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시선집
서정주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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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서정주라 하갰다. 그의 친일, 친독재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을 읽노라면 저절로 감탄과 찬사가 나오게 된다. 또한 가장 좋아하는 시를 두어개 꼽아보라 한다면 서정주의 <밀어>,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꽃밭의 노래>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더욱이 나는 그의 시를 10편 정도는 통채로 외우고 있을 정도로 그의 시에 매료되어 있다.

서정주의 시를 더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져 오다가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것이 바로 이 시집이다. 이 책에는 그의 14권의 시집에서 대표작만을 뽑아 그 당시 발표되던 그대로의 문자로 써놓았다. 그래서인지 한자와 연음 그대로 써놓은 시들이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라고 시집에 적혀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맞춤법과 현재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또한 시집인 것을 감안하면 책값이 너무 비싼데, 아마도 양장본이라서 그럴것이다.  

서정주의 시들을 평가하는 평론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그의 시의 주제를 영원지향성과 떠돌이 정신이라고 한다. 그의 저 유명한 구절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부분에서 보이듯, 그의 떠돌이 정신은 그의 시들의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신라 정신이라고 표현되는 그의 영원 지향적인 시들은 나에게 시의 맛을 가르쳐 주었다.

특히 그가 꽃을 소재로 쓴 시들 치고 수작이 아닌것이 없다. <꽃밭의 독백>, <목화>, <밀어>, <꽃> 등등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거기서의 꽃들의 생명을 은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그의 첫번째 시집인 <화사집>에 나오는 몇몇 작품들은 인간의 육체적 관능성을 그려내고 있다. 거의 에로 비디오 수준인데, 그래도 그 시집의 작품들도 나름의 성찰을 담고 있는 수작들이다.

서정주의 대표작들을 원형 그대로 읽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물론 한자 실력이 있어야 읽기가 편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외울만한 시들이 굉장히 많으며, 운문성이 뛰어나서 외우다 보면 시의 아름다운 맛이 더욱 살아난다.  언젠가 <푸르른 날>이라는 시를 생맥주 피처(pitcher)에다 적어 놓은 일이 있는데, 많은 이들이 읽고 같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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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의 불빛
오세영 지음 / 문학사상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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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기 전에는 항상 논픽션을 위주로 읽어 왔었다. 딱딱한 산문체에다 어려운 용어와 난해한 내용이 있는 인문 사회학 서적들을 말이다. 하지만 학교 서점에서 깔끔한 표지를 보고 산 이 시집은 내가 서정주, 백석, 한하운, 윤동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시를 감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이 시집은 읽기도 쉬우면서, 이해하기도 대단히 쉽다. 황지우나 황동규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느꼈던 그런 난해함은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어려운 낱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러한 소재들을 사용하고 있다.

궂이 시들의 종류를 말하자면 거의가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삶의 다양한 모습들 그 자체에 천착하면서도 우리들에게 잔잔하 감동을 전달하는, 그러면서도 생에 대해서 조금은 독특한 시각을 열어주는 매우 훌륭한 시들이다. 서정시들이 으레 가질 수 있는 현혹적인 수사나 자극적인 기교는 그리 많지 않으며, 여유있고 수수한 삶에 서 가질 수 있는 성찰, 특히 불교적 성찰이 눈에 띈다.

난해하지 않고 잘 읽히면서도, 풍부한 감성을 전달하는 서정시를 읽기 위한다면, 그러고도 우리의 심층 깊숙이 무언가를 새기고 싶다면 이 시집을 권하고 싶다. 괜찮은 시들은 외우기에도 매우 좋을듯하며,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부담 없이 읽을 수도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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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 - 한 혁명가의 초상
페르난도 디에고 가르시아 & 오스카 솔라 지음, 안종설 옮김 / 서해문집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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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른 많은 평전들과는 달리 아주 많은 사진들을 담고 있다. 사실 사진이 차지하는 분량이 글이 차지하는 분량보다 훨씬 많다고 하겠다. 또한 매우 책의 크기가 크지만, 그다지 두껍지는 않다. 체 게바라 열풍을 틈타서 번역된 이 책은, 한 명의 막시스트로서 그리고 휴머니스트로서의 체 게바라를 그리고 있다.

20세기는 그야말로 광기의 세기였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거치고 나서 크렘린과 백악관으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진영과 자유민주주의 진영간의 반목과 대립은 온 세계를 이념 논쟁과 혁명 전쟁으로 물들이고는 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전쟁이 무엇이던가? 바로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북한과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의 대리전이 아니던가? 이러한 20세기의 중반에 쿠바라는 나라는 미국의 수탈에 신음하고 있었다. 친미 경향의 바티스타 정권아래 핍박받는 민중들을 구하기 위해서 체 게바라는 자신과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는 쿠바의 혁명에 동참하게 된다. 처음에는 의료진으로 그란마호에 탑승하게 되는데, 그의 용맹성과 지성은 그를 혁명군의 최고 간부중에 한 명이 되게 한다.

혁명이 성공으로 끝난 후에 그는 장관을 비롯하여 혁명 정부의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보헤미안적 기질과 혁명에 대한 불타는 의지는 그를 남미의 혁명에 참가토록 한다. 결국 그는 거기서 CIA에 체포되어 총살당하게 된다.

내가 그에게 놀라는 것은 그가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의 휴머니즘을 실현하기 위하여 막시스트 철학을 받아들이고 혁명에 참가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지식인으로서, 의사 시험에 합격한 엘리트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자아' 위해서 그러한 기득권을 버리고 카스트로의 제의에 응했던 것이다. 또한 그의 호학(好學)의 정신은 나의 나태함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는 모습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그의 잘 생긴 외모와 유머감각은 그의 뛰어난 면모에 더해지는 양념과도 같은 것이다.

그의 모습은 거울이다. 그를 봄으로써 나를 본다. 나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보고, 나의 무지함과 안일함을 본다. 그는 나의 몸에서 숨쉰다. 나를 일깨운다. 그는 살아있다. 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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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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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과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의 복잡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은 변화가 큰 결과를 초래한다는 카오스적 사고방식, 그리고 새로운 기술과 자연과학적 발견이 가져올 새로운 시각과 기준은 우리로 하여금 과연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철칙인 열역학 제 2 법칙으로 부터 앞으로 도래할 패러다임의 변화와 그에 따르는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논하고 있다. 열역학 제 2 법칙은 우주의 모든 물리적 변화들은 질서가 있는 상태에서 질서가 없는 상태로, 이용 가능한 에너지가 이용가능하지 않은 상태로,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법칙이다. 이 열역학 제 2 법칙은 자연과학적 법칙으로서만이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매우 깊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이 '한 방향' 즉  무질서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서 그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점검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그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 그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계론적 세계관, 다시말해  이 우주는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합리적인 물리 법칙들로 해명 가능하며, 그러한 지식으로 앞으로 일어날 물리적 상황을 예측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해서 자연을 개발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면 무궁무진하게 발전함으로서 세상의 합리성을 증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근대에 생겨난 시각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이 뉴턴과 데카르트, 베이컨과 같은 철학자로부터 연유하며, 앞으로는 엔트로피 세계관으로 전환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을 거라 한다.

그가 말하는 엔트로피 세계관은 이 세상의 자원은 유한하며, 세상은 무궁무진한 발전을 거듭하지 않으며, 열역학 제 2 법칙으로부터 추론되는 열죽음(heat death)이라는 세상의 끝이 있는 세계관이다. 이것은 자원의 한계로부터 연유하는데, 열역학 제 2 법칙이 깨질 수 없는 철칙인 만큼 사용가능한 에너지는 곧 고갈될 것이라는게 그의 논지다.

따라서 천연자원의 유한함에서 비롯되는 세상의 변화가 있을 터인데, 그의 주된 주장은 결국은 아껴야 된다는 다소 허망한 주장으로 치닫게 된다. 사실 나의 느낌으로도 새롭게 도래될 엔트로피 세계관에 부합하는 생활 양식을 새롭게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될것 같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너무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삶인 것이다. 언제나 뜨거운 샤워를 할 수 있고, 편리한 컴퓨터와 형광등, 냉장고와 세탁기 등등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문명의 이기는 대단히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책을 5권 추천하라 한다면, 단연코 이 책은 포함이 될터이다. 그것은 이 책이 현재를 보는 대단히 독특한 시각을 제공할 뿐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적 법칙으로부터 앞으로 일어날 사회적 일들을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천연자원은 소모될 터이고, 우리는 다시 적은 에너지만을 사용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 그것이 100년 후가 될지, 200년 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점을 너무나 망각한다. 그 때가 된다면 아마도 자본주의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고, 자유민주주의도 상당부분 변형된 채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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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5
김형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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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신을 반추할 때 그 거울이 될 수 있는 것은 앞선 시대를 살아갔던 훌륭한 사람들의 지혜와 삶의 경륜일 것 같다. 나날이 권태해지는 일상을 살아가고 우리에게 던져진 이 하나의 책은, 그러한 점에서 상당한 행운이라 하겠다. 내 안에 있는 많은 거울들에 나태와 무식이라는 먼지가 쌓여 그 빛을 잃어갈 때, '문익환'이라는 새로운 거울을 산 것은 내 삶의 궤도를 돌이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를 읽을 때 우리는 우리 민족이 거쳐야만 했던 야만과 수난의 역사를 돌이키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20세기가 어떠한 세기였던가?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분단과 전쟁을 겪고, 독재와 광주 학살을 지나오며 전국민이 이데올로기적 편협성에 매몰되고, 개발독재와 유신의 상흔들이 날로 민족을 아프게 하는 와중에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폭력적인 통치가 전국토를 피와 눈물로 물들게 하는 그러한 한국의 현대사가 아니던가? 문익환 목사는 그러한 우리의 시대를 정면으로, 그것도 가장 핵심부를 헤쳐간 사람이다. 노동자들이 아플 때는 노동자 곁에, 민주화의 시대적 과제가 시급할 때는 민주화를 외치면서 시대의 예언자로서, 민중의 아버지로서 항상 국민들보다 반발짝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시대적 상처와 아픈 자리에 문익환이 늘 있었던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억압받는 노동자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1976민주구국선언을 통해 국민들에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심었으며, 통일의 깃발을 들고서 80년대 후반을 살아가면서, 인간에 대한 절망과 환멸속에서도 잠꼬대 같은 희망과 예언을 몸소 실천하던 사람이다. 아무리 힘든 시기에도 좌절하지 않고, 절망을 희망으로 역전시키는 그의 말과 행동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서 아직도 살아있다.

그리고 그는 내 속에도 살아있다. 그는 나에게는 새로운 거울이다. 나의 모습이 추할 때 새로이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기존의 거울들에 먼지가 자욱할 때, 그는 그 먼지 마저도 닦아내고 있다. 그의 말들, 그의 글들, 그가 그렇게나 강조하던 '발바닥으로 쓰는 역사'도 내 가슴에서 세상을 비추어 보고, 나를 반성하는 하나의 실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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