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대화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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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랜만에 읽은 단편집 인 듯 하다. 이 책을 통해 정지아 작가를 처음 만났지만 어떤 생이든 한 우주만큼의 무게가 있다!” 라는 띠지의 글귀처럼이나 그녀의 이야기는 하나 하나의 이야기 마다 생동감은 물론 어디에선가 들어 봄직한, 어디에선가 살고 있을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금새 빠져서 읽은 듯 하다.

 책의 제목인 숲의 대화는 제일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잠에서 깨면 옆자리를 더듬는 것이 아내를 만난 이래 평생 계속된 그의 습관이었다. 수심을 거두지 않은 채 그래도 아내는 죽는 날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언젠가부터 그는 아내가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조바심은 습관이 되었고, 이미 세상 떠난 아내가 그를 두고 떠나기라도 할 듯 애를 태우며 그는 매일 산에 오르는 것이다. . –본문

 평생 다른 사람을 품고 사는 것이 힘들까, 아니면 그러한 사람을 바라보고만 살아야 하는 사랑이 힘든 것일까. 사랑을 하고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해 무어라 딱 꼽아 대답하기가 쉽지가 않다. 과연 그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교집합의 공간은 실제 할 수 없었을까

 고맙소.

복수가 차서, 그에게로 처음 온 그날처럼 배가 봉긋했던 아내는 안절부절 마지막까지 자신의 손을 놓지 못하는 그에게 그 무정한 말 한마디를 남긴 채 눈을 감았다.

썩을 놈.

그 썩을 놈은 여자를 그에게로 보내기 오래 전부터 썩을 놈이었다. 여자는 그에게로 보내면서 놈은 살아서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각오했을 것이다. 제 뜻대로 죽었을 것이지만 죽어서도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썩을 놈은 죽어 아내의 마음 속에 둥지를 틀었고 아내의 마음은 철새인 양 찬바람만 불면 그 둥지를 품었다.본문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내는 그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녀의 발에 있던 점 하나마저도 가질 수 없기에 물끄러미 바라보고 차가워진 발 위에 살포시 그의 발을 얹고 싶은 마음도 작게 접어두고서는 그저 바라보며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아내는 떠나게 되고 평생을 함께 했지만 가슴으로만 품어야 했던 그는 아내가 떠나 간 그 순간에도 매일을 그리워하며 그녀가 첫 사랑을 그리며 죽어서는 돌아가고자 했던 그 숲으로 문안을 간다.

 

 그녀는 보송보송 마른 빨래를 걷는다. 반나절 만에 빨래를 만린 성급한 바람처럼 그녀의 80년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누군가 그녀의 세월 밖에서 그녀의 한 삶을 지켜보고 있다는 빨래를 걷듯 목숨줄을 휙 걷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것은.본문

 할머니가 되었지만 아직도 소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봄날 오후, 과부 셋의 이야기. 여전히 수선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여고생 때나 지금이나 시간이 흘러도 모이면 수다 떨며 시간 보내기 여념이 없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와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 더 밝고 훈훈한 느낌이랄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 그녀들의 인생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으로 찬찬히 따라가며 읽었던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읽는 동안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목욕 가는 날이었다.

 집에 다니러 올 때마다 나는 무슨 핑계를 내서든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 돌아갔다. 어머니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다리를 절뚝이며 씽크대에 왼팔을 걸쳐놓고 나 먹일 나물을 데치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것이 나는 죽기만큼 괴로웠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머지않아 잊을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번번이 도망치듯 어머니 곁을 떠났다. 내가 도망친다고 세월이 어머니를 비켜가는 것은 아닐 터, 반년 만에 만나면 어머니는 더 늙어 있었고, 그만큼 더 괴로웠으며, 하여 더 빨리 떠날 핑계를 찾았다. . –본문

 가장 나의 모습과 근접했기에 아무래도 감정 이입을 해서 봤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 주름이 늘어버린 엄마를 보며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 느낌은 어느 순간 휘발되어 일상 속에 묻혀 버린다. 언젠가 찾아보았던 엄마의 교복 입은 여고시절의 사진을 떠올리며 엄마에게도 소녀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회상하게 되었다. 그 소녀가 이제 훌쩍 커버린 두 딸의 엄마로서 살고 있다. 딸과 엄마로 만난 30여 년의 세월 동안 몇 번이나 나는 엄마와 몇 번의 목욕을 갔었을까. 책을 덮자마자 엄마, 우리 목욕 가자!’ 라며 뜬금없는 소리에도 빙그레 웃어주는 엄마가 있어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세상에 빛나는 별 만큼이나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 모든 사연을 직접 들으러 다니기 힘든 바쁜 시간 속에서 단 한 권의 책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소설이라곤 하지만 어디선가 숨쉬고 있을 것만 같은 모든 주인공들이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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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서재 -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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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에 한 사이트에서 진행했던 책 읽기 프로젝트를 참여했었다. 일 년간 몇 권을 책을 읽을 것인지에 대해 먼저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었는데, 그 당시 무엇이든 가능하고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신년의 계획이라는 목표의 유혹에 빠져 100권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한동안은 지키려 무던히 애를 쓰다 결국에는 50여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는 것으로 마감되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느냐 보다 얼마나 좋은 책을 읽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양서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일단 기본적으로 양서를 가릴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양서를 구별하는 눈을 갖기 위해 목표한 것이 1000권의 책을 읽는 것이다. 올해 역시 100권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니, 달성을 했다는 가정하에 10년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일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달성하는 셈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이제 걸음마를 떼어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지금으로선 어떠한 책을 보던 원통형의 망원경을 가지고 책을 보듯이 그 안에 있는 내용들만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바쁘다. 좁은 식견을 가지고 있기에 한 권의 책에서 내가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것은 저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내가 담을 수 있는 만큼만을 안고 담아간다. 아직은 그 깊이가 얕고 소박하기에 동일한 책을 읽고서도 방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내공에 경외심 마저 들게 한다.

 요 며칠 간 그러한 경외심의 대상이 또 한 명 등장했으니 바로 이 책의 저자인 김운하 선생이다. 그 간 만권의 책을 읽어왔다는 그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라는 부재로 그의 서재로 안내하고 있다.

 만 여권의 책 중에서 고르고 고른 13권의 책들. 하지만 한 권 한 권은 단지 그 책의 소개에서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기반으로 해서 방대한 그물을 던져 지식을 탐하듯이 수 많은 이야기들을 엮어서 다시 그만의 책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오이디푸스왕의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자신의 낳아준 아버지를 죽이는 폐륜을 저지르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결혼하여 아버지이자 형제자매인 자식들을 낳는 비운의 주인공 이야기. 이 비극적인 이야기 안에서 인생이라는 원반 위에서 그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에만 탄식하며 그렇게 흘려 보냈다.

 오이디푸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가운데 치명적인 것은 우리 자신의 객관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자기는 과연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까? 내가 라고 믿는 정체성은 거대한 착각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눈뜬장님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을 모르는 것 아닐까

 오이디푸스를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은 끝에 깨달은 것도 그런 것이었다. 내가 나라고 믿는 나는 가짜다. (중략) 그러니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존재 가치는 착각이거나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는 내가 젊은 시절 한때 매혹 당했던 자살에 대해서도 달리 보게 된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일종의 타살이다. 낯선 타자를 멋대로 죽이는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내 것도 아닌데 남의 목숨을 함부로 뺏는 건 오만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고 했던 주제의식도 그것이다.

 인간이여, 제발 까불지 말고 오만 떨지 말라!” –본문

 같은 오이디푸스왕를 읽고 저자와 나는 너무도 다른 방향에서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1차원적인 관점으로 오이디푸스왕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는 다각적인 면에서 오이디푸스를 바라보고 오이디푸스왕을 통해 라는 존재에 대해 규명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가?’는 인간이라는 누구나 가지게 되는 근본적인 물음 중 하나이다. 존재만으로 스스로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것이 인간만이 가지는 특권이기에 오이디푸스왕을 보며 나를 찾아봐야겠다는 것을 어찌 보면 어디에서나 가질 수 있는 물음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라는 존재의 규명에서 그의 의문을 단절시키기 않고 자살이라는 주제까지 확장시킨다. 자살이란 내가 나의 삶을 마감한다는 주체적인 행위라고 주창할 수 있을지언정 자기 자신을 오롯이 알지 못한 채로 마감하려는 것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그의 주장 앞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철저히 무너지고 있었다.

 과연 나는 오이디푸스왕을 읽으며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나는 오이디푸스왕을 읽은 것일까?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고뇌에 빠져 있을 무렵 또 다시 거대한 풍랑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것은 시지프의 신화였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잇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거이야 말로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인생이 살 만한 보람이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 그것은 필경 하나의 진리다. 그러나 너무 자명하기에 아무데로 쓸모 없는 진리다. 삶에 대한 이러한 모욕, 삶을 수렁으로 빠뜨리는 이런 부정은 과연 삶의 무의미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삶의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 같은 길을 통해 삶에서 벗어나길 요구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이야말로 모든 군더더기를 치워버리고 우선적으로 밝히고 추구하고 해명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본문

 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노여움을 사게 된 시지프는 신들에게서 바위를 산꼭대기에 운반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끝이 있다면 어떻게든 이 형벌을 받고 그 이후를 생각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신들이 준 형벌은 산꼭대기에 도달하면 또 다시 바위가 굴러 떨어져 버리기에 시작과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계속해서 바위를 산꼭대기로 이동시켜야만 한다. 끝이 없는 영원의 세계에 바위를 운반해야만 하는 시지프. 무익하고 희망이 없는 노동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고 여긴 신의 형벌이다.

 카뮈가 말한 반항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반항인가?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다. 부조리를 부조리 상태로 살게 하는 것, 무익하고 희망이라곤 없는 노동뿐인 삶을 불굴의 의지로 감내하며, 부조리를 명료하게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 한마디로 사막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 그것이 카뮈가 말하는 반항이라는 개념의 의미이다. 때문에 카뮈에게 있어서 반항하는 인간은 부조리를 명료하게 의식하며 살아가는 영웅과도 같다. 부조리를 버티며 사는 부조리의 영웅이다. –본문

 카뮈가 말한 반항을 말 그 세계에 대한 반항으로 받아들였었다. 그렇기에 이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뒤집던 혹은 박차고 나오며 그 곳에서의 탈출이 바로 카뮈의 반항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다시 시지프의 형벌을 생각해보면, 과연 그는 그 물리적인 장소에서부터 탈출이 가능한가? 내가 생각했던 반항이라면 그는 신들을 피해서 어떻게든 그 산을 벗어나야만 한다. 굳이 소설 속의 그가 아니더라고 현재의 나만을 보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 모니터를 마주하고 있는 이 책상과 의자 안에 결박시키고 있는 회사라는 시스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내가 생각한대로 이 곳을 박차고 나와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카뮈가 말하는 반항이었을까?

 인간-시지프는 이렇게 외치는 거다. “세계는 무의미하다. 우리의 삶은 객관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그런 부조리를 느끼고 의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조리한 삶은 부조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본문

 아무리 낙원에 머물러 있다고 한 들 우리는 금새 그 공간이 시들해져 버릴 것이다. 찬란하게 보이던 그 순간은 어느 새 일상으로 변모해 버리고 그 곳은 또 다시 무의미한 세계가 되어 버리듯이 말이다. 진정 무의미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며 한숨만 푹푹 쉬고 탄식하기 보다는, 그 곳에서 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 시지프를 보며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즉 부조리를 인식할 수 있는 그 순간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사는 시지프를 보며 신들은 가장 가혹한 형벌을 주었다며 만족했을지 모른다. 나 역시도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의 시지프는 너무도 안타까운 삶을 살아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부조리의 앞에서 부조리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피하고자 하는 선택인 자살이 아니라 그 부조리를 인식하고 반항할 수 있기에 나는 불쌍한 시지프가 아니라 행복한 시지프를 볼 수 있었다.

 이미 시작부터 너무도 격차가 있는 그와의 조우였기에 그가 보는 세상만큼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알아차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와의 만남이 한낱 자괴감에 빠져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하고 있는 책들이 지금 나의 서재에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며 종종거리게 하고 여기에 있는 책들을 읽어보아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만으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언제 나는 그와 같이 나만의 책들을 가지고 나의 서재를 꾸미게 될까. 한 번에 뛰어 넘지 않고 천천히 다독이며 1000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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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에 탄 소년과 곰 벽장 속의 도서관 4
데이브 셸턴 지음, 이가희 옮김 / 가람어린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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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 마자 보이는 안녕하세요!”

 보트에 앉아 있던 곰이 소년을 돌아보며 천천히 일어나며 하는 말이다. 이 평범한 인사가, 누구든 언제나 안녕하세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 인사를 보며 나는 한 동안 멍하니 그 다음 문장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너무도 일상적인 이 모습에서 단지 그 인사를 한 주체가 이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스스로 어라, 곰이 말을 한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라며 망설임 없이 반문하는 나를 보며 책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어른이라는 세계에 깊이 발을 들여 놓아버린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많은 소설을 읽으며 픽션의 세계에서 노닐었지만 그 주체가 사람이 아닌 곰이라는 이 설정만으로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나를 보면서 어쩌다 이렇게까지 메말라 버린 것인지에 대한 푸념과 더불어 사라져버린 동심을 지금이라도 되찾아야겠다는 일념 하에 이 보트에 탑승객이 되었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소년은 해리엇 호의 곰 선장을 찾아온다. 어디로든 데려다 주세요, 라고 말했던 그의 염원에는 하루 정도의 여정이면 끝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담아 이야기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토록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뤄질 수 없듯이 이 여정은 도대체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위치를 알고 있으며 절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곰 선장과 점점 의심이 쌓여가는 소년과의 어쩔 수 없는 여행은 예기치 못한 괴물과의 만남과 인어호에서의 식량 획득, 해리엇 호과의 이별이라는 거친 풍랑과도 같은 사건들을 마주하며 점차 그들간의 관계도 변모되게 된다.

 처음에는 선장과 탑승객의 사이였다가 의심의 대상이 되는. 긴 여정 동안 함께 힘든 고난들을 이겨내며 자연스레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그들의 여정이 함께하는 동안 한 때는 너무 착하기만 한 곰이 미련스러울 정도로 답답해 보이기도 그런 곰을 보며 약을 올리거나 버릇없이 구는 소년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뜨며 혀를 차면서도 마치 어릴 적 내 모습 같아서 마냥 비난 할 수 많은 없었다.

 지금도 바다 어딘가에서 떠다니고 있을 것만 같은 곰과 소년을 보며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툴툴거리는 내 모습에서 여전히 소년의 모습을, 서툴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 소년을 언제나 감싸주는 든든한 버팀목과 같은 곰의 모습에서는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린 아이로 되돌아가 즐거운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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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의 패턴스쿨
백선엽 지음 / 랭컴(Lancom)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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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are you? I’m fine thanks, and you?부터 시작한, 15년 이상 배워온 영어는 그 세월이 무색하리만큼이나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듯 하다. 모국어가 아니기에 그들처럼 단기간에 인지하고 배우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며 자신을 다독이기만 하지만 언제나 느끼는 것은 대체 왜 영어가 늘지 않을까 하는 푸념뿐이었다.

취업 준비를 위해 TOEIC 을 보고 어느 정도 점수를 획득한 이후 이력서에 한 칸을 채우는 것으로 나와 영어와의 인연은 끝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사실상 입사 첫 날부터 영어라는 녀석이 스멀스멀 내 주위를 맴돌며 그 끈질긴 인연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업무상 해외 에이전트와 일을 해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메일은 영어로 작성해야 했으며 회신 역시 영어로 오기에 영작 및 독해 능력은 필수였으며, 특히나 긴급상황 일 때에는 어김없이 영어로 대화해야 하는 순간들도 종종 있기에 영어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배우고 생활화해야만 했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이기에 무엇보다도 대화할 때 그들이 사용하는 일정한 구문, 즉 패턴들을 얼마나 유창하게 활용할 줄 아느냐가 외국어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의 판가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면대면의 상황에서는 I’m~ 이라고 내 소개를 하는 반면, 전화 통화에서는 This is~ 라고 소개를 하는 것처럼 이 미세한 차이들이 아느냐 여부에 따라 진짜 영어를 하는지 아니면 영어를 따라하기만 급급하느냐로 판가름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일화는 밴쿠버의 에이전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때이다. 이사님께 걸려온 전화였는데 당시 이사님은 유선상으로 다른 업무를 처리하고 계셨기에 나는 전화를 한 담당자에게 그는 통화 중이다, 라는 간단한 내용과 다시 전화 달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I’m sorry but he is talking now, please call him again’ 이라는 말을 전달하고 끊으려는 찰나 담당자는 너무도 급하다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1분 간의 이야기를 우여곡절 나누던 끝에 이사님께 전화를 연결해 드리긴 했지만 그 1분이란 시간이 어찌나 길게만 느껴지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추억이다. 비슷한 상황은 몇 번 더 이어졌고 그 때마다 나는 매번 겨우겨우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반가운 점은 각 상황 별로 내용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위의 같은 상황에서 나는 ‘I’m sorry but he is talking now, please call him again’가 아닌 ‘It appears my supervisor is talking on the phone, so he is currently unavailable.’ 이라는 표현을 함으로써 더 고급스러우면서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의미만 통하면 된다 혹은 이게 맞겠지 하며 쓰며 그들이 실상 어떠한 이야기를 쓰는지에 대해서는 별 다른 관심이 없었다. 주변에서 알아두면 좋아, 필요할거야 라는 진심 어린 충고에도 불구하고 실제 그 상황에 직면해서야 , 진정 필요한 것들이구나.’ 라며 뒤늦게 깨달았다지만, 지금에서라도 그 필요성을 제대로 실감했으니 이번만큼은 열심히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내용들에서부터 테마별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 한 권이면 그 어떤 천군만마가 부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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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는 법 - 인간의 모든 가능성에 답하는 과학의 핵심 개념 35가지 사이언스 씽킹 3
알록 자 지음, 이충호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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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답한다고 말하는 사이보그가 되는 법. 책의 표지만 보았을 때만 해도, 아니 목차를 보았을 때만 해도 엉뚱한 듯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 하나로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생각들이 이 목차 안에 나열되어 있다. 우주를 만드는 법, 영원히 사는 법이라든가 병을 고치는 방법 등과 같은 이야기들이 말이다. 심지어 사이비 과학자를 구별하는 법이나 쌍둥이 형제보다 천천히 늙는 법이라든가 외계인을 찾는 방법 등 허무맹랑한 듯 하지만 막상 읽는 것만으로도 구미를 당기게 하는 그 마력, 단순히 그 마력에 이끌렸으며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목차들을 보면서 피식하며 한 번 웃어 넘길 만큼 만만하면서도 대체 무엇이라고 설명해 놓았는지에 대해 궁금했기에 바로 펼쳐 읽어보았다.

제목과 목차들만 보고 너무 만만하게 본 것 들이었을까? 생각만큼이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종종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과학이라는 한 분야에만 치우쳐져 작성된 것이 아니라 미처 생각도 못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언급해 놓았기에 읽는 내내 저자가 말하는 대로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생각을 하며 따라 갈 수 있게 되었다.

빅뱅이론에 의거해서 지구가 탄생 이전에는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과 우주가 탄생하며 그 미세한 시간의 차이 별로 엄청난 속도로 팽창했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라는 사실. 또 심심치 않게 UFO가 등장했다는 뉴스와 진정 그 비행물체가 다른 행성에서 보내져 온 것인지, 그렇다면 이 우주에 지구라는 행성 이외의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동시에 과연 우리가 그들에 대해 궁금해 하는 만큼이나 그들도 우리의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것인지 여부. 우리보다 발전되었을 지도 모르는 그 곳의 외계인들이 과연 우리와 같이 호의적일 것인지, 더 근본적으로는 과연 외계인이라고 명명하는 것들 조차 우리 스스로는 평범한 지구라는 곳의 주인이고 그 이외의 모든 거들은 외계인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준다.

쉽게 펼쳐보았다가 만만치 않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새삼 드는 책이다. 말이 안되잖아, 라며 핀잔 어린 의심의 눈초리로 시작했던 독서의 시작은 어느 새 과연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득하게 했던 책. 무겁고 딱딱한 과학이라는 틀을 벗어나 상상 하는 대로 질문해 보고 답을 찾을 수 있는 꽤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한 번쯤 읽어보라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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