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택진 소설
정택진 지음 / 해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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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안개가 자욱한 날, 어린 시절 혈맹까지 하며 의형제로 다시 태어난 3명의 남자가 배를 타고 고기 잡이를 나선다. 말이 좋아 고기 잡이지 이 배에 함께 탄 수열과 치영, 정삼은 각자의 사정이 안고서 배에 오르게 되는데 이 모습은 그야말로 동상이몽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저께 밤에, 날때는 따로 났지만 죽을 때는 같이 죽자며 손을 모은 채 의형제를 맺고는, 서로의 피를 섞은 소주를 나눠 마시며 혈맹까지 하지 않았는가. 셋이서 한 약속이니 다른 두 사람을 설득하든가, 그것이 안 되면 자신의 생각을 접는 게 맞다. 그렇게 하는 것이 친구의 도리이고, 더더구나 의형제를 맺은 끼리의 태도일 것이다. 안 그러려면 의형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서로를 묶지나 말든가 말이다. –본문

 함께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다른 생각을 품고, 같은 시대를 누빈 그들이지만 각기 다른 빛을 안고 있는 인생의 이야기는 오늘 친구로 마주한 그들 사이에서 배가 뒤집히면서 그들이 켜켜이 쌓아 놓았던 속내가 들어나게 된다.

 의형제였던 그들은 과연 무슨 속사정을 안고 있는 것일까?

  한 고향에서 난, 그들의 뿌리는 동일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맺은 열매는 각기 다른 형태를 띄고 있었다. 광주로 유학을 갔던 정삼과 치영은 어긋난 약속으로 인해 형석이를 잃었으며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치영에게 십자가는 떠나 보내야만 했던 것이었으나 정삼에게는 그를 성공으로 진입하게 해준 유일한 끈과 같은 것이었다.

치영의 눈에 비친 그 붉은 네온들은 마치 요엄하게 춤을 추는 무희처럼만 같았다. 터지고 맞고,찔리고, 베어져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과도, 신음하고, 울부짖고,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는 세상과도 무관하게 홀로 붉은 빛깔로 솟아 있는 십자가가, 사람들의 슬픔이나 눈물과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춤에만 도취되어 온몸을 꼬아대는 무희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것이다. 본문

 광주의 민주항쟁을 지나오고 나서 치영은 왼쪽 어깨를 잃어야 했으며 그 이후 점차 피폐해져 가던 치영을 보며 정삼은 끝내 그를 외면하고서는 성공이라는 두 글자만을 위해 그의 뿌리를 철저히 버리고 서울사람으로의 행보만을 하고 있었다.

 죽음의 순간이 그들의 눈 앞에 들이닥쳤을 때서야 그들은 의형제로 맺어진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철 없이 그저 의기양양한 이름으로 묶였던 의형제란 이름의 그들은 서로 다른 빛깔을 내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죽음을 마주한 자세마저도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잠들어야 할 시간에도 온갖 몬들을 잠 못들게 하는 전깃불에 대면 그게 어디 빛의 축에나 끼랴먄, 그래도 그것은 외딴집 처마 밑에 작고 가녀린 빛으로 걸려, 이녁 새끼들의 무탈과, 바다에 나다니는 아들의 무사와, 바닷속 어딘가로 떠나버린 남편의 명복의 비는 늙은 아낙의 마음이 되어주었다. 그렇다면 저 토시등은 틀림없이 수열네 엄니의 것이다. -본문

 극박했던 시대를 살았던 그들의 삶을 배가 전복됨에 따라서 들여다 볼 수 있었기에 그들은 물론이거니와 나 역시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상이몽으로 시작된 그들의 이야기가 동심동덕으로 맺게 되는 마지막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달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바닥을 보이지 않으면 평온해 보이기만 하는 우리네 진솔한 지난 이야기를 마주하며 그 시대를 잠시나마 음미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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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세 가지 실수』 / 체탄 바킷저

 

 

 

독서 기간 : 2014.01.26~01.2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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