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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기억을 하고 있느냐 하면, 6학년으로 올라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께서 남은 초등학교 생활 1년 동안 꼭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정해보자, 는 말씀에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소설을 한 편 써보겠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렸을 때라 해도 갑자기 생각난 것을 말했을 리는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직전의 겨울쯤에 글에 대한 관심이 발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전부터 만화를 그리면서 유치하기 짝이 없었어도 이야기를 만드는 취미랄까, 혹은 습관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생활이 다 끝나가도록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 당시 초등학생들이 보통 사던 얇은 두께의 원고지가 아닌 제법 두툼한 원고지까지 준비해놓고서 말이다. 아마 그때 어떻게 해서든 이야기를 써봤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그때부터 지금까지다. 글에 대한 내 마음의 불씨가 확 퍼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어버리지도 않은 채로 평생을 정확한 이유도 모르는 채 안고 살아야 하는 미열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은.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펜을 잡고 공책 앞에서 머뭇거리다 어느새 그만두는 장면을 내 인생에서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러는 동안 글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허영과 욕망으로 점철된 겉치레에만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솔직하고 편안하게 끄적거리는 것조차 힘들게 되고 글쓰기라는 행위와 나와의 거리는 꽤나 멀어졌다. 일기를 다시 쓰고 서평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조금씩 글쓰기와 다시 친해져보려는 때에 읽은 ‘라이팅 클럽’은 이런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처음 시작할 때 밑천이 들지 않아 누구나 시도해보기에 좋은 것이 글쓰기이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대가로 내놓아야만 진정한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에 와닿았고, 수많은 경험, 생활의 축적도 중요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타인의 말에 넉넉히 귀 기울일 줄 아는 열린 태도, 자신의 고집을 비우고 버릴 줄 아는 힘도 길러야 함을 깨달았다. 외모도 별로고 학벌도 변변찮은, 글쓰기 말고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주인공의 심정이 굉장히 답답했을 것 같은데 나 역시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인지 동질감 같은 것을 읽는 내내 느꼈다. 그러나 작가가 굉장히 유머러스하게 인물을 그려내고 있어서 비참하거나 초라한 느낌은 크지 않다.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삶에서 결정적 돌파구가 되는 무언가를 만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글쓰기라는 것으로 풀어내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이거다 싶은 느낌이 왔을 때 마음과 정성을 다해 집중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본다. 그것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말이다. 이것저것 다 맛보다가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서운 일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자기가 아무리 못나고 내세울 것 없다 해도 중심을 지탱해주는 단 하나의 무언가가 있다면 견디고 견뎌 냈을 때 결국 빛을 보게 될 테고 또 다른 음식을 여유 있게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작중에 인용된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와 잭 런던의 ‘강철군화’, 시몬드 보봐르의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의 구절들과 작가들의 삶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조만간 도서관에 들러 꼭 찾아봐야겠다. 참, 돈 키호테에 대한 애정도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