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에세이 분야를 그다지 즐겨 읽지 않는다.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다만, 누군가의 인생을 고스란히 답습하듯 따라가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근거 따위 없는 거부감에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청춘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 한 책도 손도 대지 않고 고스란히 책장에 넣어 두었으니, 참 희한한 일이다. 이것도 선물 받은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책장에 자리하고 있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은 내 나름대로는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스스로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표지 한 구석에 차지하고 있던,
우리는 혼자여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홀로 서지 못해 외로운 것이다. 이제 두려워 말고 기대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자기마의 오롯한 생을 찾아가야 한다, 라는 문구 때문에 말이다.
혼자 서서 나의 인생을 찾아야 한다, 라는 내 나름대로의 신념과도 비슷했으며 그래서 그렇다면, 한 번 읽어볼까? 라는 작은 동요에서 읽기 시작한 책은 읽는 내내 편안함을 전해주었다. 요새 너무도 흔해 빠진 힐링을 위한 목적 보다는 소담스럽게 저자의 이야기를 담아 놓은. 그래서 옆에서 소근소근 이야기 하는 그 말투에 참 편안히 몸을 맡겨 책을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그 어떠한 거부감도 없이 말이다.
3년간의 백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 회사에 스카우트 되어 카피라이터로 전향하고 지금은 작가로 살고 있다는 그의 문체는, 인생 역전이라는 로또에 당첨된 자의 우쭐함이 아닌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마도 그 평이한 이야기가 오히려 더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은 인생에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만 터져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인 듯 하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 되기도 하다. . –본문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 시절, 그 때만 해도 나는 식당에 혼자 가거나 영화를 혼자 보러 갈 용기가 없었다. 좀 더 솔직히 이야기 하면 혼자는 가겠는데, 그렇게 하자면 식당은 텅 비어 있어야 하고 영화관을 대관하여 혼자 들어가는 형식의, 그러니까 그 어떠한 타인의 시선이 없을 경우에만 실행이 가능했다.
지금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그 오묘한 심리는 아마도 타인의 눈에 비친 혼자 된 내 모습이나, 오롯이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며 살까?
예를 들어 식당에 들어갔는데 누군가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하자. 그 순간 스치는 생각은 혼자 왔구나, 이 정도가 다 일 게다. 외향적인 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한들 길어야 5초 남짓. 홀로인 타인은 내게 그다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 곳이 식당이든 영화관이든. 그렇다면 타인 역시 홀로인 나에 대해서 별 다른 관심을 쏟지 않겠구나, 라는 이 간단한 생각을 하고 혼자인 시간을 즐기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였다.
이 낯선 별에서 언제까지 이방인처럼 부유하며 떠돌아다닐 순 없지 않은가. 그래, 받아들이자. 외로움을 기꺼이 껴안아보자. 외로움도 청춘의 특권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 –본문
28살에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나면서 주변의 염려와 걱정에도 생각을 정리할 겸 떠난 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출발한 적이 있다. 약간의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발걸음 마다 어느 새 새로운 것들이 눈 앞에 가득해졌다. 그제서야 나는 풀 한 포기, 버스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게 되며 오롯이 나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나만을 위한 15분의 시간을 먼저 떼어놓아라. 당신을 은행 예금 계좌로 생각하라. 항상 인출만 한다면 감정적 파산 상태가 될 수 있다. 매일 스스로를 위해 쓸 수 있는 15분을 떼어놓고 그것을 내면의 시간 또는 예금시간이라 부르도록 하라. –본문
일상이라는 틀 안에서 매번 이렇게 훌쩍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장소를 이동 시킬 수 없는 현실이라면,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이동시켜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것을 주창하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저자가 느끼고 겪었던 것들에 대해 담아 놓은 것들이라 공통적인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이야기들을 담아 놓고 있기에 읽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종은 누가 그걸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그걸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주기 전에는 그건 사랑이 아니다. . –본문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문자도 해보고 부모님께 드릴 용돈을 찾으러 부지런히 은행도 다녀왔다. 마음만 품고 있다가 평생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해 남은 시간 한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저자의 고백을 듣고서야, 지금이구나! 라는 생각에 주섬주섬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남자와의 관계도 같은 식이었죠. 내 감정은 접어두고 그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정말 처절하리만큼 많은 노력을 했어요. 내가 원하는 게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감히 할 수도 없었어요. 그이는 내가 뭘 원하기를 바랄까? 하는 식의 질문밖에는 내 자신에게 던질 수 없었어요. 내가 착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었지만 아니었어요. 겁쟁이라 그랬던 거예요. 더더욱 잘못했던 건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는 거였어요. –본문
때로는 그 어느 연애 코치보다도 따끔한 일침에 나를 다잡아 보기도 하고 상대방을 통해서 나를 보라는 어느 아버지의 말씀을 그를 통해 전해 받기도 하고. 어차피 사는 인생사 다 비슷비슷한데 대관절 무엇을 위해 타인의 삶을 탐닉하느냐, 라며 에세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내가 조금씩 무너져 가는 느낌이 든다.
화려한 반지나 목걸이보다도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이 눈물을 끌어낼 수 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게 진짜 진심이며 매력이다. –본문
화려한 문체나 수식어구가 아니더라고 그는 일상 속 대화만으로 나를 그의 곁에서 이야기를 경청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그가 말하는 진심의 힘이자 매력인가보다.
아름다운 표지나 캘리그라피가 아닌 책 안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그의 이야기를 집중하게 하는 힘. 한 3~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참 재미있게 저자와 대화를 나눈 듯 하다.
우리는 나이가 적든 많든 아니면 어중간하든 지금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 위에 서 있습니다. 완성이란 없는 인생에서 그저 인생의 한 시점에 있을 뿐입니다.
설령 좋은 일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별 일 없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웃으며 마무리하고 내 안으로 나를 초대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씩씩하게 새 아침을 꿈꾸었으면 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의 청춘은 아침처럼 빛날 것입니다. . –본문
어찌보면 별거 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지만, 어제의 나의 하루도 별 거 없이 지나오지 않았는가. 그 하루하루가 또 나의 과거가 될 것이고 그렇게 오늘은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별거 없이 무사히, 그렇게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 새 또 나는 성장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나의 청춘도 찬란히 빛이 났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