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 정택진 소설
정택진 지음 / 해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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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안개가 자욱한 날, 어린 시절 혈맹까지 하며 의형제로 다시 태어난 3명의 남자가 배를 타고 고기 잡이를 나선다. 말이 좋아 고기 잡이지 이 배에 함께 탄 수열과 치영, 정삼은 각자의 사정이 안고서 배에 오르게 되는데 이 모습은 그야말로 ‘동상이몽’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저께 밤에, 날때는 따로 났지만 죽을 때는 같이 죽자며 손을 모은 채 의형제를 맺고는, 서로의 피를 섞은 소주를 나눠 마시며 혈맹까지 하지 않았는가. 셋이서 한 약속이니 다른 두 사람을 설득하든가, 그것이 안 되면 자신의 생각을 접는 게 맞다. 그렇게 하는 것이 친구의 도리이고, 더더구나 의형제를 맺은 끼리의 태도일 것이다. 안 그러려면 ‘의형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서로를 묶지나 말든가 말이다. –본문

 함께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다른 생각을 품고, 같은 시대를 누빈 그들이지만 각기 다른 빛을 안고 있는 인생의 이야기는 오늘 친구로 마주한 그들 사이에서 배가 뒤집히면서 그들이 켜켜이 쌓아 놓았던 속내가 들어나게 된다.

 의형제였던 그들은 과연 무슨 속사정을 안고 있는 것일까?

  한 고향에서 난, 그들의 뿌리는 동일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맺은 열매는 각기 다른 형태를 띄고 있었다. 광주로 유학을 갔던 정삼과 치영은 어긋난 약속으로 인해 형석이를 잃었으며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치영에게 십자가는 떠나 보내야만 했던 것이었으나 정삼에게는 그를 성공으로 진입하게 해준 유일한 끈과 같은 것이었다.

치영의 눈에 비친 그 붉은 네온들은 마치 요엄하게 춤을 추는 무희처럼만 같았다. 터지고 맞고,찔리고, 베어져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과도, 신음하고, 울부짖고,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는 세상과도 무관하게 홀로 붉은 빛깔로 솟아 있는 십자가가, 사람들의 슬픔이나 눈물과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춤에만 도취되어 온몸을 꼬아대는 무희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것이다. 본문

 광주의 민주항쟁을 지나오고 나서 치영은 왼쪽 어깨를 잃어야 했으며 그 이후 점차 피폐해져 가던 치영을 보며 정삼은 끝내 그를 외면하고서는 성공이라는 두 글자만을 위해 그의 뿌리를 철저히 버리고 서울사람으로의 행보만을 하고 있었다.

 죽음의 순간이 그들의 눈 앞에 들이닥쳤을 때서야 그들은 의형제로 맺어진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철 없이 그저 의기양양한 이름으로 묶였던 의형제란 이름의 그들은 서로 다른 빛깔을 내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죽음을 마주한 자세마저도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잠들어야 할 시간에도 온갖 몬들을 잠 못들게 하는 전깃불에 대면 그게 어디 빛의 축에나 끼랴먄, 그래도 그것은 외딴집 처마 밑에 작고 가녀린 빛으로 걸려, 이녁 새끼들의 무탈과, 바다에 나다니는 아들의 무사와, 바닷속 어딘가로 떠나버린 남편의 명복의 비는 늙은 아낙의 마음이 되어주었다. 그렇다면 저 토시등은 틀림없이 수열네 엄니의 것이다. -본문

 극박했던 시대를 살았던 그들의 삶을 배가 전복됨에 따라서 들여다 볼 수 있었기에 그들은 물론이거니와 나 역시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상이몽으로 시작된 그들의 이야기가 동심동덕으로 맺게 되는 마지막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달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바닥을 보이지 않으면 평온해 보이기만 하는 우리네 진솔한 지난 이야기를 마주하며 그 시대를 잠시나마 음미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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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세 가지 실수』 / 체탄 바킷저

 

 

 

독서 기간 : 2014.01.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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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날들 - 대서양 외딴섬 감옥에서 보낸 756일간의 기록
장미정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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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장미정씨가 마약 운반책이 되어 범죄자로 낙인이 찍혀 외로이 홀로 고립되었다 756일만에 자유의 몸으로, 그토록 바라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 이전에는 그녀의 이야기조차 모르고 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공포와 분노 등의 온갖 감정에 휩싸여 홀로 버티고 있는 동안 나는 이 곳에서 호위호식하며 아무것도 모르고 지낸 그 시간들이 송구하게만 느껴졌다.

 이 착하고 여린 이들에게 세상은 그들만의 소소한 삶을 누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남편의 지인이었던 주진철이라는 인물에 의해서 이들의 녹록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찌되었건 함께 할 수 있던 일상이 와장창 무너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400만원을 대가로 금강석 운송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였다. 단순히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면 되리라고 생각했던 이 여정은 그녀를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는 늪이 되어 버린 것이다.

 10월 21일에 인천공항을 떠났고, 10월 30일에 체포되었다. 심문을 받고 교도소 입소가 확정되기까지는 겨우 사흘이 걸렸다. 그 사흘간의 시간 동안 내 삶에 더 이상의 바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마저도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닥’이라는 것은 늪과 같아서 빠지면 빠질수록, 헤어나오려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깊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고 있었다. –본문

  평범한 여자에 불구한 그녀가, 그녀가 이 사건에 함께하게 된 정황은 물론 그녀의 도움으로 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이들을 검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그녀이지만 감옥에서의 그녀의 위치는 그저 범죄자일 뿐이었다. 거친 몸수색은 기본이었으며 냉혹하고도 차가운 좁은 바닥에서 그녀는 하루하루를 견뎌야만 했다. .

 1년 4개월의 시간이 흘러 법원 관할 내의 보호감찰을 받으며 임시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게 되지만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금전적인 부분을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에 그녀에게는 감옥을 떠난 이곳은 또 다른 감옥이 되고 말았다.

 저녁에 주는 수면제도, 문을 잠그는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내가 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한없이 무기력했다. 매일 저녁 들려오던 문 잠그는 소리가 없었단ㄴ 점만 빼면 교도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위층에는 여전히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엇고 외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교도소에 있을 때처럼 배가 고팠다. 아니, 차라리 교도소가 나았다. 굶주리기는 해도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으니까. –본문

  그래, 이것은 단지 그녀만이 겪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다 보니 그녀가 이 사건의 대표적인 희생양이 되었지만 그녀를 이은 제 2, 제 3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장미정씨의 읽어버린 756일을 따라 쫓아가는 동안,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어야만 했을까, 라는 사실에 계속해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자국민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우리나라의 관계 당국은 다른 사람의 일인 냥 외면하고 있었고 프랑스 정부의 계속적인 서류 제출 요청에도 그들은 시간 내에 그 일들을 처리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가족이 이렇게 억류되어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들이 이렇게 처리할 수 있었을까. 나와는 상관 없는 사람들이 아닌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이들이 처리한 행태를 보노라면 그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녀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책 속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처음이자 마지막 오점이길 기원해 본다. 또한 그녀의 삶에 있어서 잃어버린 2년의 시간이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게 남은 시간 동안 보상 받고도 남을, 지금과 같은 평범한 행복이 계속되길 바라는 바이다.

 

 

 

독서 기간 : 2014.01.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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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 운명의 지도를 뛰어넘은 영국여자들
김이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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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유리 장벽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면서 실망하기도 하고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여자이기에 이 책 속의 여자들의 이야기들이 더욱 와 닿는 거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요새 읽었던 그 어느 책들보다도 빠르게, 그러면서도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때론 정말? 이라며 혼자 놀라기도 하면서 그녀들의 당찬 이야기들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내려갔다.

 

 

 나약한 여자이기에 안돼, 가 아닌 여자라는 이름으로 그녀들만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았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쫓다 보면, 당시 사회적인 틀이나 주변의 시선들이 안겼던 것들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던 그녀들의 삶이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하지만 대범한 꿈을 꾸며 이 책을 즐겁게 읽어 나갔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던 영국 전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 책은 영국 여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책을 마주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생각한 그녀의 이미지란,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질 정도로 무언가 강하고 대범하면서 그 어느 남자들보다도 유려하면서도 능력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생각했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영화 속 모습도 그렇고 왠지 칼같이 날카로우면서도 일 처리에 있어서는 확고한 모습의 그녀일 것만 같았는데 실제 영국에서 마가렛 대처의 행보를 쫓던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면 영국에서는 냉랭함을 넘어 그녀에 대한 언급 조차도 꺼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꽤나 많은 여성들이 롤모델로 삼는 마가렛 대처를, 그녀를 품고 살았던 영국에서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라는 생각에 페이지를 계속 넘기다 보면 내가 상상했던 마가렛 대처와 그녀가 펼쳐왔던 행보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행보를 쫓다 보면 영국인들이 그녀를 가르켜 문제를 많이 일으킨 차갑고 별난 여자였다는 평가가 절로 이해가 되고 있었다.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한 워킹맘 대처는 세상에 부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실업자, 싱글맘들의 심정을 헤어릴 수 없었고,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예술가, 비판적인 지식인을 노골적으로 혐오했다. 낙후된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보다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을 폭도로 몰았고 파업을 벌이는 노조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본문

 개인적으로 고등학생 때 문학 수업 시간에 들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관한 조명이 이 책 속에서 가장 기다려 지는 부분이었는데 ‘나약한 정신병 환자가 훌륭한 남편과 결혼해 잘 살다 우울증으로 도져 자살했다’라는 식의 평가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전기와 평론집의 대부분의 평이라는 것을 듣고서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었다.

 물론 그녀가 어린 시절 강압적인 아버지의 틀에서 그녀가 원하던 길로 나아갈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오빠로부터 당했던 성폭력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삶에 있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멸의 길로 걷게 만드는 그 일을 통해서 그녀가 남자에 대한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문학적으로 추앙 받아 맞이 않는 수 많은 책들을 발간하지 않았는가. 섹슈얼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서 스스로의 방어막으로 드러난 그녀의 글쓰기 재능은 그녀를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하는 구심점이 되었으며 특히나 이 책 속에서는 그녀의 이 글쓰기 재능이 헌신적인 남편의 역할로 인한, 그의 몫을 그렇게 크게 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가능하다. 버지니아는 당시 런던 최고의 명망가 출신이었고, 유산도 많이 물려받아 경제적으로도 넉넉했다. 반면 레너드는 모아 놓은 돈도 별로 없는 유태인이었다. 지금도 가문과 계급이 중요한 영국사회에서 유태인이라는 혈통은 결혼에 별로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다. 레너드가 버지니아와 결혼하면 식민지 관료로 낯선 나라에서 고생하는 공무원 생활을 벗어나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기에 세속적 관점에서는 버지니아가 손해 보는 결혼 일 수도 있다. 본문

 마지막 장에 가서는 ‘도린 로렌스’라는 여성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데 사실 이 책 속에서 그녀를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리는 봉화 운송에 참석한 그녀는 평범한 흑인 여성일지는 모르지만 인종차별주의에게 살해당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이곳에 참석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영국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판이하게 퍼져있었고 특히나 그녀가 있었던 런던 동부와 남부는 치안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한다. 줄어들지 않는 범죄율 속에서 수 많은 흑인들이 범죄자처럼 처우 받는 그 순간에도 로렌스는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지만 그의 큰 아들은 바로 그 인종차별주의에게 무참이 살해당하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한 아이를 잃은 어머니였던 그녀는, 지리하리 만큼 어둡고 긴 싸움에 자신의 남은 인생을 바치게 된다.

 만일 개인적 원한을 풀 목적이었다면, 그녀는 20년 가가까이 힘겨운 투쟁을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노력으로 인종차별금지법이 수정되고 영국 사회 전체가 인종 문제의 폐해와 심각성에 눈을 떳다. 도린 로렌스는 다른 인종차별 피해자들을 계속 지원했고, 영국 사회를 바꾸는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본문

 여자라는 공톰점에 끌려 그녀들의 이야기에 먼저 끌렸다면 책장을 넘기면서 그녀들의 찬란했던 삶 속에 함께 몸과 마음 모두를 빼앗기게 된다. 화려할 것만 같았던 그녀들이 삶 속에도 여전히 고난과 넘기 힘든 현실들이 있었으며 그 현실 앞에서 주저 하는 것이 아닌 다시 계속해서 이전처럼 발걸음을 옮기고 마침내 이 책 안에 자리한 그녀들을 보면서 축 쳐져 있던 어깨에 힘을 받는 느낌이다. 치열했지만 우아하게 그 날들을 살았던 그녀들처럼 나의 내일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따스하면서도 훈훈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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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철의 여인들 처럼』 / 김병완저

 

 

 

독서 기간 : 2014.01.2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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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겐 남자가 필요해
한경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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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보고서는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이가 꽤나 들었지만 엄마에게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감히 할 수조차 없을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가 혼자라는 전제에도 말이다. 이기적일지는 모르겠지만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나에게 있어서 엄마에게 또 다른 남자란, 왠지 생각만 해도 어울리지 않으며 그려지지 않는 장면이니 말이다.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 드라마를 채널 돌리면서 잠깐 보았던 터라 내용을 잘 모르고 있어 이런 저런 검색을 통해 찾아보니 꽤나 인기 있는 드라마라고 한다. 케이블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3%대의 시청률이 나온다고 하니, 과연 원작 드라마는 어떠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제목만큼이나 대담한 것들인지 등등 기대를 안고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남편과 이혼 후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정완과 그녀의 아들인 태극이의 일기 형식의 에세이가 번갈아 자리하고 있다. 열 살이라는 나이기 믿기지 않을 만큼이나 성숙한 태극이는 프롤로그의 이야기 만으로도 충분히 그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과연 어떠할지, 사실 정완의 시점도 시점이지만 아이의 시점이 어떠할 지 더욱 궁금해지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는데, 서글프면서도 또 그 이야기들이 이해가 되는 것은 이미 이 이야기에 빠져들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탄 일 것이다. .

엄마에겐 사내가 필요하다. 이 말은 오해의 소지를 담고 있는 말이다. 분명하게 짚어서 다시 말하겠다. 엄마에겐 남편이 아닌 남자가 필요하다. 남편은 한 번 있었다. 나의 아빠가 엄마의 남편이었다. 엄마의 남편이 되는 것은 곧 내게 아빠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아빠는 엄마의 남편이 아니다. 아빠는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으므로 아빠가 다른 여자와 사는 게 이상할 건 없다. 아빠가 재혼을 했다고 해서 엄마까지 재혼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연애를 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게 내 생각의 전부다. –본문

 누구나 끝을 생각하고서 시작을 꿈꾸지는 않는다. 누군가와 연애를 꿈꾸며 결혼이라는 달콤한 결실로 이어지기를 꿈꿀 것이며 한 가정의 주인이 된 남녀가 함께 이뤄나갈 파란하고 아름다운 날들을 바라기 마련이다. 정완 역시도 그러한 삶을 꿈꿔왔다. 사랑하는 이와 집에서 도란도란 사는 꿈을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 속의 그것과는 다르게 점점 그녀를 옥죄어 왔으며 그리하여 그녀는 결국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게 된다.

 물론 몇 집 걸러 한 집은 이혼을 한다는 요즘의 세태를 듣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 사회 속에서 이혼한 여자로서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는 현실을 부딪혀야만 했다. 재혼 정보 회사에서조차 가입이 불가능한 정완은 그럼에도 또 다시 내일을 꿈꾸고 다시금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려보고 있다.

 이혼한 사람들의 대답은 왜 이렇게 천편일률적인지 모르겠어. '결혼은요?' 하고 물으면 '실패했어요.' 그러는 거야.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어서 헤어진 것을 왜 실패했다고 말하는지 난 이해하기 싫어. 이혼하지 않고 사는 게 오히려 실패작이라는 걸 이혼한 사람들은 알 거야. 그런데도 실패했다고 대답하는 거, 그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편견 때문 아니겠어? 불공평한 거지. 잘못된 결혼을 하는 사람에게 결혼이라는 단어에 매혹되어 ‘축하해’라고 말하는 건 당연한 거고, 잘못된 결혼 생활을 접고 제대로 살았던 싱글로 복귀하는 사람에게 이혼이라는 단어에 위축되지 않고 ‘축하해’라고 말하는 건 왜 당연하지 않은 거지? –본문

 태극 역시 자신의 주변의 여자아이들에게 마음을 나누는 모습에서 그 순간순간의 축복을 오롯이 느끼기도 하고 때론 그 관계에 있어서 상처를 받기도 하다. 열 살이라는 나이에 있어서는 누군가를 만나고 좋아하고 그러다 아픔을 받기도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다분히 자연스러운 것들이다. 아프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와 동일 선상에 있는 마흔의 나이에 있는 정완을 비롯한 그녀의 친구들인 지현과 현주, 선미 또한 여전히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그들은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스무살의 사랑은 진흙탕인줄 알면서도 무조건 달리는 경주마의 모습이었다면 마흔의 사랑은 자꾸 주춤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아직 마흔이라는 나이에 당도해 보지도 그렇다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보지도 못하였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오롯이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련하게 그녀들의 이야기가 점점 가슴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느낌이다.

 평이한 삶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이들의 삶 어디에도 우리가 꿈꾸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불륜이기는 하나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믿었던 지현에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하고 냉정한 배신이었고 남편의 외도와 시댁의 압박 속에 현주는 가슴에 멍만 안고 돌아서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정완 역시 이미 다른 여자와 재혼한 전 남편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시도하고는 있으나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백마탄 왕자와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영혼의 남자들뿐이다.

나이 사십에 사랑 때문에 운다. 나는 이 말이 마음에 든다. 나이 오십에 사랑 때문에 운다. 나이 육십에 사랑 때문에 운다. 그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그 말에 설렌다. –본문

다소 씁쓸한 대목들도 있기는 하나 우리네 인생이 다 그렇지 않은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도 않을 뿐더러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굴곡 많은 길이 우리의 앞에 펼쳐져 있다. 쌉싸름한 초콜릿이 있다고는 하나 그 어디엔가 있을 또 달콤한 내일을 위해, 그녀들을 다시 또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날이 오래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익숙해지지 않는다. 노련해지지도 않는다. 아직도 치기 어린 감상에 젖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여자다. 엄마로서의 나보다 여자로서의 내가 우월하다. 그러므로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감상을 누릴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본문

 나이라는 숫자에 발목이 잡혀 안돼, 라는 것이 아닌 그 다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녀들의 삶에 빛이 도래하길 바라면서 이 드라마는 또 어떻게 이 결말을 그려나가게 될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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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를 으깨며 / 다나베 세이코저

 

 

 

독서 기간 : 2014.01.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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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 이야기 - 세계 거물들은 올해도 그곳을 찾는다
문정인.이재영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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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이라는 명칭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야지, 하면서 찾아 본 것이 아마도 1~2년 전이었던 것 같다. 이전에는 이러한 포럼이 있다는 사실은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매년 1월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열린다는 이 포럼이 1년 동안의 세계에 긴박했던 이슈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날들을 함께 고민하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장이라는 것을 이 포럼이 탄생한 지 몇 십 년이 지난 후에야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다보스포럼은 어느 나라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까 직면한 어젠다를 만든다. 그리고 논의를 통해 국가과 정부, 민간이 나아갈 해법을 보색하고 전망하면서 글로벌 리더들의 소통을 강조한다. -본문

얼마 전 다보스포럼에서 '창조경제와 기업가정신'이라는 주제로 박근혜대통령의 연설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뉴스에서 다보스포럼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저 흘러가는 뉴스로 흘러 보내는 것이 다반사였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보스포럼에서의 연설을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지위가 세계 속에서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반증하는 것이면서 또한 우리나라도 이러한 다보스포럼에 점차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구가 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인 다보스에 매년 1월이 되면 2500여 명의 세계 각국의 참석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고 한다. 그저 포럼의 이름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보스'라는 것이 스위스의 작은 마을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 작은 마을의 이름은 세계경제포럼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대신할 만큼 이미 유명해져 있었는데 왜 하필 이곳에서 포럼은 개최가 되는 것일까? 숙소로 할 만할 곳도 한계가 있기에 포럼장으로부터 20~30분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는 일이 허다하며 교통도 복잡한 이곳에서 말이다. 대체 왜 이곳에서, 라는 각종 의문이 던져지고는 있지만 수 십 년 동안 매년 사람들은 다보스로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으니 이 모든 해답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답변하고 있다.

슈밥 교수가 심포지엄 장소로 다보스를 선택한 것은 복잡한 내용을 심도있게 논의하기 위해 아무한테도 방해 받지 않을 만한 곳으로 도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다보스가 최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양지가 가진 고즈넉한 분위기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줌과 동시에 대도시 특유의 산만함이 없이 참석자들이 회의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다. -본문

한 때는 유럽 경영인 포럼이었던 EMF에서 세계 경제포럼인 WEF가 되어 지금까지의 명맥을 이어서, 아니 더더욱 그 명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들만의 고집스런 인사 선정은 물론이거니와 한 해 동안의 이슈를 모아 앞으로 어떠한 의제로 토론을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중이해관계자 이론에 다라 포럼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이익을 대변하는 다른 개념의 커뮤니티드리 서로 활발히 교류함으로써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포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들이 바로 포럼이 다중이해관계자 플랫폼을 구출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힘인 셈이다. -본문

다보스포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참관기를 쭉 살펴보게 되면 그 동안 뉴스를 통해서 마주했던 내용들이 이 회의에서 모두 다뤄졌던 것이구나, 라는 것을 보면서 이 포럼의 위력에 대해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확산된 세계 금융위기의 파란이 일고 나서 2009년의 다보스 포럼에서는 <오래된 자본주의의 미래를 묻다>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는데 이 곳에서는 당시 세계를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한 과거 다보스포럼의 주역들인 시티은행, 골드만삭스, 리먼브라더스의 CEO등은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전의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자본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이전의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결과에 참회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허덕이고 있을 즈음 중국이 이른바 G2로 급부상을 하며 중국만이 이 경제 혼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를 타고 흘러오곤 했는데 2009년 다보스포럼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1949년에는 사회주의가 중국을 구했고, 1979년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며 1989년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다. 이제 2009년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그렇게 중국을 비롯하여 인도와 함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출구 전략과 계속된 실업률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2011년 리더십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때 이곳에서는 G20 VS G제로라는 토론이 계속되고 있었다고 한다.

몇 년간 축적되어 들어왔던 굵직굵직한 뉴스들은 몇 년간의 다보스포럼장의 연혁에서 다시금 마주할 수 있었으며 이곳에서의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전세계의 곳곳에 다시금 전파되어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뉴스가 되어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출처 : 다보스포럼'이라는 것만 없을 뿐이지 한 해의 뉴스는 이미 1월, 다보스에서 모두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뉴스에서 전해져 오는 중-일간의 팽팽한 구도에 혹여나, 하는 마음이 들곤 했었는데 2013년 포럼의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굳이 이 문제에 대해서 근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두 국가 모두 서로에게는 어떻게든 필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군사적 충돌은 없을 것이라 하니 말이다. 

그저 1년에 한번 열리는 세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회의라고 하기에는 다보스포럼의 안건은 1년 내내 전 세계의 회의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년 1월마다 세계 각국의 인사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이 비밀스러운 장소 안에서 어떠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이 이야기들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의 기록들 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그 동안은 이 포럼에 대해서 그저 그들만의 리그인 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라도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거라 생각된다. 이것은 하나의 기록이 아닌 앞으로의 우리에게 도래할 미래이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이정표이니 말이다.

아르's 추천목록

 

『다보스포럼 자본주의를 버리다』 /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저

 

독서 기간 : 2014.01.25~01.2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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