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친구의 추천으로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나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대한민국 안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그저 평범한 가정의 주인이 되어 도란도란 살아보겠다는 바람이 그녀들에게는 허황된 꿈을 넘어 넘볼 수도 없는 것들이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며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심지어 이 책을 보고 나서 책장의 가장 구석으로 밀어 넣어버렸으니 이 책 속의 세상이 더 이상 이 곳에서 살아 숨쉬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클라리 세이지>를 마주하며 현재의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마주할 수 있었으며 20대나 30대나 참혹하리만큼 서글픈 현실은 여전히 외면하고 싶은, 나에게는 도래하지 않을 미래라고 굳건히 믿고 싶으면서도 20대에는 막연하게 이것은 그저 픽션일 뿐이다! 라며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 발버둥 쳤다면 30대가 된 지금은 그래, 그럴 수 있어, 라며 처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꽃비가 되어 흩날리고 있다.
‘한때 나는 상상했다. 아이를 낳아도 나는 우아하리라. 은은한 커피 향처럼 나의 삶도 아이들과 더불어 여유롭고 평화로우리라…’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슬라이딩하듯 인어공주 머리핀을 낚아챈다.
‘하지만 지금 난 상상조차 못했던 세계에 살고 있다.’ –본문
엄마들의 카페인 ‘클라리 세이지’를 통해서 4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다.
어느 날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게 된 윤지아는 현재 두 딸의 엄마다. 연애다운 연애를 하고 현재의 남편과의 결혼이 아닌, 더 이상 사랑은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녀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남편의 끈질긴 구애 때문이었다. 단순하게 첫 사랑을 찾아가는 철부지의 모습이 아닌, 살기 위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녀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먹먹함을 지나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게 된다. 왜 우리는 늘 이토록 마지막에 가서야 모든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 일까.
한 때는 잘 나가던 걸 그룹의 멤버였던 신소영은 남편과의 이혼 후 딸 다은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싱글 맘이다. 꿰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환대 받지 못한 쇼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일까.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지만 장당 20원짜리 아르바이트서부터 가사도우미로 일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여전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녀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로서…. 내 딸이 좋아하는 거 해주고 싶다고요…”
“…”
“남들은 시켜도 안 한다는 공부, 자기가 좋아서 하겠다는 아이. 엄마인 내가 도와주고 싶다고요.”
“….”
“그게 내가 이러고라도 사는 이유, 내 존재 이유라고요…..”
어느새 소영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본문
이 소설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그 누구의 인생에서도 드리우지 않았으면 하는 삶이 있었으니 바로 ‘이해밀’의 삶이었다.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화보 속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그녀를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쇼윈도 부부에 불과한 것이며 자신의 아이가 해밀의 몸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남편의 외도는 계속되고 있으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해밀은 어떠한 결정 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세상 여자 중에 예쁜 거 모르는 여자가 몇이나 있어요. 연애할 때처럼 남편한테 공주대접 받고 남편한테 여잔 나 하나이길 바라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어요. 하지만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는 게 있잖아요.”
해밀은 그제야 입을 뗀다.
“…다들 꿈꾸잖아. 그림 같은 집, 나만 사랑하는 남편, 나이 들어도 고운 여자…”
“남들은 예전에 깬 꿈이에요. 당신만 순진하게 오래 붙잡고 있는거야….” –본문
그래, 여전히 한낱 꿈 속에서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을 걸어 들어가는 모습만을 그리며, 아이는 낳으면 별 문제 없이 키울 수 있고 그리하여 내가 속한 가정은 언제나 핑크 빛이 가득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 소설 속 그녀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면 할수록 아직도 크리스탈 속의 결혼만을 꿈꾸고 있는 나를 보며 이것이 나에게 도래할 미래라면 과연 나는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만이 남는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었다. 비록 힘들고 지치고 이것이 맞는 건가 하는 물음이 계속 될 지 언정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마지막의 순간 그녀들이 원하는 자리에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이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계에 있어 더는 이어갈 수 없는 곳에서의 사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가 나타나는 곳이었던 그녀들의 마지막은 우리에게도 또 드리울 수 있는 미래일 테니, 울상만 짓지 말고 다시 이 길을 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