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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초등학교 1, 2학년 시절 ‘바른생활’과 ‘바른생활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도덕의 내용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 만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성공한 기업인의 사장실 책장에 이것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꽂아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앞서 말한 초등학교 교과서들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상냥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며 인사하고,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신호등이 가리키는 대로 길을 건너고 차를 몰고, 정당한 값을 치르고 무언가를 사거나 즐기고, 남의 것을 훔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잘났으면 잘난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고 살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며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기간이 꽤 길었다. 막상 세상이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 있었고, 나는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왔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배신감과 혐오감, 증오심으로 이어졌고 생각은 점점 비관적으로 바뀌었으며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세상을 보며 나만 피해보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원망과 체념 사이에서 한동안 오고 갔다. 지금도 물론 그런 기운이 싹 가신 건 아니다. 어쩌면 속으로는 더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이만큼이나 우리나라에서 돌풍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때마침 다소 엉뚱하기는 했으나 현직 대통령이 언급한 ‘공정한 세상’이라는 화두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욕망 혹은 허영이 맞물리면서 이 책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또 다시 우리에게 근본적인 고민을 요구하듯 ‘왜 도덕인가?’가 나왔다. 민주사회에서의 도덕적 가치가 왜 중요한지 물으면서 시작되는 이 책은 먼저 도덕이 무엇인지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교육과 종교, 정치의 영역으로 나누어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복권과 도박, 고도로 상업화된 프로스포츠, 기업화되어가는 공공기관을 통해 오염된 공공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온실가스 문제와 소수인종에 대한 특혜 논란 등 우리 사회에서도 앞으로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이슈를 짚어보고 있다. 내가 특히 관심이 갔던 분야가 교육 분야인데 상업주의와 시장논리에 휩쓸려 교육의 근본목적보다는 특정 세력의 이익 창출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학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낙태와 동성애 같은 개인의 권리 및 공적 가치가 부딪히는 문제는 종교 문제와 맞물리며 커다란 도덕적 딜레마를 제공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정치에 있어서의 도덕적 가치란 과연 무엇인지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현 오바마 대통령의 사례에서 그 의미를 고민하고 있다.
오늘날 이토록 도덕적 가치를 둘러싸고 다양하고 복잡한 논의가 오고가게 된 근원을 이전 시대의 다양한 사상가들의 공리주의나 자유주의 등의 정치철학을 언급하면서 논의하고 있다. 난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앞서 얘기했듯이 왜 이렇게 도덕이라는 것이 복잡하고 어려워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보통의 선량한 사람들은 그처럼 복잡한 계산을 일일이 하지 않고서도 평화롭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보통의 사람들이 작은 단위를 이루고 보다 큰 집단이 되면 그 성격이 변하게 되는 모양이다. 부분과 전체는 다르다는 명제가 이처럼 명확하게 다가오는 실례는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결국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시민의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자도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가기보다 그 흐름이 정말 옳은 것인지 다수와 소수에게 최선의 선택인지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시민사회가 될 수 있다면 도덕이란 것이 딜레마의 대상이 아니라 아주 유쾌한 삶의 가치 및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읽었던 ‘돈 한푼 없이 1년 살기’나 홍세화 선생님의 ‘생각의 좌표’가 떠올랐다. 주입된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의심해보고 더욱 바른 삶의 가치를 위해 노력하면서 생각의 주인, 생활의 주체로, 그리고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공동체로 모두가 살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모든 인류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