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별
최문정 지음 / 다차원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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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란 존재는 친숙하기 보단 무서우면서도 아직까지도 어려운 존재이다. 엄마와는 매일 다투며 웃고 떠들며 보내는 게 일상이라면, 아빠와는 그저 식탁 앞에서나 뉴스를 보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전부다. 어떠한 주제가 있어야만 이야기를 나누는 부녀 지간은 알 수 없는 벽으로 마주하고 있기에 평행선과 같은 느낌이다. 언제나 일관된 신념과 무뚝뚝한 하나의 표정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멀고도 가까운 아빠는 이 책을 통해 내게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난 아냐. 무조건 아기보다 당신이 먼저여. 당신하고 아이가 물에 빠지면 망설이지 않고 당신부터 구할 거라니까. 맹세해!” 이건 비밀인데, 그 맹세는 열흘도 안 돼 깨져버렸어. 수민이가 날 보고 웃던 날. –P 389

엄마가 나를 낳고 퇴원하는 날, 아빠는 나를 안고서는 어떻게 할 줄 몰라 쩔쩔 매면서도 너무 좋아서 표정만은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고 했다. 그날을 회상하는 순간이면 엄마는 항상 아기를 처음 안아보는 거라 그런지 엉거주춤 하고 마치 남의 아이를 데려온 거 마냥 어색한 자세여서 꼭 아이를 보쌈해서 달아나는 남자 같았다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 하신다. 8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주변의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딸만 둘인 아빠는 언제나 아들보다 딸이 좋다고 하셨다. 항상 자랑스럽고 그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당신의 모든 것인 딸. 하지만 그 딸은 이제서야 아빠를 이해하고 있으니, 30여년이나 늦은 회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젠 영어 공부를 더 안 해도 되겠다 싶어 다행이야. 눈도 나쁜데 쓸 데도 없는 영어 공부는 왜 하느냐고 수지가 매일 야단이었거든. 혹시라도 수민이가 공연에 날 초대하면 영어 한마디 못해서 딸 망신 시킬까봐 공부하는 거라고는 차마 얘기 못했어. –P156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인 수민은 아빠에게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딸이다. 어릴 적엔 그녀가 발레를 전공으로 하는 것에 대해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많았고 아빠 역시 반대를 했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그녀의 행보를 지지해주는 한 사람이다. 딸을 위해 하사관에서 중령으로 임기를 마치는 동안에도 다른 곳을 볼 틈 없이 수민이 하나를 지원하기 위해서 일에만 전념하며 달려온 그는 비록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제나 딸에 대한 생각 뿐이다. 2년 전 내가 취업했을 때도 그러했다. 전공을 살려 이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받은 명함을 드렸을 때, 지갑 제일 앞 쪽에 넣어두시곤 뉴스나 신문에서 관련 기사를 볼 때면 적어두시던 아빠. 드러내진 않지만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 하는 것이 그들만의 사랑 표현 방식 인 듯하다.

울지 마. 그리고 이거 하나만은 꼭 기억해. 언젠가 토슈즈를 신는 게 너무 힘들어지거든 이 유리 구두를 신고 나한테 달려오면 돼.” –P50

그 소중한 딸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재벌 3세인 태훈을 보며 아빠는 자신과 같이 힘겨운 삶을 살지 않아도 될 거란 안도와 딸에게도 여유로움을 안겨 줄 수 있을 것 같은 태훈과의 결혼을 허락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현대판 신데렐라라는 모티브 속에서 뻔한 이야기 전개이다만 그 안엔 아빠의 시선과 선택이 오롯이 딸을 위해서만 전해지는 통에 눈물 흘리며 보느라 정신 없이 책장을 넘겼다. 아빠는 자신보다 소중한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에게 향한 통증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아침에 나올 때 왼발부터 신발을 신는 게 아니었는데 그랬어. 오늘은 오른발부터 신을걸, 언젠가 인터뷰에서 수민이 녀석이 토슈즈 콤플렉스가 있다고 고백했지. 순간 수민이가 내 딸이 맞구나 하는 생각에 반가웠어. 나도 군화 콤플렉스가 있었거든. 왼발부터 군화를 신는 날은 꼭 얼차려를 받거나 비상에 걸렸지. 그래서 반드시 오른발부터 신발을 신었는데, 수민이 녀석의 무의식 속에 그 버릇이 박여 있었나봐. 수민이 기사를 보고 난 뒤로 나는 일부러 왼발부터 군화를 신었어. 불행이 있다면 수민이 몫까지 내가 가져오고 싶어서. 바보 같은 미신이라도 수민이를 위해서라면 꼬박꼬박 지킬 수 있었어. 그래도 오늘은 오른발부터 신는 건데…….”-P192

가족이란 이름 하에 남보다 더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이해하고 서로 위해 주는 것 역시 가족이다. 무뚝뚝하고 올곧은 신념이 당신에게는 평생의 자랑이면서도 가족들에겐 짐이 되기도 했지만 어느 새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내가 아플 때 나보다 더 많이 자식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해바라기 같은 아빠. 오늘은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말을 아빠한테 해봐야겠다. 당신이 있음에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었노라고, 그런 아빠와 같은 사랑을 주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고백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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