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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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이 세계는 각 사람들의 불확실한 꿈과 꿈이 연결되어 있는 토대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더 이상 꿈을 꾸기를 거부하거나 작은 실수로 조금만 그 균형이 흐트러져도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무서운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름의 마지막 장미꽃 한 잎은 너무나 강렬했다. ‘도미노’, ‘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와 같은 종류의 소설을 읽으면서 비교적 나와는 취향이 맞지 않아 한동안 멀리 떨어져 있던 온다 리쿠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는데 눈 깜짝할 시간조차 길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온다 리쿠의 소설을 다시 펼치면 될 일이었지만 그 즈음하여 다른 흥미로운 작가들의 대거 등장으로 인해 소원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거짓을 사실처럼 잘 꾸며 내려면 사실을 어느 정도 적절하게 섞는 것이 핵심이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색깔을 입히는 쪽이 얘기하기가 쉽다. (중략) 그녀들은 과연 무엇을 은폐하려는 것일까. 나는 그 점에 흥미를 느낀다. 우리도 오래전부터 거짓말을 해 왔다” (p.48)
“진실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허구가 섞이면 더욱 진한 향을 풍긴다” (p.244)

   사와타리 가문이 세운 깊은 산 속의 궁전 같은 호텔 속에서 펼쳐지는 실제와 환상이 뒤섞인 미스터리한 이야기.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 동안 모두가 서로 다른 꿈을 꾼 것처럼, 공간은 하나이지만 각 등장인물들의 불확실한 기억이라는 창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남매 사쿠라코와 도키미쓰 간의 안타까운 관계와 그 둘을 애틋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으로 바라보는 사쿠라코의 남편 류스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혼란에 빠졌던 사쿠라코의 또 다른 연인이자 사와타리 가문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다쓰요시, 작품 속을 관통하는 큰 갈등의 뿌리를 뽑고자 하는, 역시 이 가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아마치 교수, 그리고 배우이자 류스케와 친척 간인 미즈호와 그녀의 매니저 사키 등 각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어느 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어느 것이 뒤틀린 기억과 망상에 의한 부산물일 뿐인지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있었다고 믿으면, 공언해 버리면, 사실로 인정된다. 그런 일이 세상에는 왕왕 있다” (p.75)
“허상을 구축하는 사람들. 그 세 자매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하루하루 자신의 허상을 만들어 간다.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상, 남들이 이걸 자신이라고 여겨 줬으면 하는 상을” (p.123)

   이 모든 인물들의 중심에 매년 호텔에서 열리는 파티의 주인공이자 사와타리 가문의 어른들인 세 자매 이치코, 니카코, 미즈코가 있다. 류스케에게는 이모들이며, 니카코는 미즈호의 어머니다. 진실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는 세 자매의 대화를 청중들이 보는 형태로 이 수수께끼의 파티는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세 자매의 대화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의 전개로 사람들을 두렵게도 하고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여인의 죽음과 함께 그해의 파티는 의문을 남긴 채 끝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 등장인물들은 자기 안에 있는 분노와 슬픔,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문제는 훗날 이들이 떠올리게 되는 그날의 사건들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 누구의 기억이 진실이며, 누구의 기억이 환상인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지난해 이곳에서 사건 따위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어요. 있는 것은 지난해를 사건화하려는 당신들의 의지뿐이죠. 없었던 밀회를 있었던 것으로 하고 낯선 남자와 여행길에 오르려는 주인공이 있어요. 하나, 그런 여행이 성공할 리 없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느긋하게 쉰 후에는 자신이 아는 세계로 돌아와야 할 겁니다” (p.371)

   작중 아다치 교수가 보는 환영처럼 이 소설은 모래에 묻혀 모래시계의 사구 아래로 가라앉듯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무엇을 위해 그토록 냉철해야 했으며, 강인한 척 해야 했는지를 묻게 한다. 비극적인 현실을 뒤로 한 채, 믿고 싶은 것만을 현실로 받아들이려 하는 등장인물들의 환상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면서 가끔씩 이 삶이 제발 꿈이기를,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의 모습을 비춰보기도 했다.
   온다 리쿠의 소설 세계는 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 설정과 이미지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빠지는 것은 조심해야겠다. 그녀의 소설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고 위로를 얻는 선물 같은 것이니까. 다시 삶으로, 내가 아는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힘겹게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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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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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초등학교 1, 2학년 시절 ‘바른생활’과 ‘바른생활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도덕의 내용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 만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성공한 기업인의 사장실 책장에 이것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꽂아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앞서 말한 초등학교 교과서들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상냥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며 인사하고,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신호등이 가리키는 대로 길을 건너고 차를 몰고, 정당한 값을 치르고 무언가를 사거나 즐기고, 남의 것을 훔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잘났으면 잘난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고 살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며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기간이 꽤 길었다. 막상 세상이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 있었고, 나는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왔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배신감과 혐오감, 증오심으로 이어졌고 생각은 점점 비관적으로 바뀌었으며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세상을 보며 나만 피해보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원망과 체념 사이에서 한동안 오고 갔다. 지금도 물론 그런 기운이 싹 가신 건 아니다. 어쩌면 속으로는 더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이만큼이나 우리나라에서 돌풍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때마침 다소 엉뚱하기는 했으나 현직 대통령이 언급한 ‘공정한 세상’이라는 화두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욕망 혹은 허영이 맞물리면서 이 책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또 다시 우리에게 근본적인 고민을 요구하듯 ‘왜 도덕인가?’가 나왔다. 민주사회에서의 도덕적 가치가 왜 중요한지 물으면서 시작되는 이 책은 먼저 도덕이 무엇인지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교육과 종교, 정치의 영역으로 나누어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복권과 도박, 고도로 상업화된 프로스포츠, 기업화되어가는 공공기관을 통해 오염된 공공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온실가스 문제와 소수인종에 대한 특혜 논란 등 우리 사회에서도 앞으로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이슈를 짚어보고 있다. 내가 특히 관심이 갔던 분야가 교육 분야인데 상업주의와 시장논리에 휩쓸려 교육의 근본목적보다는 특정 세력의 이익 창출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학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낙태와 동성애 같은 개인의 권리 및 공적 가치가 부딪히는 문제는 종교 문제와 맞물리며 커다란 도덕적 딜레마를 제공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정치에 있어서의 도덕적 가치란 과연 무엇인지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현 오바마 대통령의 사례에서 그 의미를 고민하고 있다.

   오늘날 이토록 도덕적 가치를 둘러싸고 다양하고 복잡한 논의가 오고가게 된 근원을 이전 시대의 다양한 사상가들의 공리주의나 자유주의 등의 정치철학을 언급하면서 논의하고 있다. 난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앞서 얘기했듯이 왜 이렇게 도덕이라는 것이 복잡하고 어려워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보통의 선량한 사람들은 그처럼 복잡한 계산을 일일이 하지 않고서도 평화롭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보통의 사람들이 작은 단위를 이루고 보다 큰 집단이 되면 그 성격이 변하게 되는 모양이다. 부분과 전체는 다르다는 명제가 이처럼 명확하게 다가오는 실례는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결국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시민의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자도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가기보다 그 흐름이 정말 옳은 것인지 다수와 소수에게 최선의 선택인지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시민사회가 될 수 있다면 도덕이란 것이 딜레마의 대상이 아니라 아주 유쾌한 삶의 가치 및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읽었던 ‘돈 한푼 없이 1년 살기’나 홍세화 선생님의 ‘생각의 좌표’가 떠올랐다. 주입된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의심해보고 더욱 바른 삶의 가치를 위해 노력하면서 생각의 주인, 생활의 주체로, 그리고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공동체로 모두가 살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모든 인류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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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 이기는 설득을 완성하는 힘
제이 하인리히 지음, 하윤숙 옮김 / 8.0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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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은 ‘이기는’ 설득을 완성하는 힘, 이라고 하지만 이 ‘이긴다’는 의미를 단순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너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다시 말해 승패를 가르는 수사학이 아닌 모두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이나 무기가 ‘카이로스’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함께 승리하는 힘을 어떻게 가르쳐 줄지 기대하면서 ‘카이로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수사학의 의의

   저자는 먼저 우리의 작은 일상생활에서조차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요소가 없는 곳이 없음을 지적한다. 의미 있는 ‘논쟁’과 승자도 패자도 결국에는 모두 패자가 되는 ‘싸움’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수사학이 단순한 말싸움 기술이 아닌 보다 풍요로운 삶을 만들기 위한 유익한 기술임을 밝히고 있다. 

목표 설정의 중요성

   이기는 ‘설득력’을 갖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목표 설정’을 제시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얻길 원하는지, 혹은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길 원하는지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내 자신이 수없이 많은 꿈과 열정의 시간을 지나왔지만 정작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항상 어떤 일에 집중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되면서 심정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끝난 경험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 분명한 목적이나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시제에 따른 논쟁의 방향

   이후 본격적으로 수사학의 여러 가지 기술을 소개하고 있는데, 가장 많이 반복되고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바로 ‘시제’와 ‘수사학의 세 가지 기본 도구인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에 관한 것이다. 논쟁을 할 때 어떤 시제로 말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데 과거시제는 법정수사학이라 하여 책임 소재를 따지는 대화가 된다고 한다. 보통 나를 포함해 사람들이 대화, 즉 어떤 사안에 대해 논쟁 형식의 대화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니가 그랬잖아’, ‘~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 했었지?’ 등등. 과거에 무언가를 했었다는 패턴의 대화에서는 누가 잘했고 누구는 잘못했고 식의 잘잘못을 가리는 대화가 되기 쉽다. 이런 대화는 속은 시원할 수 있을지언정 남는 것은 없고 앞으로의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현재시제는 논증의 수사학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가치의 문제를 다룰 때 주로 쓰이지만 역시 미래를 건설적으로 내다보는 데는 부족하다. 무엇이 옳은가 잘못되었는가를 따지다 보면 과거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과거시제의 논쟁으로 돌아가게 되어 역시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시제와 현재시제의 논쟁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보다 지혜로운 대처를 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와 같은 논의의 수사학, 즉 미래시제의 설득화법으로 논쟁의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다. 논쟁의 성격, 목적에 따라 적절한 시제를 선택해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결론적으로 우리는 계속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미래시제를 통해 논쟁을 마무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제에 관한 이야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나의 일상에서 되도록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족과의 대화, 친구들과 그 외 지인들과의 대화 가운데서 미래시제를 많이 쓰려고 하다보니 생활도 점점 밝아지는 것 같고 어느 정도 효과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직 며칠 되지 않았으니 속단하긴 이르지만 말이다.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

   이렇게 논쟁의 방향이 정해지고 나면 수사학의 세 가지 기본 도구인 로고스와 에토스, 파토스가 필요하게 된다. 로고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 주장을 말하는데 어떤 대화를 하든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므로 기본적인 논리는 세워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학창시절 많이 들어왔던 귀납법이나 연역법, 삼단논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에토스는 인격을 바탕으로 한 주장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미덕과 실천적 지혜, 사심 없는 태도이다. ‘실천적 지혜’란 매 상황에서 올바른 결정을 찾아내는 본능, 즉 대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실제 상황에서 유연하게 적용하는 능력을 말하고 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해도 그것을 모든 상황에 일관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설득을 위해서는 백만 가지 말보다 하나의 적절한 행동이 더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논쟁의 초중반부는 이 로고스와 에토스가 큰 역할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람은 차갑고 딱딱한 벽이 아니기에 감정적인 부분까지 사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수사학의 세 번째 도구인 파토스이다. 감정을 바탕으로 한 주장으로, 쉽게 말해서 상대방의 기분을 변화시켜 내 주장을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기술이다.

수사학과 논리학

   수사학과 논리학을 비교한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특히 수사학,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인가 하는 점,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기 때문에 논리학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여러 논리적 오류들이 수사학에서는 멋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재미있었다.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거나 저자 자신의 생각을 추가로 덧붙일 때,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예를 들 때 인터넷의 팝업창이 떠오르는 듯한 가장자리 박스구성은 약간 눈을 어지럽게 하는 면도 있지만 대체로 좋은 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 자신의 경험과 저명인사들의 사례를 들어 다양한 수사학의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수사학적 기술들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되면서 아주 놀라웠고, 부시의 능력 또한 우리가 겉으로 보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전부터 링컨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서 난 참 혼란스러웠는데 수사학의 관점에서 보니 그의 모습이 이해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노예해방을 위해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언행을 흉내낼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뇌가 잠시나마 느껴지는 듯도 하였다. 현실의 한계에 대한 답답함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분명해진 것은 나의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전과는 확실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수사학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만남, 즉 관계라는 것이 필수라는 것.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할 수는 없으니까. 자신감이 많이 부족한 나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끊임없는 자기설득의 과정이 아닐까. 어쩐지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당신에게 수사학의 마법을 걸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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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법칙 민음사 모던 클래식 35
러셀 뱅크스 지음, 안명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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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되던 해 여름, 마리화나에 푹 빠져 있었다는 담담한 주인공의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결코 만만치 않은 500쪽 가까운 분량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청소년 시기의 혼란과 방황 가운데서도 자신만의 인생의 법칙을 세워가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기에 오히려 그 두께가 부족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 채피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이혼, 계부의 학대, 친모와의 닫힌 소통, 가난 등으로 점철된 절망뿐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가 가족 외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도 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는 처지의 친구 러스와, 약물에 쩔어 아무런 의미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폭주족들이 전부였다. 폭주족들 중에는 그나마 인간적으로 그를 대하는 브루스라는 인물도 있긴 했지만 뜻밖의 사고로 그는 죽게 되고, 더 이상 살던 동네에서 지낼 수 없게 되어 러스와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돈도 희망도 없는 그들의 생활은 계속 지속되지 못하고 두 사람은 이내 헤어지게 된다. 드디어 주인공 채피는 혼자가 되고, 본격적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변태 포르노 업자에게 붙잡힌 소녀 로즈를 구하게 되고 우연히 발견한 버려진 스쿨버스에서 아이맨이라는 자메이카 출신의 불법체류자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잠시나마 활기를 찾게 된다. 이때 삶에 대한 희망을 엿본 채피는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평범한 인생을 사는 꿈을 꾸게 되지만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가족과의 관계에 절망하여 평생의 멘토가 되는 아이맨을 따라 자메이카로 떠난다.

자메이카에서 아이맨의 도움으로 조금씩 삶에 대한 희망을 회복해가던 채피는 운명적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지만,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결국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이 마리화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소설 전반에 걸쳐 보여주는 것이 내게는 아주 흥미로웠다. 고향에서의 우울한 시기를 마리화나를 피우며 버텼고 마리화나를 거래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해가는 모습, 인생의 스승이라 할 수 있었던 아이맨조차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것이기는 하지만 마리화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로 나오는 점, 그를 따라 떠난 자메이카에서의 생활도 마리화나 재배와 거래가 주를 이루고, 기적적으로 만난 아버지와 그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조차 약물 없이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소설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언제부턴가 약물과 같은, 사람을 혼미하게 만든는 것들에 중독되어 있지 않으면 삶이 성립하지 않는 현대인의 피폐한 정신세계를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말미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사람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주인공 채피가 자신의 의지와 믿음만으로 올곧은 삶을 살게 될지, 기본적으로 마리화나는 인생의 필수옵션으로 안고 가게 될지 궁금증을 안고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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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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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기억을 하고 있느냐 하면, 6학년으로 올라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께서 남은 초등학교 생활 1년 동안 꼭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정해보자, 는 말씀에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소설을 한 편 써보겠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렸을 때라 해도 갑자기 생각난 것을 말했을 리는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직전의 겨울쯤에 글에 대한 관심이 발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전부터 만화를 그리면서 유치하기 짝이 없었어도 이야기를 만드는 취미랄까, 혹은 습관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생활이 다 끝나가도록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 당시 초등학생들이 보통 사던 얇은 두께의 원고지가 아닌 제법 두툼한 원고지까지 준비해놓고서 말이다. 아마 그때 어떻게 해서든 이야기를 써봤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그때부터 지금까지다. 글에 대한 내 마음의 불씨가 확 퍼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어버리지도 않은 채로 평생을 정확한 이유도 모르는 채 안고 살아야 하는 미열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은.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펜을 잡고 공책 앞에서 머뭇거리다 어느새 그만두는 장면을 내 인생에서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러는 동안 글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허영과 욕망으로 점철된 겉치레에만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솔직하고 편안하게 끄적거리는 것조차 힘들게 되고 글쓰기라는 행위와 나와의 거리는 꽤나 멀어졌다. 일기를 다시 쓰고 서평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조금씩 글쓰기와 다시 친해져보려는 때에 읽은 ‘라이팅 클럽’은 이런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처음 시작할 때 밑천이 들지 않아 누구나 시도해보기에 좋은 것이 글쓰기이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대가로 내놓아야만 진정한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에 와닿았고, 수많은 경험, 생활의 축적도 중요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타인의 말에 넉넉히 귀 기울일 줄 아는 열린 태도, 자신의 고집을 비우고 버릴 줄 아는 힘도 길러야 함을 깨달았다. 외모도 별로고 학벌도 변변찮은, 글쓰기 말고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주인공의 심정이 굉장히 답답했을 것 같은데 나 역시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인지 동질감 같은 것을 읽는 내내 느꼈다. 그러나 작가가 굉장히 유머러스하게 인물을 그려내고 있어서 비참하거나 초라한 느낌은 크지 않다.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삶에서 결정적 돌파구가 되는 무언가를 만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글쓰기라는 것으로 풀어내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이거다 싶은 느낌이 왔을 때 마음과 정성을 다해 집중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본다. 그것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말이다. 이것저것 다 맛보다가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서운 일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자기가 아무리 못나고 내세울 것 없다 해도 중심을 지탱해주는 단 하나의 무언가가 있다면 견디고 견뎌 냈을 때 결국 빛을 보게 될 테고 또 다른 음식을 여유 있게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작중에 인용된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와 잭 런던의 ‘강철군화’, 시몬드 보봐르의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의 구절들과 작가들의 삶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조만간 도서관에 들러 꼭 찾아봐야겠다. 참, 돈 키호테에 대한 애정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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