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침실 문을 열어놓고 잤어요.
우리집은 침실 문을 열면 정면에 바로 현관이 보여요.
현관에 들어서면 양 옆으로 두 개의 방이 있구요,
좁다란 통로를 대여섯 발자욱 찍고 들어오면 거실이 나오는
야릇한 구조랍니다.
저는 문 열어놓고 자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깜박 잠이 들었을까...
무중력 상태에 있었던 것처럼
찰나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 감각은 극도로 예민하기 때문에
상황 파악 할 것 없이
번쩍 눈을 떴어요.
왜, 공포 영화 보면 잠들어 있는 여자를
무심결에 클로즈업 했을 때
번쩍 눈을 뜨는 것처럼 정말 번쩍 눈을 떴어요.
앗.
현관등이...
현관등이 켜 있는거에요.
주황빛이 유유히 빛나는 가운데
우리 부부의 신발들이 보이고
문에 걸어놓은 작은 집 모양의 종도 보였어요.
잘 아시겠지만,
현관등은 사람이 지나가지 않으면,
센서가 작동하지 않잖아요.
남편을 마구 흔들어 깨웠어요.
잠귀가 어두운 남편인데
남편 역시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깨어날 수 있었죠.
남편에게 현관등이 켜 있다는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어둑어둑한 거실 쪽을 노려보았어요.
현관 앞 두 개의 방문은 닫혀 있었거든요.
그리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거든요.
우린 둘 다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아무 소리도, 어떤 기척도 나지 않았어요.
아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기중에는 그 무엇이 붕붕 떠 있는걸까.
그때였어요.
현관등이 꺼지면서
잘 돌아가던 선풍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멈췄어요.
그사이 잠이 든 (남편은 눈만 감아도 금세 잠이드는 체질)
남편을 깨워 타이머를 왜 해놓았느냐며 괜한 투정을 부렸죠.
남편이 비척비척 일어나 자신은 타이머를 설정하지 않았다며
선풍기 타이머를 연속으로 맞춰놓고 자리에 누웠어요.
순간, 제 머릿속에 육십촉 전구가 반짝였어요.
남편은 잠깐 더위를 타는 사람이 아니라
여름 내내 더위와 싸우는 사람이라 타이머 같은 건 설정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현관등과 선풍기는 무슨 관련이라도...
아, 그런데... 선풍기는 작동이 되질 않았어요.
시력이 나쁜 내 눈은 어둠 속에서 빠르게 깜박이고 있었고
한순간 사방은 어둠에 완전히 포위되 있었어요.
창밖으로 유유히 스며들던 가로등 불빛도
이웃의 불빛도 모두 사라졌다는 걸 알았어요.
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
.
.
에어컨 선풍기 사용으로 순간 과부하가 걸린 거였어요.
살금살금 거실로 나가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더니
우리 동네는 암흑속에 퐁당 빠져 있더군요...
다행히 30분 후에
현관등과 냉장고, 주방 라디오, 전화기등이
삐삐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어요.
현관등은 거실의 비상등처럼 비슷한 설정으로 되있나 봐요.
그러니까,
여름철 에어컨, 선풍기 사용을 자제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