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넘는 명작, 안데르센에 귀기울여봐요
임정진·동화작가·‘상어를 사랑한 인어공주’ 저자
▲ 안데르센
| |
“옛날이 좋았어. 그때는 훨씬 여유가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정신없이 달리기 경주만 하고 있단 말이야.”
우리 동네 어르신 말씀이 아니다. 1800년대 안데르센이 쓴 작품 ‘증조할아버지’에 나오는 대사다. 그만큼 안데르센은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진리다. 170년이 지난 작품을 읽는데도 우리는 쉼없이 그의 작품 안에서 내 모습, 우리 이웃의 모습을 발견하고 공감한다. 할리우드식 결말에 익숙해 있던 독자는 약간의 충격을 느끼기도 한다. 절대 안 죽어야 마땅한 주인공이 허망하게 죽고, 비참하고 무섭기도 한 이야기들이 느닷없이 가슴 한편을 무차별 공격한다. 동화는 따스하고 아름답다고만 믿던 순진한 독자는 마음에 철갑을 두를 필요가 있다.
4월 2일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태어난 지 꼭 200년이 되는 날. 귀에 따갑도록 안데르센이란 이름을 들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정독한 적이 없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동화집을 펼쳐보자. ‘성냥팔이소녀’ ‘미운오리새끼’ ‘벌거벗은 임금님’ 말고도 이렇게 많은 안데르센 명작들이 있었나, 감탄할 것이다.
할아버지가 하는 일은 언제나 옳아요(교학사)엔 친구와 가족은 서로 끝없이 믿어주어야 한다는 안데르센의 소박하고도 고집 센 메시지가 들어있다. 장에 가서 말을 소로, 소를 양으로 밑지게 바꾸다가 결국 썩은 사과를 들고 온 할아버지에게 “다 잘했다”고 말하는 할머니. 조건없는 믿음이야말로 사막 같은 세상을 버텨 나갈 힘이 아닐까. 이와사키 치히로가 수채물감으로 그려낸 빨간 구두(한길사)는 섬뜩하면서도 슬프다. 금지된 빨간 색깔의 구두를 신고 춤을 추다 자신의 발을 잘라야 하는 운명을 맞게 된 카렌. 개인의 욕망에 대해 무자비했던 당시의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를 안데르센은 가차없이 비꼰다.
정말이야(계수나무)는 ‘말하기’의 신중함을 일깨우는 동화다. 암탉이 떨어뜨린 작은 깃털 하나가 다섯 마리의 암탉이 죽은 사건으로 뒤바뀌는 황당한 이야기. 온갖 미디어로 책임감 없는 말들이 전파되면서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지 안데르센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비룡소와 주니어파랑새가 펴낸 ‘안데르센 동화집’은 서재 한편에 소장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인어공주’ ‘엄지아가씨’ ‘눈의 여왕’ 세 편이 실린 비룡소 동화집은 일러스트레이션이 뛰어나다. 인어공주가 압권이다. 보리스 디오도르프라는 체코의 화가는 디즈니가 망가뜨려 놓은 인어공주 본래의 처연하고도 섬세한 이미지를 고스란히 되살려놨다. 완역본으로 나온 주니어파랑새의 동화집에는 무려 4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짜깁기와 건너뛰기, 축약의 시대가 이제 마감되려나 보다. 모든 작품에서 ‘동화의 아버지’라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안데르센 문장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