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포럼>이라는 명칭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야지, 하면서 찾아 본 것이 아마도 1~2년 전이었던 것 같다. 이전에는 이러한 포럼이 있다는 사실은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매년
1월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열린다는 이 포럼이 1년 동안의 세계에 긴박했던 이슈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날들을 함께 고민하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장이라는 것을 이 포럼이 탄생한 지 몇
십 년이 지난 후에야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다보스포럼은
어느 나라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까 직면한 어젠다를 만든다. 그리고 논의를 통해 국가과
정부, 민간이 나아갈 해법을 보색하고 전망하면서 글로벌 리더들의 소통을 강조한다. -본문
얼마 전 다보스포럼에서 '창조경제와 기업가정신'이라는 주제로 박근혜대통령의 연설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뉴스에서 다보스포럼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저 흘러가는 뉴스로 흘러 보내는 것이 다반사였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보스포럼에서의 연설을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지위가 세계 속에서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반증하는 것이면서
또한 우리나라도 이러한 다보스포럼에 점차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구가 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인
다보스에 매년 1월이 되면 2500여 명의 세계 각국의
참석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고 한다. 그저 포럼의 이름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보스'라는 것이 스위스의 작은 마을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 작은 마을의 이름은 세계경제포럼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대신할 만큼 이미 유명해져 있었는데 왜 하필
이곳에서 포럼은 개최가 되는 것일까? 숙소로 할 만할 곳도 한계가 있기에 포럼장으로부터 20~30분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는 일이 허다하며 교통도 복잡한 이곳에서 말이다. 대체 왜 이곳에서, 라는 각종 의문이 던져지고는 있지만 수 십 년
동안 매년 사람들은 다보스로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으니 이 모든 해답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답변하고 있다.
슈밥
교수가 심포지엄 장소로 다보스를 선택한 것은 복잡한 내용을 심도있게 논의하기 위해 아무한테도 방해 받지 않을 만한 곳으로 도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다보스가 최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양지가 가진 고즈넉한 분위기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줌과 동시에 대도시 특유의 산만함이 없이 참석자들이 회의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다. -본문
한 때는 유럽 경영인 포럼이었던 EMF에서 세계 경제포럼인 WEF가 되어 지금까지의 명맥을
이어서, 아니 더더욱 그 명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들만의 고집스런 인사 선정은 물론이거니와 한 해
동안의 이슈를 모아 앞으로 어떠한 의제로 토론을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중이해관계자
이론에 다라 포럼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이익을 대변하는 다른 개념의 커뮤니티드리 서로 활발히 교류함으로써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포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들이 바로 포럼이 다중이해관계자
플랫폼을 구출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힘인 셈이다. -본문
다보스포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참관기를 쭉
살펴보게 되면 그 동안 뉴스를 통해서 마주했던 내용들이 이 회의에서 모두 다뤄졌던 것이구나, 라는
것을 보면서 이 포럼의 위력에 대해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확산된 세계 금융위기의 파란이 일고 나서 2009년의 다보스 포럼에서는
<오래된 자본주의의 미래를 묻다>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는데 이 곳에서는 당시
세계를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한 과거 다보스포럼의 주역들인 시티은행, 골드만삭스, 리먼브라더스의 CEO등은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전의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자본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이전의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결과에 참회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허덕이고 있을 즈음 중국이 이른바
G2로 급부상을 하며 중국만이 이 경제 혼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를 타고 흘러오곤 했는데
2009년 다보스포럼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1949년에는
사회주의가 중국을 구했고, 1979년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며 1989년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다. 이제 2009년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그렇게 중국을 비롯하여 인도와
함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출구 전략과 계속된 실업률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2011년 리더십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때 이곳에서는 G20 VS
G제로라는 토론이 계속되고 있었다고 한다.

몇 년간 축적되어 들어왔던 굵직굵직한
뉴스들은 몇 년간의 다보스포럼장의 연혁에서 다시금 마주할 수 있었으며 이곳에서의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전세계의 곳곳에 다시금 전파되어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뉴스가 되어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출처 : 다보스포럼'이라는 것만 없을 뿐이지 한 해의 뉴스는
이미 1월, 다보스에서 모두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뉴스에서 전해져 오는 중-일간의 팽팽한 구도에 혹여나, 하는 마음이 들곤 했었는데 2013년 포럼의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굳이 이 문제에 대해서 근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두 국가 모두 서로에게는 어떻게든 필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군사적 충돌은 없을 것이라 하니 말이다.
그저 1년에 한번 열리는 세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회의라고 하기에는 다보스포럼의 안건은
1년 내내 전 세계의 회의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년 1월마다 세계 각국의 인사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이 비밀스러운 장소 안에서 어떠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이 이야기들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의 기록들 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그 동안은 이 포럼에 대해서 그저
그들만의 리그인 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라도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거라 생각된다.
이것은 하나의 기록이 아닌 앞으로의 우리에게 도래할 미래이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이정표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