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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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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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자그마한 섬 우도.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이름 하에 붙여진 이 섬의 이름을 듣노라면, 유채꽃이 만개한 들녘의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제 몸을 움직이며 사람을 돕고 죽어서도 모든 것은 사람에게 남기고 간다는 바로 그 소가 이토록 누워 쉬고 있다니, 그 얼마나 평화로운 모습인가.

우리나라의 지도 속에 마치 마지막의 마침표처럼 자리하고 있는 제주도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평온을 주는 휴양지이자 관광명소로서 현재 우리의 곁에 있는 남아 있는 가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라보았던 제주도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최대 관광지이자 아름다운 섬으로 삼다도라는 애칭을 가진 섬. 그 안에 살고 있는 푸근한 돌하르방이며 하늘하늘한 유채꽃과 망사리 가득 전복이며 해삼, 멍게 등 갖가지 해산물을 담아오는 해녀들의 모습은 온 세상을 하얀 눈꽃으로 뒤덮인 그 찬란하게 빛나는 표면만을 바라본 것이었다.

뽀얀 눈꽃 위에 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찬란하고 탐스러운 세상이 내가 바라는 우리의 삶이자 현재이길 바랐다면 눈 속에 뒤덮인 세상은 그야말로 생채기가 지나간 자리에 앉은 딱지를 다시 헤집는 듯한 아픔이 아련하게 베어 들어 있었다.

 

지지리도 복 없이 태어난 팔자를 탓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한 나라에 태어난 백성이라 나라와 함께 겪어야 하는 업이라고 해야 할까. 국으로 가만히 있기에는 억장이 무너졌다. 혓바늘이 온몸에 돋았고 그대로 굳어갔다. -본문

 

순종이 별세한 이후 500여년의 조선의 맥이 잘려 조선의 사람이 아닌 나라 잃은 백성으로 태어났던 구월. 그녀의 딸로 태어나 잠녀로서의 삶을 살며 모든 이들을 떠나 보내야만 했던 해금과 전쟁이라는 죽음의 순간, 해금에게 안겨준 새로운 불씨였던 건일과 그가 마지막까지 일본인으로서의 삶을 물려주고 싶어했던 건일의 딸 미유까지. 이 네 명의 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의 삶은 우리나라의 굵직한 역사의 현장들이 중첩되면서 단순한 한 가족의 일대기가 아닌 우리나라의 먹먹하면서도 지난했던 역사의 회고하고 있다.

 

이들의 삶을 투영해 바라보지 않더라도 이들이 겪어온 파란했던 역사 속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조선의 멸망과 일제 강점기라는 뼈 아픈 시간을 지나 가까스로 맞이한 해방이라는 기쁨도 잠시 이념이라는 차이로 인해 다시 두 동강으로 단절되어야만 했던 다사다난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노라면 더 없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때론 세계지도 속 아스라히 자리 하고 있는 이 나라의 과거는 왜 이토록 지독하게도 아픈 것 들이어만 했는지에 대한 푸념도 해보곤 했다.

 

아니,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이 지난함을 제대로 느꼈다기 보다는 그저 아픈 역사라고 하니 그렇게 받아 들이고 인식했던 것이 더 올바른 표현 일 것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에 목숨 바쳐 총칼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수 많은 민중들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그들에게 숭고함을 표현하기 이전에 나는 문제집 속의 정답을 찾는 것에 급급하여 역사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저 단기간 암기해야 하는 공식처럼 받아들였으며 문학 시간에 마주했던 문학 작품 속에 녹아 있다는 恨이란 정서는 그저 글자로서만 인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모든가 험하게 떠났다. 박상지는 원폭으로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고, 구월은 바다에서 넋을 빼았겼으며, 한태주마저 한국전쟁으로 위한 목숨을 소각해버렸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해금의 주변에는 가난하고 슬픔 삶과 처절한 죽음이 너무도 흔했다. 시대가 그랫고 전쟁이 그랬고 인생이 그랬다.

쇠털같이 많은 사람들이 민들레 홀씨마냥 풀풀 날아서 고단한 육신 내려 앉힌 곳. 그곳은 곧 삶의 터전이 되었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 고통까지도, 고국산천을 떠나온 사람들의 운명은 질척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나이라는 저주의 대명사가 덕지덕지 붙었고, 버짐이 피고 윤기 없는 피부는 허옇게 각질이 일었으며, 발뒤꿈치는 가뭄 난 논밭처럼 쩍쩍 갈라지고 터졌다. -본문

 

이것이야 말로 지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안녕들하십니까'의 시초가 되는 형국이 아닌가 싶다. 이미 지나왔던 과거이기에 역사라는 무거운 짐을 덜어놓고는 현재를 아등바등 사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그 당시 일제 치하 속에 우리네 선조가 어떻게 살았었는지, 자국이라는 곳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는지, 타국에서 이방인이자 눈엣가시가 되어 목숨을 연맹하면서 어떻게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그들에 대해서는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지나온 어두운 터널이니 굳이 그 곳으로의 돌아가느니 밝은 것들만을 담으려 했다. 그것을 굳이 들추어 보지 않아도 지금 내가 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그저 그것은 역사라는 페이지에 자리하기만을 바란 것이다.

 

 국사 교과서 속에 그렇게 자리하고 있던 우리의 역사는 이 소설 속 4명을 인물들을 통해서 다시 재현되고 있다. 이전의 국사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시대순으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주목을 하여 배운 것들이라면 <검은 모래> 속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형제자매이며, 이웃이자 더불어 우리의 이야기로서 국사가 하나의 레시피라면 소설은 이 레시피 대로 하나의 음식을 완성하여 보여주는 듯 했다. 한 세기 전의 과거가 현재의 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기지에 그 어느 때보다도 살갑게 다가오면서 그 때문에 진정 가슴이 먹먹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태어난 곳을 떠나 타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해야만 했던 그 암울했던 시대 속에서, 그것이 젊음을 기반으로 한 가능성을 꿈꾸며 이주를 하는 요즘과 같은 이민이 아닌 쫓기듯 떠나야만 했던 비자발적인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언젠가는 다시 내 땅으로 돌아오리라는 간절함 하나만을 안고 떠났을 것이다.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그 간절한 뿌리를 남기고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일념을 안고 말이다.

 

 그리하여 삶의 연맹을 위한 자맥질을 하고자 구월과 해금은 우도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으나 그곳은 동일한 이곳의 바다가 아니었다. 전복이나 해초류로 그들의 빈 속을 채울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그곳은 영원히 타국이자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서 점점 되돌아 갈 길이 막막하게 하는 시대의 흐름은 마치 조국마저 그들은 잊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여러 번의 분화와 화산재로 폐허가 된 미이케우라에 한국인 촌락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이 든 원주민이 아니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유는 처음 이 지역을 지나다가 너무도 흉물스러워 보이던 폐허가 한국인들, 특히 제주에서 건너온 해녀들이 살았던 촌락이라는 얘기를 해금에게서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제주 해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건너온 일본의 여러 해안 마음 중에서 유독 많은 무리를 지어 산 곳이 이 화산섬이다. 여기서도 그네들끼리 모여 살았던 곳이 미이케우라였다. 지금은 용암과 화산재와 풍파에 만신창이가 되어 너덜거리는 넝마의 땅, 저주의 땅이 되어 주인 없이 버려져 있다. -본문

 

 원래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택했던 미이케우라에서 해금은 그녀의 부모를 잃었으며 사랑했던 이를 가슴으로 묻어야 했으며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을 떠나 보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삶의 이유이기도 했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 건일은 재일교포로서 제 자신은 밟아보지도 못했던 부모의 조국인 한국이라는 꼬리표를 점점 지우려고만 하고 있었다.

 이들의 뿌리는 우리나라였기에 할 수 없이 이식되어야 했던 일본에서의 삶이 녹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의 삶이 그래도 이곳에서 보다는 유하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바람이자 아련했던 역사에 대한 보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득한 염원은 언제나 다른 곳을 향해 어긋났으며 계속해서 아린 이야기는 계속해서 그들을 발목을 잡고 있었다.

 

"리키도잔은 스모를 시작하면서 얻은 선수명이고, 모모타는 일본인한테 입양되면서 얻은 성이라고. 원래는 조센징이었어."

"정말? 지금까지 조센징이었던 걸 숨겼단 말야? 그럼 우리를 배신한거군."

"자기도 조센징인 것이 부끄러우니까 그랬겠지."(중략)

"어쨋든 실망이야. 조센징은 늘 말썽이야. 아예 일본에서 싹 몰아내야 돼." (중략)

뉴수는 여러 날을 역도산에 대하여 읊고 또 읊었다. 재일동포에게 그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고 일본인들에게 그는 부끄러운 조센징이었다. -본문 

 

 한 세기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가 하프가 되고 쿼터가 되어 점점 희석되어 가고 있다. 이식된 뿌리 속에 흐르고 있던 한국인의 피는 점차 옅어지고 있었으며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빛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씨앗은 디딤돌로 시작되어 어느새 걸림돌로 전락해버리고 있었으며 그 전락해버린 시간과 역사 앞에서 과연 나는 그들 스스로의 외면을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무관심이자 감추고 싶은 아픈 과거였으니 말이다.

 

 나도 조선 사람이고 네 아버지도 조선 사람이었어. 네가 일본 사람들처럼 살 수는 있으나 일본인은 아니다. 그까짓 종이 쪼가리가 피를 대신 할 수는 없는 거야. 아무리 일본 이름을 가지고 산다 해도 네 피를 속일 수는 없잖니. 그리고 네 몸 속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순결한 피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잊지 마라. -본문

 

 그럼에도 단 1%의 힘은 다시금 그들을 들끓게 하고 처음 그 자리로의 회귀를 꿈꾸게 하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한국인이라는 혈을 안고 태어난 이들이기에 그것이 한낱 종이 위의 다른 국적을 표기하고 있다 한들 이 뜨거움은 사그러지지 않았다.

태어나서부터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안고 애국가를 외우며 무궁화를 보며 자란 나에게, 내 안에 있는 줄 몰랐던 애국심이라는 사회적 감정이 2002년 월드컵을 보며 치솟듯이 미유는 감춰졌던 자신의 뿌리를 마주하며 천천히 해금과 건일의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음 주인 만날 때까지 잘들 있어라. 뒤뜰고 가서 손때를 먹인 장독들과 미리 작별을 해 두었다. 해금은 마지막으로 박씨를 심었다. 그녀가 없어도 꽃들은 피고 향기는 바람 따라 흩어질 것이며, 새들도 잠시 몸을 쉬었다 제 둥지로 날아갈 것이고, 박은 저 혼자서도 잘 여물 것이다. 함께한 날들이 참으로 좋았구나. 고맙다. 해금은 이별이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생 끄트머리에서 알게 되었다. -본문

 

지난했던 한 세기를 거쳐 다시 오늘로 오기까지, 구월이 그러했든 해금은 마지막 순간 박씨를 심고 있다.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얻은 박씨가 훗날 흥부에게 복을 가져다 주었다는 전래 동화처럼 박씨를 심는 모녀의 의식 속에는 그들이 가고 난 후 남겨진 자손들에게 남겨 줄 미래가 담겨 있다. 이 모든 것이 아프고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뼈와 살이 되는 젖줄이 되어 우리를 살찌우게 할 것이며 또 다시 살게 하는 것이다.

 

 

 

 

 푸른 바다 속 자유로이 유영하던 잠녀를 상상하며 이 책을 펼쳤던 초반의 바람과는 다르게 읽는 내내 검은 모래를 집어 삼킨 듯 숨이 막히듯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이미 내 손을 떠난 과거이자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사실들을 오늘에서야 진실로 목도를 하는 순간, 지금의 내가 오롯이 제대로 현재에 편승하여 숨쉬고 있는 듯 하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과거의 기록 속에 남겨져 있었다면 4대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하루하루가 가슴 속의 흔적으로 남는 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과거의 역사 속에만 살아야만 하는 이들을 이제는 자유로이 숨쉴 수 있도록, 그리하여 역사 속 그들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방향키를 제대로 쥐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박씨가 어떠한 꽃을 피우게 될 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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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 박경리저

 

 

독서 기간 : 2013.12.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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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어떻게 살 것인가 (양장) - 톨스토이가 인류에게 전하는 인생의 지혜 소울메이트 고전 시리즈 - 소울클래식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선미 옮김 / 소울메이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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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 스스로 자신을 관통했던 삶의 지혜를 이 한 권에 고스란히 담아놓고 있다. 그가 읽었던 원문이 어떤 것이었던, 자신이 이 안에 담아놓은 문구들은 절대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담기길 원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가 이 책 안에 담긴 내용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단상들이기에 읽는 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그저 그런 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짧은 단상들을 읽을 때마다 매번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힘을 안고 있는 것들이라면, 문장의 길이를 떠나 이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이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마주하는 단상부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이야기 하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우리가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별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어제와 같이 오늘도 보내고 있는 나를 보면서, 과연 나의 둥지는 어디로 틀어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흘러가는 대로,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들은 언젠가 도래할 미래의 나에게 주는 고통이 될 것이므로 내일의 나를 위해서라도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나침반을 설정해야 할 때인 것이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나이라는 숫자를 유일한 무기로 그들만의 방식을 관철하는 것들에 대해 불만을 품곤 했었다. ‘나이 어린 너희는 모른다 혹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가 다 맞는 거야.’ 라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나중에 커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나보다 나이 어린 이들의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리란 다짐을 하곤 했었다. 그렇게 하나 둘 나이가 들어 이제는 그 누가 보아도 어른이라 이야기하는 지금의 내가 되어 보니 어느 새 닮지 않으리라 맹세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니 어른이 되어가면서 더 많은 것을 알아가기 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기반으로 점점 더 철옹성과 같은 나만의 장벽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내 자신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열린 마음과 열린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점점 닫혀가는 나를 보면서, 과연 나는 지금 어디를 표류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반성을 해본다.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함께 알고 있는 그 누군가를 험담하라, 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둘 만 모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자리에 없는 제 3자를 이야기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 사람에 대해 마음대로 재단하곤 한다. 10대의 나와 20대의 나와 30대가 된 나는 동일하게 나라는 허울을 안고 있지만 내 스스로가 바라보아도 각 시간 별로의 나는 다이나믹할 정도로 변화를 겪어 온 듯 하다. 내가 인지하는 나도 이렇게 다를 지 언데 타인인 그들 역시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톨스토이가 이야기한대로 내가 말하고 있는 시점의 상대방은 이미 과거의 시점 속에 있었던 사람이기에 우리는 타인에 대해 함부로 안다, 라고 단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서는 그 부분 부분이 전체인 듯 설명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그저 우리가 흘리는 말로 때로는 한 사람을 죽이는, 날카로운 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미 알고는 있으나 아는 것에서 멈추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도 못한 것이라고 한다. 톨스토이가 사는 동안 그를 관통하여 뼈 속 깊숙이 전해지던 지혜가 이 책 속에서 되살아나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짧지만 굵직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그의 지혜를 마주하면서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다시 세운 기분이다. 이 모든 것들을 단시간 내에 내 삶 속에 녹여내기는 힘들겠지만 계속해서 마주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삶이 이 책과 같이 되지 않을까. 그러한 날이 도래하길 바라며 틈틈이 이 책을 마주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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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 레프 톨스토이저

  

 

독서 기간 :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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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력적인 그를 쇼핑했다 1
민재경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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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한 스토리, 뻔한 결말이라며 이 소설을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부녀에 아이도 두 명이나 딸린 차미선이라는 여자 앞에 모든 것이 완벽한 심지훈이라는 남자의 등장만으로도 우리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 될 것이라는 것을 지레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인터넷 소설로 누적 조회수가 700만이 넘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상상 할 수 있는 그 뻔함 뒤에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을 반증할 것이다. 뻔하지만 공감할 수 있고 뻔하지만 그 안에 우리의 이야기도 담겨 있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나매쇼! 이 속에서 그저 깔깔거리며 웃다가 마지막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이 책의 내용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드라마와 다른 현실을 깨달으라며 소리치는 이성에 반해 완전히 거꾸로 돌아서 있는 감성의 무게가 지독히 무겁다. 내 짐 한쪽을 저 남자 어깨에 얹으면 안 되는 걸까?-본문

 사랑이구나, 라고 시작됐던 차미선의 결혼 생활에 점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재력도 있거니와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이라 믿었던 고승찬이라는 남편, 현재의 남편이 아닌 전 남편이었던 그와의 결혼 생활은 시집살이는 물론이거니와 남편이라 믿었던 존재가 남이 되어 마마보이를 자청하고 있었으며 급기야 오롯이 홀로 남겨진 차미선을 두고서 외도까지 저지르고 있었다. 이보다 더 나락으로의 추락을 없을 것이기에 이혼을 감행한 그녀는 어린 두 딸들을 데리고선 친정 엄마인 윤여사의 집으로 향하게 된다.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어떤 옷이든 소화해냈던 그녀에게 그녀의 친구인 연화의 도움으로 그는 사회로의 재개는 어느 정도 성공하게 되지만 그녀 안의 내면은 여전히 상처 받아 있었다. 물론 차미선은 그러한 것들을 모두 쇼핑으로서 발현하고 있었지만, 너무도 당당하고 그래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철없는 된장녀로 바라봄직한 그녀의 아픈 순간들을 지켜 봐왔던 터라 그녀의 일탈이 왠지 모르게 애잔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이러한 방황이 길어지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심리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별 다른 생각 없이, 아니 이 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오버랩 되는 순간 그녀의 눈 앞에 드리운 심지훈이라는 남자는 그녀가 있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완벽한 세상에 살고 있었고 첫 만남부터 짜릿하게 다가왔던 이들의 인연은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터닝포인트로 다가오게 된다.

 어느새 울먹울먹하는 내 곁으로 다가온 남자가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 잡는다. 정말이지 심지훈, 너 같은 사람이 어디 있니? 혹시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깨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 사람은 달콤하다. 너무너무 달콤해서 헤어날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만 같아.
그래, 나 이젠 쇼핑이 아닌 심지훈에게 중독되어버린 거야. –본문

1편이 차미선의 이야기였다면 2편은 심지훈의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있는 아픔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스스로 세상과의 단절 할 수 밖에 없는 현실들이었다. 그 누구와의 관계 형성도 불가능했던 자폐란 장애를 가지고 있던 그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의 어머니의 죽음은 물론이고 자신을 사랑했던 형수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그의 주변에 있던, 그러니까 지훈을 사랑했던 여자들이 자신을 떠나버리고 그 과정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바라만 보아야 했던 그로서도 자신이 안고 있던 삶의 무게가 버겁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친엄마는 그렇게 점점 미쳐갔다. 그것은 지독하도록 나약한 영혼을 지닌 까닭이었다. 어쩌면 내가 완벽하게 닮아 있는 그런 영혼일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차미선.

침대에 붙어 있는 이름을 외우고 그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눈에 담는다. 정녕 인연이 닿을 운명이라면 반드시 또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본문

 그러던 그의 앞에 차미선이란 여자가 나타났다. 자신의 엄마와는 너무도 다른, 어떻게 해서든 혼자 일어나려 했던 그녀를 보면서 그는 차미선을 자신의 인생의 목표로, 그녀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며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차미선의 이야기처럼, 그녀는 매력적인 그를 쇼핑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 속의 심지훈을 쫓다보면 과연 이 모든 것은 그녀보다는 그에 의해서 짜인 시나리오 같이 보인다. 흐뭇한 결말에 도래하기까지 차미선의 시어머니의 횡포는 물론이거니와 그에 따라 그녀가 다시 무너지고 있고 또 지훈의 아련한 기억들까지 함께 오버랩 되며 이 모든 것들이 아프게만 느껴졌지만 어찌되었건 읽는 내내 참 마음껏 웃고 마음껏 떠들며 읽어 내려간 듯 하다. 흐뭇함만을 남기고 책을 덮을 즈음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 안에 담겨 있는 사회적 약자인 그들이 이토록 하나가 되는 모습에서 그저 웃음만 남기고 가기에는 꽤나 많은 것들을 담은 책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모두는 이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완벽하지 않다. 완벽한 무언가를 쫓아 날아다니는 불나방과 같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 다 조금씩은 부족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말처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편의 신데렐라 탄생 비화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는 듯해 마음이 따스해진다. 유쾌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이야기를 보면서, 나매쇼에 흠뻑 빠진 순간, 현실에서도 나매쇼가 일어나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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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 세이지 / 고선미저

 

 

독서 기간 : 2014.02.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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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 막내딸 설화 1 네오픽션 로맨스클럽 3
이지혜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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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책을 읽어내려 간 듯 하다. 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을 마주하면서 설블리 공주라는 캐릭터에 마음이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심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무도사 배추도사가 옥신각신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나 은비까비가 구름을 타고 다니며 들려주었던 이야기처럼,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이 곳의 시간을 잊은 채 천상의 시간을 보낸 듯, 금새 읽어내려 갔다.

 

 신화이든 선계이든, 인간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게 누군가를 시기하고 음해하려는 시도들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게 된다. 옥황상제의 바람기가, 아니면 그의 편애가 이 모든 소설을 만들어 낸 장본인인데, 한 남자로서 그를 바라본다면 미움이 가득한 분노로 바라보겠지만, 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해준 근원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바람 잘날 없는 옥황상제에게는 세 명의 부인과 딸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라 믿었던 셋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공주인 설화를 애지중지하며 바라보고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형제 혹은 자매간의 부모에 대한 사랑의 갈망은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고 있었으며 특히나 셋째 정연이 오랫동안 흠모해 오던 풍대군과의 연문설이 터진 지금, 정음은 동생 정연에 대한 복수를 위해 설화와 아버지 사이를 이간질시킬 음모를 꾸미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만큼 언니들에게 소외 될 수 밖에 없었던 설화에게 정음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황후화를 대신해서 찾아다 줄 것을 부탁한다. 백 년에 한번 핀다는 그 꽃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꽃이다. 황금줄기에 비단으로 된 꽃잎과 꽃술에 진주가 박혀있다는 그 꽃이 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설화는 서먹서먹한 언니들과의 관계 회복과 아버지를 위한 다는 마음으로 그녀는 바로, 황후화가 있다는 황산으로 내려오게 된다.

 

 한편 인간계에서는 폐병으로 더 이상의 치료도 잘 듣지 않는 황자인 태율이 황산에 요양 차 지내고 있는데 황후화를 찾으러 온 설화와 황자인 태율은 황산에서 처음 마주하게 된다. 로맨틱한 첫 만남을 상상하고 있었지만, 그와는 정 반대로 코믹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마주하게 되는데, 그 모습마저도 귀여운 것이 달달한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기대감으로 열심히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헌데 이렇게 이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몰래 소피를 보고 있는 소년과! 설화 자신도 지금의 상황이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당장 도망가고 싶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태율이 놀라 내지른 말을 냉큼 주워 들었다.
“아, 그럴까? 그럼 우리 둘 다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하고 가는 거야! 알았지?

소년의 말에 좋아하며 재잘거리던 설화의 입이 방정이었다. 그냥 가면 될 것을 괜히 ‘아무것도 못 본 걸’이라는 말을 꺼내어 순수하고 순진한 소년의 얼굴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뭘 못 봤다는 거야
!본문

 

 병약했던 황자 태율은 설화가 건넨 천도를 먹고서는 점차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황자인 그를 너무도 업신 여기는 설화의 존재에 대해 알쏭달쏭하게 되지만 자기도 모르게 점점 그녀에게 마음이 가는 그를 보노라면 이들의 로맨스가 어서 빨리 전개 되기만을 재촉하게 된다.

 

 운명의 실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해. 그 운명의 길이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뀔 수 있지. 수십 수백개의 실이 얽히고설켜 새로운 실을 만들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해. 인간들의 운명이라는 것은 그렇게 섬세하고 복잡하지. 그러면서 단순하기도 해. 실상 운명은 그 인간의, 인간사의 밑그림만 보여줄 뿐이야. 본문

 

 나의 바람과는 달리 황후화를 찾아야 하는 설화는 구월산으로 떠나게 되고 구월산의 산신 현오를 만나고 신계에서 춘려를 만나는 등, 그녀에게는 잠깐의 시간들이었지만 인간계에서는 이미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리게 된다.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했던 설화가 갑작스레 사라지게 되면서 태율은 그녀를 찾아 틈틈이 황산을 다시 오르고 있었으며 그 시간의 간극이 길어질수록 그는 점점 더 남자답게 변모해가고 있었다.

 

 한편 옥황상제는 그제야 막내 딸 설화에게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을 알게 되는데 각자가 가진 운명의 실타래는 오직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기에 그는 막내딸을 위해 백호 함에게 자신의 딸을 부탁하며 유유히 그녀의 행보를 바라보고 있다.

입맞춤만큼이나 숨 막히게 아름다운 태자의 얼굴에 설화가 눈을 깜빡거렸다. 그 이마 위로 태율의 촉촉한 입술이 내려왔다. 이마, 콧등, 눈썹 위에 입술 도장을 찍으며 점점 다시 그녀의 입술을 향해 다가왔다. 태율이 입술에 술이 담겨 있나 보다. 왜 점점 머리가 몽롱해지는 거지?
설화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술에 취한 듯 아찔해지는 머릿속이 그녀를 화염으로 몰아넣었다. 그의 손길이 어느새 그녀의 잠자리 옷을 탐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의 입술에 취해 있었다
.
‘아아, 이것이 풍대군이 말한 남녀의 운우지정인가?

구름 위를 밟는 것과 같다 했다. 설화는 어쩐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문

 

 신계든 구월산이든 황후화를 찾을 수 없었던 설화는 황산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고 그녀를 찾기 위해 태율이 만들어 놓은 황후화는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으며 황궁으로 들어간 설화는 그간 태율이 준비해 놓은 대로 황태자와 황태비자가 되게 된다.

 

 너무나 쉽게 이 모든 것들이 일사천리로 진행 되는 것 같았지만 그들에게도 비운의 장막들이 하나 둘씩 드리우게 된다. 태율을 해하기 위해 20여년 전부터 준비되었던 음모가 이 달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오게 되고 그 동안 그들이 쌓아 놓았던 인연과 지혜를 이 어려운 순간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로맨스 소설을 읽은 듯 하다. 다시는 어디 가지 마. 절대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나는 네게 이곳을 벗어나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다! 라는 태율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며 마치 나에게 들려주는 달콤한 고백처럼 들리는 이 소설이라면, 싱숭생숭한 겨울과 봄 사이의 계절을 보내기에 충분할 것만 같다. 얼어버린 마음을 녹여주는 이 책이, 그리하여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음을 알려주는 이 책이 고마운 하루였다  

 

아르's 추천목록

 

해를 품은 달 / 정은궐저

 

  

 

독서 기간 : 2014.03.04~03.0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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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김용택 지음 / 예담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왜 시인이 되었냐는 아이들의 물음에 그는 심심해서라고 대답하고 있다. 심심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 보고 심심해서 다른 이들이라면 그저 보고 지나칠 것들에 대해서 그는 유심히 붙잡고 있었기에 그의 마음 속에 새겨지는 잔상들을 글로써 옮기게 되고 그리하여 그것들이 시의 언어로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시인이 되었나요? 라는 질문에 꾸밈 없이 하지만 그 날것의 것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의 이야기들이 점점 궁금해져만 간다.

 

사람들이 왜 이리 서둘고 떠돌고 헤매고 바쁜가. 무엇인가 잊어버린, 무엇인가 잃어버린, 무엇인가 불안하고 허전한 것 같은 저 텅 빈 얼굴들이 지금 강을 따라 어디로 저리 부산하게 걸어가는가. 우리 모두 고향을 잃어버린 떠도는 영혼들이다. 나도 그래서 그 심심하고 두려운 공간을 어떻게 좀 해보려고 시를 썼던 것이다. 심심해서 그랬던 것이다. –본문

 

 이미 수확이 끝난 논길을 걸으면서 그는 나는 이전에는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상념에 빠져 그가 느낀 것들을 찬찬히 들려주고 있다. 벼가 다 베어진 텅 빈 논을 보면서 푸릇푸릇 한 생명의 기운이 사라진 밭을 보면서 나는 그 동안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그저 논이다, 밭이다라는 1차원 적인 생각에만 빠져있거나 혹은 금빛으로 물든 논을 보면서 탐스럽다라는 생각만 나에게 그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세상을 생각하며 그것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트랙터 속을 지나며 벼 알이 털린 짚들이 짓씹힌 채 누워 있는 논은 쓸쓸하다. 땅을 향한 노동과 인간의 정직한 몸놀림을 기계는 생략시켜버리고 순식간에 결과를 가져와 허망하게 만든다. 인간을 외면해버린 것 같은, 빈 논의 트랙터 자국을 더듬으며 나는 아프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며 가슴속에 무언가가 울컥한다. 노동 후에 오는 허무는 달콤한 휴식이고 기계적인 작업 후 허무는 냉랭하다. 무엇인가 무시당하고 소외당하고 삶을 후다닥 해치워버린 것 같은 허무 앞의 무료가 통증이 된다. –본문 

 

 많은 이들의 스승이기도 했던 그가, 자신의 제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에게 지난 날의 일들을 회상하며 써내려 간 글을 보면서, 잠시나마 그를 마주했던 이들은 얼마나 행복한 이들이었을까, 하며 새삼 그 인연에 질투를 더해보기도 한다. 포크레인을 운전하던 대길이나, 저자가 학교를 떠날 때 편지를 전해주며 눈물을 보였다는 희진이나. 그들은 지금 저자를 잊었을 지 언정 그는 이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고 현재의 나와 또 다시 공유하고 있으니, 그들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서 나는 그들의 과거와 기억이 마냥 부러워 진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거스르지 않고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그 자연스러움 대신 억지로라도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다. 저자의 눈에 비친 그 억지스러움은 인간과 자연의 신비스럽던 교감을 끊어버린 안타까운 현실로 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게 된다. 자연이라는 이름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것이 인간의 삶임을 다시금 깨달으며 조아리게 된다. 편안하면서도 묵직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이 책이 굳어버린 우리 마음을 녹여주길 바라본다

 

아르's 추천목록

 

길귀신의 노래 / 곽재구저

 

 

 

독서 기간 : 2014.03.03~03.0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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