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 개정증보판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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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지리산을 종주할 때였던가, 여하튼 어느 산인가를 오르고 있을 때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 갈 거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나는 별 다른 고민하지 않고 아니요.’로 답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남들이 보기에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직장에 연봉을 받는 상위 1%의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나는 나의 삶에 만족하고 지금의 내 자신에 불평 없이 살고 있다. 파란만장 했다면 파란만장한 20대를 보내고 지금의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굳이 휘황찬란한 20대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는 위의 질문에 답을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을 아등바등하며 살고 과거에 연연하기 보다는 그저 흘러가듯이, 유하게 보낸 일상들을 담아놓은 것들이라 그런지, 담백하기에 쉬이 페이지가 넘어간다.

 마흔이 됐다.

 마흔이 되고 난 뒤 다섯 살이 지난 지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서른 보다는 마흔이 더 좋다는 것.

 서른에는 많이 아팠을 일들이 마흔하고도 다섯 달이 지난 지금은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한다.

 서른에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마흔하고도 다섯 달이 지난 지금은 냉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본문

  중고등학생 시절 인터넷에 떠도는 예쁜 그림에 좋은 글귀들이 담아있는 것들을 잔뜩 모아 놓고 혼자 흐뭇해 하던 그 때가 떠오른다. 한 페이지 넘기면 아득하기도 하고 때론 고즈넉한 사진들과 함께 소박하게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 그저 마냥 떠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언제나 생각에만 그치게 되는 현실. 정말 큰 마음 먹고 떠나봐야지, 하며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이번 여행 괜찮을까? 라는 설렘만큼이나 왠지 모를 걱정이 늘 따라 다닌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하지 않아도 될 핑계들을 죽 나열하는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 내게 그는 이야기 한다.

 언젠가 네가 말했었지.

 매일 똑 같은 증명사진을 찍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웃는 법을 잊어버렸어. 머릿속은 텅 비었어. 고개를 흔들면 빈 깡통 소리가 나.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중략)부디 멋진 여행이 되기를 바랄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 여행은 낭만적이지도 않고 지루할지도 몰라. 위험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여행을 떠날 수 없다면, 우리는 마른 수건처럼 따분한 일상을 어떻게 견뎌야 했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해. 내일부터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그건 정말 다행이야.” –본문

세상이 멸망한다면 그 날은 제발 월요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사뭇 공감이 되고 가끔씩 새로운 장소에서 익숙한 풍경을 맞이하면서 그 생경한 감정이 조합되어 과거를 회상해 보기도 하며 어느 새 그가 가는 길목마다 동행인이 되어 함께 걷게 된다.

 언제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될지,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조만간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터벅터벅 별 생각 없이,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들이 있으면 보고 느끼는 대로 느끼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면 일단 해 보고 후회하는 편이 나을 테니 무작정 그가 갔던 대로 떠나봐야겠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어.’

 갈까 말까 망설일 때, 이렇게 중얼거리며 신발 끈을 질끈 묶는다. 그리고 문을 나선다.

 내가 보낸 여행의 시간들 대부분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두려운 반

 설레임 반

 눈 딱 감고 그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본문 

   

아르's 추천목록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 후지와라 신야저

 

 

 

   

 

독서 기간 : 201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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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홀로 서면 외롭지 않다 -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진짜 인생 찾기
김이율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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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에세이 분야를 그다지 즐겨 읽지 않는다.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다만, 누군가의 인생을 고스란히 답습하듯 따라가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근거 따위 없는 거부감에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청춘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 한 책도 손도 대지 않고 고스란히 책장에 넣어 두었으니, 참 희한한 일이다. 이것도 선물 받은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책장에 자리하고 있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은 내 나름대로는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스스로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표지 한 구석에 차지하고 있던,

 우리는 혼자여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홀로 서지 못해 외로운 것이다. 이제 두려워 말고 기대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자기마의 오롯한 생을 찾아가야 한다, 라는 문구 때문에 말이다.

혼자 서서 나의 인생을 찾아야 한다, 라는 내 나름대로의 신념과도 비슷했으며 그래서 그렇다면, 한 번 읽어볼까? 라는 작은 동요에서 읽기 시작한 책은 읽는 내내 편안함을 전해주었다. 요새 너무도 흔해 빠진 힐링을 위한 목적 보다는 소담스럽게 저자의 이야기를 담아 놓은. 그래서 옆에서 소근소근 이야기 하는 그 말투에 참 편안히 몸을 맡겨 책을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그 어떠한 거부감도 없이 말이다.

 3년간의 백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 회사에 스카우트 되어 카피라이터로 전향하고 지금은 작가로 살고 있다는 그의 문체는, 인생 역전이라는 로또에 당첨된 자의 우쭐함이 아닌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마도 그 평이한 이야기가 오히려 더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은 인생에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만 터져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인 듯 하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 되기도 하다. . –본문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 시절, 그 때만 해도 나는 식당에 혼자 가거나 영화를 혼자 보러 갈 용기가 없었다. 좀 더 솔직히 이야기 하면 혼자는 가겠는데, 그렇게 하자면 식당은 텅 비어 있어야 하고 영화관을 대관하여 혼자 들어가는 형식의, 그러니까 그 어떠한 타인의 시선이 없을 경우에만 실행이 가능했다.

지금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그 오묘한 심리는 아마도 타인의 눈에 비친 혼자 된 내 모습이나, 오롯이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며 살까?

예를 들어 식당에 들어갔는데 누군가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하자. 그 순간 스치는 생각은 혼자 왔구나, 이 정도가 다 일 게다. 외향적인 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한들 길어야 5초 남짓. 홀로인 타인은 내게 그다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 곳이 식당이든 영화관이든. 그렇다면 타인 역시 홀로인 나에 대해서 별 다른 관심을 쏟지 않겠구나, 라는 이 간단한 생각을 하고 혼자인 시간을 즐기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였다.

이 낯선 별에서 언제까지 이방인처럼 부유하며 떠돌아다닐 순 없지 않은가. 그래, 받아들이자. 외로움을 기꺼이 껴안아보자. 외로움도 청춘의 특권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 –본문

 28살에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나면서 주변의 염려와 걱정에도 생각을 정리할 겸 떠난 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출발한 적이 있다. 약간의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발걸음 마다 어느 새 새로운 것들이 눈 앞에 가득해졌다. 그제서야 나는 풀 한 포기, 버스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게 되며 오롯이 나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나만을 위한 15분의 시간을 먼저 떼어놓아라. 당신을 은행 예금 계좌로 생각하라. 항상 인출만 한다면 감정적 파산 상태가 될 수 있다. 매일 스스로를 위해 쓸 수 있는 15분을 떼어놓고 그것을 내면의 시간 또는 예금시간이라 부르도록 하라. –본문

 일상이라는 틀 안에서 매번 이렇게 훌쩍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장소를 이동 시킬 수 없는 현실이라면,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이동시켜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것을 주창하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저자가 느끼고 겪었던 것들에 대해 담아 놓은 것들이라 공통적인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이야기들을 담아 놓고 있기에 읽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종은 누가 그걸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그걸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주기 전에는 그건 사랑이 아니다. . –본문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문자도 해보고 부모님께 드릴 용돈을 찾으러 부지런히 은행도 다녀왔다. 마음만 품고 있다가 평생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해 남은 시간 한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저자의 고백을 듣고서야, 지금이구나! 라는 생각에 주섬주섬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남자와의 관계도 같은 식이었죠. 내 감정은 접어두고 그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정말 처절하리만큼 많은 노력을 했어요. 내가 원하는 게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감히 할 수도 없었어요. 그이는 내가 뭘 원하기를 바랄까? 하는 식의 질문밖에는 내 자신에게 던질 수 없었어요. 내가 착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었지만 아니었어요. 겁쟁이라 그랬던 거예요. 더더욱 잘못했던 건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는 거였어요. –본문

 때로는 그 어느 연애 코치보다도 따끔한 일침에 나를 다잡아 보기도 하고 상대방을 통해서 나를 보라는 어느 아버지의 말씀을 그를 통해 전해 받기도 하고. 어차피 사는 인생사 다 비슷비슷한데 대관절 무엇을 위해 타인의 삶을 탐닉하느냐, 라며 에세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내가 조금씩 무너져 가는 느낌이 든다.

화려한 반지나 목걸이보다도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이 눈물을 끌어낼 수 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게 진짜 진심이며 매력이다. –본문

 화려한 문체나 수식어구가 아니더라고 그는 일상 속 대화만으로 나를 그의 곁에서 이야기를 경청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그가 말하는 진심의 힘이자 매력인가보다.

 아름다운 표지나 캘리그라피가 아닌 책 안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그의 이야기를 집중하게 하는 힘. 3~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참 재미있게 저자와 대화를 나눈 듯 하다.

우리는 나이가 적든 많든 아니면 어중간하든 지금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 위에 서 있습니다. 완성이란 없는 인생에서 그저 인생의 한 시점에 있을 뿐입니다.

설령 좋은 일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별 일 없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웃으며 마무리하고 내 안으로 나를 초대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씩씩하게 새 아침을 꿈꾸었으면 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의 청춘은 아침처럼 빛날 것입니다. . –본문

 어찌보면 별거 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지만, 어제의 나의 하루도 별 거 없이 지나오지 않았는가. 그 하루하루가 또 나의 과거가 될 것이고 그렇게 오늘은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별거 없이 무사히, 그렇게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 새 또 나는 성장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나의 청춘도 찬란히 빛이 났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르's 추천목록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 이기주저

   

 

 

독서 기간 : 2013.07.23~07.2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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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소년 1
이정명 지음 / 열림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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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소설을 볼 때는 영화 페이첵이 떠올랐다. 기밀 유지를 위해 프로젝트마다 기억이 지워지는 주인공 앞에 던져진 몇 가지 힌트를 가지고서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길모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때론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가 보이기도 하고, 블랙잭으로 카지노를 점령하면 MIT 공대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21이 보이기도 하고. 숫자에 얽힌 냉철한 이야기일 것만 같은 바보이자 천재로 불리는 길모는 영애에 대한 더 없이 순수한, 때론 그 순수함에 답답하리만큼 한 여자만을 바라보고 그녀를 쫓아 이 거대한 무대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하나의 말이 되어 간다 

 

뉴욕 퀸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발생. 피해자 얼굴은 약품으로 소독 되어 있었으며 주변에는 알 수 없는 숫자와 문장이 수수께끼처럼 펼쳐져 있다. 이 사건의 한 장면은 앞으로의 거대한 이야기의 서막이 올랐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 된다.

  이토록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길모의 삶은 바로 영애를 지키겠다는 약속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그때 난 강씨 아저씨가 설계해둔 게임의 룰을 깨달았어요. 우리에겐 자금을 인출할 수 있는 세 개의 조건 중 두 개가 갖추어져 있었어요. 윤영대가 지니고 있던 예금증서와 예금자의 직계가족 영애, 비밀번호만 알면 세 개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죠.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강씨 아저씨와의 약속이 떠올랐어요. –본문

타인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에 불과한 일들이 길모의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에는 모든 것이 숫자가 두둥실 떠오르게 된다. 이런 것들까지 된단 말인가? 라는 의문 따위는 단숨에 날려버리고 그는 말 없이 조용히, 그만의 세계에 빠져서 숫자 속에서 행복한 시간들을 지내고 있었다. 그래, 그는 평범한 한 소년으로 시간이 흘러 한 남자 되어 살았을지도 모른다. 수에 밝았기에 올림피아드에 나가 지금 그가 앉아 있는 취조대에서가 아니라 시상대에서 만나볼 수도 있었겠지만 파란 책자에 자신들의 삶을 녹아내리고자 했던 길모 아버지의 소망이 소박하지만 단순했던 이들의 삶을 단 한 순간에 뒤집어 버린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회적 관계와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고 행동이나 관심 분야, 활동 분야가 한정되며 같은 양상을 반복하는 질환이예요. 심문이 뭔지도 모른다는 뜻이죠. –본문

 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길모는 그 모든 현상을 숫자로 풀고 해석하고 그것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수에 대에 월등한 능력을 지닌 그를 보면서이라는 물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신이 내린 재능일지 모르지만 그 능력은 어디를 가나 탐욕의 대상이 되어 그를 수 많은 사람으로 삶을 위장시킨다.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숫자에 능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길모.

 그는 그저 숫자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아니면 그는 이 모든 과정을 나약한 듯 휘청거리며 버티는 것 조차 모든 것이 계획된 판 속에서 내가 휘엉청 넘어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무표정한 듯 하지만 웃고 있었으니까.

 

평양에서 서울까지 261km를 오기 위해서 길모와 영애는 대륙을 건너며 목숨을 건 사투를 걸어야 했다. 지도 상 직선으로는 몇 센티미터 되지 않는 그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그들은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을 통해 마카오, 홍콩을 거쳐 서울로 당도하게 된다. 그 사이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버리고 제 2, 3의 삶을 살아야 했으며 영애를 찾기 위한 길모의 끈질기면서도 아련한 행보가 이어진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이기에 이렇게 장대한 스케일의 여정이 펼쳐지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왜 우리는 쉬이 평양과 서울을 오갈 수 없는지. 같지만 다른 나라로 분리되어 있는 우리는 이토록 찬란한 여정을 거쳐야만 만날 수 있는 운명인가보다.

그녀는 끊임없이 부유하고 화려한 인생은 원하고 바랐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어 했고, 가지 못한 곳으로 가기를 원했다. 공화국의 정치범에서 상하이 최고 조직 수장의 여인으로, 마카로 프리마 호텔의 클럽 가수로, 그녀는 끊임없이 내 주위를 돌며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행성 같았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원심력만큼이나 강한 인력이 작동했다. 툇마루에 앉아 가만히 햇살을 받는 동안에도, 낯선 여인들을 두리번거리는 동안에도 인력은 서로를 끌어당겼다본문

  마지막을 읽고 나서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 것인가에 대해 골머리를 앓게 된다. ‘나는 거짓말쟁이이다라는 명제와 같이 어느 것을 해도 역설적인 참과 거짓의 사이에서 이 모든 판의 구도를 다시 재 배치해보고 또 생각해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한 구절.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것을 믿는 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는 길모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가짜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길모와 영애는 지금 베른에 살아있고 나이트 미처씨의 수첩은 주인을 찾아갔다는 사실. 그래 이것이면 모든 문제는 풀렸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련다. 잘 만들어진 판 속의 게임에 참여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아직도 설레고 있으니 이 기분만 안고 홀가분히 책을 놓아야겠다. 

마법이, 기적이 존재하느냐고 당신이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나는 기적을 겪었고 마법을 보았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당신이 다시 묻는다면 나는 또 대답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그것이 기적이고,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그것이 마법이라고. –본문

 

 

아르's 추천목록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저

 

 

 

 

 

독서 기간 : 2013.07.19~07.2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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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클래식 - 우리 시대 지식인 101명이 뽑은 인생을 바꾼 고전
정민 외 36명 지음, 어수웅 엮음 / 민음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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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 가득 고전 목록을 순서대로 정리해 놓고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직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그저 눈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서 마치 이것이면 됐다, 라는 듯 합당한 체득을 한 양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을 보냈고 그리하여 지금까지 그 책장의 책들은 고스란히 그 자리를 이탈한 적 없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읽어야 하는 책사이의 괴리. 신간 중에는 당연히 좋은 책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고전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함량을 지녔다. ‘101 파워 클래식연재는, 엮은이의 그런 갈증을 채워 주는 피난처이기도 했다. –본문

 읽고 싶은 책들이 한 가득, 그러나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이 밀려있다. 서평도 있고 나름대로 구매한 책들도 있고 선물 받은 것도 있고. 이번 달만해도 70여권을 구매했고 30여권 정도를 받고 교환하고 했으니, 한 달여 동안에 욕심을 넘어선 책에 대한 만행을 저지른 듯 하다.

 그래, 그런 느낌이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그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지 갈팡질팡 하며 책을 보며 되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왠지 이 책이라면 나를 구제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과 그런 막연한 기대 때문에 읽어보고 싶었다. 수 백 권의 고전들 속에서도 무엇을 먼저 읽으면 좋을지에 대해,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하나부터 시작하면 나머지 것들도 자연스레 손을 뻗게 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응원이자 격려가 필요했다.

시대가 불확실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울수록, 사람들은 근원을 찾는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고전을 그리워하고 다시 찾는 이유는, 결국 고전이 세월의 비평을 이겨 낸 인새의 지혜를 전하고 미래에 대한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본문

 고전은 무조건 읽어야 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것들이잖아, 그런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야. 읽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어! 와 같이 진부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이미 지겹도록 들어왔다. 아마도 이 책이 그런 형태의 것이었다면, 굳이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그들이 읽어보라고 조언하는 원본을 당장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침반은 방향을 잡고 난 이후에는 그다지 필요가 없으니까, 제대로 된 방향으로만 나아가면 되니 말이다.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을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에 따라 가정을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그의 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본문

 하지만 결론적으로만 말하면 이 책은 37명의 이들이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형태를 빌어 전개되고 있다. 앉자 마자 쏟아져 나오는 한정식 집에 들어서서 어떤 반찬을 먼저 먹을까, 를 고민하게 만들 듯 37명이 선택한 각각의 책을 각자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기에 페이지마다 새로운 이야기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읽은 책이다. 물론 책의 소개가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만 나는 그보다도 그들이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에 더 초점을 맞춰 바라보게 되었다.

 마담 보바리를 두고 사십 대가 되어야 그 문학적 의미가 사무치게 다가온다는 스승의 말씀은 바로 이 작품이 시골 마을이라는 현실을 가운데 두고 여인의 환상으로부터 환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삶의 무서운 드라마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무론 이상과 좌절, 환상과 환멸의 드라마가 꼭 중년만의 것일까? 젊어서는 어렴풋한 예감으로, 나이 들어서는 쓰라린 체험으로 우리는 모두 그 드라마의 중인공인 것이다. –본문

 마담 보바리의 책도 책장에 고스란히 꽂혀 있었다. 제목이 뭔가 생경해서 혹은 익숙해서, 하여튼 어느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찌되었건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이 책을 만났을 때 왠지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아직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눈인사 정도는 하는 관계의 사람을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마주친 느낌이랄까. 이름만 알고 있는 이의 존재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이 마담 보바리를 마주한 때의 모습이었다.

 아마 아무것도 모르고 줄거리만 읽었다면 또 하나의 막장드라마의 출현이라며 혀를 차고 있었을 것이다. ‘훌륭한 군인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고전문학이라는 이야기 속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보면서 대체 왜 이런 이야기들이 꼭 읽어야만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불륜이라는 단어에만 한정하여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그 안에 담긴 하나하나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말이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고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무시무시하게 빨라진 오늘날 우리에게, 더 이상 십 대라는 나이는 큰 의미가 없다. 나나 내 자식들이나 심지어 내 부모들마저도, 우리는 모두 똑같이 성장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제 성장은 평생의 과제가 되었고 그 막막한 불확정성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격려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데미안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본문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언제나 옳은 것이요, 진리이다, 라는 생각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굳혀져 같다는 것을 느껴간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고리타분한 어른들의 생각과 틀을 반대하던 내가 이제 점점 그 모습을 고스란히 닮아가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서 책을 찾기 시작했다. 나이가 유일한 무기가 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 숫자에만 의존해서 타인에게 큰소리 칠 수 밖에 없는 내가 되기 싫고 두려워서 책을 읽고 있다.

 여전히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아직도 나의 세계는 편협하기만 하다. 이제 책을 읽기 시작한 1년차이기에 누군가에게 이 책 괜찮아요, 라고 그들처럼 이야기 하기는 힘들겠지만, 이들이 추천해준 책을 읽어보며 나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아르's 추천목록

 

 

『카프카의 서재』 / 김운하저 

 

 

 

 

독서 기간 : 2013.07.19 ~ 07.2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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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다 1 - 헬로 스트레인저 길에서 만나다 1
쥬드 프라이데이 글.그림 / 예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표지를보는 순간 따뜻하다, 예쁘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화창한봄날일 것만 같아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표지의모습 그대로 책 장 속에도 컷마다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릴 적 보았던 꽃미남 꽃미녀의 모습은 아니지만그래서 오히려 정감 가는 이들이 있는 웹툰. 혹자는 이 나이에 무슨 만화야? 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는 다고 해서 읽는이가 모두 현자는 아니지 않은가, 라고 대답해 주고 싶다. 당신이만화네, 라며 핀잔 주는 것은 당신이 딱 만화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딱히 연애 이야기만이라고도 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소소한 연애이야기도 담겨 있다.

무조건적인사랑이야기가 아닌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엮어져 있기에 읽으면서 한 번쯤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 비슷한 모습을 보면서 흠칫 놀라게 되는 그 순간이 오면, 주마등처럼빠르게 기억들이 흘러간다. 이미 지나간 과거이지만 어쩜 그럴 때에는 빛의 속도로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것인지, 기억들이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하고 등장한다.

애꿎은마주침으로 인해 애꿎게 뛰는 가슴을 안고, 덕분에 우리는 추억에 잠시 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갖는것일지도 모른다. 그 동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던 이야기를 잠시나마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돌아갈수는 없으나 사라지지 않는 그 시간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에 애꿎은 마주침을 미워할 수 많은 없는 노릇이다.

책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여유로움을 느낄수 있게 해 준다. 저자가 말하듯이 지름길로 가서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시간을 멈추며곱씹어 보게 하는, 그 시간을 쥐락펴락하며 늘어트리는 책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괴리 사이에서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열정은 또 다른 재능이라고 말하는 여자와 열정만으로는 모든 것을 이룰수 없다는 남자의 대화를 보며 나는 내 앞의 수 많은 현실 속에서 열정과 재능 사이에서 저울질 하며 포기하고 또 체념했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컷의 그림 안에서 이전에는 생각지 못한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나라는 사람의 히스토리는 어떻게 그려질까. 다시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들여보게 된다.

1권이마무리 될 즈음 4명의 남녀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다. 그들이앞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지, 네 남녀의 로맨스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질 소소한 일상 속의새로운 발견들이 무엇일지가 사뭇 궁금해진다.

아르's 추천목록

『사랑도감』 / 아리카와 히로저

독서 기간 : 2013.07.21~07.22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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