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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것은 그 둘만의 달콤한 눈빛,
따스한 이야기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한 것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일반적인 커플에 대해 생각했고 당연히
그러한 이야기일 줄만 알았다.
책을
펼치자 마자 옮긴이의 말이 이 소설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달콤한 말 한마디 등장하지
않는 독특한 연애소설" 이라는 이 한 줄의 이야기 속에 이 한 권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는데 100여 페이지의 이야기 속에 담겨진 이야기가 자칫 심심하지 않을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그
어디서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생경한 느낌이기에 보는 내내, 이럴 수도 있구나, 라는 감탄과 동시에 그 생경함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새롭기에 신선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는 서른살의 엘렌과 의사인 로익이 만나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담겨 있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우리네 삶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화장실에 들락거린다거나 밥을 먹다 입 안에 음식물이
끼인다거나 하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은 철저하게 가려진 채로 스크린 속에 등장한다면 이 '커플'이라는 소설 속의 그들은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 그러니까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전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그는
엘렌을 바래다줄 것이다. 그리고 키스를 할 것이다. 그는
그녀의 볼 안쪽, 잇몸에 이어 치아로 혀를 옮기다 잇새에 낀 푸른 야채 조각을 없앨 것이다.
야채
조각은 엘렌이 커피를 마실 때 사라졌다. 그는 그녀를 바래다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하지 않았다. -본문
누군가를
처음 알아가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전해주며 엘렌과 로익의 시선에서 각자 자신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려내는 모습은, 뭐랄까. 서로 마주하며 웃고는 있지만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는데 현재 엘렌이 자신의 앞에서 자신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을 보면서 때론 그녀의 욕실에서,
심지어 그들이 서로 사랑을 나눌때 조차도 자신이 모르는 상대방의 모습에 대해서 망상에 빠지는 모습들은 나 역시도 누군가를 알아 갈
즈음에 이러한 상상들을 했던가, 라는 모습에 빠지게 된다.
목욕
가운 자락이 바닥에 끌리고, 소매는 로익의 손 밑으로 늘어졌다.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보다 훨씬 키가 큰 나맞,
목욕 가운의 색깔처럼 눈이 파란 남자의 것이었으리라. 아니면 왜 파란색이겠는가? 로익은 가운을 벗었다. 그는 작은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그는 거실에 벗어놓은 옷가지를
집었다. 그는 후다닥 옷을 입었다. 그의 손이 약간
떨렸다. 구두끈이 잘 매어지지 않았다. 그는 엘렌과 저녁을
먹으러 나가지 않을 것이다. -본문
나는
그에게 사랑이라 말하는 제스처가 상대방에게는 사랑이 아니구나, 라는 신호로 보내지는 모습들이 반복되며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특히나 로익은 엘렌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자신이
곁에 있으면서도 그 뒤에 있을 누군가에 대해 상상하고 그곳에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반복하게 되는데 그로인해 그는
엘렌이 아닌 브리지트에게 빠져드는 아슬아슬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머리
속으로 결별을 고하는 것은 수십번이지만은 그들은 아직 같은 곳에 함께 하고 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잠이 들고 함께 마주하는 일상이 반복될 수록, 동상이몽은 점차 옅어져 하나의 그림으로 보여질
것이다. 달콤함따위는 없지만 그 쌉싸름한 것이 점차 사그라들며 뒤 이어 이어지게 될 평이한 나날들은
그 어느 것보닫 진득한 설렘의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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