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제사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詩 : 박지웅

*2005년 문화일보 시 당선작 *




Marc Chagall , 나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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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1-1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이 어머님도 제사가 즐거우실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플레져 2005-01-1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판다! 제사음식 준비하는 여성으로서의 발언이십니다...ㅎㅎ

水巖 2005-01-12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사때면 여자들이 고생이죠. 남자들이 돕는데야 뭘 얼마나 돕겠어요. 모두들 모여 조금씩 도우면 그래도 한결 편한데, 일찍들 도착을 안하면 눈치도 보이죠.

반딧불,, 2005-01-12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좋네요.

이런 글 쓸 수 있는 사람이라...부럽네요.

날개 2005-01-12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00을 잡아드리려고 했는데.. 간발의 차로..ㅡ.ㅜ

3510001


Laika 2005-01-1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만이다. ~~

2005-01-12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5-01-1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저도 제사때 한 몫을 해야 하는 입장인데... 아주 힘들어요. 그 맘 알아주셔서 감사해요 ^^ 그래도 맘속으론 한번도 뵌 적 없는 조상님들께 잘 봐달라고 속삭이곤 합니다. 아직...즐거운 제사인가봐요, 저는...ㅎㅎ

반디님, 올해 신춘문예 시들 중에서 가장 좋다는 평을 받았대요. 라디오에서 낭송하는 걸 듣는데... 감동했지 뭡니까.

날개님!! 아까습니다...^^ 그렇잖아도 만힛을 날개님이 잡아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날개님은 멋진 숫자 잡기 천사에요.

라이카님, 보셨어요? 10000? 감사!


2005-01-12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5-01-1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시어가 쉽고 편하고 다정스럽군요

플레져 2005-01-1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여우님! 저두 그래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