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두딸과 집에서 생활의 낙을 찾지 못해 축 처져있는 나에게 남편이 가볍게 읽을 수 있다며 건네준 책이다. 나는 에세이류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책도 제법 두꺼워보였다. 추천글과 프롤로그를 읽어 보고 자기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모험을 했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경제적 여유가 있고 딸린 식구가 없으니까 저렇게 떠날 수 있지 싶었다. '그렇게 떠날 수 있는 너는 좋겠다'며 비아냥 거렸다.

 책 읽기가 시작되고 나의 질투는 점점 더 심해졌다. 비슷한 나이에 대학 다닐 때 벌써 호주, 스페인을 유학 다녀왔다고?? 쳇 집이 잘 살았나보군.

 형편이 넉넉지 못한 집에서 자랐던 나는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하고 돈을 벌어 친정 식구와 먹고 살아야했다. 결혼한 지금도 내 월급통장은 친정식구와 독립하지 못했다. 휴직을 한 지금, 큰 딸 책 한질 사주려고 남편에게 말했다가 '집에서 돈 쓸 생각만 하냐?'는 소리를 듣고는 얼마나 짜증 나던지. 그런데 두살터울 동생은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자기 쓰고 싶은 것 다쓰고 돌아다닌다. 짜증나서 동생에게 한마디 했더니 "누나도 하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 한다. '저것이 내가 누구 땜에 이렇게 궁상을 떨며 살고 있는데' 싶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공중그네'의 신경과 의사 이라부에게 진료라도 받아야할 만큼 제대로 꼬여있는 나에게 책 앞머리의 그녀는 왠지 미운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점점 나는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나의 생각이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하는 그녀나, 석사과정을 마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도전 정신이 너무 부러웠다. 너무나도 소극적인 나로서는 그녀의 모든 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부러웠다. 나의 가정환경이 나를 이렇게 옭아맨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나는 안돼'라면 나 스스로가 틀 안에 가둬버린 것을 아닐까.동생 말대로 하고 싶은 거 하지 말고 살라고, 가족을 위해 짜증내가면서 까지 희생하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내 선택이었던 것이다.

책을 다 읽어갈 무렵 나는 다시 생각했다. '그러면 도대체 나는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게 뭘까?' 손미나씨처럼 뭔가 강렬하게 원하는 게 없다는 게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이렇다할 취미도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정말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게 나였다.

 이 책을 읽고 스페인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자연환경도 구경해 보고 싶고 소탈한 스페인 사람도 보고 싶고, 그러나 내가 가장 잘한 생각은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 보고, 나도 한 번 저질러 보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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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7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8-02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초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서재지붕에 걸린 글귀가 마음을 당깁니다.^^

sokdagi 2007-08-1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하시네요. 이전 당선 리뷰를 읽다가 연거푸 들어논 곳이 님의 서재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잡초 2007-08-14 12:10   좋아요 0 | URL
스페인의 정열적인 풍경을 상상해 보기도 좋고,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책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