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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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하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떠오른다. 고려 환란의 시국을 정리하고 그 위에 조선을 세운 강인한 모습을 지닌 왕. 내가 알고 있는 그는 이 정도뿐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는 화려하고 위엄 있는 태조의 이성계가 아니라 동북 변방을 지키는 마흔여섯의 종 2품 시골무사로,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하는 이성계가 담겨있다.

 역사 속 황산 대첩은 몇 줄의 이야기로 간략히 요약되겠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긴박한 하루의 전투가 400여 장수 남짓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안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변방의 늙다리 시골 무장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자들과 그를 배척하려 하는 자, 고려를 빼앗으려는 왜적과 그 땅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이 살고 있다.

 우리의 창 끝이 살벌하게 춤을 추어야 한다. 그것만이 아이의 혼백을 달래는 유일한 길이다. 말도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소리를 질렀을까……” –P25

 아이는 절름거리며 풍등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가지 마. 날 잡아줘” –P318

 남조가 무너져 북조의 무리들에게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지아비 손에 죽는 게 평안하다. 가족의 관을 짜는 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P165

 왜구의 승전제의 제물로 불타버린 어린 자식을 품 안에 안고 정신을 놓아버린 박순이와 그녀를 찾기 위해 목숨을 다해 다시 돌아오는 미즈류. 어미를 잃어 버린 아이부터 그런 아이를 자신이 두고 온 자식같이 안쓰럽게 보는 나무토르. 처를 자신의 칼로 베어내고 비석을 가져온 아지발도.

 역사의 한 페이로 장식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사이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버린 피와 눈물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으며 역사 속의 하나의 사건으로만 자리 잡고 있던 전쟁은 소설을 통해서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시작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왜적에 비해 1/10도 되지 않는 이성계의 부대는 반나절 안에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만 한다. 목숨을 건 3번의 전투를 감행하는 동안 내부의 적과 그를 미덥지 못하는 변안별을 상대로 우군과도 맞서야 하는 이성계는 도망칠 수도 없는 숙명의 하루 안에 갇혀 처연하게 자신의 현실을 토로한다.

 장군 받게. 죽이지 않고 싸울 수는 없는 법이지. 하지만 그대는 너무 어리다. 내 막내아들뻘이나 되는 너를 치기에는 내 칼이 너무 늙었다. 너의 피가 너무 젊은 만큼 나의 죄는 더욱 커지는 것이다. 너를 인()으로 품지 못하는 나는, 그릇이 용렬하구나.”-P 140

 그래, 이 전쟁에서 이성계는 살아 남을 것이다. 조선을 태조가 될 몸이니까. 결론을 알고 있음에도 이 안에 그를 팽개칠 수가 없었다. 내가 알던 그의 모습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그 안에는 강인한 듯 살을 날리고 있지만 나약한 그들의 삶이 심장 여기저기에 꽂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더 만나보고 싶지만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애석할 뿐이다. 46세의 이성계가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번 나아가려 했던 그 심정을 헤아려 그도 다시금 일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남긴 마적을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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