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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기괴한 것에 대해 글을 쓰면서, 프로이트는 편안하고 익숙하다는 뜻과 괴상하고 이상하다는 뜻의 독일어인 '하임리히'와 '운하임리히'의 어원을 분석한다. 이 두 단어는 외관상 반대인 것처럼 보이며, 괴상하다는 것은 가장 낯선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익숙하다는 의미의 하임리히에는 '감춰진 혹은 눈에 띄지 않는'이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이 개념을 확장시켜 프로이트는 가장 기괴한 경험은 이질적인 것이 아닌, 가까이 있는 익숙한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 401페이지, 에필로그  
   

 

"내 인생의 OOO들"처럼 진부하고 식상한 주제가 또 있을까? 그런데도 이런 주제의 이야기는 언제나 편하게 읽히고 쏠쏠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과연 사물은 우리 삶에서 무엇인가'라는 매우 철학적인 물음을 깔고 34명의 세계적 석학들이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며 매우 묵직한 에세이를 썼기 때문이다. ('세계적 석학'이라고 책 표지에는 써있는데 내가 들어본 이름은 딱 한 명뿐이었다. 대부분 미국 하버드대, MIT 같은 곳의 교수이고 이공계가 많아서인지, 내가 무식해서인지.)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이 책을 읽는 도중 문득문득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친다는 점이다. 작가가 되길 은근히 바라며 외삼촌이 대학졸업 선물로 준 '몽블랑 만년필'. 대학 신입생 시절 멋도 모르고 무턱대고 샀다가 10년 뒤 실직을 하면서 꺼내 읽게 된 양장본 '창비 전집'. 할아버지가 쓰셨던 주머니칼과 아버지가 쓰셨던 맥가이버칼. 어머니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브라더 미싱. (아, 끝도 없다.)

 

사물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사람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물들도 실상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추억 속에서 생명력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오로지 사물에 집중하는 글도 있다. 아니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사물과 사람이라는 이분법이 허물어짐을 느낀다. 그래서 나와 나 아닌 세상의 모든 것, 혹은 나와 세상이 있을 뿐이다(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들은 나무와 개미, 돌과 인형, 옛날이야기와도 대화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컴퓨터와 노트북이 다이어리를 대신하고 두뇌의 연장에 있다고 하는 것도, 아이폰이 신체와 정신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이야기도 한편 맞는 이야기지만 21세기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의 새로운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듯이 어떠한 사물도 그 자체로 독립된 것일 수 없으며 인간과 사물, 생명과 물질은 끊임없이 관계맺으며 그 관계 속에서 자기의 존재가 만들어지고 확장되거나 축소되고 변화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결국 이 세상이라는 생각.  

 

첼로와 매듭, 수퍼히어로와 여행가방, 혈당측정기와 우울증 치료제, 신디사이저와 토끼인형, 팔찌와 도끼, 사과와 점균들. 34개의 사물은 무한한 이야기를 품고 그 단면들을 이 책을 통해 드러낸다. 그리고 이 책은 수많은 갈래로 퍼져 더 많은 사물과 사람을 만나고...  

  

   
 

사이보그의 세상에서 우리는 사물을 도구나 인공적인 보조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과 하나다. - 409페이지,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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