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와 길을 걷다 -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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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내 스스로 선을 긋는 것이 동화라는 것에 대한 장벽을 쌓으면서 이미 잊어버린 기억들을 다시 쌓을 기회 조차를 없었던 날들이 계속되는 도중, 이 책을 마주하면서 이전의 기억은 물론이고 그 동안은 꾹 누르고 있었던 동화로의 회귀가 이어졌는데 읽는 동안 참 따스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빙그레 웃음이 나기도 하고 때론 그 때의 쓸쓸함이나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의 계산 속에서 그들은 어리섞었다. 앞뒤를 잴 줄 몰랐고 우열을 가릴 줄 몰랐다. 감상적이었고 비효율적이었다. 내가 그들의 감상을 예의 바르게 거절할 때마다 그들은 '마음'을 말했다. 내가 그들의 비효율을 언짢게 지적할 때마다 그들은 또 '마음'을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과의 다른, 세상 저편의 우선순위를 가진 나는 그들의 무계산 속에서 몇 번의 당혹과 부끄러움 뒤에 입을 다물었다. -본문 

일 년에 한 번 정도 꼭 다시 읽는 책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어린 왕자>이다. 어릴 때는 어린 왕자라는 그 외모에 끌렸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어린 왕자가 만났던 인물들의 모습들에 점점 닮아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서글퍼지면서도 다시 어린 왕자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이 책은 여기서도 마주할 수 있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서는 엄마인 잎싹이 자신의 몸을 족제비에게 내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 모성인 것인가, 라며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곤 했다. 자신의 아이도 아닌 초록이를 그렇게도 지극정성으로 키우고 나서 결국은 떠나 보내야만 하고 마지막 역시도 비극으로 끝나는 이 동화를 보면서 과연 이것이 어린이를 위한 동화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이 영화를 보았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왠지 모르게 서글프기도 하면서도 애잔해지곤 했다 

"왜 여자들은 생의 주인공으로 살려 들지 않은 걸까요?"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한, 잘나가는 디자이너였다. 

 첫 번째 지인의 말에 나는 100% 공감한다. 잎싹의 모성이 조금만 덜 비장해서 자식뿐 아니라 자신의 행복도 살필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자식이 떠난 뒤 껍데기만 남은 생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후배의 말에는 다른 할 말이 있다. 

 "네 말처럼, 많은 여성들이 헌신적인 조연으로 살아. 하지만 그건 그들에게 생의 주연이 되는 또 다른 방식이란다." -본문

 

 내가 이 책을 왜 읽어,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이 책들을 당당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몇 번의 울림을 느끼게 해 준 이 책을 지금에서야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에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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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안데르센 동화 / 우라야마 아키토시저

 

 

 

독서 기간 : 2014.01.18~01.2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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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집짓기 - 마흔 넘은 딸과 예순 넘은 엄마의 난생처음 인문학적 집짓기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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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s Review

 

  

    

 엄마와 무엇을 해 본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 흔한 장면 중 하나인 목욕탕에 가서 함께 뜨거운 탕 안에 몸을 녹여 본 적도 10여년은 된 듯 하다. 함께 미용실에 가서 랩을 쓰고 있는 우스꽝스런 모습도, 컴컴한 영화관에서 자리를 헤매며 들어가 앉아 팝콘을 우적우적 먹으며 하던 일들도 나의 기억 속에는 이미 10살 이전의 기억 밖에 남아있지 않다.

 언제나 가게를 운영하시던 부모님의 일 때문에 휴가도 가족끼리 함께 가는 것조차도 힘든 일들이 많았기에 엄마와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바로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 제목을 보면서 그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짓는 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아닌 엄마와 함께라는 부문에서 말이다. 여행을 가려고 해도 가게 문을 닫는 것이 녹록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무엇을 이토록 오래 함께 한다는 것에서부터 설렘과 부러움이 같이 마음을 일렁인다.

 그저 집을 짓는 과정만을 오롯이 담아 놓은 것이라면 아마도 이 책을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모녀들은, 단지 모녀만의 이야기가 아닌 그녀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딸인 그녀, 그리고 그녀의 아들까지 3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으며 그러한 그들의 삶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 미래의 모습들이 한아름 담겨 있었다.

 집을 짓기 위해 함께 하는 예순 넷의 엄마와 마흔 셋의 딸의 이야기를 보면서, 엄마에게도 이 책을 함께 읽어보자 말씀 드리곤 했다. 아직 예순 넷이 되려면 멀었다, 라며 씨익 웃으시던 엄마 역시도 이 책을 읽는 것을 금새 동참하셨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엄마를 떠올렸다면 엄마는 이 책을 읽으며 외할머니를 떠올리시지 않을까 싶다. 엄마의 엄마는 곁에 계시진 않지만, 언제나 엄마의 마음 속에는 있을 테니 말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딸이 아버지의 집을 짓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와 함께 살 집을 제일 잘 지으리라고 여긴 사람,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을 찾아가 진정한 자기 집을 지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중략)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마음 어딘가에서부터 번지기 시작하는 아픔이 아직도 있다. 분노가 섞인, 울분이 있는, 억울함조차 깃든 아픔들 말이다. 하지만 집을 지으면서, 함께 기대면서, 그 아픔에 대해서도 작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집짓기 이야기면서 모녀의 이야기다. –본문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 거주할 곳을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처음에 저자이자 딸인 그녀는 엄마가 당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확고히 말하지 못하는 부분에 있어서 안타까우면서도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대체 왜 내가 원하는 것을 쉬이 그려내지 못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엄마를 떠올리는 순간, 그 답은 너무도 쉽게 풀리고 만다.

 엄마는 언제나 무엇이 먹고 싶니?’ 라고 물어보시곤 하셨지만 단 한번도 나에게 무엇이 먹고 싶다라고 마침표로 그녀의 바람을 끝마친 적이 없다. 이름만 말하면 뚝딱 만들어지는 마술사인 듯, 엄마에게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쉬이 말하곤 했지만 엄마에게 무엇이 드시고 싶은지는 물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였을까, 몇 주 전 함께 저녁 시간에 만난 김에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는 제안에 집에 밥이며 국이며 반찬이 한 가득 이라며 손사레치는 엄마를 억지로 끌고 신촌 사거리를 헤매는 동안 엄마는 쉬이 당신이 드시고 싶으신 것을 선택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10여분은 헤맨 끝에 냉면을 먹어볼까, 라며 수줍게 이야기하시던 엄마는 젓가락을 다 놓고 난 이후에야 말씀하셨다. 이 냉면 한 그릇을 몇 년 전부터 먹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엄마는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집에 사신 적이 없다. 좋은 집은 언제나 먼 곳에 있었고, 그런 집을 꿈꿀 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셨기에, 아예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고 사셨다. 어쩌면 온돌이 있고 이불이 있는 집만으로도 감사해하셨는지도 모른다.
 
인테리어라고는 어쩌다 길에 핀 들꽃을 꺾어다가 아무 병이나 컵에 꽂아두는 것이 전부였던 엄마. 그런 엄마의 집에 대한 꿈을 눈앞에 드러내는 일은 좀 슬픈 일이기도 했다. –본문

 그렇게 하나 둘씩, 엄마의 동선에 대해 생각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 엄마에게 필요한 것을, 어떠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이 후에 엄마에게는 쓸쓸한 공간이 될 수 도 있다는 사실에 다락방도 사라지고 드레스룸도 사라진, 그야말로 엄마에게 최적의 공간으로 하여 단층의 소담스러운 공간이 탄생하게 된다. 다만 유리와 문이 가득한, 어디서든 빛을 가득히 담을 수 있는 엄마의 집이 점차 나타나게 되는데 단순히 집을 짓는 과정이 아닌 그 과정 속에서 그녀들의 과거 속 이야기가 현재에 벽돌 한 장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들이 함께할 내일을 그리고 있었다.

 집은 나의 것과 가족의 것이 섞여 있는 곳이다. 간혹 아이 옷틈에 섞인 내 옷을 보거나, 내 양말서랍장에서 튀어나온 아들의 양말 한 짝을 보고 웃음 지을 때가 있다. 특히 아들이 아기였을 때 신었던 아주 작은 양말을 보면, 한순간에 시간은 내가 새댁이었던 때로 돌아간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그때, 서랍장은 고요하게 과거의 시간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본문

 이미 딸이 마흔을 넘어 중년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눈에는 여전히 딸은 어린 딸인가 보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하라고 잔소리를 하시던 할머니의 마음을 나는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 책 속의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서 감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을 하게 된다.

 엄마의 보살핌을 통해 딸이 중년으로 장성을 한 그 시간 동안, 딸은 다시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엄마가 되어 한 아이의 순간순간을 함께해야 하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해야 하는 그 시점이 되어서 그녀는 그녀의 엄마를 다시 이해하고 있었다.

 아이를 업고 다닐 수 있었을 때를 나는 종종 그리워한다. 편리하게 만들어진 아기띠나 처네보다 아이와 내 몸을 하나로 돌돌 말아 묶는 그 보드라운 포대기를 그리워한다. 얼마나 편안하고 따듯했었는지, 이 아이와 함께라면 세상이 두려울 것 같지 않았다. 어미에게 새끼란 그런 존재이다. 지켜주면서 살 힘을 얻는 관계. –본문

 

 

 

 이 책 속의 모든 것들을 이해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엄마의 딸로서만 남아있으니 말이다. 아직 가진 것이 충분치 않기에 엄마가 남은 여생을 사실 수 있는 그녀만의 집을 지어드릴 수도 없지만 나는 문득 조금씩이나마 엄마와 무언가를 함께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마주했던 엄마라는 막연한 그녀의 모습이 아닌 진짜 엄마가 원하는 엄마의 소망들을 알아 가보고 싶다는 작은 설렘이자 바람이다.

 나는 과연 엄마와 무엇부터 함께 하게 될는지. 앞으로의 우리 모녀 앞에 펼쳐질 이야기들이 더 늦어지지 않게 시작해 보려 한다.

 

 

아르's 추천목록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 신현림저

 

 

독서 기간 : 2014.01.1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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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밥상 - 건강.젊음.활력을 되찾는
방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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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처음에는 그저 밥상에 대한, 우리가 먹는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들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는 맞다. 하지만 그 동안 알아왔던 것들에 대한 철저한 배신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과연 이것들이 진실이라면 내가 그간 먹어왔던 것은 음식이 아닌 독이었다는 사실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과연 이 책 안에 있던 것들이 진실이라면 과연 우리는 우리의 몸을 생각해서 먹었던 먹거리들이, 때론 몸을 보강하기 위해서 먹었던 비타민제를 포함한 오메가 3부터 의사의 처방에 따라 먹었던 약들마저 실은 우리의 몸을 해하는 것들이었다는 것에서 분노를 금치 못하게 된다.

무지에서 온, 아니 무지라고 하기에는 사실은 그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숨겨져 왔던 것들이 이제서야 막 들어난 것이라는 것에서 그 동안의 우리의 식탁은 누군가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 배신감이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

 

먹는 것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은 수 십 년 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 있다. 그저 한끼의 식탁은 먹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고스란히 우리의 몸에 나이테와 같이 축적되는 것이다.

의성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없다. 음식이 곧 약이 되게 하라.' 고 말했다.

우리가 40대에 앓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심장질환, 뇌졸중은 모두 다른 이름을 한 같은 질환이다. 이러한 질병은 50대에 생을 마치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세 명 중 한 명을 안타깝게도 성인병과 암으로 사망하게 된다. 40대의 대사성 질환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지방과 진짜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이다. -본문

 

좋은 지방과 진짜 탄수화물은 무엇일까. 각종 육류를 통해서 섭취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단백질은, 우리가 건강을 위해서 즐겨 먹는 닭가슴살과 좋은 지방이라고 생각되는 올리브 유 등이 사실은 광고를 통해서 세뇌 당한 것이며 진정한 단백질은 채소를 통해서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올리브 유가 좋은 것이 아닌 올리브가 좋은 것이며 올리브유나 참기름들은 정제유로 만든, 그야말로 화학적인 가을 통해 그 원래의 영양소가 모두 파괴된 나쁜 지방 덩어리라는 것에서 과연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먹었던 것일까.

좋은 지방, 나쁜 지방, 이상한 지방을 구분하는 방법이 여전히 헷갈리는 독자들을 위한 간단한 구별법이 있다. 고기, 계란, 우유의 지방은 비누로나 만들어 사용하라. 수은이 들어 있는 등푸른 생선은 바다로 돌려보내라. 바코드가 찍힌 정제 기름 역시 가공식품일 뿐이다. 정말로 좋은 기름은 푸른잎 채소와 견과류에 꼭꼭 숨어 있다. 여전히 등푸른 생선에 들어있는 오메가 3가 아쉰운가? 당신은 섬유질이 들어있다고 대마초를 씹어 먹을 것인가? -본문

 

 

 

 

채식동물도 아니고 풀만 먹어서는 힘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채소도 먹긴 먹어야 하지만 육류나 육류보다는 건강을 생각해서 생선을 먹는 것을 택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인간이 섭취해야 하는 단백질이라는 것을 꽤나 합리적으로 선택해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육류보다는 해산물을 먹고 그와 함께 일정량의 채소나 과일 등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름 대로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고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육식을 먹어주는 것이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육류는 물론이고 우유조차 마음껏 마실 수가 없을 것만 같다.

과연 우리는 안전하고 믿을 만한 먹거리를 먹고 있었던 것일까?

 

만약 누군가가 돼지의 피와 오줌, , 호르몬 154밀리리터를 컵에 담아 '돼지 칵테일'이라고 이름을 짓고 당신에게 권한다면 당신은 이를 들이킬 것인가? 삼겹살을 먹는 일이 바로 이런 행위다. 오늘 삼겹살 1인분을 먹었다면 돼지 칵테일 154밀리리터를 들이마신 것이나 다름없다. 삼겹살 1인분 중 154그램은 돼지의 수분이기 때문이다. -본문

 

 

 

 

 

 

매일 아침 우유 하나를 마시면서 시작한다. 아침을 먹고 나서도 건강을 위해서, 미래의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마시고 있는데 이 책 속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 동안 마셨던 우유들이 넘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완전 식품이라 믿었던 우유를 마셨던 것일까.

 

 

젖소 자신의 무게의 몇 배의 분비물이 유방을 토해 빠져나가는 것인데, 이건은 상식적으로 무리이다. 결국 이러한 무리한 착유 과정을 통해 유방 속의 우유와 함께 상피세포, 혈액, 고름까지 모조리 빠져 나온다. 그렇게 짜낸 우유는 고온살균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고온살균한다고 우유의 고름이 없어질까? 살균이란 고름에 있는 균을 죽이는 과정이지 고름이나 분비물 자체를 없앨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세계적 동물권리운동가인 게리 유로프스키는 하버드대학교 강연에서 우유에 들어 있는 이러한 고름에 대하여 명확히 말하고 있다. "우유 한 컵에는 눈에 넣는 안약 한통의 고름이 들어있습니다. 이제 우유를 마시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본문

 

당류를 멀리하고 소금은 철저히 식단에서 줄이며 그 무엇보다도 흰 쌀밥이 아닌 곡류를 먹고 뿌리 달린 채소를 가까이 해야 한다. 알약이 아닌 실제 음식을 통해서 섭취를 해야 하며 그 동안 우리가 건강을 위해 먹었던 것들이 과연 진실인가에 대해서 다시금 점검을 해 봐야 한다.

심장과 뇌를 위한 우리의 밥상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나의 식탁을 다시 바라보며 간편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밥상을 찾아 먹어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우유나 육류를 당분간은 멀리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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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배신 / 리어 키스저

 

 

 

 

독서 기간 : 2014.01.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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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고전 : 한국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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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지구를 군림하고 있는 듯한 그 자세가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이 지구 상에 현존하는 어떠한 생물체보다도 가장 지능이 뛰어나고 그렇기에 우리는 지구에 나타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순간 이 곳을 점차 개발하고 발전시켰으며 인간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왔다는 것은 지난 역사와 현재의 모습들을 통해서 충분히 인지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과연 인간을 위해서만 오롯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하여 우리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이 땅 위에 있는 것들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암묵적 합의를 이 지구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얻은 것일까. 인간에게 필요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쓸어 담는 우리의 행태를 보면 과연 이 모든 것이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반복된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지배자의 위치에 올라 모든 것들을 피지배층으로 전락시켰던 것일까.

 모든 생물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중심주의적인 편견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세워놓고 자신의 관점에 다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 말고 다른 생물이 언어를 사용하리라고는 처음부터 아예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최근 들어 다른 생물도 인간 못지 않게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속속 밝혀내고 있습니다. –본문

 

이 책 안에는 옛 선인들의 글을 통해서 우리의 행태가 과연 올바른 것들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었다. ‘녹색이라는 것이 빛깔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닌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 등 모든 것들을 포괄한 것임을 서문을 지나 페이지를 넘기면서 깨닫게 된다.

  봄철이 되면 산 속에서 버섯을 채취해서 이웃들과 먹었다가 알고 보니 독버섯이기에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기사들을 가끔 마주하다 보면, 먹지도 못할 이름 모를 독버섯들은 대체 왜 솟아 오르는 건가 하면서 때 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었다. 먹을 수도 없고 심지어 먹었을 경우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기에 독버섯의 존재 자체에 대해 괜한 시비를 안고 있었는데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독버섯은 인간이 아닌 자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란 것을 배우면서 다분히 인간적인 시각에만 사로잡혀 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규보의 <이와 개에 관한 생각>을 읽어보면 개를 때려 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를 잡아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불쌍하다기 보다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길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나 역시도 사실 길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독버섯을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는 나와 길손이 는 죽여도 된다는 것이라면 이규보는 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보며 인간 스스로가 기준이 되어 필요/ 불필요는 논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그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동양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몇 해 전 일본에서는 동물을 학대하거나 유괴하는 경우 지금까지 명목적으로 벌금형을 내리는 법을 고쳐 이제는 무거운 벌금형과 함께 감옥살이를 시키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나 벼룩을 보호하자는 운동은 눈을 씻고 세계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동물에 대한 편애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규보는 바로 이런 편애에 쐐기를 박고 있습니다. 자식을 편해하는 것만큼 나쁜 것도 없듯이 생물을 크기에 따라 편애하는 것도 옳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만물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생태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본문

 이나 벼룩에 대해서 별 다른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없어져야 할 해충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행태는 김지하의 <작은 것을 보자>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는 유익하지 않은 곤충일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필요한 것들을 인간은 단지 자신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 혹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만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충고를 하고 있다.

 생태계라는 집안에 살고 있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꾀할 때 생태계는 그만큼 건강하고 풍요롭습니다. 김지하에게 생명이란 궁극적으로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상생의 관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상생 관계에서는 종이나 개체의 크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야말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눈을 돌릴 때입니다.  –본문

 고전 속에서 그 안의 인간사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느낀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 안에서 자연 속의 인간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처음 해 본 듯 하다. <녹색 고전>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느꼈던 그 생경함은 책을 덮으며 땔래야 땔 수 없는,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지며 고전에서도 이토록 말하고자 하는 이 녹색의 생명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 지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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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레이첼 카슨저

 

 

독서 기간 : 2014.01.0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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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 세이지 1 -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
고선미 지음 / 스프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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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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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에 친구의 추천으로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나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대한민국 안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그저 평범한 가정의 주인이 되어 도란도란 살아보겠다는 바람이 그녀들에게는 허황된 꿈을 넘어 넘볼 수도 없는 것들이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며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심지어 이 책을 보고 나서 책장의 가장 구석으로 밀어 넣어버렸으니 이 책 속의 세상이 더 이상 이 곳에서 살아 숨쉬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클라리 세이지>를 마주하며 현재의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마주할 수 있었으며 20대나 30대나 참혹하리만큼 서글픈 현실은 여전히 외면하고 싶은, 나에게는 도래하지 않을 미래라고 굳건히 믿고 싶으면서도 20대에는 막연하게 이것은 그저 픽션일 뿐이다! 라며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 발버둥 쳤다면 30대가 된 지금은 그래, 그럴 수 있어, 라며 처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꽃비가 되어 흩날리고 있다.

 한때 나는 상상했다. 아이를 낳아도 나는 우아하리라. 은은한 커피 향처럼 나의 삶도 아이들과 더불어 여유롭고 평화로우리라…’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슬라이딩하듯 인어공주 머리핀을 낚아챈다.

 하지만 지금 난 상상조차 못했던 세계에 살고 있다.’ –본문

 엄마들의 카페인 클라리 세이지를 통해서 4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다.

어느 날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게 된 윤지아는 현재 두 딸의 엄마다. 연애다운 연애를 하고 현재의 남편과의 결혼이 아닌, 더 이상 사랑은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녀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남편의 끈질긴 구애 때문이었다단순하게 첫 사랑을 찾아가는 철부지의 모습이 아닌, 살기 위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녀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먹먹함을 지나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게 된다. 왜 우리는 늘 이토록 마지막에 가서야 모든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 일까.

한 때는 잘 나가던 걸 그룹의 멤버였던 신소영은 남편과의 이혼 후 딸 다은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싱글 맘이다. 꿰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환대 받지 못한 쇼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일까.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지만 장당 20원짜리 아르바이트서부터 가사도우미로 일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여전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녀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로서…. 내 딸이 좋아하는 거 해주고 싶다고요…”
“…”
남들은 시켜도 안 한다는 공부, 자기가 좋아서 하겠다는 아이. 엄마인 내가 도와주고 싶다고요.”
“….”
그게 내가 이러고라도 사는 이유, 내 존재 이유라고요…..”
어느새 소영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본문

 이 소설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그 누구의 인생에서도 드리우지 않았으면 하는 삶이 있었으니 바로 이해밀의 삶이었다.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화보 속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그녀를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쇼윈도 부부에 불과한 것이며 자신의 아이가 해밀의 몸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남편의 외도는 계속되고 있으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해밀은 어떠한 결정 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세상 여자 중에 예쁜 거 모르는 여자가 몇이나 있어요. 연애할 때처럼 남편한테 공주대접 받고 남편한테 여잔 나 하나이길 바라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어요. 하지만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는 게 있잖아요.”

해밀은 그제야 입을 뗀다.

“…다들 꿈꾸잖아. 그림 같은 집, 나만 사랑하는 남편, 나이 들어도 고운 여자…”
남들은 예전에 깬 꿈이에요. 당신만 순진하게 오래 붙잡고 있는거야….” –본문

 그래, 여전히 한낱 꿈 속에서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을 걸어 들어가는 모습만을 그리며, 아이는 낳으면 별 문제 없이 키울 수 있고 그리하여 내가 속한 가정은 언제나 핑크 빛이 가득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 소설 속 그녀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면 할수록 아직도 크리스탈 속의 결혼만을 꿈꾸고 있는 나를 보며 이것이 나에게 도래할 미래라면 과연 나는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만이 남는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었다. 비록 힘들고 지치고 이것이 맞는 건가 하는 물음이 계속 될 지 언정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마지막의 순간 그녀들이 원하는 자리에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이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계에 있어 더는 이어갈 수 없는 곳에서의 사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가 나타나는 곳이었던 그녀들의 마지막은 우리에게도 또 드리울 수 있는 미래일 테니, 울상만 짓지 말고 다시 이 길을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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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공지영저 

 

       

 

독서 기간 : 2014.01.13~01.15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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