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면 펠레, 권투하면 알리였던 시절이 있었다. 경향신문을 보니 그 무하마드 알리가 베트남 참전을 거부하면서"난 베트콩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했단다. 참 쿨한 말인데 한국에서 유명 스포츠 스타가 이런 말을 했다면 며칠 못 버티고 국적을 바꿔야 했으리라. 물론 알리도 이 발언 때문에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하고 선수 자격마저 박탈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기의 대결이 된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경기"가 열릴 수 있었고.     

아프간에 파병을 한다고 한다. 탈레반에게 감정이 있는 이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피랍 사건의 피해자들이 그럴 것이다. 한편 알리처럼 쿨하게 "난 탈레반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고, 아프간에 대해 관심도 없어"라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파병은 감정의 문제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이건 이른바 이라크 파병을 추진하고 결단했던 참여정부의 논리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파병과 같은 외교적 행위에서는 명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익과 실용이 제일이라는 것. 그런데 그 국익의 정체가 무엇인지, 실용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실용인 것인지가 그 때도 지금도 생략되고 있다. 그러면서 명분이냐 실용이냐라는 잘못된 이분법으로 국민 여론을 몰아넣었고 지금도 그런 것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명분과 실용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반면 국익에 관해서는 아주 잘게 구분해서, 어떤 집단에 이익이 되고 어떤 집단에 불이익이 되는지를 선명하게 들어내놓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국익이라고 하면 그 총량의 플러스, 마이너스 속에 어떤 사람의 경제적 이득과 다른 어떤 사람의 목숨이 맞바꿔지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군 300명 파병이 아프간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이 부분이 명분이든 실용이든 간에 가장 중요한데 말이다. (국가가 조폭과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말이다.) 이 보다 한미 관계 운운하며 한국의 국익 때문이라는 말이 많은데, 미국은 한국도 동참한다는 명분이 중요한 거 같다. (300명의 군인이 뭐 그리 아쉽겠는가.) 그런데 한국은?  

우선 국방부를 비롯해서 군수산업업체는 대 환영일 것이다. (한국의 군수산업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누가 좋아질까? 아프간과 무역을 할 기업들? 일자리 창출이 되면 갈 노동자들? 혹은 선교자들 비롯한 종교의 블루오션에 혈안이 된 집단들? 

지난 피랍 사건에서 한국은 철군을 약속했고 이번 파병은 분명 약속 위반이다. 테러집단인 탈레반과의 약속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한 국가가 어떤 집단과 약속을 한 뒤, 그게 조폭이었으니 안 지켜도 된다고 하는 것은 국가의 태도는 아닌 것 같다. 문제는 그 약속을 파기하면서 어쩌면 제2의 피랍사건만이 아니라 탈레반에 의한, 또는 그와는 무관할 수도 있는 국내에서의 태러 위협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만약 테러가 발생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국은 급속도로 우경화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정원을 비롯한 공안기관은 톡톡히 실속을 챙길 것이다. 테러방지법이 만들어지고, 대테러 센터가 생기고... 시장은 어떨까? 주가가 잠시 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관련 기업은 좋아라 하지 않을까?    

사실 상상하기 싫은 장면들이다. 어떤 글에선가 세계 경제위기의 돌파구로 서구에서는 제3세게, 특히 동북아시아의 전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20세기 공황에서 2차세계대전이 그러했듯이 한반도에서의 전쟁만큼 확실한 경제부흥은 없다는 논리였다.  

어쩌면 초국적 자본, 그와 다르지 않는 한국 자본은 테러에 목말라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정부는 말 할 것도 없고. 국내에서 테러가 일어나든 그렇지 않든 아프간 파병은 최소한 2MB와 자본에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목숨이 관계되는 일이다. 국익, 국가의 이익 이라는 말 가운데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의 생명과 관계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아프간 파병이 불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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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11-0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라디오에서 '테러 위협'에 대해 '그들은 항상 공갈 협박'을 한다고 일축한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 생각납니다. 테러 위협에 대해선 상상이 안 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누구 좋을 일만 생기는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어요. 실체없는 국익, 그런데 정말 국익에 큰 지장을 준다는 맹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하고. 답답해요.

나무처럼 2009-11-01 21:50   좋아요 0 | URL
저는 테러에 대해서 중립적인 입장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하여튼 비전투 민간인,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이라는 의미에서 테러는 예측할 수 없고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공포스러운 거 같아요. 수잔 손택인가가 폭력은 인간을 사물로 만든다고 했는데 그래서 폭력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하지만 국회의원 같은 기득권층은 사회적 불안에서 천재지변 같은 것에까지 상대적으로 안전하니 참 불공평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