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왜 욕을 먹어야 하나

그저께 밤 오랜만에(?) 마눌님과 매우 정치적인 대화를 나눴다.  


마눌님: 누구 찍을 거야? 
나무: 너는?
마눌님: 난 한명숙. 오세훈도 싫고 엠비는 더 싫어.
나무: 난 한명숙도 맘에 들지 않고 물론 노회찬도 별로지만...  
        엠비정부도 싫지만 참여정부도 정말 싫었어. 
마눌님: 둘 중에 어느 게 더 싫어?
나무: ... 둘 다 싫은데, 엠비가 더 싫은 거 같애
마눌님: 그럼 한명숙 찍어!! 
나무: 그런데 그러기가 싫네. 


결국 난 내 갈 길을 가고 그대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한명숙을 찍으라고 하는 선으로 협상이 마무리 되었다.  난 왜 한명숙을 찍지 않고 노회찬을 찍었을까? 
 

2002년 대선에서 다행스럽게도(?) 나는 과거 전력으로 선거권이 없는 상태여서 노무현이냐 권영길이냐라는 논쟁을 맘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대선 전 날 대학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고 술자리 안주 역시 노무현, 권영길이었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결론은 모아지지 않았다. 자정 쯤이었던가 정몽준이 뻘짓을 했다는 문자를 받고 우리들 모두 폭음을 했던 거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술자리에서 짐작은 했지만)  학교 때 급진적 좌파였던 친구들 중에 꽤나 많은 이들이 노무현을 찍었고, 운동과 거리를 두던 친구들 중 또한 꽤나 많은 이들이 권영길을 찍었다. 내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투표는 그야말로 정치적인 행위이지만 그 정치는 반드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영역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감정과 느낌,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도 참 중요하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의 강남 계급투표에서 보여주듯 그 감정과 느낌도 계급적인 것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한명숙이, 민주당이 딱 한 마디, 우리과 과거 참여정부 때 참 잘못을 많이 했다, 앞으로 잘 하겠다고 사과하고 노회찬과 단일화를 시도했다면, 설혹 그것이 무산되었더라도 난 한명숙을 찍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민주당은 오만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후안무치 그 자체였다.  


참여정부 시절 잡혀갔던 사람, 그래서 징역을 사는 사람, 죽은 사람, 그 죽음도 모욕받아야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난 차마 엠비를 심판하기 위해 민주당을, 한명숙을 찍을 수 없었다. 비정규직들, 대추리, 부안, 새만금, 한미FTA... 그들이 살아 돌아와 다 이해할 터이니 맘 편히 엠비를 심판하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명숙에게서, 유시민에게서, 민주당에게서 최소한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한명숙이 살아왔던 삶에서의 진정성은 믿지만). 언제든 더 나쁜 놈이 나타나면 쉽게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못견디게 했다.


그래서 진보신당 당원도 아닌 나는 노회찬을 찍었다. 최소한 그 많은 열사들과 함께 거리에 섰고 같은 길을 갔던 정당, 정치인이었기에 그가 말만 잘하고 좀 믿음직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를 별로 신뢰하지 못하지만 그에게 한 표를 던졌다. 그게 내게 있어 의리였든 정치였든 뭐든...  


많은 이들이 한명숙의 낙선을 안타까워 하고 단일화 하지 않는 노회찬을 비난한다고 한다. 난 그 비난의 화살이 노회찬이 아니라 한명숙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일화를 위한 어떤 진정성을 보여주었나? 현재 검찰의 표적수사를 그토록 비난하면서 과거의 검찰과 경찰의 만행에 대해 어떤 참회를 했나? 엠비의 북풍을 비난하면서 과거 DJ의 남북화해에 얼마나 큰 오점을 남겼는지에 무슨 반성을 했나?  


다시 말하지만 설사 그런 반성과 참회, 진정성을 보였다고 해도 노회찬은 갈 길을 갔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최소한 내 한 표는 노회찬이 아니라 한명숙에게 갔을 것이다. 노무현을 찍기 위해 숙취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일어나 투표를 했던 급진 좌파 친구들은 노무현을 믿어서, 그에게 혹해서 그런 게 아니라 최소한의 진정성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난 아깝게 떨어진 한명숙과 좀 덜 아깝게 떨어진 유시민,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에게 비난을 하고 싶다. 그 전에 노회찬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달게 나눠 받겠다. 내게도 욕하라. 앞으로 며칠간만일도 노회찬과 진보신당과 함께 비를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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