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자그마한 섬 우도.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이름 하에 붙여진 이 섬의 이름을 듣노라면, 유채꽃이 만개한 들녘의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제 몸을 움직이며 사람을 돕고 죽어서도 모든 것은 사람에게 남기고 간다는 바로 그 소가 이토록 누워 쉬고 있다니, 그 얼마나 평화로운 모습인가.
우리나라의 지도 속에 마치 마지막의 마침표처럼 자리하고 있는 제주도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평온을 주는 휴양지이자 관광명소로서 현재 우리의 곁에 있는 남아 있는 가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라보았던 제주도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최대 관광지이자 아름다운 섬으로 삼다도라는 애칭을 가진 섬. 그 안에 살고 있는 푸근한 돌하르방이며 하늘하늘한 유채꽃과 망사리 가득 전복이며 해삼, 멍게 등 갖가지 해산물을 담아오는 해녀들의 모습은 온 세상을 하얀 눈꽃으로 뒤덮인 그 찬란하게 빛나는 표면만을 바라본 것이었다.
뽀얀 눈꽃 위에 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찬란하고 탐스러운 세상이 내가 바라는 우리의 삶이자 현재이길 바랐다면 눈 속에 뒤덮인 세상은 그야말로 생채기가 지나간 자리에 앉은 딱지를 다시 헤집는 듯한 아픔이 아련하게 베어 들어 있었다.
지지리도 복 없이 태어난 팔자를 탓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한 나라에 태어난 백성이라 나라와 함께 겪어야 하는 업이라고 해야 할까. 국으로 가만히 있기에는 억장이 무너졌다. 혓바늘이 온몸에 돋았고 그대로 굳어갔다. -본문
순종이 별세한 이후 500여년의 조선의 맥이 잘려 조선의 사람이 아닌 나라 잃은 백성으로 태어났던 구월. 그녀의 딸로 태어나 잠녀로서의 삶을 살며 모든 이들을 떠나 보내야만 했던 해금과 전쟁이라는 죽음의 순간, 해금에게 안겨준 새로운 불씨였던 건일과 그가 마지막까지 일본인으로서의 삶을 물려주고 싶어했던 건일의 딸 미유까지. 이 네 명의 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의 삶은 우리나라의 굵직한 역사의 현장들이 중첩되면서 단순한 한 가족의 일대기가 아닌 우리나라의 먹먹하면서도 지난했던 역사의 회고하고 있다.
이들의 삶을 투영해 바라보지 않더라도 이들이 겪어온 파란했던 역사 속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조선의 멸망과 일제 강점기라는 뼈 아픈 시간을 지나 가까스로 맞이한 해방이라는 기쁨도 잠시 이념이라는 차이로 인해 다시 두 동강으로 단절되어야만 했던 다사다난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노라면 더 없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때론 세계지도 속 아스라히 자리 하고 있는 이 나라의 과거는 왜 이토록 지독하게도 아픈 것 들이어만 했는지에 대한 푸념도 해보곤 했다.
아니,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이 지난함을 제대로 느꼈다기 보다는 그저 아픈 역사라고 하니 그렇게 받아 들이고 인식했던 것이 더 올바른 표현 일 것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에 목숨 바쳐 총칼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수 많은 민중들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그들에게 숭고함을 표현하기 이전에 나는 문제집 속의 정답을 찾는 것에 급급하여 역사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저 단기간 암기해야 하는 공식처럼 받아들였으며 문학 시간에 마주했던 문학 작품 속에 녹아 있다는 恨이란 정서는 그저 글자로서만 인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모든가 험하게 떠났다. 박상지는 원폭으로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고, 구월은 바다에서 넋을 빼았겼으며, 한태주마저 한국전쟁으로 위한 목숨을 소각해버렸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해금의 주변에는 가난하고 슬픔 삶과 처절한 죽음이 너무도 흔했다. 시대가 그랫고 전쟁이 그랬고 인생이 그랬다.
쇠털같이 많은 사람들이 민들레 홀씨마냥 풀풀 날아서 고단한 육신 내려 앉힌 곳. 그곳은 곧 삶의 터전이 되었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 고통까지도, 고국산천을 떠나온 사람들의 운명은 질척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나이라는 저주의 대명사가 덕지덕지 붙었고, 버짐이 피고 윤기 없는 피부는 허옇게 각질이 일었으며, 발뒤꿈치는 가뭄 난 논밭처럼 쩍쩍 갈라지고 터졌다. -본문
이것이야 말로 지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안녕들하십니까'의 시초가 되는 형국이 아닌가 싶다. 이미 지나왔던 과거이기에 역사라는 무거운 짐을 덜어놓고는 현재를 아등바등 사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그 당시 일제 치하 속에 우리네 선조가 어떻게 살았었는지, 자국이라는 곳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는지, 타국에서 이방인이자 눈엣가시가 되어 목숨을 연맹하면서 어떻게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그들에 대해서는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지나온 어두운 터널이니 굳이 그 곳으로의 돌아가느니 밝은 것들만을 담으려 했다. 그것을 굳이 들추어 보지 않아도 지금 내가 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그저 그것은 역사라는 페이지에 자리하기만을 바란 것이다.
국사 교과서 속에 그렇게 자리하고 있던 우리의 역사는 이 소설 속 4명을 인물들을 통해서 다시 재현되고 있다. 이전의 국사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시대순으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주목을 하여 배운 것들이라면 <검은 모래> 속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형제자매이며, 이웃이자 더불어 우리의 이야기로서 국사가 하나의 레시피라면 소설은 이 레시피 대로 하나의 음식을 완성하여 보여주는 듯 했다. 한 세기 전의 과거가 현재의 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기지에 그 어느 때보다도 살갑게 다가오면서 그 때문에 진정 가슴이 먹먹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태어난 곳을 떠나 타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해야만 했던 그 암울했던 시대 속에서, 그것이 젊음을 기반으로 한 가능성을 꿈꾸며 이주를 하는 요즘과 같은 이민이 아닌 쫓기듯 떠나야만 했던 비자발적인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언젠가는 다시 내 땅으로 돌아오리라는 간절함 하나만을 안고 떠났을 것이다.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그 간절한 뿌리를 남기고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일념을 안고 말이다.
그리하여 삶의 연맹을 위한 자맥질을 하고자 구월과 해금은 우도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으나 그곳은 동일한 이곳의 바다가 아니었다. 전복이나 해초류로 그들의 빈 속을 채울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그곳은 영원히 타국이자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서 점점 되돌아 갈 길이 막막하게 하는 시대의 흐름은 마치 조국마저 그들은 잊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여러 번의 분화와 화산재로 폐허가 된 미이케우라에 한국인 촌락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이 든 원주민이 아니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유는 처음 이 지역을 지나다가 너무도 흉물스러워 보이던 폐허가 한국인들, 특히 제주에서 건너온 해녀들이 살았던 촌락이라는 얘기를 해금에게서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제주 해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건너온 일본의 여러 해안 마음 중에서 유독 많은 무리를 지어 산 곳이 이 화산섬이다. 여기서도 그네들끼리 모여 살았던 곳이 미이케우라였다. 지금은 용암과 화산재와 풍파에 만신창이가 되어 너덜거리는 넝마의 땅, 저주의 땅이 되어 주인 없이 버려져 있다. -본문
원래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택했던 미이케우라에서 해금은 그녀의 부모를 잃었으며 사랑했던 이를 가슴으로 묻어야 했으며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을 떠나 보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삶의 이유이기도 했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 건일은 재일교포로서 제 자신은 밟아보지도 못했던 부모의 조국인 한국이라는 꼬리표를 점점 지우려고만 하고 있었다.
이들의 뿌리는 우리나라였기에 할 수 없이 이식되어야 했던 일본에서의 삶이 녹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의 삶이 그래도 이곳에서 보다는 유하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바람이자 아련했던 역사에 대한 보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득한 염원은 언제나 다른 곳을 향해 어긋났으며 계속해서 아린 이야기는 계속해서 그들을 발목을 잡고 있었다.
"리키도잔은 스모를 시작하면서 얻은 선수명이고, 모모타는 일본인한테 입양되면서 얻은 성이라고. 원래는 조센징이었어."
"정말? 지금까지 조센징이었던 걸 숨겼단 말야? 그럼 우리를 배신한거군."
"자기도 조센징인 것이 부끄러우니까 그랬겠지."(중략)
"어쨋든 실망이야. 조센징은 늘 말썽이야. 아예 일본에서 싹 몰아내야 돼." (중략)
뉴수는 여러 날을 역도산에 대하여 읊고 또 읊었다. 재일동포에게 그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고 일본인들에게 그는 부끄러운 조센징이었다. -본문
한 세기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가 하프가 되고 쿼터가 되어 점점 희석되어 가고 있다. 이식된 뿌리 속에 흐르고 있던 한국인의 피는 점차 옅어지고 있었으며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빛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씨앗은 디딤돌로 시작되어 어느새 걸림돌로 전락해버리고 있었으며 그 전락해버린 시간과 역사 앞에서 과연 나는 그들 스스로의 외면을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무관심이자 감추고 싶은 아픈 과거였으니 말이다.
나도 조선 사람이고 네 아버지도 조선 사람이었어. 네가 일본 사람들처럼 살 수는 있으나 일본인은 아니다. 그까짓 종이 쪼가리가 피를 대신 할 수는 없는 거야. 아무리 일본 이름을 가지고 산다 해도 네 피를 속일 수는 없잖니. 그리고 네 몸 속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순결한 피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잊지 마라. -본문
그럼에도 단 1%의 힘은 다시금 그들을 들끓게 하고 처음 그 자리로의 회귀를 꿈꾸게 하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한국인이라는 혈을 안고 태어난 이들이기에 그것이 한낱 종이 위의 다른 국적을 표기하고 있다 한들 이 뜨거움은 사그러지지 않았다.
태어나서부터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안고 애국가를 외우며 무궁화를 보며 자란 나에게, 내 안에 있는 줄 몰랐던 애국심이라는 사회적 감정이 2002년 월드컵을 보며 치솟듯이 미유는 감춰졌던 자신의 뿌리를 마주하며 천천히 해금과 건일의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음 주인 만날 때까지 잘들 있어라. 뒤뜰고 가서 손때를 먹인 장독들과 미리 작별을 해 두었다. 해금은 마지막으로 박씨를 심었다. 그녀가 없어도 꽃들은 피고 향기는 바람 따라 흩어질 것이며, 새들도 잠시 몸을 쉬었다 제 둥지로 날아갈 것이고, 박은 저 혼자서도 잘 여물 것이다. 함께한 날들이 참으로 좋았구나. 고맙다. 해금은 이별이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생 끄트머리에서 알게 되었다. -본문
지난했던 한 세기를 거쳐 다시 오늘로 오기까지, 구월이 그러했든 해금은 마지막 순간 박씨를 심고 있다.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얻은 박씨가 훗날 흥부에게 복을 가져다 주었다는 전래 동화처럼 박씨를 심는 모녀의 의식 속에는 그들이 가고 난 후 남겨진 자손들에게 남겨 줄 미래가 담겨 있다. 이 모든 것이 아프고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뼈와 살이 되는 젖줄이 되어 우리를 살찌우게 할 것이며 또 다시 살게 하는 것이다.

푸른 바다 속 자유로이 유영하던 잠녀를 상상하며 이 책을 펼쳤던 초반의 바람과는 다르게 읽는 내내 검은 모래를 집어 삼킨 듯 숨이 막히듯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이미 내 손을 떠난 과거이자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사실들을 오늘에서야 진실로 목도를 하는 순간, 지금의 내가 오롯이 제대로 현재에 편승하여 숨쉬고 있는 듯 하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과거의 기록 속에 남겨져 있었다면 4대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하루하루가 가슴 속의 흔적으로 남는 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과거의 역사 속에만 살아야만 하는 이들을 이제는 자유로이 숨쉴 수 있도록, 그리하여 역사 속 그들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방향키를 제대로 쥐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박씨가 어떠한 꽃을 피우게 될 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