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발표의 의도가 순수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의 입장으로는 공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전교조가 명단 발표를 반대하는 입장도 조금은 이해는 가지만 전교조의 주장보다는 학부모의 알 권리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명단 발표 이후 일부 학교에서 학부모가 전교조 담임을 거부하는 일도 우려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전교조가 짊어져야 할 책임입니다."
어느 블로그에서 옮겨 온 글이다. 학부모의 알 권리가 전교조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전교조의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의도가 순수하든 그렇지 않든 학부모의 알 권리는 존중받아야 하는 걸까?
87년인가 88년, 나는 중3이나 고1쯤이었을 것이다. 어느 선생님이 "교사도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하고 물었고 우리 반에서 나 혼자만 '교사도 노동자다'라는 데 손을 들었다. 뭔가 선행학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사설 입시학원 강사였는데, 월급장이는 다 노동자고, 본인도 그렇다는 취지의 말씀을 자주 하시고는 했다. 학원강사가 노동자라면 학교 선생도 노동자인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생각을 나 혼자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비슷한 생각을 가졌지만 손을 안 들은 이들도 있었으리라.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부 보수언론은 교사가 노동자라니! 공무원이 노동자라니!하고 거품을 문다.)
흔히들 말하는 전교조 세대로 해직교사들이 넘쳐나던 시절이었지만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전교조 소속 교사도, 해직교사도 한 명 없었다. 그래도 시대의 영향을 받아 세미나를 하던 친구, 학원자율화를 위해 학내 시위를 조직하던 친구, 대학을 진학하는 대신 노동운동에, 공장에 투신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나는 가끔 언론에 전교조와 관련된 기사가 등장하면(그것이 전교조가 잘 한 일이든, 잘 못 한 일이든) 그때 그 친구들이 떠올랐다.
'환멸'이란 수식어로 표현되던 90년대를 지나며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공장에 들어갔던 386들이 대학에 복학하고 유학을 떠나고 정치권에, 학계에, 시민운동에 화려하게 복귀할 때도 그 친구들은 '고졸학력'에 머물렀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 그 흔한 위원회에 이력서 한장 넣을 자격도 안 되었던 그이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노동현장에서, 지역에서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교조가 처음 들고 나왔던, 그래서 더욱 울림이 컸던 '참교육'도 참 좋은 말이지만 그 이전에 그런 친구들에게 전교조가 의리를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많은 부분 그렇지 못해왔다고 생각된다. 전교조는 그 친구들에게 교육 현장에서 교사로서의 기본의무이자 철학인 '참교육'보다 더 중요한 무엇, '사람됨이 무엇이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던졌고 그 친구들은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젊음을 고스란히 바쳤던 '전교조 키드'였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샛지만... 전교조는 노동조합, 노동자들의 모임이다. 노조는 권력관계에서 강자인 사용자에 맞서기 위해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그러고 헌법적인 권리인 노동3권 중 하나 단결권, 파업권, 단체협약권에 의한 모임이다. 그러한 노동자들의 모임을 학교 안에서 권력자일 수 있는 교사라고 해서 명단이 공개되어져야 한다는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학부모의 알 권리는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행사되어야 할 권리다. 자기 자녀의 선생이 어떤 철학을 갖고 있고 정치지향을 갖고 있는지, 그 학교 교장은 또 어떤 정치조직에 가입되어 있고 어떤 정치성향인지, 학부모는 분명 물어볼 권리, 알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 노조의 전체조합원 명단이 까발려지는 것, 그것도 그야말로 보수언론의 마녀사냥에 시달리는 가운데 공개되는 것은 결코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아직 학부모는 아니지만 나도 내 아이의 담임이 전교조인지 아닌지 궁금하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몇 명이 전교조 선생인지 알고 싶어질 것이다. 또한 흉악범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커플의 결별 이유가 정말 무었이었는지 궁금하고, 가족의 사생활이 궁금해 아이의 일기장과 마눌님의 이메일이 보고 싶다. 하지만 나의 호기심이, 내 알 권리가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준다면 적절히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넌지시 물어보고, 아이와 함께 놀며, 마눌님과 단 둘이 데이트를 즐기며 가족의 사생활과 최근의 관심사를 들어다보는 게 올바른 인간의 관계라고 믿는다.
그리고 뱀발...
학부모를 비롯해 너도 나도 다 교육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정작 그 교육의 당사자, 주체인 학생들은 전교조 명단 공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아이들이 선생들이 전교조인지 아닌지를 얼마나 궁금해할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부모들은 자기들을 '공부, 공부' 하며 학교로 학원으로 떠밀고, 왜 학교의 꼰대들은 머리카락 길이에 그렇게 목을 매는지, 왜 이 사회와 우리 학교는 이 모양인지, 고교생이 주도했다는 4.19가 이 나라 민주주의를 가져왔다는데 왜 여태 청소년은 투표권도 없는지(교육감 선거에서마저도!!)...뭐 이런 게 정말 궁금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