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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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르's Review

몇 페이지의 책을 넘겨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 이야기가 어떠한 느낌이겠구나, 라는 것이 전해진다. 틈틈이 조금씩 읽어오던 것이 습관 아닌 습관이 되어 버린 지금, 몇 페이지가 아니더라고 몇 줄의 글만 읽어도 이 책이 나에게 쉽게 다가오겠구나, 아니면 버거운 것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처음 마주한 누군가의 글이 몇 줄의 이야기만으로 느낀다는 것이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그들에게 외람되며 경솔한 것들이겠지만 <토우의 집>을 통해서 처음 마나게 된 권여선 작가의 이야기는 따뜻하면서도 내가 겪어 보진 못했지만 오래된 앨범이나 책장에서 마주한 이야기 같은 느낌이라 그렇게 속력을 내어 읽어보고 싶은 이야기로 다가왔다.

띠지에 적힌 '삼벌레고개'의 어린 스파이들이 자라는 법이라는 말만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그 아래에 적힌 '긴긴 성장통과 함께 써내려간, 고통에 관한 고백'이라는 글을 책을 다 덮은 후에 마주한 순간, ', 이것이었구나'라는 회한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아직 손떼 묻지 않은 아이들이 마주해야만 한 시리디 시린 현실 앞에서 아무말 없이 아린 가슴을 덮어야만 하는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파이가 되기 위해 주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던 원과 은철이 왜 그들만의 고통의 방 안에서 살아야만 했을까. 좋은 스파이와 나쁜 스파이를 구분해서 복수를 해야 한다는 구실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꼬마 전령들이 웃는 것을 보지 못한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밤이면 동네 사내들이 술추렴을 하러 모여드는 박가네 가게 평상을 둘러싸고 기묘한 삼각편대로 자리 잡은 이들 세 사내와 어린 스파이들이, 말썽쟁이 남자들이 모두 부재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낮 동안에 사벌레고개 중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이었다. –본문

지금보다 더 복작거리며 수 많은 이들이 지내고 있던 동네이지만 누가 누구이며, 누구네 아들이 성공을 했다든가, 혹은 어느 집에 우마가 끼었다는 소식이 현재의 찌라시보다도 빠르게 퍼지던 마을 안에 우물이 있는 집의 계주였던 순분의 집에 사람들이 오가며 한바탕 동네의 이야기를 퍼다 다를 때만 해도 그저 평범한 예전의 마을 모습들을 전해주는 것이려니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일까. 은철의 말마따나 원의 동생 희가 나타난 순간부터 서였을까. 아니면 호기 어린 마음에 시작한 금철의 장난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도 아니라면 순분이 떠들었던 새댁의 시누이의 슬픈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올린 탓이었을까. 우물 속의 아흔 세명의 망령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던 원과 은철의 이야기가 진정 불행의 씨앗이 된 것처럼 이들에게 드리우는 불행의 서막은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내며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은철은 차창에 다가가 정면을 보고 안아 있는 원의 옆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원은 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은철은 알았다. 자기가 병실에서 느꼈던 것처럼, 원도 날카로운 고통이 사방에 철장을 두른 작은 방 속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그 방에 원 혼자 갇혀 있다는 것을. –본문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은철은 이제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금철은 은철에 대한 사고 이후에 자신의 행실을 점차 다잡아 가고 있다. 순분은 그 동안 자신이 퍼다 나른 이야기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들이었는지에 대해 깨닫고서는 이제는 그 어떠한 이야기들을 제 입으로 전하지 않는다.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덕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 길을 떠나면서 영과 원에게 따스한 이야기를 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지는 모르나 그 일로 정신을 놓아버린 새댁이 다시 기운을 차려 아이들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래, 그 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겠지만 나는 그들에게도 희망이라는 빛이 다시금 드리울 것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열린 결말에 대해서 늘 편견어린 시선으로 불만을 표했던 나로서는 오늘의 이 이야기의 끝이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에 새삼 다행이다, 란 생각을 감히 하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은 나지막한 위안이 전해질 것이다. 새로이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 찬란한 봄으로 되돌아가 그들만의 방이 아닌 세상 속에 담겨 질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원과 은철,영과 금철, 새댁과 순분에게도 다시금 그들만의 봄이 전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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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 성석제저

독서 기간 : 201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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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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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것은 그 둘만의 달콤한 눈빛, 따스한 이야기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한 것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일반적인 커플에 대해 생각했고 당연히 그러한 이야기일 줄만 알았다.

책을 펼치자 마자 옮긴이의 말이 이 소설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달콤한 말 한마디 등장하지 않는 독특한 연애소설" 이라는 이 한 줄의 이야기 속에 이 한 권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는데 100여 페이지의 이야기 속에 담겨진 이야기가 자칫 심심하지 않을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그 어디서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생경한 느낌이기에 보는 내내, 이럴 수도 있구나, 라는 감탄과 동시에 그 생경함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새롭기에 신선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는 서른살의 엘렌과 의사인 로익이 만나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담겨 있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우리네 삶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화장실에 들락거린다거나 밥을 먹다 입 안에 음식물이 끼인다거나 하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은 철저하게 가려진 채로 스크린 속에 등장한다면 이 '커플'이라는 소설 속의 그들은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 그러니까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전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그는 엘렌을 바래다줄 것이다. 그리고 키스를 할 것이다. 그는 그녀의 볼 안쪽, 잇몸에 이어 치아로 혀를 옮기다 잇새에 낀 푸른 야채 조각을 없앨 것이다.

야채 조각은 엘렌이 커피를 마실 때 사라졌다. 그는 그녀를 바래다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하지 않았다. -본문

누군가를 처음 알아가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전해주며 엘렌과 로익의 시선에서 각자 자신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려내는 모습은, 뭐랄까. 서로 마주하며 웃고는 있지만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는데 현재 엘렌이 자신의 앞에서 자신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을 보면서 때론 그녀의 욕실에서, 심지어 그들이 서로 사랑을 나눌때 조차도 자신이 모르는 상대방의 모습에 대해서 망상에 빠지는 모습들은 나 역시도 누군가를 알아 갈 즈음에 이러한 상상들을 했던가, 라는 모습에 빠지게 된다.

목욕 가운 자락이 바닥에 끌리고, 소매는 로익의 손 밑으로 늘어졌다.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보다 훨씬 키가 큰 나맞, 목욕 가운의 색깔처럼 눈이 파란 남자의 것이었으리라. 아니면 왜 파란색이겠는가? 로익은 가운을 벗었다. 그는 작은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그는 거실에 벗어놓은 옷가지를 집었다. 그는 후다닥 옷을 입었다. 그의 손이 약간 떨렸다. 구두끈이 잘 매어지지 않았다. 그는 엘렌과 저녁을 먹으러 나가지 않을 것이다. -본문

나는 그에게 사랑이라 말하는 제스처가 상대방에게는 사랑이 아니구나, 라는 신호로 보내지는 모습들이 반복되며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특히나 로익은 엘렌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자신이 곁에 있으면서도 그 뒤에 있을 누군가에 대해 상상하고 그곳에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반복하게 되는데 그로인해 그는 엘렌이 아닌 브리지트에게 빠져드는 아슬아슬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머리 속으로 결별을 고하는 것은 수십번이지만은 그들은 아직 같은 곳에 함께 하고 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잠이 들고 함께 마주하는 일상이 반복될 수록, 동상이몽은 점차 옅어져 하나의 그림으로 보여질 것이다. 달콤함따위는 없지만 그 쌉싸름한 것이 점차 사그라들며 뒤 이어 이어지게 될 평이한 나날들은 그 어느 것보닫 진득한 설렘의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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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채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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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철학의 공감대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무언가를 증명하고 그 안에서 그것이 옳다 그르다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실험을 계속하기도 하고 어떠한 현상들에 대해서 왜 그러한 일들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이 과학의 모습이라면 철학이라는 것은 인간사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라고는 하지만 형이상학적인 느낌이 강할 뿐 아니라 무언가를 증명한다기 보다는 생각의 생각을 따라 쫓는 것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장하석교수는 과학과 철학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전해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과학에는 절대적인 지식이란 없고 지식을 가장 잘 획득할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도 없습니다. 각각 개인과 소집단의 다양한 관점과 필요에 따라 질문 자체도 달라지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대답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과학이 유일무이한 진리를 추구하고 또 그러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꿈이었습니다. 과학의 초창기에 뉴튼 같은 사람은 이론 하나만 잘 만들면 신이 정말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가 하는 섭리를 알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가졌습니다. 멋진 꿈이지만 결국 환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본문

그의 장대한 스펙과 감히 넘볼 수 없는 신화를 넘어 과연 그는 왜 철학과 과학이라는 것을 동시에 바라봐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수학의 경우 공식으로 참임을 증명한 경우 번복되는 일이 없지만 과학의 세계에서는 오늘까지 진실이었던 것이 내일은 거짓이 될 수 있기에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다윈주의에 입각하여 바라보며 하나의 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품고서 바라봐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나 과학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하나의 진리이자 그것이 옳다라는 관점이 팽배하게 퍼져있기에 다윈주의적 사고를 가진 이들을 쉬이 만날 수 없기에 그는 과학이라는 분야에 더욱더 이러한 사고가 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학창시절 끊임없이 과학이라는 과목을 배워왔던 우리는 사과를 보며 뉴턴의 공식을 떠올리고 느껴지지 않지만 우리는 늘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과학의 기반이 되어 알게 모르게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과학이 필요했던 것은 시험을 보는 그 순간, 답을 찾기 위한 과학이 내겐 전부였다. 화학이나 물리, 생물은 물론 지구과학을 배울 때에도 어떠한 물음에 대한 ''라는 생각 대신에 답이 무엇인가, 라는 것을 찾기에만 급급했으며, 물은 100도씨에서 끓는다, 라는 사실에 대해서 대체 99도도 아니고 110도도 아닌 왜 100도에서만 끓는 것인가, 에 대해 단 한번의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생각의 개념이 아닌 그저 진리였으며 그 진리에 대해서 어떻게 그것이 밝혀졌느냐, 라는 단계까 아닌 결과만을 알고 그것만 알면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의 전부를 아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 이상의 질문을 할 필요성도, 혹여나 누군가가 나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고 해도 쓸데 없는 질문이라며 코웃음을 치며 넘겼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빛을 더 얻게 될 때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우리는 모르는 것을 보고 연구하는 만족을 더 많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과 신의 창조물은 무한한 것이므로, 우리는 끝없이 탐구하며 진보할 수 있다. 이것은 정말로 숭고하고 영광스러운 전망이다."
그래서 프리스틀리의 겸허한 과학철학에 의하면 과학을 하면 할 수록, 우리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이 더 많이 나오고 그렇기 때문에 탐구하는 기쁨을 끝없이 느낄 수 있습니다. 과학은 무슨 진리를 알아내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면 배울 수록 연구할 내용이 더 늘어나는 사업입니다. 그것을 깨달은 겸허함이 다윈주의의 기초가 됩니다. 본문

그저 당연한 것들이라 넘겼던 것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왜,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포퍼와 쿤의 이론을 통해서 그들이 나누는 쟁점들을 바라보며 그 동안은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던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뒤집어 그것들에 대해서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서 늘 바라보려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학창시절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에 대해서 내가 배웠던 것들은 이제는 틀린 답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과학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답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모에 해가는 그 안에서 계속해서 독려해 나가며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데 과학은 진보하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진리를 향해가는 것은 아니라는 쿤의 이야기처럼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찾아 나아가야 하는 모습들이 진정한 과학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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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 홍석욱, 신중섭저

독서 기간 : 2014.12.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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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세 번째 - 온정 가득한 사람들이 그려낸 감동 에세이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3
송정림 지음 / 나무생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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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소스라치게 놀라 움츠러들게 만드는 요즘어찌하여 들려오는 소식들도 이토록 아프고 씁쓸한 것들의 연속인지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빗장을 철저하게 닫게 만드는 것들 뿐이다그렇게 너와 내가 아니라 오롯이 나만 생각하는 시간들이 늘어나 그것이 익숙해져갈 즈음무심코 한 발 내딛은 보도 블럭 위의 작은 틈새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녹색의 잎을 마주한 것 처럼과연 이런 곳에서도 하나의 생명이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무색하게 싱그러이 살아있는 꿋꿋한 생명력을 마주하며 걸어 잠궜던 빗장을 스르륵 풀어내려가듯이 송정림 작가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라는 이 이야기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상에는 사람들의 온기가 존재하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 온기 속에 서로를 덥여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 페이지마다 등장하게 되는 인물들은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어느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주인공이라는 비중은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중심에 서서 서로를 향해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래아직 세상엔 이렇게 따스한 사람들이 많아라며 내가 서 있는 곳의 회색조를 걷어내고서는 햇살이 드리우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날도 종량제 봉투를 사러 왔기에 물었습니다.
 "
왜 다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담아오세요짐도 있고 가방도 많이 무거울텐데요
."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
동네 사람들이 거리에 내놓은 폐지 모아서 내가 살고 있잖아조금이라고 공을 갚아야지." -본문 

 폐지를 모아 하루하루를 지내고 계시는 할머니는 그 동네의 쓰레기도 함께 치우고 계셨다당신이 수 많은 이들이 내놓은 폐지를 모아 지내고 계시기에 이름 모를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따스하게 해준 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나는 그러한 생각조차 해본적이 있던가하며 고개를 숙이게 된다바쁘다는 핑계로아직도 힘들다고 핑계로 나만을 보며 내달려 왔던 시간들을 보며 진정 나는 그러한 시간이며 기회가 없었던 것인지그저 나를 위해서만 왔구나라며 반성을 하게 된다.

 그날은 무척 추은 겨울이었습니다어머니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 분이 조문을 왔습니다.그 친구분은 장례식장에서 오렌지 주스와 커피를 내오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몇 시간 후그 친구분이 들통 가득 생각차를 뜨끈하게 끓여왔습니다추운 날 차가운 음료 대신 따끈한 생강차를 대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지으로 부랴부랴 달려가서 정성껏 끓여온 것이었습니다큰 들통에 들어 있는 무거운 생각차를 어떻게 들고 왔을지 생각하며 자식들은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본문 

 

  말없이 드리운 따스한 생강차 한잔에는 그 어떠한 말보다도 뜨끈한 정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고인을 생각하며그들의 앞에 있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져다주셨을 그분의 마음을 읽다보면 어느새 뭉클해진다.

 각박하다세상이 말세다라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쉽게 들려오고 있는 요즘점점 얼어만 가는 우리 세상에도 아직은 온기가 있다는 것을 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보면서 아직 내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것보다는 따뜻한 곳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디선가부터 전해지는 따스함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넘어 내가 누군가에게 따스함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추운 겨울날의 훈훈한 이야기들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결 부드러워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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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리본』 / 박서진저

 

 

 

독서 기간 :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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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15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5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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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을 맞이하여 트렌드 코리아를 읽은지 벌써 3번째이니 나름대로는 꽤나 부지런히 이 책을 읽고 있다희한한 것이 늘 이 책을 마주할때면 벌써 올해가 다 지나갔다니라는 허탈함과 이제 또 한살 나이가 들겠지라는 막막함 그리고 대체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왔으며 그 동안 한 것도 없이 또 1년이 지나갔구나하는 허탈함 등등 마치 이 책이 당신이 또 올해를 그저 그렇게 보냈구려라는 메세지를 전해주는 듯멍하게 받아들여 푸념 속에 한 장 두 장 넘기게 되고 그렇게 또 페이지를 넘기게 되면 언제 그러한 푸념을 했냐는 듯이 즐겁게 이 책에 빠져들게 되는데 작년도 그렇고 재작년도 그러했던 나의 모습은 기시감이 되어 오늘 또 그렇게 재현되고 있었다.

 청마의 해를 지나 청양의 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사실 2015년에는 선거나 이렇다할 이슈도 없기에 2015년이라는 숫자는 그저 낯설기만 한대 올 2014년도에 드리웠던 그 어느때보다도 많았던 사건 사고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2015년도가 되어 더 이상의 아픔 없이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올해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현재의 기점에서 2014년을 정리하고 2015을 준비하는 이 책은 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새해를 맞이할 채비를 하게 해주고 있다.

 2014년도의 소비트렌드와 2015년도의 소비트렌드 전망을 함께 읽어보노라면 어느새 그래그랬지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어느 새 2015년도의 전망 속에 포함되어 있구나그렇다면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들을 떠올리게 된다.

 하나의 매장에 하나의 브랜드가 들어가는 '원 브랜드 스토어'에서 '편집숍'으로 전환하는 이 같은 현상은 비단 백화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패션 기업 신원 역시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편집숍 '맨큐'를 개점하며 전통적인 디스플레이에서 탈피했다스타일 중심으로 브랜드 간 배치의 경계를 허문 것이다이처럼 최근 들어 갑자기 편집숍이 늘고 있는 현상은 브랜드 이름보다 스타일을 중시하는 스웨거들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 -본문 

 어느 순간 등장한 swag라는 단어가 패션을 넘어 음악영화등의 매체 속에서 쉬이 마주할 수 있었던 2014년도는 그야말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몸짓이 어느때보다도 강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유행이라는 파도가 한 바탕 지나가고 나면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동일한 마네킹이 되어 활보하던 때를 넘어서 이제는 나만의 개성을 표출하고 남들과 다른 멋을 찾아다니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비단 패션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닌 영화에서도 아트버스터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거나 SNS에서 퍼져나갔던 아이스버킷 챌린지나 인 마이 백 릴레이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화에서도 뼈대 있는 멋스러움을 찾아가려 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는 한해였다.  

 편한것들을 추구하기 보다는 몸소 몸으로 체험하고 그 안에서 땀을 흘리며 희열을 느끼고 열정을 느끼는 이들부터 이미 지나왔던 이전 시대로의 회귀는 촌스럽다가 아닌 이전의 기억을 안고 살던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와 그때의 시절로 잠시 돌아가게 드라마나 음악영화들도 대거 등장했었다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은 이제 어떤 유횩에도 무감각해지고 있다이를 두고 '콘크리트 쇠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이제는 어떤 미사여구로 현혹해도 단단한 콘크리트처럼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말보다는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소비자 스스로 확신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본문 

 2015년도의 모습들을 예상해보면 현재의 나의 모습과도 매치되는 것들이 꽤나 많이 있었는데 '햄릿 증후군'이나 '증거중독', '꼬리몸통을 흔들다'의 모습 속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이 지금도 나의 일상에서 심심지 않게 드리우는 모습들이기에 이것이 바로 내년의 모습이었다니라는 놀라움과 실은 이 모든 것들이 생경한 것들이 아닌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2014년을 넘어서 2015년이 오면서 한 순간에 이 모든 것들이 변화하지는 않겠지만 14년의 마지막에서 새해를 바라보며 이 책을 읽어내려가는 느낌이 이전과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모든 것을 알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미리 예견해본 2015년이 이제는 막연하게 원망스럽지만은 않은 채 설렘과 기대감으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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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in 2015 / 영국 이코노미스트저  

 

 

 

독서 기간 : 2014.12.07~12.0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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