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 이기는 설득을 완성하는 힘
제이 하인리히 지음, 하윤숙 옮김 / 8.0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책 제목은 ‘이기는’ 설득을 완성하는 힘, 이라고 하지만 이 ‘이긴다’는 의미를 단순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너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다시 말해 승패를 가르는 수사학이 아닌 모두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이나 무기가 ‘카이로스’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함께 승리하는 힘을 어떻게 가르쳐 줄지 기대하면서 ‘카이로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수사학의 의의

   저자는 먼저 우리의 작은 일상생활에서조차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요소가 없는 곳이 없음을 지적한다. 의미 있는 ‘논쟁’과 승자도 패자도 결국에는 모두 패자가 되는 ‘싸움’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수사학이 단순한 말싸움 기술이 아닌 보다 풍요로운 삶을 만들기 위한 유익한 기술임을 밝히고 있다. 

목표 설정의 중요성

   이기는 ‘설득력’을 갖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목표 설정’을 제시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얻길 원하는지, 혹은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길 원하는지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내 자신이 수없이 많은 꿈과 열정의 시간을 지나왔지만 정작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항상 어떤 일에 집중하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되면서 심정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끝난 경험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 분명한 목적이나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시제에 따른 논쟁의 방향

   이후 본격적으로 수사학의 여러 가지 기술을 소개하고 있는데, 가장 많이 반복되고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바로 ‘시제’와 ‘수사학의 세 가지 기본 도구인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에 관한 것이다. 논쟁을 할 때 어떤 시제로 말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데 과거시제는 법정수사학이라 하여 책임 소재를 따지는 대화가 된다고 한다. 보통 나를 포함해 사람들이 대화, 즉 어떤 사안에 대해 논쟁 형식의 대화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니가 그랬잖아’, ‘~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 했었지?’ 등등. 과거에 무언가를 했었다는 패턴의 대화에서는 누가 잘했고 누구는 잘못했고 식의 잘잘못을 가리는 대화가 되기 쉽다. 이런 대화는 속은 시원할 수 있을지언정 남는 것은 없고 앞으로의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현재시제는 논증의 수사학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가치의 문제를 다룰 때 주로 쓰이지만 역시 미래를 건설적으로 내다보는 데는 부족하다. 무엇이 옳은가 잘못되었는가를 따지다 보면 과거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과거시제의 논쟁으로 돌아가게 되어 역시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시제와 현재시제의 논쟁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보다 지혜로운 대처를 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와 같은 논의의 수사학, 즉 미래시제의 설득화법으로 논쟁의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다. 논쟁의 성격, 목적에 따라 적절한 시제를 선택해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결론적으로 우리는 계속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미래시제를 통해 논쟁을 마무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제에 관한 이야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나의 일상에서 되도록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족과의 대화, 친구들과 그 외 지인들과의 대화 가운데서 미래시제를 많이 쓰려고 하다보니 생활도 점점 밝아지는 것 같고 어느 정도 효과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직 며칠 되지 않았으니 속단하긴 이르지만 말이다.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

   이렇게 논쟁의 방향이 정해지고 나면 수사학의 세 가지 기본 도구인 로고스와 에토스, 파토스가 필요하게 된다. 로고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 주장을 말하는데 어떤 대화를 하든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므로 기본적인 논리는 세워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학창시절 많이 들어왔던 귀납법이나 연역법, 삼단논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에토스는 인격을 바탕으로 한 주장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미덕과 실천적 지혜, 사심 없는 태도이다. ‘실천적 지혜’란 매 상황에서 올바른 결정을 찾아내는 본능, 즉 대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실제 상황에서 유연하게 적용하는 능력을 말하고 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벽하다 해도 그것을 모든 상황에 일관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설득을 위해서는 백만 가지 말보다 하나의 적절한 행동이 더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논쟁의 초중반부는 이 로고스와 에토스가 큰 역할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람은 차갑고 딱딱한 벽이 아니기에 감정적인 부분까지 사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수사학의 세 번째 도구인 파토스이다. 감정을 바탕으로 한 주장으로, 쉽게 말해서 상대방의 기분을 변화시켜 내 주장을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기술이다.

수사학과 논리학

   수사학과 논리학을 비교한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특히 수사학,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인가 하는 점,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기 때문에 논리학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여러 논리적 오류들이 수사학에서는 멋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재미있었다.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거나 저자 자신의 생각을 추가로 덧붙일 때,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예를 들 때 인터넷의 팝업창이 떠오르는 듯한 가장자리 박스구성은 약간 눈을 어지럽게 하는 면도 있지만 대체로 좋은 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 자신의 경험과 저명인사들의 사례를 들어 다양한 수사학의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수사학적 기술들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되면서 아주 놀라웠고, 부시의 능력 또한 우리가 겉으로 보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전부터 링컨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서 난 참 혼란스러웠는데 수사학의 관점에서 보니 그의 모습이 이해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노예해방을 위해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언행을 흉내낼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뇌가 잠시나마 느껴지는 듯도 하였다. 현실의 한계에 대한 답답함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분명해진 것은 나의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전과는 확실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수사학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만남, 즉 관계라는 것이 필수라는 것.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할 수는 없으니까. 자신감이 많이 부족한 나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끊임없는 자기설득의 과정이 아닐까. 어쩐지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당신에게 수사학의 마법을 걸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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