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의 비밀 노트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티브 코언 지음, 하우석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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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 깜짝할 사이에 무언가를 사라지게도, 나타나게도 할 수 있는 마술사를 볼 때면 대체 그들에겐 어떠한 비밀이 있는 것일까?’ 라며 눈을 크게 뜨고 절대 속지 않으리라는 다짐하며 주시하지만 언제나 그들은 성공리에 마술을 마치고 묘한 미소를 띈다. 이번에도 또 속아 넘어갔다는 패배감과 대체 비밀이 무엇일까 란 궁금증을 남겨두고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던 지난 날을 떠올리다 마술사의 비밀노트라는 제목을 보곤 재빠른 손놀림과 그러한 비밀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을 하라! 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무대 위의 마술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마력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인생이란 무대 위에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떠한 신념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마술사는 마술이라는 매력을 발산하여 사람들을 흥미를 유발하기 이전에 그들 자체만으로도 시선을 한 곳에 모으고 좋은 기억을 남게 하는 사람들이다. 비단 무대 위에서만이 아니라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유용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술사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 마술사들은 무대에서 관객들을 속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속임수를 배우라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따르게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다.-p15

무대 위에 오른 마술사를 보며 관객들은 그의 성향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가 수줍음을 많이 탄다, 무대공포증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대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논외의 것으로 이는 마술사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 것일까?

무대 위에서 나는 마술사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일 뿐이다. 사람들이 나를 믿게 하려면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먼저 스스로를 믿어야 사람들의 믿음을 얻을 수 있다. 관객들에게 믿음을 주면 그들은 당신에게 빠져들게 되어 있다. –P59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당신의 출신, 당신의 사투리, 당신의 가족, 당신의 외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라.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당신만의 개성에 매력을 느낀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사랑하게 된다. –P159

저자는 무대를 장악하는 법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져야 하는 행동 가짐이나 신념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매일이 무대가 아닌 일상에 살고 있는 나에게 이 부분들이 더 깊게 다가왔다.대게 사람은 자신을 향한 칭찬보다는 비난에 더 마음이 쓰이는 법이다. 나 역시 내 곁에 항상 있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의 존재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차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지전능한 신 조차도 그들을 대항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내 노력과 관계 없이 무엇을 해도 나의 반대편에 서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모든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엉뚱한 에너지 소비를 하기 보단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코미디언 빌 코스비는 이렇게 말했다. “ 성공의 열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웃기려 드는 것이 실패의 지름길인 것만은 확실하다.”

사람들이 당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비웃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음은 무척이나 당연한 얘기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림으로써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모욕과 경멸을 당신의 발판으로 삼아라. 당신과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당신이 눈에 띄는 존재라는 뜻이다. 오히려 자부심을 가질 일이지, 기죽을 이유는 없다. –P75

.고등학생 때의 교복은 그저 그 학교 학생이기에 입어야 하는 제복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 학교에 다니는 모두가 입고 있는 것이기에 별 다른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지금, 한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내왔던 혹은 현재 몸 담고 있는 곳의 대표성을 띄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업체와의 미팅이 있을 경우 거래처 상대방에게 나는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닌 회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다. 그들에게 내 개인적인 성향은 나 하나만을 국한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 회사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나 혼자가 순식간에 몇 십명, 수 만명으로 비춰질 수 있기에 어디서 어떤 역할을 하던 무엇 하나 적당히 해서 넘겨야지 하는 안일한 마음가짐은 애당초 던져 버려야 한다.

당신은 마술계의 외교관입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피셔맨즈 워프를 찾지요. 누군가에게 당신은 생애 처음으로 만나는 마술사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식으로 관객들을 실망시키면 그 사람들은 평생 마술사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될 겁니다.”-148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저명인사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나에게도 그러한 재능은 내재되어 있다고 말해준다. 모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는 않기에 나를 지켜보는 관객이 적을 뿐이며 그렇기에 주변의 인정을 받기 위한 기회가 오는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시간을 갖고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계속 단련하라는 충고와 위로를 함께 건넨다. 백만장자들을 위한 마술사이기에 권의 의식에 젖어 그럴싸한 이야기만을 들려줄 수 있을 거란 편견과는 달리 자신의 지위는 내려 놓고 한 사람으로서 인간관계에 있어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한 진솔한 이야기들이라 참 편안하면서도 진솔하게 다가왔다. 그와 같은 유명한 마술사로 자리매김 할 순 없겠지만 그와 같이 사람을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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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 '윤하정의 공연세상' 무대 위 20인과의 진솔한 이야기
윤하정 지음 / 끌리는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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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무대 위를 활보하고 있는 그들이 내게 건네는 질문을 보며, 글쎄 난 어디쯤 와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자신이 이 광활한 인생의 주인공으로 무대 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길 원하지만 실상은 주연을 위한 조연이란 느낌에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곤 한다. 언제나 무대 위 화려하고 그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그들의 인생에도 레드 카펫만이 드리워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20명의 예술인들을 만나며 그들과의 대화를 한 권이라는 책 안에 담아놓았다. 내 나름대로는 문화 생활도 하며 지금껏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목차 속 주인공들을 보니 반 정도만 아는 이름들이었다. 그나마도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만나봤던 인물들로 참으로 나의 편협한 문화 생활이 여실히 들어나는 순간이었다. 남자의 자격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박칼린, 드라마에서 본 장영남, 신성록, 임재범의 그녀로 알려진 차지연 등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 알려져야만 그제서야 찾아다 보는 셈이다.

 예술에 있어 문외한이라 내가 잘 모르는 인물들이 태반이었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당신들의 세계에서 모두 인정받는 최고의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 10페이지 가량으로 만나봐야 한다는 것이 처음엔 다소 아쉽기도 했었다. 무언가 더 알고 싶은데 거기에서 멈춰 버리는 미적지근한 느낌. 하지만 한 권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을 몇 십 권의 책으로 만들어 낸다고 한들 나는 그들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통해서 그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독자로 하여금 원하는 것이 이것이었다면 나에게는 전략이 성공적으로 통하였다. 이번 달 내로 이들의 공연을 보러 갈 계획이니 말이다.

 가슴으로 클래식을 들려주고 싶다는 김정원은 클래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나에게도 도전의식을 일깨워 준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있어 그 체계를 지키면서도 널리 알리기 위한 그의 끊임 없는 노력들과 고정된 틀을 깨어 만인에게 클래식을 알리려는 그의 고집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음악회에 가기 위해서는 꼭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한다거나 클래식 음악가는 천편일률 학구적인 이미지라는 등의 클래식 음악을 둘러싼 잘못된 선입견들이 먼저 허물어져야 하는 것이죠. –P 31

남들보다 모자란 스펙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다독이며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온 윤운중을 보면서 나에게도 희망의 끈을 찾아 볼 수 있었고 장애가 아닌 자신의 연주에만 집중해 달라는 전제덕을 보면 장애라는 핸디캡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패로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 그것을 버리는 그를 통해 나도 살면서 이렇게 당당하게 나로서만 인정 받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안 돼, 안 될 것이다, 안 되면 어떡하지?’라며 발목을 잡는 숱한 생각들을 뿌리치고 멋지게 뛰어올라 별과 하나가 된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꿈을 사랑했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믿었다. –본문

뮤지컬이나 연극은 티켓이 생길 때만 보러 가는 터라, 그 세계에서 유명하다고 이름난 사람들조차도 거의 모른다. 정성화는 그저 개그맨, 잠깐 연기를 했던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는 뮤지컬과 연극에서는 꽤나 입지가 다져진 사람이었다. 한 번 이미지가 굳어질 경우 그 틀을 깨기가 어렵기 마련인데 그에겐 되려 개그맨이란 이력이 되려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하고 싶다고 말만 하는 건 정말 하고 싶은 게 아니다.’-P130

자신의 것이라고 느꼈을 때 막연하게 바람으로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라 연습에 연습을 더해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지금의 배우 정성화가 재 탄생되었다. 자신감과 상반 된 것이 긴장과 불안이라며 그것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다는 그는 배우로서 제 2의 인생을 멋지게 보내고 있었다.

20명의 예술가 중에서 가장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발레리노 이원국이었다. 발레리노는 발레리나를 위한 도우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내게 그의 열정적인 이야기들은 그만의 발레가 보고프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대부분의 무용수들은 마흔 살이 되면 발레단을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계속 춤을 추고 싶었어요. 마지막까지 무대를 지키고 싶었어요.” -P196

단순하지만 이 이유에서 그는 대학로 소극장에 발레단을 창립한다. 주변 동기들은 교편을 잡거나 안무가로서 활약하고 있지만 불혹이 넘긴 나이에 그는 아직까지도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싶단 열정 하나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온 것이다. 나이라는 나이테를 거슬러 그는 자신이 하고픈 일을 신념 하나로 또렷이 걷고 있는 그를,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라며 매일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는 나를 위해서 꼭 만나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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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별
최문정 지음 / 다차원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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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란 존재는 친숙하기 보단 무서우면서도 아직까지도 어려운 존재이다. 엄마와는 매일 다투며 웃고 떠들며 보내는 게 일상이라면, 아빠와는 그저 식탁 앞에서나 뉴스를 보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전부다. 어떠한 주제가 있어야만 이야기를 나누는 부녀 지간은 알 수 없는 벽으로 마주하고 있기에 평행선과 같은 느낌이다. 언제나 일관된 신념과 무뚝뚝한 하나의 표정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멀고도 가까운 아빠는 이 책을 통해 내게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난 아냐. 무조건 아기보다 당신이 먼저여. 당신하고 아이가 물에 빠지면 망설이지 않고 당신부터 구할 거라니까. 맹세해!” 이건 비밀인데, 그 맹세는 열흘도 안 돼 깨져버렸어. 수민이가 날 보고 웃던 날. –P 389

엄마가 나를 낳고 퇴원하는 날, 아빠는 나를 안고서는 어떻게 할 줄 몰라 쩔쩔 매면서도 너무 좋아서 표정만은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고 했다. 그날을 회상하는 순간이면 엄마는 항상 아기를 처음 안아보는 거라 그런지 엉거주춤 하고 마치 남의 아이를 데려온 거 마냥 어색한 자세여서 꼭 아이를 보쌈해서 달아나는 남자 같았다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 하신다. 8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주변의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딸만 둘인 아빠는 언제나 아들보다 딸이 좋다고 하셨다. 항상 자랑스럽고 그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당신의 모든 것인 딸. 하지만 그 딸은 이제서야 아빠를 이해하고 있으니, 30여년이나 늦은 회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젠 영어 공부를 더 안 해도 되겠다 싶어 다행이야. 눈도 나쁜데 쓸 데도 없는 영어 공부는 왜 하느냐고 수지가 매일 야단이었거든. 혹시라도 수민이가 공연에 날 초대하면 영어 한마디 못해서 딸 망신 시킬까봐 공부하는 거라고는 차마 얘기 못했어. –P156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인 수민은 아빠에게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딸이다. 어릴 적엔 그녀가 발레를 전공으로 하는 것에 대해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많았고 아빠 역시 반대를 했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그녀의 행보를 지지해주는 한 사람이다. 딸을 위해 하사관에서 중령으로 임기를 마치는 동안에도 다른 곳을 볼 틈 없이 수민이 하나를 지원하기 위해서 일에만 전념하며 달려온 그는 비록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제나 딸에 대한 생각 뿐이다. 2년 전 내가 취업했을 때도 그러했다. 전공을 살려 이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받은 명함을 드렸을 때, 지갑 제일 앞 쪽에 넣어두시곤 뉴스나 신문에서 관련 기사를 볼 때면 적어두시던 아빠. 드러내진 않지만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 하는 것이 그들만의 사랑 표현 방식 인 듯하다.

울지 마. 그리고 이거 하나만은 꼭 기억해. 언젠가 토슈즈를 신는 게 너무 힘들어지거든 이 유리 구두를 신고 나한테 달려오면 돼.” –P50

그 소중한 딸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재벌 3세인 태훈을 보며 아빠는 자신과 같이 힘겨운 삶을 살지 않아도 될 거란 안도와 딸에게도 여유로움을 안겨 줄 수 있을 것 같은 태훈과의 결혼을 허락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현대판 신데렐라라는 모티브 속에서 뻔한 이야기 전개이다만 그 안엔 아빠의 시선과 선택이 오롯이 딸을 위해서만 전해지는 통에 눈물 흘리며 보느라 정신 없이 책장을 넘겼다. 아빠는 자신보다 소중한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에게 향한 통증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아침에 나올 때 왼발부터 신발을 신는 게 아니었는데 그랬어. 오늘은 오른발부터 신을걸, 언젠가 인터뷰에서 수민이 녀석이 토슈즈 콤플렉스가 있다고 고백했지. 순간 수민이가 내 딸이 맞구나 하는 생각에 반가웠어. 나도 군화 콤플렉스가 있었거든. 왼발부터 군화를 신는 날은 꼭 얼차려를 받거나 비상에 걸렸지. 그래서 반드시 오른발부터 신발을 신었는데, 수민이 녀석의 무의식 속에 그 버릇이 박여 있었나봐. 수민이 기사를 보고 난 뒤로 나는 일부러 왼발부터 군화를 신었어. 불행이 있다면 수민이 몫까지 내가 가져오고 싶어서. 바보 같은 미신이라도 수민이를 위해서라면 꼬박꼬박 지킬 수 있었어. 그래도 오늘은 오른발부터 신는 건데…….”-P192

가족이란 이름 하에 남보다 더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이해하고 서로 위해 주는 것 역시 가족이다. 무뚝뚝하고 올곧은 신념이 당신에게는 평생의 자랑이면서도 가족들에겐 짐이 되기도 했지만 어느 새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내가 아플 때 나보다 더 많이 자식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해바라기 같은 아빠. 오늘은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말을 아빠한테 해봐야겠다. 당신이 있음에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었노라고, 그런 아빠와 같은 사랑을 주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고백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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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프지 않아 - 청소년 테마 소설집 바다로 간 달팽이 1
이병승 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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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테마 소설이란 표지를 보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겠구나 란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순간들이라 남아있는 기억이 별로 없는 것인지 아니면 테마 속 이야기 들 중 내가 뚜렷하게 속했던 것들이 없어서 그랬던 것인 것 모르겠지만, 6개의 이야기 속 그 어느 것 하나 깊이 생각해 본 기억이 없는 듯 했다. 가벼울 줄만 알았던 이 책의 무게는 실로 그 어느 것보다도 묵직하게 느껴졌다.

왕따에 대한 이 테마를 읽는 동안 나는 공포 소설을 읽는 듯이 한기가 느껴졌다. 소소한 사건으로 시작된 그들만이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명확하게 짙어진다. 스탠포트 대학에서 감행했던 교도소 실험이 고스란히 교실에서 이어지고 있듯, 가해자들의 행위는 점점 더 악랄해지고 폭력에 노출되면 될수록 그들은 더 강도가 높아져야만 만족을 느끼게 되며 그 대상이 어떻게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 밖의 일이다.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인 인간 샌드백일 뿐, 사람이 아니다.

심심치 않게 왕따에 관한 뉴스를 볼 때면 이 소설 속의 이야기가 픽션이 아닌 현실이란 것이 무서워진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방관하는 사회 속에서 가해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처벌한다고 이 문제가 사라질 수 있을까?

 

그저 책 속의 한 줄 글이나 영화의 한 장면으로만 5.18 민주 항쟁에 관해 본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이미 지나간 일들에 대한 한낱 회상과 같은 찰나의 만남뿐이었다.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일이기에 나에겐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와 같이 쉽게 흘러 보냈다면 오늘의 마지막 수업을 하는 선생님에게는 그 날의 일들이 오늘과도 같이 생생하다.

 그 누구도 가해자가 아니라며 주장이 난무하는 가운데 16세의 어린 아이는 싸늘하게 주검으로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쓸쓸히 눈 감아 버린 그 친구를 눈 앞에서 보내야만 했던 그는 이제 그 시간을 다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친구의 몫까지 대신하여 그날의 광주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랐는지 나는 그저 숫자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 안의 하나하나의 사연들은 퇴색되어 바래지고 있다. 한 작은 소년을,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었고 지금 즈음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을 그 아이를 정치적 목적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 속에 지켜내지 못했던 그 시대가 무한히 한스럽게만 느껴질 뿐이다.

가출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 아이들의 행태에 대해서만 비난을 하곤 했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방황을 하는지, 그 결과물만 보고 판단했다면, 이 책을 보면서 그러하게 만든 가정과 사회를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가족이란 울타리는 아이들에게 그 스스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 속에 가출한 아이들은 문제아로만 비추고 있을 뿐 그들을 위한 공간은 턱 없이 부족하다. 버려진 아기 고양이 마냥 웅크리고 있는 그들에게도 온정 어린 손길이 필요하다. 더 이상 무관심 속에, 그 무관심을 빙자한 어둠의 세계에 혼자 거닐게 둘 수는 없다. 아직도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린 고양이처럼 지금도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마라고 양어머니를 부르는 인영이의 글을 보며 처음엔 어색했다. 엄마가 아닌 마마, 그녀에겐 그게 당연하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어색해서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마마란 단어가 내겐 생소하듯 그녀에게 한국이란 나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고 들었지만 그 어떤 유대관계도 느낄 수 없는, 아시아의 있는 어느 나라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 소영이는 독일로 입양이 된 후 처음으로 한국을 오게 된다. 사실 그녀가 이곳에 온 뚜렷한 목적은 없다. 그저 한번 즈음 와봐야 할 거 같은, 그런 묘한 끌림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녀가 한국을 떠나 좋은 부모님을 만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라고 느꼈다. 5주란 시간 동안 자신을 타국으로 보내야만 했던 우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다독이며 그녀의 마마에게로 돌아간다. 입양을 보내야만 했던 부모에게도 피치 못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제 자식을 떠나 보내기로 결정한 그 심정이야 오죽했을까만은 타국으로 보내진 그 아이들에게 남겨진 이 수많은 물음표는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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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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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하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떠오른다. 고려 환란의 시국을 정리하고 그 위에 조선을 세운 강인한 모습을 지닌 왕. 내가 알고 있는 그는 이 정도뿐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는 화려하고 위엄 있는 태조의 이성계가 아니라 동북 변방을 지키는 마흔여섯의 종 2품 시골무사로,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하는 이성계가 담겨있다.

 역사 속 황산 대첩은 몇 줄의 이야기로 간략히 요약되겠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긴박한 하루의 전투가 400여 장수 남짓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안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변방의 늙다리 시골 무장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자들과 그를 배척하려 하는 자, 고려를 빼앗으려는 왜적과 그 땅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이 살고 있다.

 우리의 창 끝이 살벌하게 춤을 추어야 한다. 그것만이 아이의 혼백을 달래는 유일한 길이다. 말도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소리를 질렀을까……” –P25

 아이는 절름거리며 풍등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가지 마. 날 잡아줘” –P318

 남조가 무너져 북조의 무리들에게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지아비 손에 죽는 게 평안하다. 가족의 관을 짜는 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P165

 왜구의 승전제의 제물로 불타버린 어린 자식을 품 안에 안고 정신을 놓아버린 박순이와 그녀를 찾기 위해 목숨을 다해 다시 돌아오는 미즈류. 어미를 잃어 버린 아이부터 그런 아이를 자신이 두고 온 자식같이 안쓰럽게 보는 나무토르. 처를 자신의 칼로 베어내고 비석을 가져온 아지발도.

 역사의 한 페이로 장식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사이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버린 피와 눈물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으며 역사 속의 하나의 사건으로만 자리 잡고 있던 전쟁은 소설을 통해서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시작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왜적에 비해 1/10도 되지 않는 이성계의 부대는 반나절 안에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만 한다. 목숨을 건 3번의 전투를 감행하는 동안 내부의 적과 그를 미덥지 못하는 변안별을 상대로 우군과도 맞서야 하는 이성계는 도망칠 수도 없는 숙명의 하루 안에 갇혀 처연하게 자신의 현실을 토로한다.

 장군 받게. 죽이지 않고 싸울 수는 없는 법이지. 하지만 그대는 너무 어리다. 내 막내아들뻘이나 되는 너를 치기에는 내 칼이 너무 늙었다. 너의 피가 너무 젊은 만큼 나의 죄는 더욱 커지는 것이다. 너를 인()으로 품지 못하는 나는, 그릇이 용렬하구나.”-P 140

 그래, 이 전쟁에서 이성계는 살아 남을 것이다. 조선을 태조가 될 몸이니까. 결론을 알고 있음에도 이 안에 그를 팽개칠 수가 없었다. 내가 알던 그의 모습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그 안에는 강인한 듯 살을 날리고 있지만 나약한 그들의 삶이 심장 여기저기에 꽂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더 만나보고 싶지만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애석할 뿐이다. 46세의 이성계가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번 나아가려 했던 그 심정을 헤아려 그도 다시금 일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남긴 마적을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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