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 많은 여자와 만나고 싶다.

내 이상형을 이야기해 보자면, 착하고 인내심 많은 여자와 만나고 싶다.

 

내 직업 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축구선수는 신체적,정신적 제약이 따르는 직업이다.

마음대로 놀수도, 마음대로 일할 수도 없다.

팀의 스케줄에 철저히 따라야 하고 ,

경기 일정에 맞추어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축구선수인 나와 함께 생활 수 있으려면,

아무래도 무척 착하고 인내심도 상당 해야 할 것 같다.

 

더구나 나는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외 국 생활은 겉으로는 멋있어 보여도 정작 지내보면 불편하고,

서럽고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때마다 남편이 따뜻하게 다독이고 보살펴주어야 하겠지만

늘 자상하게 해줄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물론 나도 최대한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 주려면

마음이 곱고 잘 참을 줄 아는 여자여야 한다는 생 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나보다 더 배려가 깊고 슬기로워 주위 사람들,

특히 부모님에게 나를 대신해 부족한 부분을 ,

채워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상황이다.

나의 옆자리는 화려해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절대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전 세계 축구선수들의 아내가 비슷한 어려움 을 겪고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나면 더없이,

자상하고 속 깊은 남편이 되어 주겠다는 것은 약속할 수 있다.

이세상 누구보다도 더 가정적인 가장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몇년만 꾹 참고 내 곁을 지켜줄 나의 '반쪽'을 찾 고 싶다.

물론 그동안 친구처럼 지내던 '여자친구'들은 몇 명 있었다.

편하게 지내던 누나 들도 있었다.

하지만 부담 없는 친구들마저 내가 이 나라 저 나라 옮겨 다니면서

이제는 연락하기도 힘들다.

벌써 유럽에 온 지 3년이 넘었다.

네덜란드 진출 초기에는 간혹 전화도 하고 이 메일도 주고받던 친구들이

하나같이 '짝'이 생겼고 언젠가 부터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어졌다.

영국에 살고 있는 한 연인을 만드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을 듯 하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고

1년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내는 나를 남자친구로 여기며

만 한 달가량 한국에 머물 때도 드러내놓고 놀이공원에서

데이트 한번 못할 게 뻔 하니 나는 남자친구로서는 빵점이다.

이래저래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7~8년 간은

독수 공방을 해야 할것 같아 심란하기도 하다.

 

그래도 1년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내는 박찬호 선배의 결혼은

내게 작은 희망 을 주었다.

나라고 성공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

 

 

 

-박지성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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