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1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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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간, 어떻게 시작이 되었고 왜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이 내용에 대해서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남편 레너드 울프의 이야기 그만큼 나의 뇌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춘기가 한창이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이들의 플라토닉 사랑은 마침내 내가 찾아오던 가장 완벽한 형태의 갈망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릴 적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의붓 오빠로부터 상습적인 성추행을 당하게 되며 그로 인해 그녀는 평생 남성기피 혹은 혐오증에 빠지게 된다.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며 살던 그녀에게 그녀를 여자로서, 아내로서 평생 지켜주고자 했던 사람이 바로 레너드 울프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요구했던 두 가지, 부부로서 함께 살되 부부관계를 맺지 않고 공무원생활을 하던 레너드에게 그 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일방적인 요구들을 레너드는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묵묵히 그녀만을 위한 삶의 동반자로 곁에 지켜주었다. 그녀가 작가로서 제 2의 인생에 펼칠 수 있도록 출판사를 열어 그녀를 독려했던 레너드. 그녀가 마지막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그 하나만을 오롯이 담고 떠난 그들의 이야기는 이 출항이라는 소설 속에서 다시금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처녀작인 출항 10여년간 열두 번을 고쳐 쓰며 34살에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그녀 스스로가 의도한 대로 내가 그 길을 따라 온 것인지 아니면 나만의 해석에 빠져 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 속의 레이첼을 통해 버지니아의 인생을 담아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일찍 세상을 떠나 버린 어머니와 그녀을 어머니의 대역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 틈에서 레이첼은 20대의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느낌이었다. 다분히 조용하고 참한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은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 남자들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세상은 그녀의 바람대로 녹록히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여자에게 규정되어 있는 틀을 벗어나는 것을 꺼려했던 그 당시 남자들에게 이블린 머거트로이드와 같은 인물은 그 시대에는 꽤나 모험적이고 여성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여자들에게 요구되는 모습들은 남자들을 위한 현실 속에서 그들이 이끌어 가는 사회에 별 다른 문제가 발생 하지 않도록 집안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알아도 모르고 지내는 허깨비와 같은 그저 여장을 한 인간을 원했을 터이다. 이러한 시대에 레이첼이 리처드의 기습 키스에 대항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혼자만의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제 힘으로 자신을 일으키는 것뿐이다.

버지니아 울프 그녀 자체에 관심이 있었기에 그녀의 첫 작품인 출항은 내게 더 아련하게 남는 듯 하다. 어쩌면 수잔처럼 소설에서 만큼은 그녀의 삶이 평탄하고 소소한 행복이 흐르길 내심 바랐을지도 모를 터이다.

기쁨의 여신인 유프라지니호를 타고 시작된 그녀의 항해는 그녀 스스로도 멈출 수 없는 인생의 시작이다. 행복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았을 그녀에게 들이 닥친 현실이라는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소설이, 너무나도 버지니아 울프를 닮아 있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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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안네 - 60년 만에 발견한 안네 프랑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베르테 메이에르 지음, 문신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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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은 1945년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그 이후 세계는 전쟁으로 피폐화된 경제 및 사회 전반적인 복구를 위하여 빠르게 움직였으며 2차 세계 대전은 지나온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남아있다.

바코드가 그려진 손목은 유대인임을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홀로코스트가 가능하게 해준 하나의 장치이다. 유대인을 효율적인 관리 및 통제를 위해 고안된 이 방법으로 그들의 눈에 비쳐진 유대인은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물건, 그저 숫자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의 원 제목은 안네 프랑크 이후의 삶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판 된 책의 제목을 보고나선 안네에 관한 새로운 내용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당시 안네와 비슷한 또래의 저자가 수용소에서 힘겹게 살아 남아 그 이후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길을 설명해주고 있다. 책 안에서 실제 안네에 대한 이야기는 한 페이지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안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2차 세계 대전의 주요한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안네와 같이 그 당시의 수 많은 안네를 대변하여 그들이 이 끔찍한 참변에서 살아남은 후의 삶을 재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살아남는 방법은 배웠지만 살아가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군요.” –본문

저자는 현재 네덜란드에서 음식평론가로 활동하여 17권의 책을 발간했다. 이 한 줄만 본다면 그녀는 그녀가 겪었던 참혹한 과거를 딛고 성공하여 자리 잡은 훌륭한 케이스라 생각이 되었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책을 펼쳤다면 마지막에 책을 덮는 순간 그녀에게 60여년 전 그날의 일들은 아직까지도 현재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나에게는 그저 역사의 한 줄로, 과거의 일들로 치부했던 그 사건은 아직도 그녀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그래,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인다고 그 내면의 모든 것이 멀쩡하리라고 생각한 내가 오산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은 전쟁 피해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왜 파티에 참석을 못하는지, 왜 기차를 무서워하는지, 왜 온갖 희한한 질병들을 달고 사는지, 왜 때때로 뚜렷한 이유 없이 우울해 하는지 등을 말이다. 과연 우리는 정말 해방이 된 걸까? –본문

 텅 비어버린 뱃속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의 부모가 탈진하거나 두들겨 맞아 쓰러지는 모습들을 지켜봐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결국 주검으로 변해버린 그들 앞에서 아직 어린 아이들은 무엇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저자 역시 자신이 유대인이기에 겪었어야 하는 이 현실을 두고 자신이 왜 유대인으로 태어났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왜 이 비극의 중심에 서 있었어야만 했는지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현실에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이 상황을 이겨내고 견디는 것은 그녀가 살아남았기에 감당해야 하는 삶의 또 다른 늪이었다.

 그들은 이 역사 속에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되려 사는 내내 수치심을 가지고 살아야만 했다. 집단 학살, 폭력과 병마 속에서 살아남은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사회의 냉대 어린 편견이었다. 그들의 몸에 남은 상처를 치유하기에만 급급했을 뿐 그들이 안고 있을 가슴의 상처에는 사회는 무관심했다. 현대에 와서야 정신적 외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기에 그들을 감싸 안기에는 우리의 관심이나 지식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살아남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에서 침묵의 외투로 몸을 감싼 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사는 것, 아니 그 시간들을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전쟁이 종결 된 이후 우리는 잃어 버린 것들에 대해서 추산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발생되었는지에 초점을 두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살아남은 그들에게 살아있다는 그 하나만으로 위안을 얻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서 그들 스스로는 자신을 삶을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재를 재건하는데 앞장 서 있었기에 그들 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섣불리 추측하고 그들이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게도 금지시키고 그 역사를 이어 나가는 데만 주력했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안네가 세상을 떠났는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1100만명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아남아 저자와 같이 제 2의 안네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은 그 이상일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저 지나간 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아직 그들은 전쟁 속에 남겨져 있었다.

더 이상 이 지구 상 어디에도 남겨진 안네 프랑크가 없기를 바란다. 부디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하루 빨리 진정한 전쟁이 사라진 그 날이 도래하기를 간구해본다.

나는 행복하고 반듯한 소녀의 모습으로 바깥세상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실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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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련화
손승휘 지음 / 황금책방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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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누나. 일제 강점기에 만세운동을 부르다 투옥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녀는 모진 고문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한 목숨을 스스름 없이 내던졌다. 어릴 적 읽은 위인전이나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 중 내가 그녀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그녀의 이름을 이 소설 안에서 독립운동가로서 유관순이 아닌 소녀 유관순으로 다시 만나볼 수 있었다.

 나는 언제고 나의 조국에 대해 이토록 열렬한 애국심을 나타낸 적이 있었던가? 란 물음이 문득 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취득한 대한민국 국적, 태극기를 향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면서 나는 내가 지금 살고 있고 나의 나라인 대한민국에 대해 애착에 관해서 뚜렷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듯 하다. 응당 가지고 있기에 공기 마냥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리라. 그들이 이 공기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 놓아 다시금 되찾은 이 소중한 것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던 내 자신에 대한 회한으로 한창을 울고 나서야 책을 덮을 수 있었다.

 하하하.” 일본군 장교는 호쾌하게 웃었다.

이게 너희 조센징들이다. 우르르 몰려들어 들끓었다가 조금만 수가 틀려도 꽁무니를 빼버리는, 이게 너희들 조센징이란 말이야.” –본문

 타국을 침략하여 국권을 빼앗은 자들이 이 나라에서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하하하. 이 세 글자는 그저 웃음이 아니었다. 논밭을 뺏고 우리의 식량과 가족과 나라를 빼앗은 그들의 웃음은 점점 치밀하고 잔인하게 우리를 옥죄고 있었으며 그들은 그것을 당연한 자신들의 소임인 냥 계속 할 뿐이었다. 그 웃음 소리의 활자가 살아나 귓가를 맴도는 듯한 환청에 소름이 돋게 하였으며 그들을 향해 무어라 말도 못하고 책 안에 갇혀 있는 내가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그녀가 옥중에서 숨을 거둔 것이 18살의 일이니 태어나면서부터 그녀는 일제 강점기의 시절에서만 살았던 것이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은 있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기엔 그녀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피투성이가 되어 벌레처럼 기어 다녀야만 하는 오빠를 보고 아버지의 눈물과 어머니의 끝없는 노동. 이웃 동네 언니의 한 맺힌 외침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게 된다. 나라를 잃었다는 의미를 그녀는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으로 배운 것이다.

 나는 아니었다. 나는 조선이 너무 싫었다. 약하고 한심한 이 나라에 태어난 내가 싫었다.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돈을 끌어다가 학교를 세우고 국채보상운동을 하느라 집안을 가난에 빠뜨렸다. 가난은 가장 치명적인 인생의 적이라는 걸, 어릴 적에 나는 이미 배워버렸다. 오빠는 무능력한 조선이 싫어서 방황하고 다닌다. 이 모든 것이 다 조선이 힘이 없기 때문이다. -본문 

 소녀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평범함 일상 속에 도란도란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침에 눈 뜨며 자신의 진로를 꿈꾸고 또 어떠한 사람을 만나 자신이 가정을 꾸리게 될지 그런 소박한 꿈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익현과 함께 떡 방앗간을 차리고 아이들의 낳아 기르는 폄범한 조선의 아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나라를 빼앗긴 그 한탄의 세월 속에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 그녀에게는 내가 누렸던 그 평범한 일상은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잃어버린 나라를 위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일이었다.

우리가 독립을 선언하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일본 사람들이 우리 주장을 듣고 순순히 물러날까요?”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가 독립을 선언하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설사 우리말을 순순히 듣지는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독립국가임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 민족이 한마음으로 뭉쳐서 일본일들을 몰아내는 데 힘을 모을 테고요.”

만세운동은 독립의 씨앗을 심는 일입니다.” –본문

 그녀라고 두려움이 없진 않았을 게다. 나의 나라에서 이 땅이 우리의 것임을 외치는 것만으로 목숨을 잃어간 그 수 많은 이름 모를 조선의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그녀는 그 두려움보다 우리를 위한 사랑이 더 부풀어 올랐을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 흘리며 싸우고 저항하는 것들이 가엽고 아프기에 그녀는 쓰러져 가는 이들을 대신하여 앞으로 나선 것뿐 이었다.

 매질과 고문과 참을 수 없는 형벌 끝에 눈물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이 결정하여 온 이 길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그 고통의 순간 순간을 그녀를 따라 가면서 책의 끝 자락에 다다를수록 그녀가 살수만 있기를, 살아서 그들의 적으로 굳건히 남아 주길 바랐다. 이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가혹했다. 끝을 알고 있기에 그녀를 보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가 어떠한 형태로나마 살아있어 주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다.

 내가 진짜 죄인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 때문에 목숨을 잃으셨다. 돌아가신 부모님 앞에는 말할 것도 없고 동생들에게도 죄인이고 오빠에게도 나는, 죄인이다.

 하지만 난 너희들에게는 죄인이 아니야. 난 너희들에게 잘못한 게 없어. 그저 힘이 없어서 얻어맞고 갇혔던 것뿐이지 죄를 지어서 그 죄의 값을 받는 건 아니야. –본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관순, 그녀는 그렇게 우리를 통해 못다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18살이라는 짧은 생에 동안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그녀의 나라에 살지 못했지만 나는 그 곳에 살고 있다. 그녀가 아니었어도 이 나라에 독립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몰랐을 것이다. 그녀의 못 다 핀 인생을 담아 이 나라에서 한련화가 영원히 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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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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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을 보아서는 이 책 안의 내용이 가늠되지 않았다. 남자의 자리라, 어떠한 남자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힌트도 없이 여자의 얼굴 뒤에 자리 잡은 책의 표지에는 나무 의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주인공이 앉아 있었을 그 의자 뒤로 한 남자의 인생이 펼쳐지게 된다.

나는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보았다. 내가 태어난 해 르노도상을 수상했다는 그녀는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적인 기록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아마도 그 의자는 그녀의 아버지의 자리였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단어보다 라는 단어로 담담하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고백해 나가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해 봐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층 간의 거리, 하지만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특별한 거리였다. 헤어진 사랑의 그것처럼 말이다. –본문

끝났어이 한 마디로 시작된 소설은 이 말로 다시 끝을 맺는다. 한 인간의 생이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한 남자의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생을 살다간 그의 이야기가 딸인 그녀의 기억에 의해 재조명된다. 억지로 슬프게 혹은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이어나가면서도 그녀는 이 소설이 너무나도 빨리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대해 이토록 빠르게 그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닮아 글에서 마저 여실히 그의 딸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녀의 문체는 그래서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나와는 30년이란 간극이 존재한다. 그의 인생은 이미 30년 전부터 시작하고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인생은 내가 다섯 살이 넘어가는 시점 이후부터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잃어버린 35년은 오롯이 그가 나에게 알려준 내용대로 구성한 나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한 것들이다. 35년의 시간을 단 10여분 정도의 시간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해 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그의 젊은 시절을 이해해보려 했지만 사실 현재와 너무나도 다른 그의 세상은 흑백사진에나 등장할 만한 사건처럼 느껴졌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그는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만나 작은 제과점으로 시작하여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지금까지 왔다. 내가 태어난 이후에 나의 세계에서는 밥을 굶거나 전쟁을 경험하거나 하는 일들은 없었기에 어느 정도 누릴 것을 누리는, 부족함 없는 삶을 살수 있었으나 그것은 모두 나의 부모의 주름과 굳은 살과 맞바꾼 것이었다.

그녀의 부모 역시 그러했다. 그들이 아름다움, 한 줄의 글로 가슴 설레여 하는 것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었으나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들의 가게를 열고 나서도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긍긍하며 손님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초조해했으며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자리가 물거품으로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방들은 어두컴컴해 대낮에도 전깃불이 필요했으며,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넓이의 안뜰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들은 그대로 강으로 방출되었다. 그들이 외관에 무심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본문

자신의 열등함을 드러내지 않고 딸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무지함은 숨기며 딸은 그러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지식이 그녀에게 담기기를 소망했다. 어느 날인가 자신을 뛰어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딸을 보면서 그는 조용히 그녀의 삶이 자신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글짓기에서 칭찬을 받아 올 때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시험에 합격하고 상을 받아 올 때마다, 딸이 자신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

공부는 좋은 신분을 얻고, 직공과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고통이었다. –본문

나의 아버지 역시 딸들에게 자신이 못다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주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당신이 가지 못한 길을 자신의 분신이 가고 있다는 행복에 수 백 만원의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오는 그 날을 내심 자랑스러워하셨다. 언젠가 장학금 덕에 고지서의 금액이 2만원 남짓으로 날아든 봉투를 들고 은행으로 향하던 날 보단 원래의 등록금을 내러 가는 그의 뒷모습이 내겐 더 없이 가벼운 발걸음과 당당함으로 각인되어 남아 있다. 대학을 다닌 다는 것에 대해, 그만큼을 가치를 지불하고서 얻는 것이 어쩌면 타당하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단 한 문장의 영어 문장을 내뱉은 딸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그 순간의 찰나를 위해 매일 새벽처럼 일을 하신 아버지는 내게 당신의 행복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전달해 준 적은 없었지만 함께 해온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성장해 갈수록 점점 늙어가고 있었으며 그녀는 이제 그를 뛰어넘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게 된 부녀는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거리는 실제 그들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다. 그녀가 새로이 알게 된 세상을 아버지에게 전달하려 했던 그 이전의 노력의 시간들도 추억이란 글자에 묻어지고 어느 새 이전의 그가 아닌 나약해진 한 남자만이 남아있다.

만일 바캉스를 보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했다면 내 자신이 부끄러웠겠지만, 그의 상스런 방식들을 고쳐 주려 하는 행동은 정당하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그는 다른 말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헤어나 음악은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난 살아가는 데 그런 거 필요없다] –본문

이제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라고 쓸쓸히 말하는 그를 보며 눈가에 눈물이 핑 맴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갖기 위해 몸부림 쳤다기 보다는 살기 위해,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투철히 던져진 그의 몸이 이제 그가 원하는 대로 더 이상 움직여 주지 않는다. 묵묵하고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살아온 그를 제대로 알 시간도 없이, 아니 알고자 하는 노력도 제대로 못해보았는데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는 그를 통해서 그의 세계를 살고 그의 삶을 기반으로 나는 도약을 한다. 무심한 듯 지나간 그의 자리를 이제서야 돌아본다. 나는 그가 영원히 강한 남자의 모습으로 살기를 바랐다. 나에게는 무서우면서도 엄한 당당한 그의 모습으로 남기만을 기원하지만 어느 새 그에게도 세월이라는 흔적이 그에게 풍화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의 자리에만은 그림자가 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기에 나의 아버지와 나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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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 전세계가 주목한 코넬대학교의 "인류 유산 프로젝트"
칼 필레머 지음, 박여진 옮김 / 토네이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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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80년의 시간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다면 나는 그 중 1/3의 시간을 넘게 걸어왔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 나는 나의 의지대로 오기 보다는 이미 그려져 있는 길을 따라 걸어온 것들이 태반이며 그나마 나에게 주어진 선택의 길목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였다. 아직 가보지 않았던 길이기에 두려웠고 그래서 때론 타로나 점괘에 따라 혹은 타인의 말에 그 선택을 미루기도 했었다. 현재의 결과가 실패로 다다르더라 하더라도 나는 나의 실패가 아니라 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현황으로 책임을 전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노인, 그들을 나이 가 든 늙은 사람으로 칭하기엔 그들이 담고 있는 힘을 너무 경시하는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지내온, 견뎌온 세월 속에 고스란히 축척 된 시간의 탑과 지혜를 찬미하기에 저자는 그들은 현자라 부른다.

노인들은 다른 연령대 사람들에게는 없는 지혜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았고 젊은 사람들은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첨단기기 작동법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하거나 은행 창구를 이용하는 것보다 자동인출기를 더 편안하게 여기거나 최신 예능 프로그램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의 경험만큼은 어마어마하다. 기나긴 인생의 대부분을 산 그들은 삶에 있어 무엇이 효과가 있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정확히 판단한다. –본문

사실 나는 내가 할머니가 될 거이란 그 자명한 진리가 아직까지 와 닿지 않는다. 10대의 그 급박했던 시간을 흘러 30대의 문턱으로 오는 동안, 서른 살이란 숫자가 내 인생에 드리울 것도 버거웠던 만큼 노년의 나는 아직 내겐 미지의 세계이고 오지 않은 것만 같은 내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인간에게 가장 낯설고 두려운 경험. 그것은 나이가 든다는 것으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피해가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머리가 히끗하게 변하고 얼굴에는 윤기보다는 검버섯과 주름이 가득한. 그 때의 나를 상상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나에게 이미 그 곳에 당도해 있는 그들은 이야기한다. 생각보다 훨씬 괜찮고 상상했던 것 보다는 더 즐겁고 행복하다고. 그러니 미리 걱정하지 말고 지금의 나를 위해 펼쳐진 시간을 즐기라고 말이다.

80대에 접어든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이 들고 노쇠하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무덤이나 영안실로 가는 중이라고도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그보다는 훨씬 괜찮으니까. 아직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세상에는 많아. 관심을 가질 만한 일들, 기쁨을 안겨다 줄 일들이. 우리는 지금 길의 끝에 서 있는 게 아니야.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있는 거지. –본문

1000여명이 넘는 노인들을 통해 얻어낸 8만년이란 삶 속에서의 지혜, 3만년의 결혼 생활이 나에게 아낌없는 삶 속 요추를 진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 안에서 지금 나에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인 결혼에 대한 문제는 너무나도 깊은 울림으로 전달되었다.

내가 가족과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할 나의 반려자가 될 사람을 만나 결혼이란 관문을 통과하려 한다. 그 누가 떠밀거나 강요하진 않지만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나의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때가 왔음을 직감으로 알고 있다. 서른이란 숫자가 주는 자명종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울리는 시계의 초침이 요동치고 있음에 현재의 나는 두려우면서도 지금의 나의 시간에 집중해야만 한다. 결혼을 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의 반려자가 될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나면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고 한다. ‘그냥 알 수 있어. 그 순간이 되면 너도 알게 될 거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 게 되고 이해 됐던 일처럼 만약 그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 게 된다는 확신만 있다면 이렇게 초조하고 불안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 경험자들이 말하는 그 순간 내 귓가에 종소리라도 울려 퍼지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재연될 수만 있다면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있을 것도 같다. 그 누가 나에게 당신의 반려자는 누구 입니다 라고 알려줄 수 있겠는가. 현자인 그들은 나에게 객관식 마냥 답을 알려주기 보다는 그 곳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제시해 주고 있었다.

낭만과 사랑은 다른 거야. 경험이 가르쳐주지. 내가 봐온 바로는 낭만적인 사랑만으로는 결혼생활을 제대로 하기에 부족해.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아. 사랑은 결혼생활을 통해서 서서히 자라나고 평생을 거쳐 계속 커지는 것이지. 처음 사랑이 육체적으로 끌리는 감정이었다면 그 다음 사랑은 비슷한 관심사나 활동을 함께 하면서 찾는 즐거움이야. –본문

그들은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부부, 부모로서의 몇 십 년의 세월을 보내고 그 동안의 자신들이 만들어온 발자취 중 가장 필요한 것들은 스스럼없이 내어주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겪어 왔기에 초연하고 담백하게 그들의 삶의 한 조각을 나눠 주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들도 처음에는 이렇듯 여유롭지 많은 않았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넘기 힘든 오늘이었을 것이고 내일의 그림자가 두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을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 왔기에 그 터널은 어둡고 막막한 것이 아닌 진주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한 권의 책으로 나는 몇 만년이란 시간 속의 양분을 양껏 흡수한 기분이다. 그들이 평생토록 일궈온 인생의 밭에서 나는 아름드리 자란 과실을 얻어왔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너무도 쉽게 이 가르침을 얻은 것이리라.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이제 나도 알게 되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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