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주 전 출판사에 다니는 한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삼성 비자금 사건을 양심선언한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 책 초고를 어느 출판사에서도 받아주질 않아 여기저기 전전했다고 한다. 출판계에서는 이 책을 낼 경우 세무조사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고도 했다(그래서 출판사가 책을 내는 본연의 역할을 했을 뿐인데 이 책을 낸 사회평론은 격려를 받아 마땅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별로 놀라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검사에서 삼성 법무팀장까지 했던 그에게 아무도 사건을 들고 오지 않아 변호사업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었고, 삼성과 관련된 사안에서 양심선언을 했던 사람들, 시사저널과 같은 잘 나가던 시사잡지와 그 기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으며,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쫓겨난 노동자들이 어떤 유무형의 감시와 협박 아래 놓여있는가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삼성반도체에서 계속 사람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관련 기자회견이나 시위에서 중앙일간지 기자를 눈씻고 찾아보기 힘들다는 관련단체 활동가의 푸념은 이제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도 되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거의 모든 일간지가 이 책 광고를 거부하고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메트로와 같은 무가지까지 말이다. 한 20년 전쯤이었다면 삼성은 서점에 깔린 이 책 전량을 구매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는 못하는 한국사회는 좀 나아진 것일까?
올해 초 삼성은 그동안 광고를 중단했던 한겨레와 경향에 전격적으로(?) 광고를 실었다고 한다. 어려운 살림의 일간지로서는 삼성은 정부에 버금가는 고객이리라. 조중동은 그렇다치고 이 책이 한겨레와 경향에 어떻게 다뤄지는가를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물론 내심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사회를, 우리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만 해도 참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하지만 삼성 제품 여럿을 쓰고 있다. 네 다리를 건너면 다들 아는 사이라고 하듯이 몇 다리만 건너면 삼성과 어떤 형식으로든 연관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삼성은 그 경제적 영향력이 어떻든 이미 한국사회의 상징권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권력은 자본으로 넘어갔다고 지난 정부에서 누군가는 말했다.)
그렇게 삼성은 좋든 싫든, 미우나 고우나 한국에서 그런 존재이다. 그래서 삼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한국사회를 생각하는 일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고, 나누는데 참 많은 두려움을 떨쳐야 하고 참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조·중·동, 매경 등 광고 게재 거부…출판사 측 "당혹"
기사입력 2010-02-03 오전 11:15:58
김용철 변호사가 쓴 신간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가 중앙 일간지에 전혀 실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사회평론 측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등 일간지뿐 아니라 무료신문 <메트로> 등에 광고 계재를 요청했으나 이들 신문에서는 구두 약속을 파기하는 등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 게재를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회평론 관계자는 3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처음에는 광고 효과를 생각해서 지난 2일쯤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광고를 할 계획이었다"면서 "그러나 <한겨레>가 '이번 주 내에는 광고 지면이 없다'고 해서 <조선일보>와 <매일경제>에 광고를 싣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회평론 마케팅 팀은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광고국과 구두 계약을 하고 지난 주말동안 광고 시안을 제작했다. 그러나 월요일인 지난 1일 <조선일보> 측에서 "광고 내용이 뭐냐"고 물어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신간 광고라는 것을 안 <조선일보>는 '광고를 게재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에 사회평론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연락해 다음날 광고를 싣기로 구두 계약하고 마감 시간인 오후 5시에 맞춰서 광고 원본을 넘겼다. 광고 크기는 A4 정도 크기인 '9단×21센티미터'. 그러나 광고 원본을 본 <매일경제>, <중앙일보>, <동아일보> 모두 '광고를 실을 수 없다'고 알려왔다.
사회평론이 만든 광고는 "이건희보다 삼성이, 삼성보다 대한민국이 중요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고 가르쳤다"는 카피,책표지, 김 변호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이뤄져 있다. 비교적 평이한 내용의 광고 시안인데도 언론이 모두 거부한 것.
사회평론 관계자는 "중앙 4대 일간지에서 모두 광고를 거부하니까 무료 신문에 광고를 해보려고 <메트로>에 연락해 전면 광고를 잡았으나 이것도 거부됐다"고 말했다. 구두 계약 직후 <메트로>에서 연락이 와 "광고 시안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어 "시안을 볼 필요 없을 것 같다"며 광고를 거부한 것.
그는 "모 신문사 광고국에서는 구두로 지면을 계약했다는 것만으로도 담당자가 꽤 곤욕을 치렀던 모양"이라며 "모 신문사는 '광고 단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지만 '얼마나 주면 되느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이 꽤 파장을 일으키고 있고 민감한 내용도 많아 삼성그룹과 직접 관련이 있는 <중앙일보> 등에는 광고를 싣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메트로>나 다른 신문들까지 이렇게 나와 원천 봉쇄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당혹한 심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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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사회평론이 언론에 싣고자 제작한 광고 시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