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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안네 - 60년 만에 발견한 안네 프랑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베르테 메이에르 지음, 문신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2차 세계 대전은 1945년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그 이후 세계는 전쟁으로 피폐화된 경제 및 사회 전반적인 복구를 위하여 빠르게 움직였으며 2차 세계 대전은 지나온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남아있다.
바코드가 그려진 손목은 유대인임을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홀로코스트가 가능하게 해준 하나의 장치이다. 유대인을 효율적인 관리 및 통제를 위해 고안된 이 방법으로 그들의 눈에 비쳐진 유대인은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물건, 그저 숫자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의 원 제목은 ‘안네 프랑크 이후의 삶’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판 된 책의 제목을 보고나선 안네에 관한 새로운 내용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당시 안네와 비슷한 또래의 저자가 수용소에서 힘겹게 살아 남아 그 이후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길을 설명해주고 있다. 책 안에서 실제 안네에 대한 이야기는 한 페이지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안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2차 세계 대전의 주요한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안네와 같이 그 당시의 수 많은 안네를 대변하여 그들이 이 끔찍한 참변에서 살아남은 후의 삶을 재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살아남는 방법은 배웠지만 살아가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군요.” –본문
저자는 현재 네덜란드에서 음식평론가로 활동하여 17권의 책을 발간했다. 이 한 줄만 본다면 그녀는 그녀가 겪었던 참혹한 과거를 딛고 성공하여 자리 잡은 훌륭한 케이스라 생각이 되었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책을 펼쳤다면 마지막에 책을 덮는 순간 그녀에게 60여년 전 그날의 일들은 아직까지도 현재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나에게는 그저 역사의 한 줄로, 과거의 일들로 치부했던 그 사건은 아직도 그녀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그래,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인다고 그 내면의 모든 것이 멀쩡하리라고 생각한 내가 오산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은 전쟁 피해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왜 파티에 참석을 못하는지, 왜 기차를 무서워하는지, 왜 온갖 희한한 질병들을 달고 사는지, 왜 때때로 뚜렷한 이유 없이 우울해 하는지 등을 말이다. 과연 우리는 정말 해방이 된 걸까? –본문
텅 비어버린 뱃속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의 부모가 탈진하거나 두들겨 맞아 쓰러지는 모습들을 지켜봐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결국 주검으로 변해버린 그들 앞에서 아직 어린 아이들은 무엇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저자 역시 자신이 유대인이기에 겪었어야 하는 이 현실을 두고 자신이 왜 유대인으로 태어났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왜 이 비극의 중심에 서 있었어야만 했는지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현실에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이 상황을 이겨내고 견디는 것은 그녀가 살아남았기에 감당해야 하는 삶의 또 다른 늪이었다.
그들은 이 역사 속에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되려 사는 내내 수치심을 가지고 살아야만 했다. 집단 학살, 폭력과 병마 속에서 살아남은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사회의 냉대 어린 편견이었다. 그들의 몸에 남은 상처를 치유하기에만 급급했을 뿐 그들이 안고 있을 가슴의 상처에는 사회는 무관심했다. 현대에 와서야 정신적 외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기에 그들을 감싸 안기에는 우리의 관심이나 지식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살아남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에서 침묵의 외투로 몸을 감싼 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사는 것, 아니 그 시간들을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전쟁이 종결 된 이후 우리는 잃어 버린 것들에 대해서 추산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발생되었는지에 초점을 두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살아남은 그들에게 ‘살아있다’는 그 하나만으로 위안을 얻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서 그들 스스로는 자신을 삶을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재를 재건하는데 앞장 서 있었기에 그들 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섣불리 추측하고 그들이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게도 금지시키고 그 역사를 이어 나가는 데만 주력했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안네가 세상을 떠났는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1100만명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아남아 저자와 같이 제 2의 안네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은 그 이상일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저 지나간 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아직 그들은 전쟁 속에 남겨져 있었다.
더 이상 이 지구 상 어디에도 남겨진 안네 프랑크가 없기를 바란다. 부디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하루 빨리 진정한 전쟁이 사라진 그 날이 도래하기를 간구해본다.
나는 행복하고 반듯한 소녀의 모습으로 바깥세상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실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