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법칙 민음사 모던 클래식 35
러셀 뱅크스 지음, 안명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열네 살 되던 해 여름, 마리화나에 푹 빠져 있었다는 담담한 주인공의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결코 만만치 않은 500쪽 가까운 분량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청소년 시기의 혼란과 방황 가운데서도 자신만의 인생의 법칙을 세워가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기에 오히려 그 두께가 부족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 채피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이혼, 계부의 학대, 친모와의 닫힌 소통, 가난 등으로 점철된 절망뿐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가 가족 외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도 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는 처지의 친구 러스와, 약물에 쩔어 아무런 의미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폭주족들이 전부였다. 폭주족들 중에는 그나마 인간적으로 그를 대하는 브루스라는 인물도 있긴 했지만 뜻밖의 사고로 그는 죽게 되고, 더 이상 살던 동네에서 지낼 수 없게 되어 러스와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돈도 희망도 없는 그들의 생활은 계속 지속되지 못하고 두 사람은 이내 헤어지게 된다. 드디어 주인공 채피는 혼자가 되고, 본격적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변태 포르노 업자에게 붙잡힌 소녀 로즈를 구하게 되고 우연히 발견한 버려진 스쿨버스에서 아이맨이라는 자메이카 출신의 불법체류자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잠시나마 활기를 찾게 된다. 이때 삶에 대한 희망을 엿본 채피는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평범한 인생을 사는 꿈을 꾸게 되지만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가족과의 관계에 절망하여 평생의 멘토가 되는 아이맨을 따라 자메이카로 떠난다.

자메이카에서 아이맨의 도움으로 조금씩 삶에 대한 희망을 회복해가던 채피는 운명적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지만,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결국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이 마리화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소설 전반에 걸쳐 보여주는 것이 내게는 아주 흥미로웠다. 고향에서의 우울한 시기를 마리화나를 피우며 버텼고 마리화나를 거래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해가는 모습, 인생의 스승이라 할 수 있었던 아이맨조차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것이기는 하지만 마리화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로 나오는 점, 그를 따라 떠난 자메이카에서의 생활도 마리화나 재배와 거래가 주를 이루고, 기적적으로 만난 아버지와 그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조차 약물 없이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소설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언제부턴가 약물과 같은, 사람을 혼미하게 만든는 것들에 중독되어 있지 않으면 삶이 성립하지 않는 현대인의 피폐한 정신세계를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말미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사람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주인공 채피가 자신의 의지와 믿음만으로 올곧은 삶을 살게 될지, 기본적으로 마리화나는 인생의 필수옵션으로 안고 가게 될지 궁금증을 안고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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