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을 떠난 내내 이 책을 안고 보고 있었다. 여행가기 전날 잠들기 전에 몇 장 펼쳐봤던 이야기는 줄이고 줄인 가방 안에 묵직함을 더해서라도 안고 가고 싶은 내용들이었기에 고민없이 가방 한구석에 밀어넣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 책은 이번 여행 동안의 동반자로서 이번 여행은 물론 내 삶의 의미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을 전해주었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마냥 즐겁고 설레였다. 그래서 이것이 행복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여행의 시간이 지나 발등이 까지고 물집이 잡히면서 어느 덧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자처한 고생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분명 여행을 시작한 그때와 여행을 하고 있는 그때의 나와 여행을 마친 나도 동일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라는 시간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계속 달라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형태도 없고 무게도 없는 그 단어를 쫓아 매일을 내달리고 있는 나에게 17명의 이른바 인문학의 대표주자들은 나에게 그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유교는 위안을 주지 않습니다. 어떤 종교인들은 상처받은 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힐링으로 유도합니다. 하지만 유교는 모든 문제가 너로부터 오고, 너로 인해 일어난다고 말하죠. 상처를 있는 그대로 실랄하게 바라봅니다. 어떤 이에게 일어난 문제는 그가 어려서부터 사람을 대하는 습관이며, 태도며, 이런 것들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거죠. 이걸 바꿔야 합니다. 유교는 성찰의 학문이지 위로의 학문이 아니예요. 그래서 종교적 베이스가 약한 대신 현실적인 추동력이 있는 겁니다. -본문
조선시대의 구축이었던 유교에 대해서 들어는 봤지만 그 안의 가르침까지는 얼마나 알고 있었나 싶다. 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유교에서는 효를 중시하고 나라에 대한 충을 중요시했다는 것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한형조교수가 말하는 유고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자세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시련에 대해서 나를 향해 오늘 그 화살들을 보며 남을, 세상을 탓하는 것이 아닌 내 안의 문제를 먼저 들여다봄으로서 어디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우는 학문이라니. 내가 생각했던 유교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이것이 과연 유교였던가?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된다.
"상처가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너를 키울 것이다." 확실히 유교는 소프트하지 않다. 돌직구의 철학이다. 그것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성장의 역학 관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다. (중략)
"요즘 부모들 열에 여덟, 아홉은 자식이 상처를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죠. 그게 아니예요. 아이를 더 크게 성장시키려면 부모가 모든 걸 갖춰 주지 말아야 해요. 그런 배려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결핍을 허용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걸어갈 수 있게끔 해야죠. -본문
'힐링'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우리 사회에 깊숙히 들어와있는 요즘, 상처를 받는 우리를 다독여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만하고 있던 나에게 유교는 일침을 가하는 것이 아닐 수 없었는데 임 상처를 받은 것이기에 위안이 필요할 것이라며 무엇인가에 기댈 것을 찾고만 있는 이들에게 스스로 그 길을 나아가기를, 그러니까 강인한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의 영어 표현인 '언더스탠딩'은 아래(under)에 서서(standing)상대방은 본다는 뜻이죠. 아이의 발달 단계가 청소년기에 이르면 특히 이게 중요해져요.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부모보다 더 잘되고 싶어 하는 심리 때문에 부모를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죠. 옛날이야 부모가 제일 높아 보이고 무슨 말을 해도 입김이 통했겠죠. '위에 서서' 아이를 이해해도 괜찮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이게 안 먹혀요.
읽는 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었던 부분은 유미숙교수의 이야기였는데 아동복지학과 교수인 그녀가 들려주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 동안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부모라는 모습에 대한 전혀 다른 것들을 들려주고 있었다. 이미 내가 유년시절을 거쳐 청소년기를 지나 지금의 내가 있기에 당연히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러한 생각이 실은 다분히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나 그녀가 말하는 꿈은, 꾸는 것이 아닌 설계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냉철하게 바라보도 진정한 나를 알아야만 한다는 것인데 미술가가 꿈이지만 실력은 부족한 부유한 집안의 아이에게 무작정 캔버스를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녀가 들려주는 꿈을 쫓는 자세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하다가 아니면 포기하고 또 다른 것들을 접하는 유야무야 하는 방식이 아닌, 실현 가능한 것들에 대해서 집중해서 바라볼 것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하는 내내 이 책을 안고 본 덕분인지 이번 여행 자체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들려주는 행복이라는 방향도 각각 다른 형태의 것들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행복이며 그 안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포진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에 확연히 다른 시각들을 얻은 듯 하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기억들이 퇴색되어 갈 즈음, 다시 한번 꼭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에 책장 가장 잘 보이는 곳이 이 책을 꼽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