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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서정주

  내 너를 찾아왔다....... 유나.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더냐. 유나, 이것이 몇만 시간 만이냐. 그날 꽃상부 산 넘어서 간 다음 내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 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 촉불밖에 부흥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천린지, 한번 가선 소식 없던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도 열아홉 살쯤 스무 살쯤 되는 애들.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들어 앉아 유나! 유나! 유나!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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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감도

                             이상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해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해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해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해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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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화

                           서정주


누님,
눈물겨웁습니다.

이, 우물물같이 고이는 푸름 속에
다수굿이 젖어 있는 붉고 흰 목화꽃은,
누님.
누님이 피우셨지요?

퉁기면 울릴 듯한 가을의 푸르름엔
바윗돌도 모두 바스러져 내리는데......

저, 마약과 같은 봄을 지내어서
저, 무지한 여름을 지내어서
질갱이풀 지슴길을 오르내리며
허리 굽흐리고 피우셨지요?

<감상>

눈물 겨울 것이다. 잘 안되던 일이, 간절히 바라던 일이 풀릴 때는 갑자기 눈물이 날 때가 있지 않은가?

참 무던히도 참고 기다렸을 것이다. 봄이 어떤 계절이던가? 생동하는 기운, 꽃피는 강하, 어여쁜 여자들...

여름은 또 어떤가? 견디기 힘든 더위, 한 없는 짜증과 나태, 다들 강이다 바다다 놀러 가는데... 이 것들

다 참고 했느니라. 그일 할라치면 질갱이풀 지슴길 오르고 내릴 일이다. 허리 구부리고 잘 심고 가꿀일

이다. 물도 주고 어디 다친데 없는지 신경쓰고... 남이 안 알아주니 더 가혹한 일이 되고야 만다. 이리하여

거기에 붉고 흰 목화꽃 피었다. 눈물나지 않겠는가? 거기에 가을의 푸르름이 더했으니 그 꽃 보고 얼마나

서럽게 울었겠는가? 기쁨때문에? 아니면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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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망한 왕조의 늙고 병든 마지막 왕이었다. 酒色은 나의 덧없는 나날이었고 폭정은 내 위대함이요 악명은 역사가 되었다. 나의 연호 4년 己未年 크고 붉은 말 한마리가 광화문을 네 바퀴 돌고 난 다음 음울한 울음을 울고는 사라졌다. 거북이가 웬 장수의 동상 밑에서 빠져나와 교보빌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우 여러 마리가 모 신문사로 들어왔는데 그 중 한 마리가 편집국장 데스크에 올라앉았다가 없어졌다. 덕수궁에서는 금계와 참새가 교미하고, 전갈좌가 밤하늘을 기어가 황소를 물어뜯어 죽였다. 피 묻은 별이 아현동 민가에 떨어졌는데 땅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더니 거기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다. 서울의 수돗물은 온통 벌건 녹물이었고 어떤 중이 曹溪寺 대문을 열고 보니 큰 배가 절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한다. 한강 고수부지에 물고기들이 올라와 죽었는데 고기들이 모두 외눈박이였다. 수만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녔다. 모기떼가 해를 가렸고 밤에는 고궁의 오래된 회양나무가 사람 소리를 내며 울었다. 다리가 뚝 끊어져 달리던 통학 버스가 물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들이 애비를 죽여놓고 집을 불지르는 일도 있었다. 또 큰 개가 서쪽에서 인왕산 언덕에 와서 대권을 바라보고 짖더니 이윽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으며, 성 안에 개들이 길 우에 모여 혹은 짖기도 하고 혹은 울기도 하다가 얼마 후 흩어졌다.
  노왕이 이제 임종을 맞는 차에, 시녀들이 와서 나의 데스 마스크를 뜨겠다고 법석이었다. 아, 나는 그거 필요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내 나이 수만큼 나의 죽은 가면을 떠가지고는 이제 나더러 그것들을 무대 중앙에서 깨뜨리라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늙은 왕은 울상이 되어 나의 석고상을 들고 관객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내 얼굴로 집중되는 핀 조명: 빛의 막 속에서 왕은 딱 이 한마디만 하고 내 얼굴을 깨뜨렸다.

  "이건 삶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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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서정주


가신 이들의 헐떡이던 숨결로
곱게 곱게 씻기운 꽃이 피었다.

흐트러진 머리털 그냥 그대로,
그 몸짓 그 음성 그냥 그대로,
예사람의 노래는 여기 있어라.

오- 그 기름 묻은 머리박 낱낱이 더워
땀 흘리고 간 옛 사람들의
노래 소리는 하늘 위에 있어라.

쉬어 가자 벗이여 쉬어 가자
여기 새로 핀 크낙한 꽃그늘에
벗이여 우리도 쉬어서 가자

만나는 샘물마다 목을 축이며
이끼 낀 바윗돌에 턱을 고이고
자칫하면 다시 못 볼 하늘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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