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살면서
누군가를 사랑했느냐고 바람이 당신에게 묻는다면
새벽기차를 타고 주저없이 떠나라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 허수아비를 사랑했고,
저 만치서 따라 오는 구름향기를 사랑했고,
손톱 끝을 갉아먹는 봉숭아 꽃물을 사랑했으며,
덜컹거리는 고래 안에서 이름 모를 소녀의 눈망울을
사랑했었노라고 말하여라
그러고도
다시 바람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했었느냐고
따지듯 또 다시 묻는다면
그 때는 주저없이 당신의 무릎을 바쳐라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할 수 있음을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살 수 있음을 그리하여 다 퍼 주고,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음을 하염없이 고백하여라
그러고도
또 바람 같은 그 사람이 당신에게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했었느냐고 다시금 묻는다면
그 때는 뒤돌아보지 마라
이제는 먼 길을 떠나지 마라
늘 그렇듯
사랑은 언제나 가까이 있는 법
당신에게 사랑을 묻는 그 사람이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 생에서 단 한 번 뿐인 인연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꼭 만나야 할 사랑인지도 모를 일이다
<김현태>
<wax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