는 허망한 소리일 따름입니다. 자본권력에 대한 각성과 성찰, 변화된 권력구조와 지배방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저항이 기획되고 실천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일은 그저 예측 가능한 절망일 수밖에 없겠지요.

오는 5월이면 50번째 《사람》이 나옵니다. 6월은 창간 6주년이 됩니다. 누가 《사람》이 어떤 잡지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인권독립잡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인권은 그렇다 치고, 광고료에 의지하지 않고 영리목적의 광고는 아예 싣지 않으니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잡지가 분명합니다. 간혹 몇 부나 찍는지 궁금해 하는 인권활동가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영업비밀이라 그럽니다. 잡지나 신문의 발간부수가 영업비밀인 까닭은 그에 따라 광고료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인데 광고에 기대지 않는 《사람》이 발간부수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창피해서 둘러대는 것이지요. 냉정히 말해 자본으로부터는 독립한 잡지라지만 ‘인권재단 사람’의 기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여섯 살이니 경제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정서적으로나마 재단으로부터 독립하고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올봄부터 한 달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하고 담배 한 갑보다는 겨우 5백 원 비싼 정기구독자를 열심히 모아볼까 합니다. 인권단체들에게 파격적인 할인가에 공동구매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인권운동의 기관지 《사람》은 너무 야무진 꿈일까요?

아랍 혁명을 보며 불가능한 꿈꾸기를 멈추지 말자는 어느 혁명가의 말을 다시 새겨봅니다.   



- <사람> 2011년 3-4월호(49호)에 쓴 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2011-03-09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도 항상 깨어있어야겠어요...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노하는가, 조그만 일에만...  

사법연수원이 생긴이래 처음이라는 집단행동(문제점과 명분에는 모두 동의가 되지만 웬지 밥그릇 지키기로만 보이는... 그 무수한 불합리와 부정의한 일들이 벌어질 때 그들은 어디서 뭘 했나?), 어느 공영방송사 전 사장의 눈부신, 혹은 눈물겨운 변신(다른 건 몰라도 엄모씨는 가족에게, 자식들에게 자신의 변신을 어찌 설명했을까? 이러면 안 되지만 고문해서 자백이라도 받고 싶다), 5억짜리 전세를 놓으며 전세란 대책을 골몰한다는 해당부처 장관(이 대목에서는 참, 할 말이 없다). 

분노의 방향은 다른 데로 돌려져야 한다.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이 자본의 왕국, 자본의 음탕함으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