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갈수록 머리와 가슴은 숙연해지지만 이놈의 끼는 멈출 줄 모르고 자꾸만 고개를 들고 올라온다. 동네 의상실 집 딸내미 덕분에 화려한 의상 잡지들과 옷감들을 만났다. 집에 돌아오면 종이란 종이마다 옷들을 그려내고 한 달도 되기 전 언니가 그려준 종이인형에게 천 벌의 의상을 해입혔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아빠의 단골 양복점에 쫓아가 자투리 옷감을 얻어 바느질을 시작했다. 얼기 설기 무채색 옷들을 입은 내 인형은 세상 어떤 인형보다 더 고왔다. 급기야는... 모델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큰 머리통에 비실비실한 육신인줄도 모르고.
특별한 자리가 생기면 눈물부터 난다. 나를 보고 있는 시선을 보면 부끄러워 하는 대신 즐긴다. 잘할려고 하는 건 아니다. 알고보면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그 순간에 튀어나오는 내 말들이, 내 행동이 진심이다. 나중에 그 행동들이 부끄러운 이유는 그때문이 아닐는지. 진심이란 어찌나 힘이 센지 숨어 있기 보다 얼굴 내미는 걸 좋아한다. 어제도 내겐 그런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춤거렸지만 금세 회복하여 내가 해야할 말을 야무지게 해냈다. 야무지다는 표현은 순전히 고슴도치 친구들 덕분이다.
더 늙기 전에, 더 나이 들기전에 배우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써줄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중에 연출가도 있고 극작가도 있으니 한 십년간 조르면 단역이라도 성사되지 싶다. 해줄 때까지 술 사줘야지! 대학시절 40분짜리 연극에서 1분 30초 연기한 경력은 쳐주지도 않는데 내게는 소중한 추억이다. 주인공을 하고 싶었으나... 발성과 발음이 영... 아니었다. 평소 진지한 표정의 교수님이 내가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데 마구 웃으셨다. 아, 교수님! ㅠㅠ 그러고는 마을사람2 가 내 차지가 되었다. 집에 와서 앓았다. 분했다. 조연이라도 시켜주지... 내가 몸매가 안돼, 얼굴이 안돼.......아, 연기가 안되는구나! OTL
꿈이란 접어놓고 단념하는 게 아니라 언젠가 이룰 수 있는 욕망이다. 기회란 잡으라고 있는 것, 어쩌면 내게 연기 제의가 온다면 꼭 눈물 연기를 해야지. 제 아무리 전도연이 최지우가 단숨에 눈물 흘린다고 하지만 사연많은 나를 당할 수는 없지! 내게는 너무 기뻐서, 어이 없어서, 외로워서 흘리는 다양한 눈물 연기가 준비되있다. 대사는 없고 그저 울기만 하는 역할이 있다면 내 차지다. 막 울다가 갑자기 웃는 역할도 자신있다. 암암. 웃다가 우는 역할 연습도 어제 터득했다. 울지 않기 위해선 엄지 손가락으로 검지 손가락을 마구 누르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입술을 깨물어봤자 눈물은 새나온다. 뭐니뭐니해도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자리에 눈물이 비죽 나오려고 하면 아주 활짝 웃어버릴 것. 넌 아주 예쁘게 우는구나! 라는 의외의 말들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