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김용택 지음 / 예담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왜 시인이 되었냐는 아이들의 물음에 그는 심심해서라고 대답하고 있다. 심심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 보고 심심해서 다른 이들이라면 그저 보고 지나칠 것들에 대해서 그는 유심히 붙잡고 있었기에 그의 마음 속에 새겨지는 잔상들을 글로써 옮기게 되고 그리하여 그것들이 시의 언어로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시인이 되었나요? 라는 질문에 꾸밈 없이 하지만 그 날것의 것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의 이야기들이 점점 궁금해져만 간다.

 

사람들이 왜 이리 서둘고 떠돌고 헤매고 바쁜가. 무엇인가 잊어버린, 무엇인가 잃어버린, 무엇인가 불안하고 허전한 것 같은 저 텅 빈 얼굴들이 지금 강을 따라 어디로 저리 부산하게 걸어가는가. 우리 모두 고향을 잃어버린 떠도는 영혼들이다. 나도 그래서 그 심심하고 두려운 공간을 어떻게 좀 해보려고 시를 썼던 것이다. 심심해서 그랬던 것이다. –본문

 

 이미 수확이 끝난 논길을 걸으면서 그는 나는 이전에는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상념에 빠져 그가 느낀 것들을 찬찬히 들려주고 있다. 벼가 다 베어진 텅 빈 논을 보면서 푸릇푸릇 한 생명의 기운이 사라진 밭을 보면서 나는 그 동안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그저 논이다, 밭이다라는 1차원 적인 생각에만 빠져있거나 혹은 금빛으로 물든 논을 보면서 탐스럽다라는 생각만 나에게 그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세상을 생각하며 그것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트랙터 속을 지나며 벼 알이 털린 짚들이 짓씹힌 채 누워 있는 논은 쓸쓸하다. 땅을 향한 노동과 인간의 정직한 몸놀림을 기계는 생략시켜버리고 순식간에 결과를 가져와 허망하게 만든다. 인간을 외면해버린 것 같은, 빈 논의 트랙터 자국을 더듬으며 나는 아프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며 가슴속에 무언가가 울컥한다. 노동 후에 오는 허무는 달콤한 휴식이고 기계적인 작업 후 허무는 냉랭하다. 무엇인가 무시당하고 소외당하고 삶을 후다닥 해치워버린 것 같은 허무 앞의 무료가 통증이 된다. –본문 

 

 많은 이들의 스승이기도 했던 그가, 자신의 제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에게 지난 날의 일들을 회상하며 써내려 간 글을 보면서, 잠시나마 그를 마주했던 이들은 얼마나 행복한 이들이었을까, 하며 새삼 그 인연에 질투를 더해보기도 한다. 포크레인을 운전하던 대길이나, 저자가 학교를 떠날 때 편지를 전해주며 눈물을 보였다는 희진이나. 그들은 지금 저자를 잊었을 지 언정 그는 이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고 현재의 나와 또 다시 공유하고 있으니, 그들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서 나는 그들의 과거와 기억이 마냥 부러워 진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거스르지 않고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그 자연스러움 대신 억지로라도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다. 저자의 눈에 비친 그 억지스러움은 인간과 자연의 신비스럽던 교감을 끊어버린 안타까운 현실로 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게 된다. 자연이라는 이름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것이 인간의 삶임을 다시금 깨달으며 조아리게 된다. 편안하면서도 묵직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이 책이 굳어버린 우리 마음을 녹여주길 바라본다

 

아르's 추천목록

 

길귀신의 노래 / 곽재구저

 

 

 

독서 기간 : 2014.03.03~03.0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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