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가슴으로 귀 기울일 수 있을가?
귀로 듣는 것은 항상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슴으로 듣는 것은 항상 믿을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기도는 대부분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듯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세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하느님이 아시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
내 모든 노력이 아무 쓸모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없이 번민에 시달리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결심,
즉 필연에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내 운명에 순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체념이 내게 가져다 준 -
힘들고 보람없는 저항 속에서
끊임없이 시도해온 그 고역과는 결합될 수 없는
평정을 통해 나는 그 동안 내가 겪어온
모든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
나는 내가 겪은 이 현실의 아픔을 운명이라 여기고 쉽게 체념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주는 아픔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잔뜩 겁먹은 내 상상력은 그 아픔들을 뒤섞고 휘저어 부풀린다.
내게 닥쳐올 그 아픔들에 대한 상상은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아픔들보다 수백 배 더 고통을 주며,
아픔의 징후는 현실의 아픔이 주는 타격보다
더 큰 고통을 가한다.
그 아픔들은 현실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부풀려진 모든 상상적인 것을 벗어던짐으로써
자신들의 진짜 크기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들이 그 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위안을 갖는다.
......
하지만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때로는 소중히 키워오고 때로는 좌절을 맛보았던 그 희망은
끝없는 열정을 통해 쉼없는 나를 흥분케 한 응집체였다.
......
나의 마음은 역경의 시련 속에서 정화되었다.
그러기에 내 마음 속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그 속에서 어떤 비난할 만한 조각 하나 발견할 수 없다.
......
나의 내면에 대해 골똘히 성찰해봄으로써
마침내 그것에 더 나은 질서를 부여하고
그것에 남아 있는 악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내 명상은 결코 쓸모없지 않으리라.
내 마음의 참 가치를 생각하며...
장-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