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소설을 볼 때는 영화 페이첵이 떠올랐다. 기밀 유지를 위해 프로젝트마다 기억이 지워지는 주인공 앞에 던져진 몇 가지 힌트를 가지고서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길모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때론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가 보이기도 하고, 블랙잭으로 카지노를 점령하면 MIT 공대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21이 보이기도 하고. 숫자에 얽힌 냉철한 이야기일 것만 같은 바보이자 천재로 불리는 길모는 영애에 대한 더 없이 순수한, 때론 그 순수함에 답답하리만큼 한 여자만을 바라보고 그녀를 쫓아 이 거대한 무대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하나의 말이 되어 간다.
뉴욕 퀸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발생. 피해자 얼굴은 약품으로 소독 되어 있었으며 주변에는 알 수 없는 숫자와 문장이 수수께끼처럼 펼쳐져 있다. 이 사건의 한 장면은 앞으로의 거대한 이야기의 서막이 올랐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 된다.
이토록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길모의 삶은 바로 영애를 지키겠다는 약속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그때 난 강씨 아저씨가 설계해둔 게임의 룰을 깨달았어요. 우리에겐 자금을 인출할 수 있는 세 개의 조건 중 두 개가 갖추어져 있었어요. 윤영대가 지니고 있던 예금증서와 예금자의 직계가족 영애, 비밀번호만 알면 세 개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죠.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강씨 아저씨와의 약속이 떠올랐어요. –본문
타인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에 불과한 일들이 길모의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에는 모든 것이 숫자가 두둥실 떠오르게 된다. 이런 것들까지 된단 말인가? 라는 의문 따위는 단숨에 날려버리고 그는 말 없이 조용히, 그만의 세계에 빠져서 숫자 속에서 행복한 시간들을 지내고 있었다. 그래, 그는 평범한 한 소년으로 시간이 흘러 한 남자 되어 살았을지도 모른다. 수에 밝았기에 올림피아드에 나가 지금 그가 앉아 있는 취조대에서가 아니라 시상대에서 만나볼 수도 있었겠지만 파란 책자에 자신들의 삶을 녹아내리고자 했던 길모 아버지의 소망이 소박하지만 단순했던 이들의 삶을 단 한 순간에 뒤집어 버린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회적 관계와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고 행동이나 관심 분야, 활동 분야가 한정되며 같은 양상을 반복하는 질환이예요. 심문이 뭔지도 모른다는 뜻이죠. –본문
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길모는 그 모든 현상을 숫자로 풀고 해석하고 그것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수에 대에 월등한 능력을 지닌 그를 보면서 ‘돈’이라는 물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신이 내린 재능일지 모르지만 그 능력은 어디를 가나 탐욕의 대상이 되어 그를 수 많은 사람으로 삶을 위장시킨다.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숫자에 능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길모.
그는 그저 숫자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아니면 그는 이 모든 과정을 나약한 듯 휘청거리며 버티는 것 조차 모든 것이 계획된 판 속에서 내가 휘엉청 넘어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무표정한 듯 하지만 웃고 있었으니까.
평양에서 서울까지 261km를 오기 위해서 길모와 영애는 대륙을 건너며 목숨을 건 사투를 걸어야 했다. 지도 상 직선으로는 몇 센티미터 되지 않는 그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그들은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을 통해 마카오, 홍콩을 거쳐 서울로 당도하게 된다. 그 사이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버리고 제 2, 제 3의 삶을 살아야 했으며 영애를 찾기 위한 길모의 끈질기면서도 아련한 행보가 이어진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이기에 이렇게 장대한 스케일의 여정이 펼쳐지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왜 우리는 쉬이 평양과 서울을 오갈 수 없는지. 같지만 다른 나라로 분리되어 있는 우리는 이토록 찬란한 여정을 거쳐야만 만날 수 있는 운명인가보다.
그녀는 끊임없이 부유하고 화려한 인생은 원하고 바랐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어 했고, 가지 못한 곳으로 가기를 원했다. 공화국의 정치범에서 상하이 최고 조직 수장의 여인으로, 마카로 프리마 호텔의 클럽 가수로, 그녀는 끊임없이 내 주위를 돌며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행성 같았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원심력만큼이나 강한 인력이 작동했다. 툇마루에 앉아 가만히 햇살을 받는 동안에도, 낯선 여인들을 두리번거리는 동안에도 인력은 서로를 끌어당겼다 –본문
마지막을 읽고 나서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 것인가에 대해 골머리를 앓게 된다. ‘나는 거짓말쟁이이다’라는 명제와 같이 어느 것을 해도 역설적인 참과 거짓의 사이에서 이 모든 판의 구도를 다시 재 배치해보고 또 생각해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한 구절.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것을 믿는 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는 길모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가짜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길모와 영애는 지금 베른에 살아있고 나이트 미처씨의 수첩은 주인을 찾아갔다는 사실. 그래 이것이면 모든 문제는 풀렸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련다. 잘 만들어진 판 속의 게임에 참여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아직도 설레고 있으니 이 기분만 안고 홀가분히 책을 놓아야겠다.
마법이, 기적이 존재하느냐고 당신이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나는 기적을 겪었고 마법을 보았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당신이 다시 묻는다면 나는 또 대답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그것이 기적이고,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그것이 마법이라고. –본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