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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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르's Review

소설을 읽다 보면 과연 저자는 어떠한 생각들로 시작하여 이 이야기들을 써내려 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주인공들도 그렇고 주인공의 주변에 있는 이들은 물론 열린 결말로 마감을 한 책이라면 더욱이 과연 저자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물음표가 고개를 들게 되는데 당최 어느 곳을 향해 이 질문을 던져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에 그저 마음 속으로 삭히며 혼자만의 공상에 빠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저자가 독자에게 바라는 것이 독서 후의 자신만의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나는 그의 바람대로 나만의 세상을 어수선하지만 나름 열심히 만들어 가고 있던 셈이다.

그러니까 이미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는 집안에 들어서서 이곳에는 무엇이 있고 저곳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보는 것이 일반적으로 내가 소설을 접하는 방식이었다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마음의 푸른 상흔>은 집을 설계한 건축가와 함께 그 집이 어떻게 지어졌는데, 그 순간순간 그가 선택한 골재를 무엇인지, 왜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 됐는지 등 그의 옆에서 한 채의 집이 지어지는 일련의 과정 안에 같이 있는 기분이었으며 저자와 함께 소설을 읽는 기분이라 무언가 다른 책과는 남다른 느낌을 가지게 하는 책이었다.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 지 두 달째다. 내가 없는 동안 나의 소중한 반밀렘 남매는 어떻게 밥을 먹고 무엇으로 생활했을까? 후견인으로서 후회(기쁜 후회)를 느낀다. 남매가 신세를 지게 된 부자의 이름을 다시 찾아봐야 하는데…… 제델만 부부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세바스티앵이 제델만 부인과 해야 할 일을 했는지 결정해야 한다. 불평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문

그녀의 손끝에서 살아나게 되는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가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녀가 그들은 놓아두고 자신의 삶을 사는 그 순간마저도 그들의 생각에 잠겨 어떻게 그들이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것이 소설과 에세이가 결합된 액자식 구성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아마 나는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라는 남매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라 믿었을 것이다.

땀의 대가로 살아간다기 보다는 그들에게 원초적으로 주어진 육체로 오늘을 연맹하고 있는 이 남매는 그들이 실제 처해있는 현실은 노숙자나 다름 없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지만 그들이 하고 다니는 행색은 여느 부잣집 도련님과 아가씨와 다름 없을 정도로 허세에 빠져 사는 모습은 때론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당장 오늘 저녁으로 때울 음식조차 없으며 그들의 입은 드레스와 정장차림으로는 걸어갈 수 없기에 기꺼이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그들. 때론 얄밉기도 하고 대체 왜 그들은 후원자만을 기다리는 것일까, 라는 답답함을 안고도 있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은 그럼에도 그들에게 계속된 연정을 보내고 있다.

나는 이렇게 내 주인공들을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가장 견딜 수 없는 가장 추악한 상황에 밀어 넣었다. 그들은 꿈에도 바라지 않았던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예감할 수 없었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내가 이 책에서 상상력을 예찬한 것도 물론 그런 이유에서였다. 행복과 불행, 무사태평, 삶의 기쁨은 백 퍼센트 건전한 요소이다. 우리는 그것을 가질 권리를 백 퍼센트 가지고 있지만 한 번도 만족할 만큼 가지지 못하며 거기에 눈이 먼다. –본문

대체 이 남매의 행보는 어디까지 가게 되는 것인가, 에 대한 궁금증, 한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녀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을 드러낼 수 있도록 계속해서 주인공들을 밀어 넣고 있다.

3주의 시간 동안에 변해있는 브뤼토 라페와 남매의 분위기 속에서 로베르 베시는 그 어디서도 느껴본 적 없었던 배신감과 슬픔에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브뤼토 라페, 엘레오노르, 세바스티앵에게는 그러할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어찌되었건 그들에게 드리우는 것은 한 인간의 죽음이다.

친절한 듯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너무나 많은 길 위에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또다시 길을 잃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초반의 느꼈던 친절함이 과연 친절함이었던가, 에 대한 물음과 쉽게 진입하기는 했지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막막하기도 했던 이 이야기를 보며 그럼에도 매혹적이기에 빠져나올 수 없었던 책이었노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과연 그것이 나였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물음이 다시 앞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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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터의 고뇌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저

독서 기간 : 2014.11.25~11.2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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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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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르's Review

 

   

길에서 김정운 교수를 만났더라면(물론 그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그저 스쳐지나 가며 무언가 독특한 아저씨다,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중년 남성들이 좀처럼 선택하지 않는 파마머리에 나비 넥타이를 하고 있는 그가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느낌이기는 하지만 아마 나의 호기심은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 그 이상 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없는, 그저 한 명의 아저씨로 남았을 테니 말이다.

늘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에게는 유쾌하면서도 그만이 가지고 있는 당당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저 그를 스쳐 지나갔다면 몰랐을 것들을 활자를 통해 보면서 화통한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때론 골똘히 생각에 빠지게도 하는 그의 이야기는 늘 기대되는데 이번 <에디톨로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즐겁게 읽어 내려간 책이었다.

모든 창조는 편집에서부터 온다, 를 주장하고 있는 그의 서막의 모습은 씁쓸함이 묻어난다.그가 아무리 주장을 한다 해도 세계 속의 작은 대륙 안의 한 남자가 이야기 하는 것은 그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기에 그가 지금까지 계속 주장해 온 에디톨로지의 중요성이 묵살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어떠한 것들이 중요한지를 걸러내고 그 안에서 연관성을 찾아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인 에디톨로지에 대해서 그가 주장하는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우리가 입에 단내가 나도록 이야기하는 창조라는 것이 실제는 편집 능력의 재구성임을 알 수 있다.    

정보가 부족한 세상이 아니다. 정보는 넘쳐난다. 정보와 정보를 엮어 어떠한 지식을 편집해낼 수 있느냔가 관건이다. 편집의 시대에는 지식인이나 천재의 개념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정보를 외우고 있으면 천재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지식인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식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이다. 천재는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다. –본문

 앞으로 드리울 미래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예견했던 미네르바의 실존재는 물론이거니와 황우석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을 보며 지식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던 대학이나 전문인 집단 안에서만 활성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누가 어떻게 이 정보들을 사용할 줄 아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법인 카드를 이용한 학습 방법은 우리네 주입식 교육인 고스란히 암기하고 시험보고 다시 증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이용해 다양한 조합으로 정보들을 만들어내고 그 정보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는, 이른바 자신만의 정보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그가 말하는 에디톨로지의 공부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생각이다. 독일 학생들은 모은 카드를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시 편집한다.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카드를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달이라는 개념과 관련된 프로이트, 피아제, 비고츠키, 융의 이론을 자기 기준에 따라 다시 정리한다. 이때 정리는 그저 알파벳순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설정한 내적 입관성을 가지고 카드를 편집하는 것이다. 이렇게 편집된 카드가 바로 자신의 이론이 된다. –본문

편집이 무어 그리 중요하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폰이 바로 이 편집의 기술로 인해 재탄생 된 것이며 그로 인해 수 많은 기업들이 휘청거렸으며 이로 인해 아이폰과 같은 모델을 만들어내려는 후발주자들의 아련한 행보들을 보노라면 이 편집의 기술이라는 것이 그저 하나의 기술이라 말하기엔 광범위하면서도 새로운 창작임에는 틀림없다.

 언제나 익숙한 방향에서만 바라보고 그것이 당연하다 믿는 우리에게 김정운 교수가 던지는 그림을 보는 관점에서 우리의 모습을 오롯이 자신의 관점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들만 마주하며 그것에 옳다고 여기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과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반문을 던지게 된다.

 천재는 사회문화적 편집의 결과다. 천재의 사회문화적 필요가 극대화된 시기가 바로 단선론적 발달관이 형성되던 근대초기다. 봉건으로부터 시민사회로의 이행기는 성숙한 주체, 능력 있는 개인에 대한 신념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위대한 개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역사 발전은 이 같은 위대한 개인에 의해 이뤄진다고 믿었다. –본문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에서 천재의 탄생이 아닌 결핍이 되어 있는, 그러니까 부족함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조합을 계속 하다 보면서 천재가 탄생된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책 안에서 내내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편집의 중요성과 다르지 않다. 천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그 시대 속에서 계몽이라는 것의 필요성을 인지하게 되고 계몽의 필요성은 주변에 잔재해 있는 것들을 재구성하여 타인들에게 나누어 그 수준을 끌어 올리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 속의 천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한 개개인이 담고 있는 곳에서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 그가 말하는 편집의 기술은 꼭 필요한 것이라 보여진다. 여전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내가 얼마나 세상에 잘 길들여졌는지에 대해서 마지막까지 허를 찌르는 그의 지적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뜨끔하게 만든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지만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조금만 비뚤어져 생각해봐야겠다

 

 

아르's 추천목록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 스티븐 나흐마노비치저



 

독서 기간 : 2014.11.05~11.0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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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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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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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며 , 이 문장들이 나에게서 나온 것들이라면.’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도무지 나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문장이겠지만, 이 글을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 그릴 수 있는가, 라는 생각과 이러한 표현을 나타낼 수 있는 그들에 대한 존경심과 외경심은 물론 언젠가는 내가 이러한 문장들을 만들어 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나게 읽어 내려가곤 하는데 이러한 책을 만났을 경우에는 이른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즐겁게 페이지를 넘기게 되니 이 <향기>는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마주한 필립 클로델은 이전에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지만 서도 이 한 권의 책을 통해서 그에게 제대로 매료됐기에 그의 책들을 하나 둘 장바구니에 담으며 뿌듯해하고 있다. 냄새와 기억에 대한 삶의 순간 순간을 기록해내는 그의 이야기는 그저 글을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 빠져들게 되며 하나의 이야기를 쫓아 그의 기억 속으로 함께 들어서게 된다.

 전기 면도기가 손가락 사이에서 팽팽히 당겨진 피부를 따라 미끄러진다. 같은 곳을 여러 번 지나가 반들반들해진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긴다.
 
놓치지 않고 계속 바라보는 내 눈길을 따라 아버지는 점점 더 젊어진다. 
 
지난 밤, 아버지를 늙게 만들어 나에게서 빼앗아 가려던 수염, 잠자는 동안 아버지의 얼굴에 내려앉았던 수염, 흰색과 회색과 잿빛이 뒤섞인 그 수염이 사라져간다. –본문

어릴 적 아버지가 면도하는 모습을 보며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심코 면도기를 들었다 어김없이 얼굴에 생채기를 남기고서는 그 범죄의 현장을 무마시키기 위해 꽤나 오랜 시간 휴지를 돌돌 말아 지혈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에게 아버지의 면도는 넘을 수 없는 선을 넘기는 대가를 톡톡히 알려주고 있었고 그 이후에는 면도하는 아버지를 본다 한 들 그저 무심히 바라보며 넘기곤 했는데 그 순간을 저자는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수염이 사라지며 점점 더 젊어지는 아버지를 보며 그는 어떠한 생각들을 떠올렸을까. 면도기가 아버지의 얼굴을 지나갈 때마다 내가 보고 있던 아버지는 몇 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한 그 마법의 순간을 보며 그는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만 같다.

식은 양배추는 가장 잔인한 암살자와 같다. 항상 무언가를 남긴다. 범죄의 흔적을, 움직이지 않는 연기를. 증거를 인멸할 생각을 못하는 서툰 살인자다.
 
또한 그 누구라도 사랑하지도 방문하지도 않는 노인들의 냄새다.
 
죄수의 냄새. 양로원과 유치장을 떠나지 않는 냄새.
 
양배추는 거대한 유페의 공간을 받아들여 길고 짧은 형벌과 삶의 종말을 홀로 알고 있는 듯 하다.
 
파괴된 삶, 감시받는 삶, 질식할 것 같은 삶, 망가진 삶, 부서진 삶,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까지도. 본문

양배추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해서 잔상이 남아있는 부분이었는데 샐러드를 만들어 먹거나, 찜 요리에 사용하는 것이 전부인 양배추에 대해 이토록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라는 생각에 상념에 빠져본다. 양배추가 낯설어서 그런 것이라고 해도 매일 마주하는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를 보면서도 나는 그 어떠한 생각을 떠올린 적도 없기에 무언가 곤궁의 신분을 대변하는 이 양배추에 대해 애증 어린 시선을 조아리는 그의 고백은 생경하지만 그 생경함이 점차 반색이 되어 나타나게 된다.

현재 양배추가 그의 곁에 없으면서도 곁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흔적을 남기는 양배추의 향은 그로 하여금 학창시절 교실 내에서 자신에게만 풍기는 그 향이 가끔은 주변의 시선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는 다시 양배추를 찾고 있었으며 이것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변하지 않은 익숙함으로 남아 있다.

 매 순간마다 마주하는 이야기는 향기에 대한 기반을 떠나서 그의 순간에 스친 짧은 시간들이 거대한 기록으로 남겨져 현재의 나에게 전해지고 있다. 나에게는 그저 찰나의 기억에도 머무르지 않을 것들이 그에게는 이 모든 기록으로 남았다는 것에서 부러움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앞으로도 그의 이 기록들이 계속되길 바라보며 다른 책들로 이 즐거움을 이어나가 봐야겠다.

 

  

 

아르's 추천목록

 

누비처네 / 목성균저


 

 

독서 기간 : 2014.11.24~11.2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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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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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 작가의 이름은 너무도 친숙하리만큼 들어왔지만 실제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그녀의 작품을 첫 번째 조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해변빌라>를 통해 바라본 감상평을 짧게 끄적여 본다면 읽다 보면 무언가 뜬구름을 잡듯 확고한 그 무엇을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책을 넘기게 하는 마력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A B, 라는 확고한 명제는 아니지만은 에둘러 가는 그 길마저도 싱그럽게 만드는 그녀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멍해지면서도 또 어느 순간 또렷하게 각인되기에 신비로움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다, 할 때의 그 사과이지. 삶이란 사과 껍질을 얇게, 끊어지지 않게 깎는 일이야. 그 사과는 페루에만 있는거야? 라고 물으면 당연하지, 라고 말했다. –본문

해삼을 찾으러 새벽부터 바다로 나가는 모습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 속에서 해삼에 대한 상념은 유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회귀되는데 과연 이러한 생각들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한 명의 독자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상상력에 무한함에 다시금 외경심을 갖게 된다.

어찌되었건 다시 소설로 돌아와 아버지인줄 알았던 이는 그저 고모부일 뿐이고 작은 고모라고 생각했던 이가 실은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녀는 담담하다. 자신의 생모에 대한 진실보다는 고모부가 자신의 생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던 그녀는 고모부가 생을 마감한 순간보다 그가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에서 상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생부에 대해서 이린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지만 유지는 계속해서 아버지를 찾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보여요?’라는 그녀의 질문 안에서 존재하지만 실제 세상에 섞이지 못한 자신이라는 존재의 의문을 향한 물음을 내던지는 셈인데 그 순간 이사경 앞에서 나체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타인이, 그러니까 중년의 아버지와 같은 누군가가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이 아니서였을까. 물론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도 없는 고민을 해보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해석한 바로는 그녀의 존재를 타인에게 확인 받고 싶은 마음에서 일으킨 충동적인 행도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 사건 이후로 그녀와 이사경의 존재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되고 이사경의 어머니인 노부인을 마주하게 되는데 주말마다 노부인의 집을 방문해 피아노를 치며 유지는 그들과의 관계도 점점 쌓이게 된다. 손이린과 이사경 사이의 관계 정리를 위한 교가로 유지를 이용하고 있는 노부인이지만 유지는 그 시간 속에서 과연 이사경의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만이 점점 커져갈 뿐이다.

갑작스레 떠나버린 이린과 남겨진 유지와 해변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계속 이어진다. 노부인의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사람들은 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연조는 이혼을 했고 어느 날 동네에 나타났던 연인은 세상을 등지고 카페의 주인인 편사장은 또 나름의 사랑을 그리고 있었으며 한때는 연인이었지만 이제 다른 이와 결혼한 오휘까지 다시 돌아오면서 모든 것을 머금어 조용하다 못해 고요할 것만 같은 이 마을은 나름대로의 생기를 가지고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한 후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진 모터바이크가 알래스카의 해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처럼 처음 시작한 지점에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랑이야. 어느 물리학자가 그랬지. 사랑의 법칙은 푸앵카레의 비가역적 에너지론에 지배를 받는 다고. 비가역적이라는 말은 살아의 끝은 생각지 않은 고으로 삶을 옮겨 놓을 수 있다는 의미야. –본문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해서 처음과 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경린 작가의 말마따나 그저 떠오르는 것들을 들려주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확고한 틀을 가지고서 들려주는 것들이 아니기에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라기 보다는 스타카토처럼 순간순간을 들려주고 있지만 그 순간들을 또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지게 된다.

해변에 써 놓은 글자처럼, 순간들의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지기는 하나 파도 속에 다시금 사그라드는 현실처럼 유지를 비롯해 그들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듯 하면서도 또 금새 고요히 자리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모든 것은 파도 속에 묻어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답답하거나 풀리지 않은 궁금증에 원망이 들기 보단 오히려 이 문장 하나하나를 스쳐지나 갈 수 있었다는 것에 그저 즐거웠을 뿐이다. 아마 이것이 전경린 작가의 마력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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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 김혜진저

독서 기간 : 2014.11.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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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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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사랑하는 이들을 갑작스런 사고로 떠나 보내야 했던 이들에게는 그들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이 모든 것들이 꿈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일 것이다. 눈뜨고 나면 들려오는 믿을 수 없는 사건 사고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던 2014년도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울컥하니 왜, 라는 말만 되뇌게 했던 그 순간들이었기에 피붙이를 잃어야 했던 그들의 마음을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아련한 시간들을 건너 이 <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보며 저자는 남겨진 우리에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이유들에 대해서 나지막이 들려주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기운을 차려 오늘을 시작해야 할 힘을 얻게 된다.

 

 막둥이로 태어난 태산이는 이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였지만 곁에 아버지가 든든한 버팀목으로 그의 곁에 있었기에 나름의 시간들을 잘 지내고 있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잃기 전까지 말이다. 쌀집을 운영하며 일흔이 넘으셨어도 정정하셨던 아버지는 트럭 사고로 인해 열 여섯의 태산을 홀로 두고 그렇게 세상을 떠나게 되고 세상에 홀홀단신으로 남은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 오촌 아저씨는 태산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부모가 남긴 재산을 가로챌 생각만하고 있을 뿐이다.

 

해리와 태산이. 나는 사진 뒤에 적힌 글씨를 눈으로 읽고 다시 입으로 읽었다. 해리와 태산이. 태산이는 난데? 두 번쯤 읽고 나서야 나는 태산이가 내 이름이라는 걸 인식했다. 해리라는 이름에 정신이 빠져서다. 해리, 낯설지 않은 이름. 그리고 해리 미용실 본문

 

 그렇게 혼자 남겨진 그에게 아버지가 남긴 메시지의 발견은 그의 삶을 제 2의 현장으로 접어들게 한다. 사진 뒤에 남겨진 이곳을 꼭 찾아가라란 장소를 찾아 부산의 해리 미용실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가냘픈 미용실의 주인에게서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지만 집에서 보았던 동일한 십자수가 그 미용실에도 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이상의 성과는 없이 발길을 돌리게 된다. 동일한 십자수와 아버지의 메시지에 관한 의문은 태산을 걱정했던 선생님의 권유로 참석한 모임에서 듣게 된 이야기로부터 풀리게 되는데 사랑하는 이들을 보내야만 했던 태산과 해리 미용실의 남자는 그렇게 상처를 안고서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태산아, 지금 보이는 네가 전부가 아니다. 나는 네가 너에게 주어진 양파 껍질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며 성장하길 바란다. 어려움을 벗겨내면 그와 반대가 기다리고 있고 슬픔을 벗겨내면 기쁨이 있다는 말이다. 오늘이 슬프다고 내일까지 슬픈 법은 없고 지금이 힘들다고 네 앞 날이 계속 그렇지는 않을꺼야.
 
지금은 아버지의 부내가 아직 실감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지는 마음으로 견뎌라. –본문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고 남은 이들이 마주해야만 하는 그 아련함.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고통을 감당하다 못해 자신을 기억을 놓아버리고서야 살 수 있었던 그 삶 앞에도 아직 이 모든 것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들이 그들에게 남겨지게 된다.

 그래, 나는 한 편의 소설을 통해서 이들의 아픔을 그려보며 그저 가늠해 보지만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가슴 속에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건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되뇌어 본다. 아직 양파껍질을 다 벗겨내지 못한 채 아스라히 사라져버린 그들을 위해서라도 오늘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몫까지 더 치열하게 오늘을 내달려야 하지 않을까. 책을 덮고 나서 현재의 우리를 더 먹먹하게 하는, 세상에 남아 있는 수 많은 태산이가 홀로 걸어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함께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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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먼저다 / 안느 마리 폴저


 

 

독서 기간 : 2014.11.1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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