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만 보고서는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이가 꽤나 들었지만 엄마에게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감히 할 수조차 없을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가 혼자라는 전제에도 말이다. 이기적일지는 모르겠지만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나에게 있어서 엄마에게 또 다른 남자란, 왠지 생각만 해도 어울리지 않으며 그려지지 않는 장면이니 말이다.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 드라마를 채널 돌리면서 잠깐 보았던 터라 내용을 잘 모르고 있어 이런 저런 검색을 통해 찾아보니 꽤나 인기 있는 드라마라고 한다. 케이블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3%대의 시청률이 나온다고 하니, 과연 원작 드라마는 어떠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제목만큼이나 대담한 것들인지 등등 기대를 안고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남편과 이혼 후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정완과 그녀의 아들인 태극이의 일기 형식의 에세이가 번갈아 자리하고 있다. 열 살이라는 나이기 믿기지 않을 만큼이나 성숙한 태극이는 프롤로그의 이야기 만으로도 충분히 그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과연 어떠할지, 사실 정완의 시점도 시점이지만 아이의 시점이 어떠할 지 더욱 궁금해지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는데, 서글프면서도 또 그 이야기들이 이해가 되는 것은 이미 이 이야기에 빠져들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탄 일 것이다. .
엄마에겐 사내가 필요하다. 이 말은 오해의 소지를 담고 있는 말이다. 분명하게 짚어서 다시 말하겠다. 엄마에겐 남편이 아닌 남자가 필요하다. 남편은 한 번 있었다. 나의 아빠가 엄마의 남편이었다. 엄마의 남편이 되는 것은 곧 내게 아빠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아빠는 엄마의 남편이 아니다. 아빠는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으므로 아빠가 다른 여자와 사는 게 이상할 건 없다. 아빠가 재혼을 했다고 해서 엄마까지 재혼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연애를 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게 내 생각의 전부다. –본문
누구나 끝을 생각하고서 시작을 꿈꾸지는 않는다. 누군가와 연애를 꿈꾸며 결혼이라는 달콤한 결실로 이어지기를 꿈꿀 것이며 한 가정의 주인이 된 남녀가 함께 이뤄나갈 파란하고 아름다운 날들을 바라기 마련이다. 정완 역시도 그러한 삶을 꿈꿔왔다. 사랑하는 이와 집에서 도란도란 사는 꿈을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 속의 그것과는 다르게 점점 그녀를 옥죄어 왔으며 그리하여 그녀는 결국 이혼이라는 카드를 꺼내게 된다.
물론 몇 집 걸러 한 집은 이혼을 한다는 요즘의 세태를 듣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 사회 속에서 이혼한 여자로서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는 현실을 부딪혀야만 했다. 재혼 정보 회사에서조차 가입이 불가능한 정완은 그럼에도 또 다시 내일을 꿈꾸고 다시금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려보고 있다.
이혼한 사람들의 대답은 왜 이렇게 천편일률적인지 모르겠어. '결혼은요?' 하고 물으면 '실패했어요.' 그러는 거야.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어서 헤어진 것을 왜 실패했다고 말하는지 난 이해하기 싫어. 이혼하지 않고 사는 게 오히려 실패작이라는 걸 이혼한 사람들은 알 거야. 그런데도 실패했다고 대답하는 거, 그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편견 때문 아니겠어? 불공평한 거지. 잘못된 결혼을 하는 사람에게 결혼이라는 단어에 매혹되어 ‘축하해’라고 말하는 건 당연한 거고, 잘못된 결혼 생활을 접고 제대로 살았던 싱글로 복귀하는 사람에게 이혼이라는 단어에 위축되지 않고 ‘축하해’라고 말하는 건 왜 당연하지 않은 거지? –본문
태극 역시 자신의 주변의 여자아이들에게 마음을 나누는 모습에서 그 순간순간의 축복을 오롯이 느끼기도 하고 때론 그 관계에 있어서 상처를 받기도 하다. 열 살이라는 나이에 있어서는 누군가를 만나고 좋아하고 그러다 아픔을 받기도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다분히 자연스러운 것들이다. 아프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와 동일 선상에 있는 마흔의 나이에 있는 정완을 비롯한 그녀의 친구들인 지현과 현주, 선미 또한 여전히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그들은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스무살의 사랑은 진흙탕인줄 알면서도 무조건 달리는 경주마의 모습이었다면 마흔의 사랑은 자꾸 주춤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아직 마흔이라는 나이에 당도해 보지도 그렇다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보지도 못하였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오롯이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련하게 그녀들의 이야기가 점점 가슴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느낌이다.
평이한 삶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이들의 삶 어디에도 우리가 꿈꾸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불륜이기는 하나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믿었던 지현에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하고 냉정한 배신이었고 남편의 외도와 시댁의 압박 속에 현주는 가슴에 멍만 안고 돌아서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정완 역시 이미 다른 여자와 재혼한 전 남편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시도하고는 있으나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백마탄 왕자와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영혼의 남자들뿐이다.
나이 사십에 사랑 때문에 운다. 나는 이 말이 마음에 든다. 나이 오십에 사랑 때문에 운다. 나이 육십에 사랑 때문에 운다. 그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그 말에 설렌다. –본문
다소 씁쓸한 대목들도 있기는 하나 우리네 인생이 다 그렇지 않은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도 않을 뿐더러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굴곡 많은 길이 우리의 앞에 펼쳐져 있다. 쌉싸름한 초콜릿이 있다고는 하나 그 어디엔가 있을 또 달콤한 내일을 위해, 그녀들을 다시 또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날이 오래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익숙해지지 않는다. 노련해지지도 않는다. 아직도 치기 어린 감상에 젖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여자다. 엄마로서의 나보다 여자로서의 내가 우월하다. 그러므로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감상을 누릴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본문
나이라는 숫자에 발목이 잡혀 안돼, 라는 것이 아닌 그 다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녀들의 삶에 빛이 도래하길 바라면서 이 드라마는 또 어떻게 이 결말을 그려나가게 될지 찾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