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써놓고 보니 무슨 화장품 광고 카피 같다. 요즘 나는 남편과 함께 피부 가꾸기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계기는 남편이 화장품을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동갑이나 마찬가지인 어줍잖은 연상연하 커플인 우리 부부는 멋에 관해서 만큼은 양보가 없다. 나는 그런 남편이 참 마음에 든다. 내가 새옷을 사와 패션쇼를 해도 즐거운 관객이 되어 예스 or 노우를 단호하게 말하고, 장소에 맞는 차림을 코디해주는 내 센스를 믿어주고 즐기는 남편.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살림을 합친 우리는 가장 먼저 손모아 정성을 들인 것이 '이뻐지기, 혹은 잘생겨지기' 였다. 오랜 세월 자취하며 불규칙한 식사를 일삼은 남편은 본디 검은 피부를 갖고 있긴 했지만 새신랑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새신랑으로 보이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각자의 기준이라 말 할 수 없노라고 얼렁뚱땅 넘어가야지.

남편이 될 그에게 나는 그가 퇴근하여 돌아오면 피부 관리를 시작했다. 전문 피부 관리사도 아니고 화장품을 다양하게 구비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화이트팩과 영양크림 같은 기본적인 화장품들만 갖고 있었지만 나는 꽤 성실한 피부관리사가 되어 남편의 피부를 가꿨다. 오가는 스킨십 사이에 싹트는 우리의 애정행각! 남편이 될 그 역시 기꺼이 내게 몸(?)과 얼굴을 맡기고 피부 관리에 동참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던 건 그는 내가 얼굴을 마사지하거나 팩을 바르고 있으면 눈을 꼭 감고 있는다는 거였다. 그럴땐 내가 엄마가 된 기분이 든다. 엄마가 내 얼굴을 닦아줄 때 눈부터 감았던 버릇처럼. 그런 그가 무지 사랑스러웠는데 지금도 남편은 팩을 집어든 순간 눈부터 꼭 감는다.

요즘 내가 구비해둔 화장품들은 그동안 모아놓은 덕분에 꽤 다양하다. 황토팩 매니아이니 황토팩이 빠질 수 없고, 피부 색을 화사하게 만드는 화이트팩, 영양과 수분을 공급하는 마스크팩 (요건 나만 쓴다 ㅋㅋ), 샘플로 한 상자쯤 얻어놓은 옥용팩, 각질 제거에 좋은 라이스팩, 워시오프형 마사지 크림등... 

남편이 피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회사의 상사분 때문이다. 그분이 파우치에 유행하는 화장품 시리즈를 넣어갖고 다닌다는 거였다. 중년의 나이에도 그렇게 관리를 하는데, 게다가 우린 무서워서 성형은 일체 꿈도 꾸지 않는터, 피부가 환하고 좋으면 열 살 쯤 거뜬하게 아웃 시키는데  그걸 안해? 싶은 것이... 자극이 되었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남자도 멋있지만 피부 좋은 남자, 자신의 피부를 사랑하는 남자에게 끌리는 내 성향 덕분에 남편은 적극적인 피부 관리를 받게 되었다.

어제는 옥용팩을 해주었는데 한번에 필 오프 (다 마른 후 얼굴에서 떼어내는 것) 되는 것을 보고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져 아가처럼 신기해했다. 워시 오프형 화이트팩의 효과에 만족하고 올인하고 있던 참에 옥용팩의 필타입은 남편을 놀라게 할만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휴식같은 시간, 곧 나를 가꾸는 시간을 갖게 된 남편은 야식을 찾던 버릇도 끊어버리고 오이와 두부등을 먹으며 소극적인 다이어트도 시작했다. 낮엔 일해야 하니 먹지 않을 수 없어 금세 체중이 줄지는 않을거다. 얼마전 부터는 술도 자제하고 있으니 1년 후에는 몸메도 달라져 있지 않을까 싶다.

운동이건 피부관리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처방이다. 여자들이 거울을 많이 보는 이유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내 스스로 나에게 만족하면 그 누가 개구리를 닮았다고 킬킬거려도 내 눈에는 눈이 큰 아이로 보이는 법. 이야기의 결론이 이렇게 나버린 마당에 제목을 바꿔야 하는데... 오랜만에 서재를 가꾸는 터에 호객행위 하는 셈치고 그냥 둘란다.



sleeping in - sebastia bo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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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10-0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모나~ 정말 멋진 자기 관리입니다.(남자들도 가꿔 줘야 하구요...) 플레져님네 부부께서 더 이뻐지시겠네~~ ^^

비로그인 2006-10-0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굉장히 부러운 바람직한 부부상 같은데요 ^^

뭔가 같이 할 수 있다는 건, 두배의 기쁨이 따라오는 건가봐요.
나도 이뻐져서 좋고, 이쁜 나를 바라봐서 좋을 상대방도 있구요 ^^

물만두 2006-10-0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관리 받고 시포요~

urblue 2006-10-02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냉장고에도 애인을 위한 마스크팩이 들어 있습니다요. 호호.

마늘빵 2006-10-0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닭살닭살 부르르르르

2006-10-02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nara 2006-10-0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편에게 계란이나 황토팩할때 발라달라고 해요. 혼자하려면 힘들어서..
전 마스크팩 남성용도 사주었는걸요.^^
저만 혼자하면 미안하잖아요. 그래도 열심히 한편은 아니었는데..플레져님 글에 필받아서 앞으로는 더 열심히.ㅎㅎ부부피부관리실을 운영해야겠어요.

플레져 2006-10-02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저보다 너그러우시군요 ^^;;
30일 코스로 피부의 완성도(?)를 봐서 마스크팩으로 단계를 높여가야겠어요 ㅎㅎ
함께 팟팅! ^^

속삭님, 님의 글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아세요?
눈으로 읽은 만큼 모니터가 닳거나 한다면... 선명도가 제로일거에요.
고마워요. 잊지않을게요 ^^

아프락사스님, 음... 닭살스럽지 않게 쓰려고했는데 늘 실패합니다 ㅎㅎ

블루님, 아휴. 꾜쇼한 신혼이신데 오죽하겠수! ㅎㅎ

만두님, 제가 해드릴수도 없고... 만순양께 ^^

체셔고양이님, 빙고~! 피부관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아요.
취미가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인 부분에서 다르기때문에
남편의 피부를 쓸어주는 일이 제겐 즐거움이죠 ^^

아영엄마님, 요새 저희 부부가 때깔 좀 나요 ㅎㅎㅎ

플로라 2006-10-0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아아, 너무너무 부러운 장면들.... 정말 귀여우신데요~^^ 저도 나중에 꼭 해볼래요~^^;;

날개 2006-10-0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편한테 해주겠답시고 팩을 사긴 했는데, 딱 한번 해주고는 귀찮아서 그대로 있다지요....ㅎㅎㅎ

Mephistopheles 2006-10-03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관리를 빙자한 플레져님이 솔로들에게 날리는 라부라부 카운터...!!!

플레져 2006-10-0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로라님, 나중에 더 많은 팁을 알려드리죠 ^^

날개님, 오~ 역시 날개님도 센스쟁이 ^^
추석이 코앞인데 추석선물로 팩, 어때요? ㅎㅎ

메피스토님, 음음...'빙자한'이 몹시 맘에 드는군요 ^^

oooiiilll 2006-10-0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초나 녹두가루, 감자나 오이 갈은 것 등 천연 재료가 가장 좋지만 피부관리실에서 사용한다는 고무팩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사용해 봤더니, 어머나, 꽤 좋던걸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팩을 해주며 오고가는 러브러브 스킨쉽이야말로 최고의 피부 보약이 아닐까 싶네요. 혼자 거울 보며 반죽 같은 팩을 처덕처덕 얼굴에 붙이는 모양새에 지쳐 피부관리와 멀어진 지도 벌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