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 고전 소설인 <심청전>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인당수에 제 한 몸 바쳤던 심청이를 보노라면 지극한 효성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죽음으로 갈라 진 줄만 알았던 심학규와 심청이의 재회를 통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그들을 보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착하게 사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따스한 결말이 전해지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으며 안도감을 느꼈었다.
청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가보았다.
안 가지는 게 아니고 못 가져서, 못 가진 괴로움이 평생의 한이 되어, 한시도 한탄에서 벗어나보지 못한 아버니의 얼굴이다.
이렇게 사시면 아니 되는 것을. 이제는 욕망을 내려놓으실 때도 된 것을.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청이는 아버지를 마음 깊은 곳에서 미워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사람들에게는 효성스러운 칭찬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꼭꼭 숨겨둔 진짜 자기 망므을 아버지를 너무도 원망하고 부끄럽게 여겨왔던 것이다. –본문
그렇게 심청이에 대한 이야기를 잊고 지낸 지 어언 이십 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심청전에 대해 마주하게 되면서, 어릴 적 읽었던 심청이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아비를 구하고자 하는 효심이 지극했던 그녀도 실은 연정을 담아 새록새록한 마음을 느끼고 있던 수줍은 소녀였다는 것을, 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심봉사는 실은 욕정과 욕망에 휘감겨 있던 추접한 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들이 아비와 딸로 부녀의 끈으로 이생에 마주한 것은 전생의 숙명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전에 알고 있던 심청전의 이야기가 완전히 뒤집혀서 다시금 전해지게 된다.
윤상 오라버니의 바람대로 아버지를 버리고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했다면 심청이는 이 생에서만큼은 사랑만이 가득한 곳에서 그렇게 행복한 여염집 아녀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윤상 역시도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머슴의 자식으로 살아야 했기에, 자식의 하늘이 되어 그 뒤에서 넉넉히 품어주어야 할 아버지의 부재를 태어나는 순간부터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윤상과의 연정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이 두 남녀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 죄를 어찌하나.
돌이켜보면 자기는 인당수에 몸을 바칠 때도 윤상이 오라버니의 바람을 철저히 외면해버렸다.
내, 그렇듯 윤상이 오라버니를 멀리 하고 싶었던가.
그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나서 사내라고는 귀덕 오라버니와 윤상이 오라버니밖에는 몰랐다. 마음 바쳐 사랑한 것은 윤상이 오라버니뿐이었다. 오라버니의 가슴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그 한을 사랑했다. 그 깊은 상처를 보듬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늘 그를 외면하기만 했다. 그를 버려 대신에 아버지를 구하려 했다. –본문
그러나 그들의 앞에는 전생에서의 죄를 안고서 현생에서 부녀의 연으로 태어난 심청이와 심봉사를 뛰어 넘을 수 없었으니,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순간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궁궐의 잔치에서 마주한 두 번의 순간 모두 심청이는 마음은 윤상에게 향해 있었지만 늘 그녀가 있어야 했던 곳은 아버지인 심학규를 곁이었다.
전생의 연이 이어진 현생의 삶에서 그 질긴 끈이 이어져 있는 동안에는 그 무엇도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죽음을 향해 가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 다만 이 생에서의 참된 뜻을 알고자 하는 바람으로 청이가 심봉사의 곁을 지키고 있던 그 순간 이 모든 연정을 담아 홀로 아픔을 안고 윤상은 이 생과의 작별을 고하고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전생의 끈을 놓은 청이과 심봉사는 홀연히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데 지혜로운 왕비로 세상을 보냈던 그녀는 왕의 승하와 함께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 이 생애 다 못한 윤상과의 사랑을 내생에서는 이룰 수 있을지. 전생의 깊은 수렁이 덮어버린 현생의 시간들이 부디 내생에는 그들만의 오롯한 시간을 보내보길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