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0일 위로 휴가를 나온 날이다. 12월 7일 306보충 대대에 입대하여 25사단 신교대에서 신병훈련을 받은 다음, 5기갑 여단으로 자대배치를 받는 100일 동안의 여정이 꿈만같이 느껴진다. 신교대에서 법당을 갔었는데, 거기 계시는 법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입대하는 날이 전생처럼 느껴질거라고 하셨다.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이등병 때는 시간이 정말 빨리간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취침을 할 때까지 뛰어다니고 청소하는 것들이 너무나 정신 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잘 때쯤 되면 뭘 했는지도 모를 때가 부지기수다.

오늘 아침은 7시 기상이었다. 어제 야간 교육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한 시간 더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조점호를 하고 군장을 싼 다음 휴가자 신고를 하고 출발할 때는 그 기분이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여단 버스를 타고 덕정역에 도착한 다음 다시 의정부역으로, 다시 지하철로 서울역으로 도착한 다음 KTX로 대구로 갔다. 거기서 대구 고속버스 터미널로 간 다음 울산으로 가는 표를 끊어서 오후 5시에 도착했다. 행정반, 소대장, 부소대장, 분대장에게 차례로 연락한 다음 지금은 쉬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온 몸이 피로에 찌들어 있는 상태다. 부대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여러 교통편으로 집으로 오다보니 무릎도 아프고 속도 울렁거린다. 경기도 양주에서 울산까지 오는데 이렇게나 오래 걸리다 보니 시간이 정말 금과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100일 휴가 4박 5일이 4.5초라고 하는 고참들의 표현이 폐부를 찌르는 것이 시간이 정말 빨리 가고 소중하기 때문일테다.

4박 5일의 혹한기 훈련과 2박 3일의 중대 전술 훈련을 마친 이등병의 소감으로는 군 생활은 힘들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 사회에서는 모범생이라고 불리우는 엘리트 공학도들만 만나다가 군에서는 술집 웨이터, 나이트 '삐끼', 공장에서 일하는 사원, 백수 등 가지 각색의 출신과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다보니 나의 인간 관계가 넓어지고 사람보는 눈이 더 확대되지 않았나 싶다. 또한 단체 생활을 하는 방법, 남을 배려하는 기술, 나를 낮추는 방법 등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나의 그릇이 더 넓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막내 이등병이 위에 쓴 것 처럼 군 생활을 마냥 긍정적이고 도전적으로만 기술하기에는 여러 애로 사항들이 군 생활에 곳곳에 널려 있다. 세탁과 목욕이 불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참들의 욕설과 인격비하는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일들을 시키는 것을 비롯하여, 한 인간의 개체성을 무시하는 분위기는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이런 여러 사항들이 '나의 군생활'이라는 작품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아름다운 그림도 어두운 색을 필요로 하고 값비싼 보석도 흠이 있듯이, 나의 멋진 인생도 이런 군생활을 통해 완성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군생활을 할 테다. 수양록에도 썼듯이 내가 군생활에서 '마실' 수 있는 모든 단물을 다 빨아먹어서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전역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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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3-25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푹 쉬다 가시길... 늘 몸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